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조아라의 변신에 감탄한 건 성필과 한구인만이 아니었다.
멤버들에게도 호평!
가로 엔터 직원들에게도 호평!
스승인 백민정은 물론, 작곡가 정지음마저도 눈을 떼지 못했다.
“누, 누구세요?”
변신한 조아라를 본 정지음은 움찔대며 발걸음까지 뒤로 물렸었다.
평소대로 리카의 작곡 레슨을 위해 회사로 왔더니, 처음 보는 미인이 있어 깜짝 놀랐다던가.
사람은 헤어스타일 하나만으로도 다른 사람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어? 오빠 얼굴 왜 빨개져요? 옛날엔 안 그랬잖아요.”
“어, 아니. 더워서.”
“뭐가 더워요. 이제 가을인데.”
“그런가? 응, 그렇구나.”
“왜 자꾸 피해요?”
“아니, 나 레슨하러 가야 해서…….”
“지음 오빠 괴롭히지 마!”
정지음이 오지 않자 리카가 연습실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조아라의 미모 공세에 안절부절못하던 정지음을 구해냈다.
“대충 알겠다, 내 얼굴의 힘.”
처음엔 어색했던 조아라도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 그녀는 셀카를 잔뜩 찍어 SNS에 올렸다.
조아라의 스타그래프 계정의 팔로워 수는 무려 6,000명이 넘었다.
정지음과 손혜빈의 도움에 힘입어 꾸준히 관리한 덕이었다.
조아라의 새로운 사진이 올라오자마자 그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언니 넘 귀여우어 ㅠㅜ]
[조아라가 미래다]
[살앙해 언니 나 여기 누우께…….]
[Is it real?]
[드디어 데뷔 들어가는 건가요!]
[제 눈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과연 저는 진실을 보고 있는 것입니까? 누군가 빨리 이게 환각이 아님을 증명해주십시오.]
“헤헤.”
조아라는 게시글에 달린 하트와 댓글을 보곤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매일 댄스 영상을 올렸을 때보다 훨씬 더 반응이 좋았다.
“아라야. 페이스룩이랑 트잇터에도 올려야지.”
“아, 맞다.”
며칠 동안 조아라는 미친 듯이 셀카를 찍어서 올렸다.
평소에는 사진에 관심도 없던 애였는데, 미모 억제기를 부수고 나니 봉인이 풀린 듯 날뛰었다.
그에 다른 멤버들도 영향을 받았다.
“아타시(저)도 헤어스타일 바꾸고 싶어요!”
“지금 논의 중이야.”
“언제 바꾸나요!”
“논의 중이라니까.”
“저도 단발로 할래요!”
리카의 단발이라…… 좋을지도…….
아니지.
“넌 단발은 안 돼.”
“에엑?! 왜요! 단발 예쁘잖아요!”
리카는 완전히 단발에 꽂힌 것 같다.
이른바 단발병이다.
단발을 하고 싶어 죽을 것 같은 병이 생겨버렸다.
이 단발병에 걸린 건 리카만이 아니었다. 다른 멤버들도 한 번쯤 단발을 해보고 싶다며 간을 본 것이다.
‘아라 스타일이 잘 나오긴 했지.’
한구인은 처음 조아라의 단발을 보고 호흡까지 거칠어졌었다.
조금 무서웠다.
“리카. 네 뮤비 컨셉은 중세…… 근대……? 아무튼 그때 영국이잖아. 단발보다는 장발이 더 어울릴 거야. 머리 색은 갈색, 음, 브라운 계열일 거 같아. 아예 금발도 괜찮겠다. 넌 피부도 밝으니까 잘 받을 거 같아.”
“에에…….”
살짝 실망한 티를 보이던 리카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밝은 미소를 보였다.
“아타시(저)는 이사님 믿어요! 이사님은 저를 끔찍이도 자주 보고 계시잖아요! 제가 어떻게 해야 가장 예쁠지 제일 잘 아시겠죠!”
“그래, 고맙다. 끔찍이 자주 보긴 하지.”
“부정 안 하시네요.”
“온종일 너만 보고 살고 싶어.”
“에에엑?!”
몸을 배배 꼬는 리카를 뒤로하고, 성필은 회의실로 향했다.
오늘은 김형선 스타일리스트와의 미팅이 있다.
“저번에 요청하셨던 정장 샘플이요.”
정장, 즉 양복이다.
조아라의 뮤비 컨셉은 러시아 혁명이다.
레닌의 사진에서 영감을 받았는지, 조정훈 뮤비 감독은 조아라의 의상으로 정장을 주문했었다.
성필은 의아했으나, 손혜빈이 적극적으로 정장을 받아들이길 바랐었다.
당시 손혜빈은 무서우리만치 정장에 꽂혔었다.
“정장? 어울릴까 그게?”
“‘어울릴까 그게’라고?! 당연히 어울리지! 로망이잖아!”
누구의 로망인가.
“정장이면 스커트를 입히는 거야?”
“얘는 뭔 소리야 당연히 바지지!”
당연히 바지구나.
왜 당연한지는 모르겠다.
끝끝내 성필이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손혜빈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장님 봐.”
성필은 상석에서 펜을 굴리는 홍규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사시사철 양복을 입고 다닌다. 스커트도 아닌 바지였다.
성필과 손혜빈의 집요한 시선을 눈치챈 홍규헌이 고개를 들었다.
“다들 왜 그래?”
“정장, 좋을지도…….”
“그치?”
“뭔데. 박 이사도 정장 찬성하는 거야?”
어쨌거나 손혜빈은 가로 엔터의 모든 직원을 설득했고, 오늘에 이르러 김형선 스타일리스트가 샘플을 준비해왔다.
김형선은 샘플을 직접 가져온 건 물론이고 피팅 사진도 여러 장 찍어왔다.
사진의 모델은 이유이 어시였다.
“오, 진짜 괜찮은데 이거…….”
아무래도 정장은 자체 제작이 아니라 기성복으로 구할 수 있다 보니, 가장 빠르게 실물을 만져볼 수 있었다.
긍정적인 반응이 돌아오자 김형선 실장도 어깨가 펴졌다.
그녀는 용기를 얻어 색다른 주장을 펼쳤다.
“아예 멤버들 무대 의상 세트로 맞춰볼까요?”
손혜빈도 거기까지 생각하지는 못했다.
“의상 세트로요?”
데뷔 때, 멤버들은 6개 음방을 5주에서 6주 동안 활동하기로 기획되어 있다.
그중에서 가장 높은 비용이 들어가는 게 바로 의상이다.
자체 제작 의상은 한 벌에 5, 60만 원 이상이다. 그걸 다섯 명에게 줘야 하니 300만 원이다.
음방이 여섯 개이니, 일주일에 1,800만 원을 쓰는 것이다.
그 활동을 6주 하면 1억 800만 원이다.
의상만으로 억이 넘는 비용이 발생한다.
게다가 스타일링에 들어간 인건비나, 헤어 메이크업 비용까지 합하면 1억을 한참 뚫어버린다.
‘음방마다 다른 옷을 입어야 하니…….’
다른 방송에서와 같은 옷을 입으면 음방 PD가 싫어한다.
차별점이 없기 때문이다.
거기다 같은 옷을 입으면 팬들도 기획사가 가난하니, 신경을 안 써주니 하면서 반발한다.
굳이 팬이 아니더라도, 옷 돌려 입히는 기획사라면서 대중들이 비웃기도 한다.
‘그런데 정장이면 기성복일 테고, 그래도 자체 제작 의상보다는 비용이 낮겠지.’
옛말에 단벌 신사란 말이 있다.
정장이란 게 매일 입어도 크게 눈에 띄는 게 아니다 보니, 정말 정장 한 벌만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았다.
‘정장을 세트로 맞추면, 적어도 두세 번은 더 입힐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애들이 전부 정장을 입으면 정말 멋질 것 같다.
걸크러쉬는 성필도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제가 다른 분들 정장 스타일도 한번 샘플을 찾아봤는데요.”
김형선은 다른 사진들도 보여주었다.
“어떠세요?”
“실장님!”
예시를 본 손혜빈이 김형선의 손을 맞잡았다.
김형선은 깜짝 놀라 몸을 뒤로 뺐으나, 이미 손을 잡혀 빠져나갈 구석이 없었다.
“존경합니다 정말루…….”
“아, 네. 감사합니다.”
다른 가로 엔터 직원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기에, 김형선은 재빨리 멤버들의 정장을 공수해 왔다.
구하는 게 어렵지 않던 터라 며칠 만에 성과가 있었다.
“저희 의상이 왔다고요? 이렇게 빨리요?”
백설하는 놀란 눈치였지만, 드디어 첫 의상을 본다는 생각에 기대한 게 눈에 보였다.
하지만 의상을 받아든 백설하는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정장……?”
멤버 중에서 정장을 입어본 사람은 없었다.
“빨리 입어 봐 빨리!”
“어서 보고 보완점을 찾아야 합니다!”
손혜빈과 한구인의 닦달에, 멤버들은 별다른 의견도 내지 못하고 옷을 갈아입으러 갔다.
가장 먼저 착의를 끝낸 건 백설하였다.
“이거 양복 천이 아니었네요…….”
백설하의 바지는 검은색 스키니핏 데님 스판이었다.
신축성이 있어 다리에 착 달라붙었다.
평소에 백설하는 타고난 신체 때문에 받는 시선이 부담스러워 박시(Boxy)한 옷을 자주 입는다.
그렇다 보니 몸의 선이 드러나는 것을 쉬이 볼 수 없었는데…….
“…….”
“어때요. 제대로 입혔죠?”
김형선이 자부심을 담아 성필을 보았다.
“네…… 정말…… 존경합니다.”
이래서 스타일리스트구나.
“제대로 입은 건가요……?”
불안한 듯 물어오는 백설하를 향해, 성필은 입을 가린 채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미소를 참을 수 없었다.
바보처럼 웃기만 하면 백설하가 이상하게 볼 거니까…… 이 웃음을 숨겨야만 한다.
“저 멋지죠!”
두 번째는 리카였다.
그녀의 정장은 상·하의 모두 폴리와 레이온 소재였다.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저가형 양복 소재로, 구김이 적어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빨리 저를 칭찬해주세요!”
“좋다. 근데 리카 넌 힐 신어야겠다.”
“제 키가 작단 건가요?!”
“아니. 넌 설하 씨랑 다르게 바짓단이 안 달라붙잖아. 조금 품이 있어서, 낮은 거라도 힐을 신는 편이 더 예쁠 거 같아. 발목 보이게.”
“그럼 신을게요! 네, 또 다른 칭찬은 없나요!”
“……?”
“뭔가요 그 순진무구한 눈동자는! 설하 쌤 봤을 때는 좋아 죽으려고 했으면서! 빨리 더 기뻐하는 반응을 내놓으세요!”
“……?”
“저를 거짓말쟁이로 만들려는 건가요?!”
다음으로 나타난 건 신아름이었다.
그녀는 발꿈치를 올리고, 마치 모델처럼 워킹하며 들어왔다.
“자, 감탄하세요.”
“귀여워어어어어!”
손혜빈이 신아름을 껴안고 머리를 빠르게 쓰다듬었다. 신아름은 예상보다 더한 환대에 눈동자만 굴렸다.
“귀, 귀엽다고요?”
“주머니에 넣어 가고 싶어어어!”
손혜빈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성필은 신아름이 정장을 입으면 매니쉬(Manish)한 느낌이 날 거라고 생각했다.
고양이처럼 날카로운 인상이 있으니, 정장이 그 인상을 극대화하지 않을까 했는데.
이제 보니 주인을 위협하며 하악대는 고양이처럼 보인다.
“이건 예상이랑 다르군요.”
“그러게요. 상상이랑 현실은 항상 맞아들어가는 게 아니네요.”
“잡담 그만하고 손 PD님 좀 떼주세요!”
신아름이 손혜빈에게 잔뜩 귀여움받는 동안, 장하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어색하게 미소 지으면서 아래쪽을 보았다.
“이거 사이즈가 잘못 나온 거 같아요.”
장하양이 입은 건 부츠컷 바지였다.
일명 나팔바지라는 것으로, 아랫단 통이 나팔처럼 넓어지는 구조였다.
길이도 길어서 장하양의 발등을 덮고 있었다.
“잘못 나온 거 아니에요. 하양 씨는 신발도 생각하고 코디한 거예요.”
“신발이요? 힐?”
“아뇨. 워커 신을 거예요.”
“워커요?”
“그, 군인들 전투화 아세요? 그거랑 비슷한데.”
“아, 워커.”
“그거 신으면 바짓단 길이도 맞을 거예요.”
“아아.”
장하양은 정장이 못내 어색한지 계속 굳은 미소만 보였다.
마치 ‘내가 이런 걸 입어도 될까?’라는 듯하다.
장하양은 거울을 몇 번 보더니 성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잘 어울리나요?”
“하양이는 뭘 입어도 잘 어울리지.”
장하양은 슬렌더 체형이라 그런지 유독 정장이 더 잘 받는다.
“아하하.”
그녀는 입에 발린 듯한 답도 만족스러웠는지, 아까보다는 어깨를 더 펼 수 있었다.
네 사람은 나란히 거울 앞에 서서 서로의 옷을 보았다.
“와…… 우리 진짜 딴 사람 같아.”
“이대로 화장도 하는 거죠?”
“그럼 다들 더 멋지겠네요!”
“난 뭐 화장 안 해도 충분히 멋지긴 한데.”
가지각색으로 서로를 띄워주던 중, 문이 천천히 열리며 마지막 타자가 들어왔다.
“으, 왜 나만 가죽바지야.”
조아라는 특이하게도 검은 가죽바지 차림이었다. 그녀는 다리에 달라붙는 바지가 익숙지 않은지 엉거주춤 걸었다.
“꼭 이거 입어야 해요? 왜 나만…….”
살짝 인상을 쓴 조아라를 보고.
손혜빈, 성필, 한구인 행복해서 기절.
“김형선 실장님 평생 존경하겠습니다…….”
“나중에 꼭 회사 차리세요. 제발 저희가 돈 드릴게요…….”
“실장님 하고 싶은 거 다 해요 부디…….”
세 사람의 찬사를 받은 김형선도 입꼬리가 하늘까지 올라갔다.
조아라의 가죽바지 거부 반응은 일시적이었다.
단지 입어본 적 없던 옷이라, 어울리지 않을 것을 걱정해서 일부러 마음에 안 드는 척을 했을뿐…….
“아라는 어떻게 매일이 리즈 갱신이니?”
“조아라! 조아라! 조아라!”
“아라 씨가 이 나라의 미래입니다.”
세 사람의 칭찬 세례를 받더니, 언제 마음에 안 들어 했냐는 듯 포즈 퍼레이드까지 벌였다.
“어? 그런데 왜 아라쨩만 브로치가 있어요?”
“응? 다 있는 거 아니었어?”
리카의 말대로, 조아라의 왼쪽 가슴에는 은색의 작은 브로치가 달려 있었다.
성필이 의문을 담아 김형선 실장을 보자, 그녀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김형선은 손짓으로 성필, 한구인, 손혜빈을 가까이 불러들였다.
“그게, 아라가…….”
김형선이 본인의 가슴 부근을 허공에서 쓸었다.
“아.”
세 사람이 동시에 납득했다.
김형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시선을 분산시키려고 일부러 악세서리를 달았어요. 나중에 보정 속옷으로 커버할 수도 있고요. 아니면 러플, 개더 같은 디테일로 가슴 부분에 장식해도 돼요. 클래식한 느낌은 없어지겠지만요.”
“아.”
“왜요? 왜 나만 브로치 달아요?”
성필이 자연스럽게 답했다.
“양복은 네가 주인공인 옷이잖아. 러시아 혁명. 그러니까 너한테 강조점을 준 거지.”
“아, 글쿠나. 그럼 다른 멤버들이 주인공인 옷마다 따로 액세서리 같은 게 있겠네요.”
“어? 어, 뭐, 그렇겠지.”
다행히 조아라와 멤버들이 설득됐다.
“그런데 아라랑 리카는 넥타이 없어요?”
다른 멤버들은 전부 넥타이를 맸는데, 그 둘만 없었다.
스타일링인가 싶었는데, 리카와 조아라가 주머니에서 넥타이를 꺼냈다.
끈 넥타이였다.
“아라랑 리카한테는 자동 넥타이 말고 끈 넥타이로 줬거든요. 둘이 입은 건 끈이 더 스타일 살아요.”
“그렇구나. 근데 너희들 넥타이 못 매?”
“당연히 못 매죠.”
“교복은?”
“교복은 그거잖아요. 지이익 올리면 자동으로 올라가는 거.”
“그렇구만.”
성필과 한구인은 각각 조아라와 리카에게서 끈 넥타이를 받아 그녀들 앞에 섰다.
“잘 봐둬. 나중에 혼자서 매야 할 수도 있으니까.”
성필은 조아라의 목에 넥타이를 두르고 천천히 과정을 보여주었다.
“자, 이렇게 한 바퀴 돌리고 여기 집어넣는 거야. 알겠지?”
“네.”
“다음에는 또 돌리고, 여기 틈에. 이 부분은 꽉 쥐고 있어야 해.”
“음.”
“다 됐다. 여기 잡고 올려봐.”
조아라는 넥타이를 천천히 끌어 올렸다.
성필이 피식 웃었다.
“흐트러졌잖아. 꽉 잡으라니까.”
“나도 그냥 자동으로 되는 거 주지.”
“자, 풀어줄 테니까 다시 해보자.”
“……네.”
성필이 조아라에게 천천히 알려주는 중, 한구인과 리카는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끄에, 엑! 숨이 안 쉬어져요옷!”
“그렇게 빨리 올리시면 어떡합니까! 빨리 내리십시오! 여기 아래쪽을!”
“헤엑, 헥! 이렇게 위험한 걸 어떻게 매고 다녀요?!”
“천천히 하시면 됩니다.”
“그냥 음방 갈 때마다 한 이사님이 해줘요!”
“리카 씨, 강하게 크셔야 합니다. 다시 해봅시다.”
성필은 떠들썩한 리카와 한구인을 보고 미소가 떠나가지 않았다.
‘연습생이랑 회사 직원이랑 이렇게 친해질 수도 있구나.’
정말 친구 같다.
서로의 위치와 역할은 인정해주면서도 인간적인 관계를 쌓아가는 건 매우 어렵다.
성필은 그렇게 되려 노력하는 멤버들에게 마냥 고마운 마음만 들었다.
“자, 이렇게 하는 거야. 이제 알겠어?”
“네, 네.”
“으음, 넥타이 매는 게 처음 보면 어렵긴 하지. 다시 보여줄까?”
“아뇨…….”
어째선지 조아라가 약간 멍한 것 같다.
성필이 넥타이를 매줄 때부터 그랬다.
“그냥, 아빠 생각나서요. 나 처음 중학교 갈 때도 아빠가 넥타이 해줬는데, 내가 못 해서. 자동으로 올라가는 거였는데도, 못 했는데.”
“…….”
조아라는 집에 못 간지 시간이 꽤 흘렀다.
계속 부모님을 보면 의지가 약해질 것 같다면서, 스스로 자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집이 그리운 건 당연하다.
성필은 물기가 배가는 조아라의 목소리를 듣고, 묵묵히 넥타이를 올려주었다.
“아, 됐다.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조아라는 일부러 씩씩한 티를 냈다.
“풀고 다시 해볼게요.”
“아냐. 못 하면 뭐 어때.”
“네?”
“넥타이 맬 때마다 나나 한 이사님이 해줄게.”
조아라는 가만히 있더니, 곧 픽 웃었다.
“뭐예요. 나 아직도 애로 보이나. 할 수 있어요. 봐요, 풀고 이렇게 다시…….”
못 했다.
조아라는 다시 넥타이를 성필에게 내밀었다.
“해줘요…….”
“그래. 몇 번이고 해줄게.”
그날의 의상 착용은 성공리에 끝났다.
멤버들은 물론 사장인 홍규헌마저 대만족했다.
멤버들만의 단체 사진을 찍은 뒤, 리카가 ‘사장님도 같이 찍어요!’라고 했다.
홍규헌이 받아들일 리가 없었으나, 다섯 명의 정장녀에게 둘러싸여 어쩔 수 없이 사진을 찍어야만 했다.
“뭐, 치즈나 김치로 할까?”
“아뇨! 구호는…….”
가로 엔터 파이팅!
홍규헌도 같이 찍힌 사진은 다섯 멤버 전원의 SNS에 올라갔다.
홍규헌이 제발 내려달라고 해도 절대 내려주지 않았다.
“젊은 애들 사이에 껴서 뭐 하는 거냐고.”
“사장님도 젊어 보이는데요 뭐.”
“그걸 위로라고 하냐? 예쁜 애들 사이에 껴서…… 하아…….”
사장님도 예쁜데요, 라고 하면 아부하는 것처럼 들릴까.
성필은 말을 삼켰다.
* * *
조정훈의 연락은 갑작스럽고도 놀라웠다.
“뮤비 촬영지가…….”
[독일입니다.]
설마 하던 해외 로케이션이다.
“어? 독일이면 한 이사님 고향 아니에요?”
손혜빈의 물음에 한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지 가이드는 필요 없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