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100화 (100/760)

100화

신아름은 참아왔다.

처음 가로 엔터로 들어왔을 때는 멤버들의 면면을 보고.

‘괜찮네?’

그렇게 생각했다.

비주얼은 다들 흠잡을 곳이 없다.

실력 면에서도 그러리라 믿었다.

리카는 대형 기획사의 데뷔조까지 갔던 인재다.

백설하는 과거 아이돌로 활동했으며, 자력으로 유명 학원의 임시 트레이너까지 갔다.

조아라는 몇 년 동안 밥 먹고 춤만 췄다고 하며, 여러 댄스 대회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장하양은 연기를 1년가량 배웠단 모양이다.

‘그래, 연기도 중요하지. 표정 연기는 중요한 거니까. 그리고 연기를 배웠으면 동작 연구도 많이 했을 테니.’

그래야 했을 텐데…….

‘뭐야?’

장하양의 실력을 본 신아름의 감상이었다.

정말 ‘뭐야?’ 외의 감상은 없었다.

어디서 일반인을 잡아 와서 연습실에 세워뒀나? 물론 그것보다야 낫긴 해도, 도저히 곧 데뷔를 앞둔 연습생이라고 여겨지진 않았다.

‘온리 비주얼 멤버란 거지?’

그럼 뭐, 이해가 가긴 한다.

얼굴로 인기를 모으고 퍼포먼스 때는 적당하게 수납되겠지.

나중에 연기로 밀어 봐도 좋을 테고.

어쨌거나 그룹에 도움이 되는 멤버란 점에선 변함이 없다.

그런데.

‘진짜 뭔데. 곡에서 파트 배분도 공평하게 줬잖아?’

당연히 보컬 능력이 가장 떨어지는 장하양의 파트를 줄이는 게 맞지 않나?

랩 파트에서만 돋보이고, 나머지에는 적당한 부분만 줘도 되잖아.

이게 뭔데.

거기다가.

‘안무도?’

안무에서도 다른 이들과 똑같은 분량으로 받았다. 그 난이도가 낮은 것도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장하양은 ‘수납’당하지 않았다.

실력도 가장 떨어지면서…….

‘대체 이게 뭔데?’

아니다.

아직 희망이 있다.

장하양도 연습을 하다 보면 일정 수준에 오르겠지.

적어도 다른 멤버들과 조화될 수준까지는, 조화를 해치지 않을 수준까지는.

‘미친 씨…….’

아니었다.

연습에 들어간 지 2달이 다 되어간다.

그런데 장하양의 모습을 보라.

대체, 뭐냐고, 이게.

‘난 아이돌에 인생을 걸었는데. 저런 사람이랑 같은 그룹이란 거야? 내 인생을 저런 사람한테 걸어야 해?’

탓하고 싶었다.

탓하는 게 아닌 ‘싶었다’에서 끝내는 건, 장하양이 노력하는 모습을 봐서였다.

탓하기 미안할 정도로 연습하고 노력한다.

그런데도 저딴 수준이라니…… 신아름은 혀를 깨물고 쓰러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서 조아라를 꼬시고 용기를 내어 성필에게 말했다.

“하양 언니 댄스 파트 줄여줘요.”

씨알도 안 먹혔다. 그래서 백설하도 꼬셨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려서.

멤버들도 장하양의 성장에 불안을 느낄 때 즈음이 되어서.

신아름은 장하양과 독대하여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언니. 언니 힘들면 파트 줄이는 게 낫지 않아요?”

다행히 장하양은 상식인이었다.

자신의 한계를 아는 사람이다.

그랬기에 동의했다.

“응. 이사님한테 말씀드리자.”

드디어!

이제 다 해결됐다.

데뷔는 순조로울 것이다.

장하양의 실력이 떨어진단 이유로 필요하지도 않은 악플을 받을 일도 없어졌다.

개인이 받는 비난은 곧 그룹에 대한 비난이다.

한 명이 받는 인기가 그룹의 인기가 되지 않는 데 비해서, 비난은 그룹 전체의 것이 된다.

‘이제 다 해결된 거야.’

그런데, 성필과 만나고 왔단 장하양의 입에서 나온다는 소리가…….

“뭐요? 언니 판단?”

신아름이 수건을 던지고 장하양에게 다가갔다.

싸움의 기운을 알아챈 백설하가 신아름의 앞을 막았다.

“아름아 그만해.”

“쌤. 저는 아이돌이 정말 되고 싶어요. 아니, 되는 게 끝이 아니라 모두가 우러러보는 아이돌이 되고 싶어요. 그런데, 아이돌은 팀이잖아요? 팀이란 건요, 모두가 동등해야 성립하는 거잖아요?”

“아름아 일단 방으로 들어가자. 머리 식히고 이야기하자.”

“동등하지 않으면 동등할 수 있도록 누군가 의무를 더 지는 게 맞잖아요. 희생하거나요. 피해는 주면 안 되죠.”

“신아름.”

백설하의 어조가 낮아졌다.

더 이상 말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뜻이다.

신아름도 이쯤 말했으면 만족했다. 다른 이들도 자신의 의견을 이해했겠지.

“네, 알겠어요. 죄송해요. 들어갈…….”

“아름이 말이 맞아.”

신아름은 논쟁을 접으려 했다. 하지만 장하양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제일 뒤떨어져. 내가 제일 못해. 나는 팀에 피해를 줄 거야. 알아.”

“하, 하양 언니…….”

리카가 안절부절못하며 장하양의 주위를 떠돌았다.

“아니에요. 하양 언니는 할 수 있어요.”

“맞아. 하양아 그런 말 하지 마.”

백설하도 장하양의 자기 비하에 깜짝 놀라 그녀를 달래려 했다.

“우리는 너 믿…….”

“안 믿는 거 알아요.”

장하양이 백설하의 말을 끊었다. 백설하가 우두커니 멈춰 섰다.

“다들 연습할 때 저를 어떻게 보는지 알아요. 걱정하고 있잖아요. 알아요, 저도. 제가 머리가 나쁘다고 사람 감정도 못 읽는 건 아니에요. 바보처럼 하하 웃는다고 진짜 바보는 아니라고요. 거짓말하지 마세요.”

“…….”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신아름의 말에 화가 나서, 동정을 얻기 위해 하는 자기 비하가 아니었다.

이게 장하양의 진심이었다.

그렇기에 누구도 쉽사리 반박하거나 위로할 수 없었다.

“적어도 너희들한텐, 언니한테 거짓말을 듣고 싶진 않아요. 거짓말하는 게 저한테는 더 상처예요.”

장하양은 백설하를 지나쳐 신아름의 앞에 섰다.

신아름은 위압적인 장하양의 눈빛에도 조금도 지지 않고 마주 보았다.

“아름아. 진심을 말해줘서 고마워.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졌어.”

“……그래서요.”

장하양은 싱긋 웃곤.

“난 아무것도 포기 안 해.”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더는 할 말이 없단 듯 신아름을 지나쳐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장하양이 떠나간 자리에는 흐릿한 술의 냄새만이 떠돌았다.

* * *

성필은 홍규헌에게 고개를 숙였다.

“사장님. 하양이를 믿어주실 수 있을까요. 비록 지금은 아무것도 확답드릴 수 없겠지만, 해낼 수 있을 겁니다. 믿어주면, 계속 기대를 걸어주면, 하양이는 분명…….”

회의실에 적막이 감돌았다.

장하양의 연습을 곁에서 지켜봐 왔던 손혜빈마저도, 성필의 말에 동의해주기 힘들었다.

“저, 성필아.”

손혜빈은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양이는…… 그, 데뷔곡이잖아. 이번에는 기대를 조금만 줄여주자. 하양이도 부담될 거야. 백민정 안무가님도 말씀하셨잖아. 계속 이 상태라면 정말 바꾸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정론이다.

하지만 성필이 만족할 정답은 아니었다.

성필은 손혜빈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홍규헌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하양이의 파트를 줄이는 게 맞겠죠.”

민경섭이 의견을 냈다. 감히 성필을 보고 있지는 못했다.

누가 자존심을 벗어던지고 허리를 숙인 자에게 간단히 반대 의견을 낼 수 있을까.

“댄스 가수로 활동하셨던 손 PD님도 이렇게 말씀하시고, 뭣보다 안무가가 직접 난이도를 낮추자고 제안하잖아요. 애들도 마찬가지고…….”

성필은 여전히 허리를 들지 않았다.

“믿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성필의 비굴한 모습을 보며 말함에도, 한구인의 말투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지금 한구인은 가로 엔터의 임원으로서 말하는 것이었다.

“현실을 봐야 합니다. 하양 씨가 계속 저 상태라면, 비판받을 겁니다. 아니, 비난받을 게 자명합니다.”

대중의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다.

그건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안무가의 의견보다도, 전직 댄스 가수의 의견보다도 더욱 무거웠다.

“하지만.”

한구인이 말을 이었다.

“저는, 사람을 보는 박 이사님의 안목을 믿고 싶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래왔으니 이번에도 믿고 싶습니다.”

성필은 계속해서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홍규헌이 말하기 전까진 허리를 펴지 않겠단 듯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박 이사.”

마침내 홍규헌이 입을 열었다.

성필도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며 답했다.

“예.”

홍규헌이 건조하게 말했다.

“안무 수정본 받아.”

성필의 부탁이 거절당했다.

“백민정 안무가한테 의뢰해서, 수정본 받아.”

“……네.”

다 끝이다.

성필은 후회할 미래를 본다. 그리고 여태까지 후회할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정확한 방법은 모르겠으나, 장하양은 이 시련을 이겨낼 게 분명했다.

그러니 제발 다른 사람들도 믿어줬으면 좋겠다.

비록 합당한 이유를 댈 수는 없더라도 제발…….

“그리고 그 수정본은, 앞으로 21일 동안 정말 답이 없다 싶을 때 쓸 거야.”

성필은 놀라서 허리를 폈다.

“21일, 3주, 그동안 장하양에게서 가망이 보이지 않으면.”

홍규헌이 쓰게 입꼬리를 올렸다.

“나도 어쩔 수 없어. 그러니까 그때까지는.”

나도 박 이사 믿어.

* * *

장하양은 연기할 때마다 느끼곤 했다.

‘아, 난 이 배역은 소화 못 할 텐데.’

연기 강사에게 배역을 바꿔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강사는 도전도 경험이라고 말했다.

경험이긴 했다.

못하는 것은 역시 못 한다는 경험.

장하양은 그런 경험을 여러 번 했다. 그리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깨달았다.

‘내가 이 대사를 전부 외우고 인물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걸 표현하기 위해 걸리는 시간은…….’

순수하게 78시간.

장하양은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노력의 양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기쁘지 않았다.

절망적이었다.

자신의 부족한 역량에 대한 절망.

하지만 포기하진 않았다. 노력하면 도달할 수 있단 뜻이니까.

비록 모든 일에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는 않았으나, 그게 연기를 포기할 이유가 되진 않았다.

“……와 같은 것을 메타인지능력이라고 부릅니다.”

“메타요?”

“한국어로 바꾸면 초인지(超認知)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학원으로 가는 길, 여느 때와 같은 한구인의 알아두면 쓸모없지만 재미있는 잡학지식 시간이 열리고 있었다.

“인간의 능력은 고전적으로 크게 인지적 영역, 정의적 영역, 심동적 영역으로 나뉩니다. 초인지는 인지적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상위인지능력이라고도 부릅니다.”

“초인지면 초능력 같은 건가요?”

“인지에 대한 인지입니다.”

“네?”

“음, 쉽게 말하면,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할 수 있는지 아는 능력이라고 할까요. 마치 게임 캐릭터를 조종하는 것처럼…… 목표와 과정을 보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 하양 씨는 제가 무작위로 불러주는 단어를 몇 개 정도 외울 수 있으시겠습니까?”

“음…… 여섯 개요.”

실제로 해보니 정말 그랬다.

“하양 씨는 초인지 능력이 높으신 거 같습니다. 보통은 자신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하기에, 비현실적인 목표를 잡거나 쓸데없는 노력을 하기도 하거든요.”

“아하하, 띄워주시니까 기분은 좋네요.”

장하양은 그저 자신의 분수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능력이, 초인지 능력이란 거창한 이름을 달고 있단 것을 알게 됐다.

왠지 초능력을 각성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항상 모자라기만 했던 자신이기에, 뭐라도 장기가 있단 건 자랑이 되기에 충분했으니까.

“이게 안무 최종본이야.”

장하양은 안무를 받자마자 깨달았다.

‘이건 내가 절대 소화할 수 없어.’

소화(消化).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없다.

그저 그렇게 따라 하는 정도라면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겠으나, 정말 자신의 곡이라고 자랑할 정도의 숙련도는 쌓을 수 없다.

‘이 부분. 댄스 브레이크. 이건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리카, 백설하, 조아라, 신아름의 수준에 도달할 수가 없다.

뮤비 촬영까지 주어진 건 고작 3개월하고도 약간이니…….

그래도 했다.

“하양아 믿는다.”

처음부터 포기한다면 그렇게 말해주었던 성필을 배신하는 것 같았기에.

그저 했다.

하지만 안 된단 것을 다시금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시 해봐요! 방금 거 좋았어요!”

조아라는 유독 열정이 넘쳤다.

항상 과도한 텐션을 유지하며 장하양을 격려했다. 그게 도리어 장하양의 마음을 깎아냈다.

‘아라가 이렇게 좋아하는 춤인데 내가 망치는 거야?’

“여기 이 부분에선 골반을 살짝 내리는 게 더 좋아 보여요. 네, 그렇게요.”

‘아라야. 네가 디테일을 계속 점검해줘도, 난 네가 바라는 느낌을 낼 수 없어.’

“여기선 가볍게 폴짝!”

‘이제 그만해도 돼. 나 신경 안 써줘도 돼.’

장하양은 멤버들에게 미안해서라도 못하겠단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멤버들에게서 불안과 걱정이 읽혔다.

데뷔 무대에서 실패하면 어쩌지.

장하양이 계속 저런 상태라면.

뮤비 촬영할 때도…….

그 걱정이 겹치고 쌓여, 마침내 백설하가 이렇게 제안했다.

“하양아. 힘들면…….”

안무 난이도를 낮춰도 돼.

말은 하지 않았지만, ‘파트를 다른 사람한테 넘겨도 돼.’란 뜻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장하양은 웃으며 말했다.

“네.”

이제 됐다.

이거면 된다.

자신이 주목받지 못하더라도, 팀의 데뷔 무대를 살리는 게 중요하다.

중요하다, 중요한데, 중요하지만…… 그래도…….

“하양아.”

성필의 애정이 담긴 목소리가 머릿속을 떠돈다.

한강으로 놀러 갔을 때도, 성필은 끝끝내 안무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믿는단 뜻이다.

장하양은 자책했다.

또 그 믿음을 배신하려고 하다니.

계속할 거다. 포기하지 않을 거다.

무엇보다, 여기서 포기하기 시작하면 앞으로 펼쳐질 길에서도 자꾸만 의지가 무뎌질 것 같았기에.

데뷔, 시작부터 자기 자신에게 지고 싶진 않았다.

“저 오늘부터 새벽까지 연습할게요.”

멤버들에게 자신의 결심을 드러낸 뒤, 장하양은 연습량을 대폭 늘리기로 했다.

주말도 없이 매일 새벽 3시까지.

잠은 회사에서 자기로 했다.

홍규헌도 허락해주었다.

“자, 이제.”

해보자.

21일이란 커트라인 안에, 완성시키자.

한계를 넘자.

* * *

17일이 지났다.

새삼스레 또다시 알게 됐다.

‘불가능해.’

다른 건 다 돼도 댄스 브레이크만큼은 안 된다.

조아라가 리볼버 파트라고 이름 붙인 구간이다.

리볼버의 실린더처럼 회전하며, 총알이 발사되듯 각자의 기량을 여실히 드러내는 부분.

백민정 안무가가 장하양을 위해 마련한 파트에서, 장하양은 수도 없이 절망을 느껴야만 했다.

‘이제 무리하는 건 그만해.’

장하양의 몸이 아우성쳤다.

‘네가 지금까지 아이돌과 관계없는 곳에서 살아온 대가잖아.’

그런데도 다른 사람과 같아지려고 하다니, 이기적이지 않아?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구구절절 다 맞는 말만 했다.

그렇기에 장하양은 마음을 닫았다.

더는 좌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다시 하자.’

아이돌.

1년 전까진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세계다.

아이돌은 닿을 수 없는 빌딩, 하늘, 우주, 우주 너머. 그런 곳에 존재하는 장소였다.

그런 게 존재한단 건 알았지만, 자신과는 관련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그 아이돌이란 건 장하양의 눈앞에 와 있다.

무시하지 못할 크기를 지닌 채로 그녀의 앞에 서 있다.

‘아이돌이란 건 이런 거야?’

꿈으로 가진 순간부터 실현되지 못하리란 생각부터 든다.

어떻게 자신처럼 초라한 인간이 만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그만한 끼와 재능도 없는데.

“…….”

장하양은 턱에 맺힌 땀을 닦아내고 일어섰다.

‘할 수 있어.’

20일이 지났다.

남은 시간은 딱 하루다.

‘못해.’

모든 동작이 몸에 익었다.

자다가도 출 수 있다.

하지만 정말 때려죽여도, 다른 멤버들과 같은 경지에 닿지 못한다.

다른 이들과 비교하면 장하양의 웨이브는 삐걱이는 것으로, 스텝은 발을 헛디딘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도저히 채울 수 없는 격차만이 보인다.

‘경험이…… 절대적인 경험이 부족해…….’

시간만이 해결해줄 문제인데도, 답으로 시간을 적어 넣을 수 없다.

남은 시간은 하루도 채 안 남았으니까.

“하양아. 오늘은 다 같이 연습해보자.”

리카, 백설하, 조아라, 그리고 신아름도.

마지막 날은 같이 새벽까지 남아서 연습하기로 했다.

지금까지도 새벽 1시까지는 같이 연습에 어울렸으나, 오늘은 정말 끝까지 가보는 것이다.

“고마워요.”

장하양은 신아름을 보았다.

신아름은 무심한 척 발목에 밴드를 감고 있었다. 저토록 차갑게 대하면서도, 오늘 연습에는 나와주었다.

의무도 아닐 텐데.

“고마워, 아름아.”

“……빨리 시작이나 해요.”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해가 떨어지고, 달이 중앙에 오르고, 새벽이라 불릴 시간이 오고, 3시도 지나갔다.

“이, 이 정도면 됐지 않아?”

백설하가 땀을 닦으며 물었다.

‘아니.’

장하양의 마음이 답했다.

그저 그런 수준이면 안 된다.

지금의 자신은 그저 그런 수준이다.

장하양은 헐떡이며 답했다.

“더, 해야겠, 어요. 언니는 숙소로 가세요. 너희들도 가봐. 나 혼자 할게.”

“아냐. 할 거면 계속해야지.”

“……고마워요, 정말.”

그렇게 점점 아침이 밝아온다.

천장과 가까이 붙은 창문으로 붉은빛이 조금씩 새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불가능해, 이건.’

초인지 능력이라고 하던가.

장하양은 자신의 능력과 상태를 게임 캐릭터의 상태창처럼 볼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경험치 바(Bar)도.

시간 안에 레벨업하는 건 불가능하다.

‘불가능하다고, 불가능하단 말야…….’

해봤지만, 안 된다.

또 알아버렸다.

못하는 건 정말 못 한다는 것을.

“못 해…….”

“한 번 더 해봐요.”

장하양의 작은 자조를 들었는지, 아니면 듣지 못했는지.

신아름이 다시 하자고 말했다. 그녀는 쪼그려 앉은 장하양을 일으켜 세웠다.

“빨리.”

“…….”

새벽 5시 20분.

아니, 아침 5시 21분.

일출이 다가왔다.

“빨리요.”

“……응.”

그래, 연습이야 할 수 있다.

잠도 안 자고 백 번이고 천 번이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원하는 결과에는 도달할 수 없다.

장하양은 버릇처럼 춤을 추었다.

몸은 장하양의 명령 없이도 저절로 움직였다.

정신이 멍했다.

‘안 될 거야.’

리볼버 파트가 다가온다.

다가왔다.

가장 처음은 리카.

둘째로 조아라.

셋째로 신아름.

넷째로 백설하.

이제 자신의 차례다.

‘안 된다고.’

안 되면, 다른 걸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에 이어, 성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주 옛날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던 말.

‘너희가 그냥 주는 걸 받기만 하는 아이돌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어. 스스로 무언가 만들어낼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길 바라.’

장하양이 가만히 섰다.

“언니?”

안무를 잊어버렸나.

멤버들은 동선을 이동하던 것을 멈추었다.

그와 동시에 장하양이 움직였다.

춤이 아니었다.

“뭐 하는…….”

춤이란 건 감정을 표현하고 매력을 드러내기 위한 예술이다.

그런데 매력을 드러내는 게 목적이라면, 굳이 춤이어야 할까?

연기면 안 될까?

장하양은 양 손목을 맞추어 쓸었다. 마치 손목에 뿌린 향수를 비비듯이.

미소를 지었다. 상쾌하단 듯.

그녀의 몸이 웨이브를 타며 좌우로 움직였다.

손목도 함께.

손목을 교차시킨 장하양은 사선으로 서서 손목을 귀 뒤로 가져갔다.

그리고 아래로 쓸어내린다.

샤워기의 물을 맞듯 눈을 감으며 위를 바라보던 장하양은, 천천히 정면을 보곤 윙크했다.

“아…….”

CF의 한 장면 같은 장하양의 모습에 신아름이 무심코 감탄을 터뜨렸다.

장하양의 연기는 끝났다.

이제는 춤이 시작됐다.

조아라에게서 배웠던 올드스쿨 힙합 댄스.

한 바퀴 돌곤 팔다리를 쭉쭉 펴며 커다랗게 움직인다.

발차기라도 하듯 뻗어 나간 다리는 관성을 타고 장하양의 몸을 역방향으로 회전시킨다.

그녀가 입은 상의가 바람에 나부낀다.

한 바퀴 회전한 장하양은 절도 있게 서곤, 자신의 차례는 끝이란 듯이 여유로운 눈빛으로 중앙에서 벗어난다.

그러다가 동선을 바꾸지 않은 신아름과 부딪혔다.

신아름은 멍하니 장하양을 올려다보았다. 장하양도 갑자기 나타난 장애물에 당황하며 멈췄다.

“아, 미안.”

“……으, 어.”

신아름은 토막 난 말을 내뱉더니.

“그으, 그거 언니가 만든 거예요? 방금?”

“어? 어, 그런 거 같아.”

“다, 다시 할 수 있어요? 다시…… 해야 해…….”

이게 나다.

이게 나의 매력이다.

나는 장하양이다.

오로지 장하양의 힘만으로 만들어낸, 장하양 자체를 표현하는 연기와 춤이었다.

누구의 힘도 빌리지 않고 스스로의 감정을 표현해낸 연기이자 안무.

퍼포먼스다.

그렇기에 이 세상 누구도 장하양보다 더 잘 표현할 순 없는 것이었다.

장하양은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스스로 퍼포먼스를 창조해냈다.

성필이 바라왔던 대로, 장하양은 아티스트로서 본인만의 창조성을 드러냈다.

“응, 할 수 있어.”

아침 5시 31분.

창문으로 늦여름의 햇볕이 쏘아 들어와 장하양을 비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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