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103화 (103/760)

103화

가로 엔터는 조정훈이 보내준 촬영 스케줄 표를 보며 걱정을 삼켰다.

“독일에 갔다가 프랑스, 스코틀랜드까지 가네요.”

“하긴, 스토리보드 볼 때부터 예상하긴 했죠. 배경이 이런데 어떻게 우리나라에서만 찍겠어요.”

한국에서 세트장을 만드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고작 2억으로 해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조정훈이 내놓은 방법이 바로 해외 로케이션이었다.

하지만 해외에서 찍더라도 예산 안에서 해결하는 게 가당키나 할까?

그 의문은 조정훈이 직접 가로 엔터로 와서 해결해주었다.

“감독님, 이거 예산 안에 해결 가능한가요? 일정도 맞출 수 있고?”

홍규헌의 의심 섞인 물음에도 조정훈은 조금도 주눅 들지 않았다.

업계 베테랑다운 모습을 한껏 보여주었다.

“예. 저희 회사, JJH에서는 핵심 스태프만 소수 데려갈 겁니다. 촬영은 현지 프로덕션과 협력하기로 이미 협의를 끝냈습니다. 사장님께서 예산을 집행해주시면 곧장 준비에 들어갈 겁니다.”

“현지 프로덕션이라면 독일, 프랑스, 스코틀랜드에 있는 회사인가요?”

“아니요. 프랑스랑 독일 촬영에서는 독일 프로덕션과 협업합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또 다른 곳이랑 하고요.”

조정훈네 회사 인원을 전부 끌고 가는 것보다야 현지 인원의 도움을 받는 게 훨씬 싸게 먹힌다.

“솔직히 저도 이 정도 규모의 해외 로케는 처음이거든요. 외국에 배경 하나 정해놓고 찍는 건 해봤어도요. 노하우 얻어내려고 선배들한테 얼마나 연락을 돌렸는지 몰라요.”

홍규헌은 조정훈의 열정에 만족했다.

예산안을 보면 그가 허용치 안에서 돈을 아끼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안을 허락만 해주시면 내일 바로라도 저희 팀이 사전 조사하러 나갈 겁니다.”

“이렇게 빨리요?”

“빠르다뇨! 이제 데뷔가 코앞 아닙니까! 뮤비를 빨리 끝내야 사장님께서도 프로모션 시간을 벌 수 있잖아요.”

“아…….”

사람이 진국이다.

조정훈은 성필이 적극적으로 추천한 인물이다.

지금껏 쌓은 커리어도 감독으로 부족함이 없지만, 미래에 그는 더욱 유명해진다.

특히 연출력과 카메라 무빙이 단순히 뮤비에만 쓰기엔 아깝다는 평가까지 있었으니, 성필은 반드시 그와 함께 일하고 싶어 했다.

인성까지 이토록 바를 줄은 몰랐지만.

“그런 부분까지 신경 써주시고, 감사합니다.”

“아니요 아니요. 이게 제 일인데요. 저, 그럼 어떻게, 이 안으로 진행해볼까요?”

조정훈이 잔뜩 기대해서 물었다. 그도 이번 뮤비 촬영이 적잖이 기대되는 모양이었다.

“예, 일단…….”

“사장님.”

허락을 내리려던 홍규헌에게 양해를 구한 뒤, 성필이 그의 말을 받았다.

“이거 보고 떠오른 건데, 포토그래퍼도 데려가는 건 어떠신가 해서요.”

“포토그래퍼?”

의문을 띄우던 홍규헌도 곧 성필의 말을 이해했다.

“그렇네. 이렇게 돈을 들여 세트를 이용하는데, 차라리 티저랑 컨셉 사진까지 해결하는 편에 낫겠어. 한국에 와서 또 사진 찍으려면 돈이 더 나가겠지. 괜찮네.”

“예. 비록 사진 찍기에 최적화된 환경은 아니더라도, 괜찮은 거 몇 장은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음, 감독님 생각은 어떠세요?”

“저도 딱히 상관없습니다. 영상이나 사진이나 필요한 스탭은 비슷하거든요. 환경도 그렇고요. 섭외되면 연락처만 보내주세요. 저희 쪽이랑 말 맞춰보겠습니다.”

“오케이…….”

홍규헌은 예산안 위쪽에 포토그래퍼에 대해 메모했다.

“그리고 감독님 여기 통역사 말인데요, 값이 꽤 나가네요.”

“그렇죠. 현지 프로덕션이랑 영어로만 소통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 독일어 통역사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조정훈은 그 주제가 나오자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영어로 하면 되지 뭐하러 또 독일어냐. 홍규헌이 그런 식으로 태클을 건다면 통역사는 없게 될 것이다.

그야 영어로 하면 되긴 되겠으나, 뮤비 촬영 중 복잡한 상호작용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그, 부담되신다면 꼭 필요하지는 않…….”

“저희 한 이사 데려가세요.”

“한구인 이사님을요? 한 이사님이 독일어를 하시나요?”

잠자코 있던 한구인이 말했다.

“제 고향이 독일입니다.”

“네?”

아무리 봐도 한국인인데, 그런 생각이 조정훈의 얼굴에서 그대로 보였다.

한국은 단일민족이란 말이 흔히 사용되는 만큼, 민족을 곧 국민으로 보는 감정이 강하다.

동양인 그 자체인 한구인이 독일인이라니, 혼란을 겪을 만도 하다.

“그럼 독일인이세요?”

“예, 그렇습니다. 동시에 한국인입니다.”

“……??? 한국은 복수국적이 인정 안 되는 거 아니었나요?”

“병역을 이행한 경우에만 인정해주고 있습니다. 어릴 때까지는 한국에서 살기도 했고요.”

조정훈의 눈이 놀라움으로 물든다.

“그럼 군대를 안 가도 되는데 가셨다는…….”

“예.”

한구인에 대한 놀라움과 함께 연민이 생겨난다.

“애국자시네요.”

한구인은 애국자란 단어에 쓰게 미소를 지을 뿐, 무어라 답을 해주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한구인을 보았던 성필은, 드물게도 그가 불쾌함을 느낀단 사실을 알아냈다.

그래서 성필은 재빨리 말머리를 돌렸다.

“한 이사님 외국어 많이 하시지 않아요?”

“자랑인 것처럼 들리시겠지만, 네 맞습니다. 제가 다닌 김나지움(독일의 중등 교육기관, 한국의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해당)은 외국어에 중점을 두는 곳이었습니다.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러시아어를 배웠습니다. 쓸모는 없지만, 라틴어와 고대 그리스어도 조금 압니다. 대학에서도 외국어 공부는 게을리하지 않았으니, 감독님께서 불편하지 않을 수준으로는 통역이 가능할 겁니다.”

‘와, 진짜 자랑처럼 안 말하는데도 자랑이 돼버리네.’

그저 빛이다.

“부족하다뇨. 독일어 전공도 아니고 아예 독일인이신데. 한 이사님께서 도와주시면 저희도 훨씬 좋죠.”

“감사합니다.”

“그럼 그렇게 결정할게요.”

홍규헌의 허락이 떨어졌다.

“스타일리스트 팀이랑 헤어 메이크업 인원은 저희 쪽에서 골라 보내드릴게요. 그쪽이랑 계속 지금처럼 협의 이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조정훈과의 미팅이 끝난 뒤, 홍규헌이 성필과 한구인만 따로 불렀다.

“한 이사가 뮤비 촬영에 따라가는 건 미리 생각하고 있던 거거든. 근데 박 이사도 같이 가는 거 어때?”

“저요? 제가 가도 딱히 할 일은 없을 텐데요.”

성필이 촬영에 따라가도 뭐 할 게 있겠는가.

“애들 케어할 사람도 필요하잖아.”

“한 이사님은요?”

“한 이사는 촬영팀이랑 계속 있어야 할걸. 자세한 건 모르지만 아마 그렇지 않을까 싶네. 애들까지 신경 써주진 못할 가능성이 높아. 그리고 애들이 너 믿고 의지하니까. 안 그래도 해외에 나가는 거면 부담도 될 텐데, 믿을 만한 사람이 한 명 더 가면 좋잖아.”

확실히 한구인 혼자라면 버거울 수도 있겠다.

멤버들도 근처에 모르는 사람만 잔뜩이라면 무서울 테고.

성필이 따라가서 현장마다 케어하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오케이, 그럼 그렇게 할게. 애들 여권은 잘 진행되고 있어?”

“네. 월요일에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백설하와 장하양은 성인이니 진행이 빨랐다.

리카의 경우는 외국인이라, 본국 부모님의 도움을 얻어야 해서 조금 처리가 느리긴 했다.

조아라는…….

“아라야. 부모님이 인감증명서 보내주셨어?”

“아, 깜빡했다.”

“그렇구나. 기본증명서랑 가족관계증명서는?”

“아.”

“음, 그렇구나. 아라가 깜빡했구나? 다음에는 꼭 가져와야 해. 알겠지?”

“넵.”

학교에서도 가정통신문 늦게 내는 아이들이 있곤 하지.

조아라가 그런 타입이었다.

“아라야 인감증명…….”

“아.”

“‘아’는 뭔 ‘아’야?! 따라와!”

결국 성필이 조아라를 직접 데리고 관련 서류를 전부 가지러 가야 했다.

그 덕에 조아라는 오랜만에 부모님을 보았다.

“아라야!”

조아라의 어머님은 그녀를 보자마자 강하게 껴안았다. 조아라는 그게 창피한지 자꾸만 떨어지려고 했으나, 얼마 안 가 그녀도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 품에 안겨 우는 소녀는, 가족의 품에 안긴 게 오래되어 한동안 떨어질 생각을 못 했다.

감동적인 상봉에 이어 업무가 빠르게 이어졌고, 헤어져야 할 때가 왔다.

“오늘은 집에서 자고 가도 돼. 내가 사장님 허락받을게.”

“……아니요.”

조아라는 우는 모습을 보인 게 창피한지 말이 짧아졌다.

“나중에, 성공해서 휴가받으면 올 거예요.”

“……그래.”

“딴 애들이랑 언니들한테 내가 울었다고 말하지 마요.”

“안 말해.”

그렇게 조아라의 여권 문제도 해결됐으나, 진짜 문제가 남아 있었다.

신아름이었다.

신아름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성필은 그 말을 찰떡처럼 믿어왔다.

아무렴 본인 입으로 했던 말이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지.

“아버지가 살아계신다고요?”

신아름의 집으로 찾아가니 어머니가 그리 말했다.

성필이 놀라자, 신아름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신아름은 거짓말을 해왔던 것이다.

사실, 그녀의 아버지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가족을 버리고 도망갔었다.

‘그야 말하기 싫겠지…….’

‘아버지가 나를 버리고 도망갔다’고, 세상에 어떤 인간이 그런 가정사를 말하고 싶겠는가.

“저, 그럼 우리 아름이는 외국에 못 나가는 건가요?”

신아름의 집안은 평생 해외와 연이 없이 살아왔다.

여권이란 것도 만든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그것을 걱정해서 불안한 투로 물어왔다.

성필은 곰곰이 생각했다.

‘어디 보자. 친권자가 친권을 행사할 수 없는 사유가 있으면…… 하아. 일단 아름이네 아버지는 살아 있다는 거잖아. 만약 외국에 있는 거면 체류지 공관의 영사 확인이 필요한데.’

전생에 여러 연습생을 대한 경험 덕분에, 어떻게 해결할지는 대충 손에 잡혔다.

성필은 방법을 알아보겠다고 말한 뒤, 신아름과 함께 그녀의 집을 나왔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신아름은 말이 없었다.

성필도 마땅히 할 말을 찾는 게 힘들었다.

“아름…….”

“거짓말해서 죄송해요.”

분위기를 풀려고 먼저 입을 뗐더니, 갑작스레 신아름이 사과해왔다.

“거짓말한 거…… 팀장님한테 거짓말해왔던 거요…….”

아버지가 도망갔다고 말하는 대신, 신아름은 어릴 적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전생에서도 끝까지 성필이 알지 못했던 진실이니, 그도 꽤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성필은 신아름이 거짓말을 했다고 기분이 안 좋아지진 않았다.

‘안타깝네.’

얼마나 밝히기 싫었던 진실일까.

신아름은 차라리 아버지가 돌아가셨길 바랐던 것일지도 모른다.

버림받은 아이란 딱지는 신아름이 견뎌내기 버거웠을 것이다.

“죄송해요…….”

하지만 성필이 신아름을 안타깝다 여기는 이유는, 그녀가 죽어도 밝히기 싫어했던 진실이 드러났기 때문이 아니었다.

신아름은 성필에게 오래도록 거짓말을 해왔단 것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래서 사과하는 것이다.

불쌍하게도, 이 아이는 성필에게 미움받을 것을 더 걱정하고 있었다.

“아름아.”

성필의 부름에 신아름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사람이 어떻게 100% 오픈하고 살겠어. 다 비밀이 있는 거지. 나도 너한테 거짓말한 거 있는데, 들어볼래?”

“팀장님이요?”

“응. 나 사실 보리차 싫어해.”

“……어, 네?”

“보리차 싫어한다고.”

신아름의 눈이 점점 더 커졌다.

이윽고 그녀의 눈빛에 놀라움을 넘어선 경악이 물들었다.

“진짜요?!”

“어.”

석세스 엔터에 처음 들어왔을 당시, 신아름은 회사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물이었다.

신아름은 생수를 잘 못 먹었다. 집에서는 항상 보리차를 먹었다고 한다.

집에 정수기가 없었으며, 매번 생수를 사는 것도 생계에 부담이 된다.

그래서 아예 보리차 티백을 대량으로 사서 수돗물을 끓여 먹었던 것이다.

십수 년 넘게 생수 대신 보리차를 먹어온 그녀에게, 생수는 단순한 무미 무취한 음료가 아니었다.

거북한 맛의 수돗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왜…….”

성필은 그런 신아름의 사정을 알아냈다.

그리고 보리차 티백을 회사 고정 구매 물품으로 등록했다.

매일 대량의 보리차를 끓이고 물병에 담아 냉장고 안에 두었다.

변명은 이러했다.

‘사실 나도 생수보다 보리차가 낫거든. 근데 나 혼자밖에 안 좋아해서 좀 그랬는데, 너도 좋아한다니 아예 구비해뒀어.’

신아름은 4년 넘게 그 말을 진실로 믿어왔다.

성필이 그녀를 위해준단 생각도 못 한 채로.

“저 때문에요?”

“응.”

“…….”

거의 5년 만에 밝혀진 진실 앞에서, 신아름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침묵을 지키던 그녀가 갑자기 허탈하게 웃었다.

“그게 무슨 거짓말이에요. 진지하게 말하길래 뭔가 했네. 저랑 비교하면…….”

“아름아. 난 네가 어떤 사정을 가지고 있든 이상하게 안 봐.”

“알아요. 그래도, 그래도요. 혹시나…….”

“어휴. 걱정도 팔자다.”

성필은 아껴두었던, 신아름이 가장 듣고 싶을 말을 입 밖으로 내었다.

“가족끼리 좀 창피하면 어때.”

신아름이 가장 바라는 건 가족이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부재했던 아버지의 자리가 채워지길 바랐다.

그 자리에는 옛날부터 성필이 발을 걸치고 있었고, 그랬기에 신아름은 성필을 크게 의지해왔다.

단지 남남이라는 선이 있어서 직접적으로 마음을 표출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런데 성필은 방금 간접적으로, 말로나마 선을 없앴다.

“…….”

과연, 방금 발언은 신아름에게 큰 감동을 준 듯했다.

성필을 보는 눈에서 별빛이 떨어지는 듯했다.

이를 계기로, 성필도 신아름이 더 믿어주고 의지해주길 바랐…….

“팀장님 우리 엄마한테 청혼하게요?”

“왜 그렇게 되는데?!”

“어……?”

신아름의 표정이 경멸로 물들었다.

“그럼 뭐, 나……? 그런 의미에요 지금?”

“야이 씨 장난으로라도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라. 되게 좋은 말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알아요. 놀린 거예요, 놀린 거.”

신아름은 연기로 만들었던 경멸을 지우고 기쁨을 만면에 드러냈다.

“우리 엄마가 함부로 가족이라고 말하는 회사는 빨리 나오랬는데.”

“그 말 들었으면 석세스 엔터 때부터 나왔어야지.”

“흐킄. 팀장님, 그거 주세요. 다이어리.”

신아름은 당연하단 듯 성필의 수첩을 요구했다. 성필은 운전을 하고 있던 터라, 한 손으로 힘겹게 품 안에서 수첩을 꺼냈다.

“역시 다 써가네요.”

“곧 내 생일이니까.”

“펜은요?”

“여기.”

신아름은 다이어리의 달력 부분을 펼쳤다. 그리고 오늘 날짜에 글자를 적어갔다.

“뭐라고 적었어?”

“팀장님이랑 저랑 가족 된 날이요. 오늘부터 매년 오늘이 기념일이에요.”

“그렇게까지…….”

“어? 말로만 넘기려고 했어요?”

“이야, 오늘을 축하하자. 맛있는 거라도 먹을래?”

“곧 데뷔인데 안 되죠.”

신아름은 성필의 낡은 수첩을 애정이 듬뿍 담긴 손으로 매만졌다.

“잘 쓰고 계시네요.”

“누가 준 건데 당연히 잘 써야지.”

이 낡은 몽블랑 다이어리는, 신아름이 준 생일선물이었다.

성필은 기억력이 좋지 않던 터라 실수를 자주 했는데, 신아름이 메모나 하고 다니라며 생일선물로 다이어리를 선물했다.

10만 원이 넘는 고가의 다이어리를 말이다.

성필이 깜짝 놀라 거절하려 해도, 신아름은 억지로 그의 품에 선물을 안겼었다.

‘선물을 거절하는 게 더 실례인 거 몰라요?’라며, 당돌하게도 끝끝내 다시 받지 않았었다.

‘제 생일선물도 기대할게요.’란 말도 덧붙여서.

“올해도 선물로 속지 주는 거지?”

“네. 뭐 다른 거 받고 싶으세요?”

“아니. 너는 받고 싶은 거 있어?”

“팀장님 센스에 맡길게요.”

“하아, 매년이 고통이구만.”

“뭐라고요?”

둘은 여느 때처럼 티격대며 회사로 향했다.

더는 아까와 같이 무거운 분위기는 없었다.

친권자가 친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 있을 경우, 학교장의 여권 발급 협조 요청이 있으면 친권자의 동의를 대신할 수 있다.

성필은 신아름의 학교에 도움을 요청해 여권용 서류 목록을 완성할 수 있었다.

당연히 여권도 제대로 나왔다.

* * *

‘일주일 뒤에 애들이 출국하는구나. 뭔가, 데뷔가 다가올수록 점점 느슨해지는 것 같네.’

홍규헌은 곧 다가올 데뷔를 기대하며, 느긋하게 사장실에서 커피를 즐겼다.

그 시각, 성필과 손혜빈은.

“사장님 이거 이틀 뒤까지 꼭 완성해야 한다니까요!”

“아니, 주문이 밀려서 힘들 거 같…….”

“여, 여기 자수만 달아주시면 돼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뮤비 촬영 전까지 제작 의상을 완성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김형선의 스타일리스트 팀이 할 것을 왜 성필과 손혜빈이, 아니.

민경섭과 한구인을 포함한 직원 전부가 달려들었냐고 묻는다면…….

“죄송합니다! 제, 제가 스케줄 관리를 잘못해서 공장에서 옷이 늦게 나온대요! 재봉사들 직접 찾아가서 의상 완성해야 할 거 같아요!”

자체 의상 제작을 맡은 이유이의 실수가 있었다. 너무 많은 의상을 한 번에 처리하다 보니, 며칠 수준의 딜레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 며칠의 딜레이가 치명적이었다.

자칫하면 뮤비 촬영 일정에 못 맞출 수도 있었다.

물론 이유이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전체적인 조정은 팀 자체의 몫이었으니까.

“죄송합니다!”

김형선도 죄를 면할 수는 없었다.

어쨌거나 그 결과, 스타일리스트 팀은 물론 가로 엔터 직원 전원이 달라붙어 자체 제작 의상을 완성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사장님 부탁드릴게요. 제발 이 옷 좀 맡아주세요오!”

“거참 이걸…….”

서울의 재봉사란 재봉사는 전부 찾아다니고.

의상 제작 샵과 협찬사를 돌아다니며.

전투나 다름없는 업무를 해냈다.

“박 이사 요즘 기력이 없어? 많이 피곤한가?”

아침 회의 때, 홍규헌이 무심코 그리 물어왔다.

성필의 얼굴이 피로로 점철되어 있어서 물어본 것이었다.

홍규헌은 의상 제작이 느려진다는 말만 들었지, 직원들이 얼마나 개고생하고 다녔는지 체감하지는 못했다.

알았다면 저런 말은 못 했겠지.

성필은 겨우 미소를 만들었다.

‘참아! 월급 주는 사람이야!’

어쨌거나 이제 다 끝났으니까.

전쟁 같은 며칠을 보내고, 마침내 뮤비 촬영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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