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6화
신아름은 석세스 엔터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석세스 엔터의 경영자들은 윤상열의 압박과 의견에 전적으로 동조했다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총괄 프로듀서이니, 프로듀싱에 관한 권한이 그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윤상열이 만들어낸 유명 그룹과 곡들을 보면, 사실상 그의 말에 반대하는 쪽이 멍청이나 다름없다.
‘윤상열 그 새끼도 아예 경우가 없는 놈은 아니네. 계약을 바로 해지해주긴 하고 말야. 괴롭히고 싶었으면 죽어도 안 내보내고 방치시킬 수도 있었을 텐데.’
신아름의 말을 들어보면, 윤상열은 그녀를 싫어했다고 한다.
이유는 대충 알겠다만…… 어쨌든 가장 큰 이유는 신아름의 비주얼이 그룹 컬러에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데뷔조의 가장 높은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으니 눈엣가시였겠지.
‘동시에 자기 힘을 보여줄 기회기도 했고.’
이로써 윤상열의 독주체제는 굳어졌다.
그리고 그는 쿨하게 신아름의 계약을 해지해주었다.
동정인지 뭔지, 이제까지 신아름에게 투자된 비용을 빚으로 달지는 않았다.
‘우리한테는 잘된 일이지.’
이어서 성필은 김명운을 만났다.
SMS엔터의 매니지먼트 부서에 있다가 포유를 관리하기 위해 ‘이음 엔터’로 독립한 매니저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아, 이제 대표님이네요.”
“어, 성필아 오랜만이다.”
3년 전의 만난 게 전부인데도, 김명운은 성필을 기억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친근한 미소까지 보여준다.
그야말로 매니저의 귀감 같은 사람이다.
“애들한테 나가고 싶으면 나가라고 하긴 했는데, 솔직히 이렇게 많이 남아줄 줄은 몰랐어.”
포유에서 탈퇴한 사람은 신아름이 전부였다.
그는 탈퇴를 결정한 신아름에게 섭섭하다기보다, 남아 있는 이들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최소 3명 정도는 나갈 거라고 예상했거든. 걔네들도 절박하겠지. 근데 아름이가 너네 회사에 갔다고?”
김명운은 계약 해지를 위해 서류에 연달아 사인하는 동안 성필과 대화를 이어갔다.
저 서류를 받아서 신아름의 부모님께 가져가 사인을 받으면, 이제 신아름은 완전히 포유에게서 벗어나는 것이다.
“예.”
“가로 엔터라고 했던가.”
“어?”
어떻게 김명운이 그걸 알고 있지?
“소식 들었어.”
“가로 엔터 아셨어요?”
“‘서프레스’ 있던 곳 아니야? 틀렸으면 미안.”
“아, 아니요. 맞아요. 가로 엔터 아는 사람 처음 만나봐서…….”
“하하, 그래? 알 수도 있지.”
역시, SMS엔터 매니지먼트 부서의 관리자급까지 올라가면 뭔가 다르단 건가.
“자, 다 됐다. 아름이한테 안부 전해줘. 나는 전혀 원망 안 하고, 네 앞길을 응원하고 있다고.”
성필은 그에 대한 동정이 솟아났다.
사실상 이음 엔터는 그의 독립이 성사되는 자리나 마찬가지였다.
SMS엔터의 투자가 있었고, 비록 그 자회사에 불과하더라도, 김명운에게는 자신의 이름을 건 어엿한 회사인 것이다.
“네, 그럴게요.”
“배웅은 안 해줘도 되지?”
“제가 뭐라고 대표님 배웅까지 받겠어요. 편히 있으세요.”
“하하, 그렇게 말하니까 조금 섭섭해지려고 그러네. 그래, 잘 가고.”
3년 만에 만난 게 마지막인데도 친근하게 대해주는 김명운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진짜 친한 동생을 대하는 듯해서, 오히려 성필이 당황할 지경이었다.
그만큼 김명운의 친화력은 뛰어났다.
“대표님.”
“응? 더 할 거 있어?”
“대표님은 성공할 거예요. 포유도 잘 되고, 뒤에 이음 엔터로 들어오는 연예인들도 전부요.”
“뭐야. 아부 떠는 거야? 그런 거 별론데.”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요. 정말 갈게요.”
“그래, 고맙다.”
미래를 아는 성필이 할 수 있는 최대한 격려였다.
단순히 빈말로 끝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성필은 후련히 이음 엔터를 나왔다.
* * *
멤버들이 연습실 바닥에 빙 둘러앉았다.
신아름은 언니인 백설하와 장하양의 앞에서 90도 인사까지 한 참이었다.
“아라쨩! 본때 보여준다면서! 왜 일진한테 잡혀서 골목으로 들어가는 학생 꼴로 들어온 건데!”
“아, 아니. 쟤가 동갑이라고 하니까 갑자기 어깨동무한 거야.”
“둘이 무슨 얘기 해? 나도 끼면 안 돼?”
신아름이 가까이 오자 조아라와 리카가 떨어졌다.
세 사람은 19살의 동갑이었다.
“으응, 난데모나이(아무것도 아니야).”
“리카 왜 자꾸 일본어 써? 여기 한국이야. 한국어로 말해. 너 방송에서도 일본어 쓰면 악플 달릴 수도 있어. 왜 왜놈을 방송에 내보내냐고.”
“에, 에, 고, 고멘(미안)…….”
“저, 아름아. 그런 말은 쓰지 마. 리카한테도 실례고 일본인분들한테도…….”
“네? 어떤 말이요?”
“그, 아까 리카 부를 때 했던 말 말이야.”
“아아, 왜(倭)? 죄송해요.”
신아름이 애교를 부리며 백설하에게 붙었다.
“학교 역사 시간에도 왜(倭)라고 하잖아요. 임진왜란이나 일제강점기 때 쌤이 그랬었거든요. 그게 익숙해서 말이 헛나왔어요. 죄송해요 언니.”
“으, 응. 저어…….”
백설하는 리카의 눈치를 보았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이란 단어가 나오자 리카의 안색이 점점 안 좋아졌다.
리카 본인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얼굴이 창백해져만 간다.
그녀는 한국에 오고 한국어를 배워가면서, 당연하게도 한국 커뮤니티를 접하게 됐다.
고국이 어떤 평가를 받는지 알고 싶은 건 만국 공통일까, 리카는 ‘일본’에 관해 검색했다.
그리고 충격받았다.
‘왜구’란 단어를 비하용으로 쓰는 것부터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으, 그런 단어도 쓰지 말자…….”
“네? 제가 또 뭐 안 좋은 말 했어요?”
신아름은 정말 모르겠단 듯, 그리고 죄송하단 듯 목소리를 점점 낮추었다.
리카와 계속 생활한 멤버들에게는 당연하지만, 신아름은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란 말을 꺼내는 게 실례란 생각 자체를 못 했다.
“아, 아니야. 나중에 말하자. 나중에.”
“지금 말해주세요. 지금 고칠게요.”
“아…….”
백설하가 곤혹스러운 눈으로 리카를 보았다.
리카는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임진왜란이나 일제강점기 같은 거……. 리카 앞에서는 좀…….”
“아아, 네네. 알겠어요. 그럴게요. 리카 미안.”
“으응, 다이죠(괜찮)…… 아, 으응. 괜찮아.”
리카는 친해지고 싶은 사람, 친한 사람에게는 일본어를 섞어서 사용한다.
친해질수록 일본어의 사용 빈도가 높아진다.
덕분에 조아라는 일본어를 배우지 않고도 회화를 어느 정도 습득했다.
하지만, 신아름에게는 그럴 일이 없을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나, 나는 일본이랑 한국이랑 친해졌으면 좋겠어.”
“응? 갑자기?”
“그냥 그렇다구…….”
“나도 그래. 우리도 친하게 지내자 리카. 아, 이미 우린 친한가? 친구잖아.”
“응응! 친구!”
신아름이 어루만져주자 리카가 급격히 기운을 되찾았다.
사람이 이렇게 단순할 수가…….
“그런데.”
신아름은 멤버들의 얼굴을 가볍게 한 번씩 훑어보았다.
“리더가 누구예요?”
선뜻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암묵적으로는 백설하가 리더였으나, 아직 공식적으로 말을 듣진 못했다.
가로 엔터의 모두가 암묵적으로 인정한 채 백설하 리더 체제가 작동하긴 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말하려니, 백설하는 부끄러웠다.
지금까지 스스로의 입으로 자신을 ‘리더’라고 불러본 적도 없었다.
“아직 없어요?”
“응. 공식적으로는 없…….”
“그럼 제가 리더 입후보해도 돼요?”
백설하의 입가가 굳었다.
“아, 응, 네가?”
“네. 없다면서요. 저 전 기획사에서도 리더 역할이었거든요. 출석 점검, 스케줄 관리, 예절, 다 제가 했어요. 아, 근데 언니들이시니까 ‘예절’은 좀 아니죠?”
“…….”
신아름은 악의가 없을 것이다.
공식적으로 리더가 없다면, 그에 지원하고 싶은 게 당연하다.
리더에겐 특혜가 있으니까.
‘이거 또라이 아냐?’
하지만 백설하가 순응하는 것과 달리, 조아라는 단숨에 신아름의 성격을 파악했다.
‘얘 그냥 우리 무시하는 건가?’
오랜 시간 함께 지내왔던 네 명 사이에 암묵적인 규율이 있는 게 당연하다.
그걸 무시하고 리더에 입후보하겠다고 말하는 건, 사실상 싸움을 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이런 싸움은 오고 가는 말의 물밑에서 진행되는 법.
아무리 암투의 세계에 익숙하지 않은 조아라라도 그건 알고 있다.
어떻게 하면 우회적으로 엿을 먹여줄까, 조아라가 생각하고 있을 때.
“리더는 설하 언니셔.”
장하양이 수면 위에 돌을 던지듯, 부드럽게 말을 꺼냈다.
조금의 불쾌함이나 분노도 없이, 그저 평온한 어투였다.
“리더 없다고 하셨지 않아요?”
“설하 언니가 암묵적으로 리더야.”
“암묵적이면…… 아직 안 정해졌단 뜻이잖아요.”
“정해질 거야. 내정이랑 똑같아.”
“그게 뭐예요. 기준은 뭐예요? 가로 엔터는 나이에요? 석세스 엔터는 실력…….”
“우리도 실력이야.”
장하양은 조금도 지지 않았다.
신아름의 말을 끊고, 그녀의 빈정거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며, 동시에 합리적으로 말했다.
“설하 언니가 적격이라고 우리가, 회사가 판단했어. 설하 언니가 갑자기 연애라도 하지 않는 이상은 안 바뀌어.”
“아, 안 해! 안 할 거야!”
“알아요. 계약 끝날 때까지 언니는 안 하실 거잖아요.”
“그, 그건 아니구……. 연애 금지 끝나면…….”
“아무튼 설하 언니가 리더야.”
“……아, 그래요.”
리더는 귀찮은 일이 아닌가?
맞다.
귀찮지만 혜택도 있다.
회사는 불가피하게 그룹 안에서 스포트라이트를 줄 사람을 정하게 된다.
만약 남는 기회가 생긴다면, 그 기회를 리더에게 주게 된다.
회사가 가장 돋보이게 하고 싶고, 대중에게 노출되었을 때 가장 효과가 높으며, 또한 실력과 리더십마저 겸비한 인간.
그런 인간이 리더가 되니, 당연히 리더는 실력을 보아야만 한다. 그래서 연습생들은 리더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회사가 주는 푸시와 혜택을 얻기 위해서.
신아름이 리더 자리에 욕심을 부리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으음, 그렇구나아. 그럼 리더라고 부를게요?”
“아, 아직 리더는 아니라서 그냥 언니라고…….”
“내정이라면서요? 그럼 리더죠 뭐.”
조아라가 혀를 내둘렀다.
‘사람 엿만 먹이면서 살아왔나? 쌤이 부끄러워하는 거 뻔히 보이는데.’
어떻게 이렇게 꼽주는 것을 잘할까.
저게 악의가 없는 행동이라면 이미 예술의 경지였다.
조아라는 백설하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면서, 어떻게든 신아름의 흠결을 찾으려 했다.
자신을 도와줄 리카는 이미 영혼이 빠져나가 있었으니, 조아라가 분발해야 했다.
근데 마땅한 말이 없었다.
갑자기 닥치라고 할 수도 없잖은가.
“아, 팀장님한테 물어볼까요? 리더라고 불러도 되는지? 허락받으면 되겠죠?”
“아, 음…….”
“그럼 지금 물어보러…….”
“아름아. 팀장님이 아니라 이사님이잖아.”
장하양이 신아름의 말을 끊었다.
갑자기 이런 말을 들으면 멈칫할 만도 하건만, 신아름은 곧바로 장하양에게 반론을 던졌다.
“네? 저한테는 팀장님인데요?”
리카가 흠칫했다.
이미 옛날에 리카가 패배한 적 있던 주제였다.
‘나한테는 팀장님인데?’라고 말하면 뭐라고 반박할 말이 없었다.
‘이사님은 이사님인데…….’
리카는 신아름이 성필을 ‘팀장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으면, 왠지 성필이 멀어지는 듯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니. 박 이사님은 이사님이야.”
“아, 뭐, 네, 그래요. 저는 팀장님이라고 부를…….”
“아름아. 너 왜 그래? 왜 틀린 말을 쓰려고 하는 거야?”
“……네?”
“이해하고 있잖아.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거야?”
“뭐, 뭐가요?”
“이사님은, 이사야. 가로 엔터의 이사. 팀장은 옛날 회사의 직함이잖아. 사람마다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거야. 다르게 부를 수 있는 게 아니라, 틀린 말과 다른 말이 존재하는 거야. 왜 틀린 단어를 고집하니? 정말 몰라서 그러는데 말해줄래?”
“……네. 그러네요. 틀린 거네요. 근데 아라는 박. 성. 필. 이. 사. 님 보고 아저씨라고 부르던데, 그건 가만히 놔두는 거예요?”
이제 주제는 호칭까지 넘어왔다.
과연 그 말에 대해 조아라는 반박 거리를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장하양은 달랐다.
“이사님은 아저씨가 맞잖아?”
“…….”
“…….”
“…….”
“…….”
“팀장님은 아니고. 대답이 됐니?”
“……네. 됐어요.”
신아름은 직감했다.
‘이 언니 보통이 아니다.’
좀 더 직설적으로 바꾸면, 또라이다.
자신과 비슷한 급의 또라이.
괜히 주도권을 쥐어보겠다고 틱틱거리면 본전도 못 찾게 되겠다.
그 판단에 따라 신아름은 만면에 미소를 만들었다.
“맞아요. 이사님이네요. 박 이사님. 앞으로는 그렇게 부를게요.”
“이해해줘서 고마워.”
장하양도 미소를 지었다.
그 광경을 보며, 백설하는 생각했다.
‘하양이 원래 이런 애였나?’
왠지 오늘따라 공격적이다.
* * *
“진짜 리더가 내정된 거예요?”
“응 설하 씨밖에 없어. 무조건 설하 씨야. 설하 씨 말고 리더 될 사람은 절대 없어. 이 세상은 다 설하 씨 거야.”
“아앙 너무해 뭐야 그게! 잔뜩 기합 넣고 왔는데 저 혼자 쪽 다 팔렸잖아요!”
성필은 신아름과 함께 높은 언덕길을 따라 올라갔다.
두 사람의 품에는 마트에서 산 식료품이 가득했다. 신아름은 그게 무거워서 가끔 멈춰 선 채 다시금 품에 안아야만 했다.
“그냥 나 다 줘.”
“이열, 허세도 다 부리시네. 저도 꼴에 여자라고 제 앞에서 힘자랑하고 싶으세요?”
“내 거도 더 받아라.”
“아악! 무거워요! 빨리 들어줘요!”
“부하 직원한테 일 시키는 게 이상한 건 아니잖아.”
“저는 근로자가 아니라고요! 시급도 없는데 무슨 부하 직원!”
“어, 아직 힘 좋은데? 더 받아.”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들어줘요! 이거 안에 계란 들었어요! 다 부서진다고요!”
“가로 엔터 들어오는 조건 첫째가 뭐였지?”
“절대복종이요!”
“누구한테?”
“팀장님이요!”
성필은 그녀의 짐을 들어주었다.
신아름은 한 번 휘청이더니, 성필을 잔뜩 째려보았다.
“고용부에 신고할 거야…….”
“고용부가 아니라 고용노동부야. 너 어느 나라 사람이냐?”
“거 이름 좀 모를 수도 있지.”
신아름은 아직도 무거운지 짐의 위치를 조정하여 가슴에 받치도록 했다.
덕분에 몸이 뒤로 휜 모양새가 됐다.
성필은 그녀의 짐을 더 들어주었다.
“무거우면서 고집부리긴. 어떻게, 멤버들이랑은 좀 친해졌어?”
“하루 만에 어떻게 친해져요. 근데 하양 언니가 저 좀 싫어하는 거 같아요.”
“정치질 멈춰.”
“아니, 뭐, 제가 일부러 좀 강하게 나간 것도 있긴 한데요. 제가 팀장님을 팀장님이라고 부르니까 뭐라는 줄 아세요? 이사님이라고 부르래요. 팀장님은 틀리고 이사님은 맞는 말이라면서요.”
“어, 맞는 말이네.”
“팀장님보고 아저씨라고도 했어요. 아라가 팀장님 보고 아저씨라고 하잖아요. 근데 하양 언니가 그건 맞는 말이라서 괜찮다던데요?”
박성필, 충격으로 실신 직전.
“다녀왔습니다!”
신아름이 낡은 양철문을 열고 본가 안에 들어섰다.
끼이익,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콘크리트로 뒤덮인 작은 마당이 드러났다.
여기저기 갈라진 나무문이 열리고, 신아름의 어머니가 나왔다.
그녀는 신아름을 보자마자 깜짝 놀라더니, 벌써부터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신아름에게 다가왔다.
“우리 딸 웬일이야? 왜 왔어? 아이고 팀장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머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더 자주 찾아뵀어야 했는데.”
“아니에요. 제가 더 죄송합니다. 연락도 자주 못 드리고. 우리 아름이 맡아주시는데…….”
“아 엄마 왜 그래. 팀장님이 제에발 와 달라고 와 달라고 사정사정해서 내가 와 있는 건데.”
딸의 언뜻 버릇없어 보이는 말에 어머니의 눈에 옅은 불안이 감돌았다.
성필이 미소 지으며 신아름의 말을 받았다.
“그렇죠. 제가 겨우 부탁해서 아름이 데리고 있는 거예요. 제가 더 고맙죠.”
“아이고 감사합니다 팀장님…….”
허리를 숙이는 게 버릇처럼 되어버린 여인.
홀로 신아름을 키우기 위해 매일 새벽부터 채소를 파는 그녀.
오로지 딸을 위해 살아가는 여인의 이름은 어머니였다.
“엄마, 빨리 들어가자. 내가 맛있는 거 많이 사 왔어.”
“네가 무슨 돈이 있어서? 팀장님이 사주신 거 아니야?”
“그런 건 그냥 좀 넘어가! 빨리 가자니까.”
“안 무거워? 엄마가 들어줄게.”
“됐어! 내가 더 젊은데 들어도 내가 더 들어야지. 그냥 들어가기나 해 빨리! 딸 팔 떨어지겠어!”
더불어 성필의 팔도 떨어질 것 같았다.
내색만 안 했지 성필도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