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7화
성필과 신아름은 집 안에 들어와서 요리를 준비했다.
어머니가 한다고 했으나, 신아름은 한사코 말리며 어머니를 강제로 텔레비전 앞에 앉혔다.
“딸 얼굴 나오는 거라도 보고 있어.”
“이미 많이 봤는데…….”
“더 봐. 봐도 봐도 안 질리잖아?”
딸의 말에 어머니는 주방을 힐끔거리면서도 텔레비전을 보았다.
“아름아. 그 냄비 어딨냐. 누런색 양철.”
“어, 그거 여기 있었는데?”
“그건 내가 따로 여기 뒀…….”
“엄마는 가 있으라니까! 내가 알아서 할게!”
성필은 석세스 엔터에 있을 적, 두 달 정도에 한 번씩 신아름과 함께 그녀의 집에 왔었다.
신아름이 그것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멘탈 케어를 겸해서 성필은 이 일을 몇 년이나 지속했다.
“야, 저기 물 끓잖아. 불 낮춰.”
“아직 더 데워도 돼요.”
“야야 넘치잖아!”
“아 진짜. 그만 좀 보채요.”
“보채길 뭘 보채?! 흘러내리고 있잖아!”
성필이 섹세스 엔터를 나가고 그게 1년가량 중단됐었다.
왜 요즘은 성필이 오지 않냐는 어머니의 질문에, 신아름은 성필이 바쁘단 핑계를 댔다고 한다. 애초에 신아름이 성필에게 ‘이제 오지 않아도 된다’라고 했으나, 어머니에게는 성필이 석세스 엔터를 나갔다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그녀를 석세스 엔터로 데려올 때, 성필은 탐탁지 않아 하는 어머니의 앞에서 무릎까지 꿇어가며 설득했었다.
어머니는 성필의 사람됨을 보고 딸을 맡겼다.
그러니 어머니는 성필을 가장 신뢰했고, 성필도 그 신뢰에 보답해주고자 했다.
“다 됐습니당.”
작은 밥상을 형형색색의 반찬이 가득 채웠다.
대부분 자취 경력 10년에 가까운 성필이 해낸 것이었다.
“잘 먹을게요 팀장님. 항상 감사드려요.”
어머니는 오랜만에 찾아온 성필을 상전 대하듯이 했다.
어려운 시기, 성필이 도움을 몇 번 줬기 때문이었고. 딸이 석세스 엔터로 간 후 많이 밝아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팀장님 이것도 먹어요. 제가 만들었어요.”
“네가 접시에 담았단 뜻이지? 어, 맛있네. 내가 만들어서 그런가.”
“속 좁아. 쪼잔해. 그릇이 작아.”
“반사.”
“초딩인가.”
“얘 아름아…….”
“엄마 괜찮아. 팀장님 이런 거 좋아해.”
“그래도…….”
“아유, 젊은이랑 대화가 통하니까 좋네요. 다시 젊어진 기분입니다.”
“봤지?”
성필의 말도 안 되는 농담에도, 어머니는 마냥 좋다며 웃으셨다.
식사가 끝나고 어머니가 과일을 깎아주었다.
그것을 받아먹으며 성필은 가방 속에서 서류를 꺼냈다.
포유의 계약 해지 서류였다.
“어머님.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온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신아름은 프로젝트 포유에서 탈퇴했다.
동시에 석세스 엔터에서도 나왔다.
“그, 그럼 아름이는 어떻게 되나요……?”
“지금 제가 있는 회사에 오기로 했습니다. 옆에 있는 건 그 계약서입니다. 늦게 말씀드려 죄송합니다.”
석세스 엔터에서 나왔단 말에 파리해졌던 어머니의 표정도, 성필의 설명이 이어지자 원래대로 돌아왔다.
설명이 끝나고, 성필은 죄인처럼 가만히 앉아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불안하실 거야.’
딸이 텔레비전에 나왔다.
어머니는 그 소식을 알릴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알렸다.
자신의 딸이 텔레비전에 나온다고, 한 번만 보라고, 딸이 데뷔할 수 있게 투표해달라고.
그녀의 웃음이 없는 삶에 오랜만에 웃음이 찾아왔다.
그 근원인 포유로부터, 신아름은 상의도 없이 나와버린 것이다.
‘혼란스러우시겠지.’
석세스 엔터에서마저도 나왔다.
데뷔가 확정적이다시피 한 곳이었다.
딸이 애착을 가지고 계속 다니던 회사에서 나왔으니, 어머니의 마음도 이만저만 심란할 게 아니리라.
이 두 가지 이야기를 한 번에 하는 건 자극이 너무 클 수도 있다.
“부탁드립니다. 다시금 따님을 맡겨주십시오.”
4년 전과 같이, 성필은 무릎을 꿇고 부탁했다.
“그러면 팀장님 따라가는 거죠?”
“예. 데뷔는 몇 개월 뒤입니다. 확정입니다.”
“네에, 그럼 저는 괜찮아요.”
어머니는 고민도 없이 펜을 들었다. 성필이 그녀를 멈춰 세웠다.
“포유 계약 해지 건은 제가 하나씩 다 뜯어봐서 괜찮습니다. 하지만 가로 엔터 연습생 계약은 자세히 봐주세요. 뒤에 표준계약서도 첨부했습니다. 비교해서 꼼꼼하게…….”
“저는 팀장님 믿어요.”
성필은 삐뚤빼뚤 자신의 이름을 쓰는 어머니의 손을 막을 수 없었다.
너무도 손쉽게 계약이 해지되고, 새로운 계약이 맺어졌다.
성필은 그것을 소중하게 받아 파일에 끼우고 가방에 넣었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반드시 따님을 성공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네, 항상 감사드려요 팀장님.”
“요 근래 자주 못 찾아봬서 죄송합니다.”
“아니요. 바쁘셨다면서요, 예. 괜찮습니다. 이렇게 오시는 것도 죄송스러워서…….”
“아닙니다. 소중한 따님을 맡겨주셨는걸요.”
“아 둘 다 좀 그만해! 뭔 상견례야?”
신아름이 성필의 품에 가방을 안겼다.
“빨리 가요!”
“딸, 벌써 가게?”
“응. 나 빨리 데뷔해야지. 연습도 하고. 엄마 잘 있어.”
“아냐 아름아. 너 오늘은 여기서 자. 오랜만이잖아. 내일 회사로 출근하고.”
“그으, 그러면 회사에 손해 아닌가요?”
“아닙니다 어머님. 아름이는 실력이 뛰어나서 하루 이틀 연습 안 해도 돼요.”
그 칭찬에 어머니는 미안함을 드러내면서도 화사하게 웃으셨다.
“어, 진짜요? 그럼 저 주 2일 쉬게 해주세요.”
“안 돼.”
“인면수심. 표리부동. 동전의 양면.”
“얘 아름아……!”
성필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이고 더 있으시지.”
“아닙니다.”
“엄마. 나 팀장님 바래다주고 올게. 우리 동네 위험하잖아.”
두 사람은 집 밖으로 나왔다.
어차피 골목 하나만 지나면 성필의 차가 주차되어 있기에, 두 사람이 함께 걷는 시간은 고작 수십 초에 불과했다.
“시간 진짜 빠르지 않아요? 저랑 팀장님이랑 처음 만났을 땐, 우리 엄마 나이가 지금 팀장님 나이랑 비슷했잖아요.”
“난 31살이거든. 그때 어머님 연세는 35이셨고. 수학 시간에 졸지 좀 마.”
“와. 4년 뒤엔 팀장님도 그때 우리 엄마랑 비슷해지는 거구나. 세월이 유수 같네요.”
“애늙은이처럼 말하네.”
“우리 엄마는 10살 딸이 있을 나이였는데, 지금 팀장님은 뭐예요?”
“……뭐. 어쩌라고.”
“비혼주의자?”
“사람만 있으면 하고 싶다 나도.”
“아…… 그래요?”
별말을 할 새도 없이 두 사람은 성필의 차 앞으로 도착했다.
“잘 가요. 사고 나지 말고.”
“어. 너도 잘 들어가. 사고 나지 말고.”
“팀장님.”
“왜.”
“멤버들이 저 마음에 안 들어 하면 어떡할까요?”
“‘어떡할까요?’가 아니라 ‘어떡해요’가 맞지 않을까? 네 성격이 워낙 더러워서 이미 싫어할 거 같은데…….”
“계약 해지해! 그거 찢어요!”
“어, 찢는다?”
“농담을 또 진지하게 받아치네. 어른 아닌 줄.”
“그래. 나 진짜 간다.”
“네, 가세요.”
성필이 차에 탔다. 그러자마자 전화가 울렸다.
창밖을 보니 신아름이 전화기를 귀에 대고 있었다.
“뭐 하자는 건데.”
[팀장님.]
“왜.”
[알라뷰.]
“미투.”
[헤헤. 들어가요.]
“들어가는 건 너지. 빨리 가.”
성필은 사이드미러로 멀어지는 신아름을 눈에 담았다.
모퉁이를 돌 때까지, 허리를 깊이 숙인 신아름의 모습은 사라지지 않고 이어졌다.
신아름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그녀의 어머니가 머릿속에 나타났다.
몇 년 전, 어머니에게서 허락을 받아내고 집을 나오는 길이었다.
어머니는 성필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귀하게 키웠어요. 아버지가 없어서…… 다른 애들한테 무시 안 당하게요. 기 안 죽게 하려고 어리광도 많이 들어줬어요. 가난한…… 가난하다는 말은 꺼내지도 않았어요. 사달라는 건 무리해서라도 사줬어요. 제 욕심 때문이죠……. 초등학생 돼서도 제가 집에 없으면 대성통곡을 하던 애예요.’
성필의 손을 쥐었던 어머니의 힘이 점점 더 강해졌다.
딸을 떠나보내는 슬픔과 겹쳐져, 그 힘은 약해지고 강해지길 반복했다.
‘그래서…… 버릇이 너무 없게 자란…….’
괜찮습니다, 어머니.
제가 쭉 지켜봤는데 그릇이 커요.
크게 될 애예요.
버릇이 없는 게 아니라 배짱이 큰 거예요.
애가 착합니다.
어머님께서 따님을 잘 키우셨어요.
‘감사합니다…….’
처음 보는 남자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는 어머니의 심정은 어땠을까.
애지중지 키워온 딸을 전혀 모르는 세계에 보내는 두려움을, 성필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성필에게 구워 삶아진 신아름이 강짜를 부리지 않았다면, 어머니도 반대했을 게 분명했다.
‘저희 딸애 잘 부탁드립니다 팀장님.’
어머니는 그 말을 끝으로 성필의 손을 놓았었다. 그렇게 성필은, 신아름을 정말 자식처럼 대하려고 노력했다.
고작 20대 중반인 성필이 말이다.
그는 교육학 서적까지 읽어가며 정말이지 노력했다.
엇나가지 않도록 혼내고.
잘하도록 용기를 북돋워 주고.
다른 연습생들이 그것을 편애로 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성필은 신아름에게 더 엄했으니까.
하지만 신아름은 성필을 싫어하지 않았다.
성필의 내면에 숨겨진 진심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필이 석세스 엔터를 나가려 할 때, 성필은 신아름을 따로 불러서 말했었다.
“아름아. 나 이 회사 나갈 거야. 만약 내가 다른 회사에 가게 되면 말이야, 너도 여기서 나올래? 위약금은 내가 내줄게.”
그 물음에 신아름은 깔깔 웃으면서 답했다.
“팀장님 몸이나 잘 지켜요.”
그때 성필은 울컥했다.
감동했기 때문이 아니라, 슬퍼서였다.
신아름이 당연히 따라 나올 줄 알았다.
물론 성필도 그녀가 석세스 엔터에 남는 게 더 낫다는 건 알았다.
신아름은 성공할 테니까.
“나 말고 팀장님 걱정이나 하라고요.”
그땐 당장이라도 눈물을 흩뿌리며 도망가고 싶었던 말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신아름은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제 나는 털어내고 팀장님은 팀장님대로 살아가세요. 저 신경 좀 그만 쓰고, 제 집에도 찾아오지 말고, 괜한 의무감 느끼지 말라고요. 앞으로는 저 혼자서 잘살아볼게요. 저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어요.’
혼자 잘해보겠다고 다짐했던 신아름은, 1년 뒤 다시 성필을 찾아오게 됐다.
어쩌면 영원히 떨어질 수 없지 않을까.
성필은 그런 예감이 들었다.
* * *
“멤버가 한 명 더 들어왔다고요?”
정지음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는 신아름의 합류에 관한 소식을 듣자 상당한 혼란에 빠진 듯 허공만 바라보았다.
“그럼 재녹음 하는 거죠?”
“그래야지. 파트 분배를 다시 해야 하는데, 혼자 할 수 있겠어?”
“아……. 다섯 명이면 송 폼(Song form)을 바꿔야 할지도 몰라요. 믹싱까지 끝낸 건데…….”
곡은 마스터링 작업만 앞두고 있었다.
“돈 아깝네요. 조금만 더 일찍 들어오지.”
“돈 걱정은 네가 할 건 아니지. 우리 회사 걱정해주는 건 고맙다. 너는 곡을 잘 만드는 거만 집중하면 돼.”
정지음은 공허히 마우스만 움직이며 작곡 프로그램을 만졌다.
너무 갑작스러운 말이라서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 듯했다.
“일단은 파트 분배 관련해서 회의해 볼 거거든. 그런데 네가 작곡가니까 아무래도 혜안이 있지 않을까 해서 찾아왔어.”
“아, 그런데 저는 이미 4인조 버전으로 뇌가 굳어버려서. 허어, 이걸 어떻게 또 나누지.”
일단 정지음은 신아름을 만나보기로 했다.
그녀의 음색이나 스타일을 알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안녕하세요 오빠.”
“응. 만나서 반가워. 정지음이야.”
“알아요. 리카 작곡 선생님이시죠? 리카가 얘기 많이 해줬어요.”
“어? 뭐라고 했는데?”
“키가 크다고요.”
“……그게 다야?”
“더 있는데, 비밀.”
신아름이 검지로 자신의 입술을 막았다.
정지음은 신아름의 끼부림에 심장이 터질 뻔했다.
‘이게 아이돌이구나.’
그런데 리카가 대체 뭐라고 말한 것일까.
정지음은 그게 궁금했으나 신아름은 끝까지 말해주지 않았다.
혹시 부정적인 것일까.
살짝 찝찝한 기분으로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 곡이 ‘아니’랑 비슷한 코드로 진행되거든. 알고 있어?”
“네. 전 기획사에서 과제로 한 적 있어요.”
“불러볼래?”
신아름이 마이크에 대고 노래를 불렀다.
정지음이 감탄했다.
그것만으로도 테스트가 전부 끝나고, 다시 성필이 들어왔다.
“발성이 말도 안 되게 깨끗해요. 유리 같아요.”
“그렇지?”
“네. 아이돌이 최적화된 목소리 같아요.”
아이돌에게는 어느 작곡가, 작사가, 디렉터의 것이든 그 의도를 완벽히 반영할 수 있는 목소리가 필요하다.
아예 맞춤곡이 아닌 이상에야 멤버의 개성을 상정하고 작곡하는 경우가 없기에, 곡에 아이돌을 맞춰야 한다.
그래서 흔히 ‘쿠세’라고 말하는 버릇이 없는, 깨끗하고 시원한 발성이 중요하다.
마치 어느 곳에서도 사용될 수 있는 만능 도구처럼 말이다.
“역으로 말하면 개성이 없단 거긴 한데. 진짜 아무 파트에 놓고 노래 불러도 평균 이상은 나올 거 같아요.”
정지음은 신아름을 본 뒤 창작열에 불타서 파트 분배 작업에 들어갔다.
길지 않았다.
“이사님한테만 말씀드리는 건데요, 사실 ‘아니’ 녹음 때 아쉬운 부분이 많았거든요.”
“지금 우리 애들이 부족하다는 거야?!”
“조금……?”
“당당하네. 그래, 작곡가면 그래야지.”
“그런데 아름이가 있으니까 그 부족분을 다 보완할 수 있어요.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리카랑 설하한테만 노래 부르게 하고 싶었는데.”
“……너 말이 좀 심하다? 그럴 거면 아이돌 작곡가를 하지 말고 발라드 작곡가를 해.”
“아니, 말이 그렇다고요. 음…… 그래서 나온 게 이건데요.”
성필은 가사 종이를 받아들었다.
이미 ‘아니’는 떠올리기만 해도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가사만 보아도 멤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나눴네.’
4인조의 또 다른 단점이 있다.
개개인마다 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그건 멤버들의 실력과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공연 때는 문제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춤추는 동시에 노래를 하는 건 당연히 힘들어. 본인에게 배당된 파트가 많고, 그 난이도도 높으면 골치 아프지.’
내심 4인조로 ‘아니’의 퍼포먼스를 완벽하게 구현하는 건, 막 데뷔한 멤버들에게는 힘드리라 여겼다.
그런데 신아름의 참가로 그 부분이 보완됐다.
이대로면 보컬의 난이도를 조금 높이는 것도 고려할 만했다.
“……지음아.”
가사를 보던 성필이 의아하다는 듯, 자그마한 불안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하양이 파트가 적지 않아? 다른 애들보다…… 어, 적네. 잘못 나눈 거야?”
“그게요, 하양이 보컬이 지금 상황에선 가장 실력이 떨어지잖아요. 곡 완성도 때문에 조금 더 덜어냈어요. 이게 더 나은 거 같아요.”
“뭐?”
가사가 적힌 종이를 쥔 성필의 손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방금 들은 건 작곡가의 평가다.
곡을 쓴 작곡가에게서, 장하양의 실력이 떨어진다는 소리를 들었다.
“하양이 목소리가 굵기도 해서, 이 곡에는 조금 안 맞는 느낌도 있어요. 그리고 하양이한테는 랩 파트가 배분돼 있잖아요. 그것만 있어도 개성 부각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랩이 많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 줄이면 하양이가…….”
“하하, 네. 그렇긴 하죠. 다시 짜볼까요?”
정지음이 미안해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악의를 가지고 파트를 배분한 게 아니다.
작곡가로서, 멤버들에게 파트를 적당히 주면서도 곡의 느낌을 살릴 수 있는 길을 고른 것이다.
“이게 최선인가?”
“마음에 안 드시면 바꿀…….”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생각할까?”
“네?”
“다른 사람들도 너처럼 생각하…… 겠지?”
‘수납’이란 단어가 성필의 머리를 떠돌았다.
실력이 부족한 아이돌 멤버를 안무의 구석으로 두거나, 파트 배분을 짜게 해주는 것을 말한다.
아직 정지음을 제외하곤 장하양의 파트를 줄이겠단 말이 나오진 않았지만.
그 말을 한 게 정지음이란 게 문제였다.
가장 곡을 보는 안목이 뛰어난 사람이…….
“하양이 파트를 줄이는 게 좋다고…… 생각한 거지 너는……?”
정지음이 성필의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