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8화
성필은 가사지를 보며 몇 번이고 고민했다.
정지음에게 할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아서 몇 번이나 입을 뗐다 붙였다.
깊은 한숨을 내쉰 후.
“사장님께 말씀드려야겠다.”
“네? 아니, 그냥 형이 하라면 파트 다시 분배할게요. 사장님한테까지…….”
“넌 작곡가잖아. 음악 프로듀서고. 네 의견이 묻히면 안 되지.”
정지음은 감동한 듯, 그리고 미안한 듯 자신의 어깨만 쓸었다.
조아라가 처음 연습생 테스트를 보았을 때, 그녀의 보컬 실력은 일반인 이하였다.
하지만 백설하의 지도를 받고 놀랄 만한 성장을 이루어냈다. 조아라가 요령이 있던 까닭도 있었다.
하지만 장하양은 자타공인 누구보다도 성장이 더딘 아이다.
노력만큼 결과가 나오진 않으나, 비정상적인 노력량으로 커버하고 있었다.
‘랩 실력은 늘고 있지만. 그것도 멤버들에 비해서 실력이 좋다는 거야. 한 번도 랩을 안 배운 사람이랑 비교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물론 장하양의 실력이 모자라더라도, 곡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조정하면 된다.
하지만 문제는 퍼포먼스였다.
직접 무대에서 부르게 되면, 장하양의 실력이 녹음된 곡에 비해 부족하단 게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다.
“네 의견이 타당해.”
음악의 완성도를 위해서라면, 장하양의 파트를 줄이는 게 타당했다.
비교우위가 있는 랩 파트를 늘리는 쪽으로 가는 게 맞겠지.
“음.”
성필의 보고를 받은 홍규헌도 고민에 빠진 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는 정지음이 배분한 파트를 여러 번 읽더니 입을 뗐다.
“지음 씨 의견은 존중하고 있어. 지음 씨가 이게 최선이라고 판단했다면 이게 맞는 거겠지.”
멤버들 간의 균형을 최소한으로 해하는 선에서 구성한 파트 배분이다.
성필은 홍규헌의 답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억울한 기분을 누를 수 없었다.
근거 없는 믿음이지만, 장하양은 시키면 할 수 있는 애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녀는 해낼 수 있다고, 성필의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외치는 소리가 올라왔다.
“그런데 이건 아닌 거 같아.”
홍규헌의 답에 성필이 숙였던 고개를 번쩍 들었다.
“보니까 하양이가 다른 애들에 비해서 평균적으로 15% 정도 적네.”
“그게 바로 계산이 돼요?”
“덧셈 나눗셈 초등학교 때 배우잖아.”
“네, 네. 그렇긴 하죠.”
“지음 씨한테 가서 다시 해달라고 해.”
성필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가사가 적힌 종이를 받았다.
“이건 애들의 데뷔곡이야. 벌써 실력에 따라 갈라치고 싶진 않아. 아직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 실전에 들어가면 어떨지.”
“그렇죠. 일반 사람들은 들었을 때 모르겠지만, 팬들은 가사 하나하나 뜯어보고 파트 배분을 알아낼 거예요. 아무리 하양이가 랩 파트를 맡고 있더라도 차별한단 말이 나올 수도 있고요.”
“뭐야. 박 이사도 그렇게 생각했으면서 왜 아무런 말도 안 했어?”
“그냥, 감정이 제 눈을 가린 것처럼 보일까 봐요. 감성적으로 애들을 대하는 것처럼…….”
성필은 항상 그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인간적으로 멤버들을 대하려고 노력하는 데다가 원래 성필이 정이 많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프로듀서로서의 객관적인 눈을 잃을까 봐 걱정된다.
‘전생에선 그나마 나았는데.’
매니지먼트 총괄이라 소속 연예인에게 많은 관심을 쏟긴 했다.
하지만 직접 프로듀싱하는 멤버들에게는 붙는 애착 자체의 격이 다르다.
“박 이사.”
홍규헌은 그런 성필의 대답에 싱겁게 웃었다.
“이성적인 게 항상 옳아?”
“네?”
“감정적이면 안 돼?”
“그야…….”
“이성은 좋은 도구지만, 사람을 메마르게 만들어. 이성만 옳은 게 아니야. 감정도 옳을 수 있어. 뭐어, 아무튼 파트 배분을 이렇게 하면 멤버들 사이에서도 문제가 생길 거야.”
홍규헌은 그것을 조목조목 짚었다.
“은근히 급이 나뉠 수도 있겠지. 그런 생각이 자연스레 장하양을 무시하는 쪽으로 나갈 수도 있겠고. ‘걔는 못 하니까’, ‘우리가 더 잘하니까’. 그건 팀이 아니잖아.”
“애들이 그럴 거라곤 생각도 안 하고 싶지만, 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하양이가 곡에 애착이 생기지도 않을 거고요.”
“그렇지. ‘아니’는 우리 회사의 노래가 아니라 장하양과 멤버들의 곡이잖아. 내 거라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지.”
성필은 홍규헌과의 대화를 마치고 다시 정지음에게로 찾아갔다.
그는 성필을 보자마자 사과했다.
“형, 제가 생각해봤는데요. 역시 파트는 공평하게 분배하는 쪽이 좋을 거 같아요. 아직 데뷔곡도 안 내본 애들한테 비교우위를 고려해서 파트를 나눈단 거 자체가 좀 그래요. 사장님한테 다시 말씀드려주시면 안 될까요?”
정지음은 홍규헌이 자신의 파트 배분을 쓸 거라고 확신한 눈치였다.
“사장님이 다시 쓰래.”
“네? 아, 그러셨어요?”
“응. 사장님도 너랑 똑같은 생각이시더라.”
“다행이다…….”
정지음이 몇 시간 동안 고민한 끝에 새롭게 파트가 나뉘었다.
직원회의로 그것을 통과시킨 후, 멤버들이 전달받았다.
“아, 이 부분 자신 없었는데 잘됐다. 여기 이어지는 거요. 춤추면서 하긴 무리라고 생각했거든요.”
의외로 조아라에게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왜 내 파트 줄였어요!’라면서 사납게 달려들 줄 알았는데.”
“아저씨 머릿속에 나는 대체 어떤 인간인데요.”
“도전 정신 넘치는 탐험가 같은 이미지지.”
“포장 잘하시네.”
그에 비해 리카는 조금 불만이 생긴 것 같았다.
“제 파트가 많이 줄었네요…….”
리카는 리드 보컬로서, 백설하의 후렴이 들어오기 전의 프리코러스를 주로 맡았었다.
난이도가 있어서 조아라나 장하양은 소화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그곳에 신아름이 함께 끼어들면서, 리카는 상대적으로 역할을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대신 이 부분에 들어가게 됐잖아.”
“그렇긴 한데요…….”
“리카 왜 그래? 마음에 안 들어?”
신아름이 어깨동무하자 리카는 언제 불만이 있었냐는 듯 활짝 웃었다.
“으응, 불만 전혀 없어. 하나도 없어! 아름이랑 같이하게 돼서 영광이야!”
“아름아 너 리카한테 뭔 짓 한 거야? 괴롭히기라도 해?”
“글쎄요. 우정의 힘?”
리카는 신아름을 좋아하는 건지 싫어하는 건지 모르겠다.
항상 쩔쩔매는 것을 보면 신아름을 어려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자주 신아름이 나온 프로그램을 돌려보는 걸 생각하면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름이는 저 안 괴롭혀요! 저한테 잘해줘요! 친구예요!”
“스톡홀름 증후군인가…….”
친구 사이에서도 이런 케미를 가진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한 명이 상대를 주도하고 통제하면, 다른 쪽은 그저 받아주기만 하는 것이다.
보고 있으면 ‘쟤는 저렇게 끌려다니면서 왜 친구로 지내지?’ 같은 마음이 드는데, 정작 당하는 쪽에게 물어보면 ‘걔가 어때서?’ 같은 답이 나온다.
관계가 유지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이사님. 그럼 저희 다시 녹음하는 건가요?”
가사를 찬찬히 뜯어보던 백설하가 물었다.
“아니. 새 파트 받은 리카랑 하양이만 다시 하면 돼. 아름이 레코딩하러 갈 때 같이 가자.”
“와, 부럽다. 하루 쉬는 거네.”
“쉬는 게 아니지.”
“이미 한번 다 해본 거잖…… 아.”
악마같이 디렉팅을 내리던 정지음을 떠올린 조아라가 숙연해졌다.
그녀는 장하양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언니 힘내요. 이번에는 지음 오빠 콧대 납작하게 눌러주고 와요.”
“노력해볼게.”
장하양은 파트가 줄어서 좋은지 나쁜지, 그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지도 않는 애라서, 성필이 그녀의 감정을 읽어낼 수는 없었다.
“왜 그러세요?”
성필이 계속 쳐다보자 장하양이 물어왔다.
“아니, 그냥. 오늘따라 더 예쁘네. 빨리 팬들한테 보여주고 싶다.”
“아하하, 이사님도요.”
“아저씨를 팬들한테 왜 보여줘요.”
조아라는 둘의 사이에 태클을 걸고 신아름에게 가까이 붙었다.
그리고 동조해달라는 듯 작게 말했다.
“저 둘이 진짜 뭐 있는 거 같아. 평소에도 오글거리는 말 막 주고받거든? 방금도 봤지? 너도 좀 지내면 자주 볼…….”
“그렇게 보이네.”
“……응?”
조아라는 장난으로 한 말에 신아름이 진지하게 반응하자 당황스러웠다.
* * *
주간, 월간 평가제를 실시한 지도 벌써 몇 달이 지났다.
평가마다 멤버들의 부족한 영역으로 버스킹을 한다. 조아라는 보컬, 백설하는 댄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사람들의 앞에서 하는 게 도움이 됐던 건지, 둘의 실력은 빠르게 상승했다.
“이제 개인 버스킹은 끝내자. 다 함께 군무로 가자.”
“군무면 아이돌 곡인가요?”
“응.”
“노래도 불러요?”
“아니. 춤만 출 거야. 이제 곡도 곧 완성될 거고 안무도 나올 거야. 팀워크가 중요해. 미리 합을 맞춰보는 거지.”
버스킹 영상은 가로 엔터 채널에 올라간다.
조회 수는 1,000을 기점으로 왔다 갔다 하는 수준이다.
그 정도 조회 수도 엄청난 성공이다.
데뷔도 안 한 연습생의 버스킹 영상을 1,000명이나 꾸준히 봐준다는 것이니까.
“장소는 어디로 하나요?”
“핫플은 따로 예약도 해야 하고 시간도 많이 잡아야 하니까 곤란하지. 우리는 한 곡 하고 끝이니까. 도심이면서 한적한 데로 찾을 거야.”
“도심이면서 한적한 데가 어딨어요.”
“말이 그렇다고.”
장소는 조아라가 항상 버스킹을 하던 곳으로 결정됐다.
처음 조아라가 보컬 버스킹을 했을 때, 그녀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몸 전체가 터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붉어져서, 노래도 실수 연발에 썩 잘하지도 못했다.
비웃는 사람까지 나타나서 버스킹이 끝나자마자 도망가듯 떠났었다.
“아라 이번에도 그러는 거 아니지?”
“춤은 내 전공이잖아요.”
멤버들은 버스킹 장소에 도착하고 몸을 풀었다. 당연히 신아름도 함께였다.
데뷔 직전까지 신아름을 숨기는 전략도 생각해보았지만, 딱히 큰 효과는 없으리라 판단했다.
방송이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면, 신아름을 숨겼다가 터뜨렸을 때 대중의 큰 반응을 끌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젝트 포유의 시청자들은 철저히 매니아층이었기에, 차라리 데뷔 전부터 신아름의 유명세를 이용하는 편이 이득일 것이다.
“오, 사람들 꽤 몰리네요.”
“그러게.”
민경섭은 카메라를 준비하면서 주변을 흘끔거렸다.
멤버 다섯이 모여 있자 꽤 관심을 받았다.
예쁜 애들을 한곳에 모여뒀으니 시선이 안 오는 게 이상하지.
게다가 중간에 신아름도 있으니, 그녀를 알아보고 걸음을 멈추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 시작한다. 준비해.”
카메라 설치를 끝낸 뒤 곡을 재생했다.
스피커로부터 나오는 리듬에 맞춰 멤버들이 일주일 동안 연습했던 실력을 마음껏 뽐냈다.
2주 전에 나와서 현재도 음원차트 10위 권 내에 있는 최신곡이다.
그 곡에 반응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아직은 합이 안 맞는 부분이 많네.’
일주일은 팀웍을 정비하기 충분한 시간은 아니다. 성필의 눈에는 만족스레 보이지 않았으나, 관객들은 그 차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대부분의 시선은 정면도 아닌 데다가, 가벼운 마음으로 보는 데 불과하니까.
그저 ‘예쁜 애들이 많네?’ 하는 마음으로 멈추었다가, ‘춤추네?’ 같은 생각으로 끝날 것이다.
“꺄아아악!”
그런데 곡이 하이라이트에 접어들자, 관객 사이에서 기쁨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성필이 깜짝 놀라서 보니 여중생 둘이 발까지 동동 구르면서 멤버들을 보고 있었다.
멤버들도 놀라서 그쪽으로 시선을 주다가 스텝이 살짝 꼬였다. 하지만 백설하의 지시를 받고 금방 원상태를 회복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버스킹이 끝나고 멤버들이 허리를 숙이자 조촐한 박수가 나왔다.
여중생 둘의 물개박수는 그 가운데서 당연히 두드러졌다.
백설하는 그쪽을 보고 한 번 더 허리를 숙였다.
이제 돌아갈 채비를 하자, 여중생 둘이 멤버들에게 다가왔다.
민경섭이 막으려 하자, 성필은 괜찮단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어, 언니들. 이, 이거.”
한 명이 백설하에게 예쁘게 포장된 쿠키를 내밀었다.
멤버들의 수를 맞춰왔는지 다섯 개였다.
백설하는 미소 지으면서 그것을 받았다. 감동한 기색이 가득했다.
그건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라서, 그녀들의 손과 발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사방팔방을 배회하는 듯했다.
“SNS에서 보고 왔어요!”
“예, 감사합니다.”
“이제 매주 여기서 버스킹해요? 다 같이?”
“네, 아마.”
그 뒤로도 여중생 둘은 멤버들과 여러 대화를 나누었다.
아주 좋아 죽으려고 했다.
‘특이하네.’
연습생 덕질하는 사람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다.
물론, 데뷔하기 전 인터넷 프로모션에 집중하는 기획사가 있긴 하다.
대부분 자금이 부족해서 미디어 출연을 기대할 수 없는 회사들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팬을 만드는 건 힘들다.
제공되는 자료의 질과 양이 낮기도 하고, 그룹 자체에 아무런 성과나 지표가 없는데 어떻게 덕질을 하겠는가.
“리카 언니 영상 너무 재밌어요!”
“한국사 배우는 거요?”
“네네! 그거 보고 학교 시험에서도 몇 개 더 맞췄어요. 그거 한 번 해주시면 안 돼요? 손나(그런)!”
“손나!”
리카의 팬서비스에 여중생들이 뒤집어졌다. 리카도 기뻐서 뒤집어지기 직전이다.
‘아이튜브랑 SNS에 계속 자료를 던진 게 이렇게 돌아오네.’
성필은 인터넷에 올리는 영상이나 사진, 멤버들이 직접 올리는 글에 심혈을 기울였다.
최대한 팬들과 소통할 수 있도록, 팬들이 소통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처음 홍규헌은 그 전략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냈지만, 보라.
이렇게 팬이 생기지 않았는가.
“저 아라 언니 보려고 언니 학교 앞에 갔었거든요!”
“네? 나요? 내 학교는 어떻게…….”
“교복 보고요. 근데 저녁까지 기다려도 안 나오셔서 그냥 왔어요.”
“아, 나 점심 먹기 전에 조퇴하고 회사로…….”
조아라가 개인 정보를 발설하기 시작했다.
성필은 재빨리 개입하여 여중생들 사이를 막았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죄송한데 이제 멤버들 학원 가야 하거든요.”
“아, 죄송합니다.”
두 여중생이 우물쭈물하면서도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그, 저기요, 그으. 사인, 사인만 해주시면 안 돼요?”
그러곤 사인지를 꺼낸다.
아, 대화만 나누느라고 사인을 못 받았구나.
“우리가 뭐라고 사인까지…….”
조아라의 얼굴은 홍당무가 돼서 터지기 직전이었다. 그녀는 펜을 움직이는 도중에도 부끄러워서 죽으려고 했다.
“매니저님. 데뷔 언제예요?”
“미정입니다.”
“이대로 데뷔 안 하는 건 아니죠?”
“합니다.”
“영상 계속 올려주시나요?”
“네. 노력하겠습니다.”
궁금한 게 정말 많다.
이해한다.
성필도 아이돌을 좋아했을 때, 그룹 멤버들이 좋아하는 음식 이름 하나하나 전부 외우고 싶어 했으니까.
어떤 정보든지 떡밥이 되어 성필을 기쁘게 했다.
“사, 사진도…….”
성필은 그러라고 했다.
장하양의 옆에서 사진을 찍은 여중생이 홀린 듯 그녀를 보았다.
“얼굴…… 도랐…….”
거의 혼절 직전인 듯했다.
사진 촬영까지 마치고, 이제 정말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아직도 그녀들은 욕구가 풀리지 않았는지, 성필을 향해 여러 질문을 던졌다.
“죄송합니다. 바빠서요.”
“이것만 말해주시면 안 돼요? 그룹 이름은 뭐예요? 정해졌어요?”
그룹 이름?
아직 안 정해졌다.
사실 그룹명은 가로 엔터 내에서 누구도 꺼내기 힘들어하는 주제였다.
한번 회의 안건으로 올라온 적은 있다.
결과는.
“다들 데뷔 전까지 계속 생각해봐. 최대한 많은 이름을 생각하고, 나중에 다시 날 잡아서 논의해보자.”
그래서 가로 엔터 직원들은 후보만 골라내고 있을 뿐, 아직 자신들의 의견을 표출하고 있지 않다.
“미정입니다.”
멤버들을 나눠서 차에 태우고 가로 엔터로 돌아갔다.
가는 길, 조수석에 앉은 신아름이 말했다.
“나한테만 반응이 별로였는데. 팀장님도 느꼈죠?”
“어.”
그 여중생들은 백설하가 가로 엔터에 들어왔을 때부터, 우연히 가로 엔터의 아이튜브 채널과 SNS를 보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장하양이 들어온 것을 기점으로 진심으로 덕질을 시작했다는 모양이다.
“걱정되겠지.”
“뭐가요?”
“너한테만 스포트라이트가 쏠릴까 봐. 악개 생길 수도 있잖아.”
악개.
악성 개인 팬의 줄임말이다.
연습생 서바이벌 프로젝트 그룹이 끝나면, 그 멤버들은 다른 그룹으로 흩어진다.
그럼 팬들도 흩어진다.
그 팬들은 흩어진 멤버들의 개인 팬으로서, 이후 생기는 다른 그룹의 팬덤에 끼게 되는 것이다.
그 그룹에 애착을 가지면 문제가 없으나, 한 명만 좋아하면 문제가 생긴다.
이미 여러 차례 나타난 현상이다.
가로 엔터의 멤버들도 데뷔를 하게 되면, 유입되는 팬 대부분이 신아름의 팬일 가능성이 높다.
팬덤 사이에 분열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 나만 찬밥 취급한 걔들은 뭐예요? 악성 그룹 팬?”
“야. 팬이시잖아. 걔들이라고 부르지 마. 너한테만 사인 안 받고 얘기 안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래.”
“그냥요.”
저도 불안해서.
* * *
점심을 먹던 중, 성필은 갑작스레 떠올랐다는 듯 가볍게 말했다.
“제가 그룹 이름을 생각해봤거든요. ‘소녀연맹’ 어때요?”
“모바일 게임 매출 순위 200위쯤에 있을 거 같은 이름이네.”
“영어로는 Girls’ Union이고요.”
“……박 이사, 설마 설마 해서 묻는 건데 진심이야?”
“줄이면 ‘소련’이에요.”
“…….”
“팬클럽 이름은 ‘인민’ 어때요? 영어로 바꿔서 ‘People’도 좋겠지 않아요?”
홍규헌은 헛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어이없음에 공감해달라는 듯 다른 직원들을 보았다.
손혜빈과 민경섭은 홍규헌을 따라 허허 웃었다.
한구인은 달랐다.
“박 이사님. 연맹이면 Girls’ League가 맞을 겁니다.”
“오, 더 느낌이 사네요.”
“그렇죠?”
홍규헌은 자신의 이마를 탁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