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84화 (84/760)

#084화

석세스 엔터에도 숙소가 있다.

과거 5년 차 걸그룹이 은퇴하면서 남기고 간 숙소는, 몇몇 여자 연습생들의 보금자리가 됐다.

오로지 데뷔조로 확정될 만큼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이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

연습생들에게 그 숙소는 황금 전당이었다.

그곳에서 신아름이 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건 작은 분홍색 캐리어가 전부였다.

“…….”

신아름은 침묵에 잠겨 뒤로 돌아보았다.

이곳에서 나가는 아이들을 배웅하기만 했었지, 본인이 나갈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나갔던 이들은 다시 돌아오기도, 혹은 돌아오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 신아름은 어느 순간부터 나가게 된 연습생을 배웅하거나, 손을 맞잡고 눈물을 쏟지 않았다.

나가는 이들에겐 ‘어차피 돌아올 건데 뭐하러 배웅하냐?’라고, 언뜻 들으면 비정하리만치 차가운 격려를 하는 게 전부였다.

‘나는 돌아올 수 있을까?’

아마, 아니다.

숙소를 나가며 우는 이들을 보면 ‘쟤 왜 저래’ 같은 마음을 품었다.

그냥 빨리 나가고 회사에서 연습이나 하지.

그래서 다시 돌아올 실력이나 키우지.

신아름에게는 동료들의 슬픔이 시간 낭비였다. 하지만, 이제 그녀들의 마음을 알겠다.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가자.’

신아름은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세상이 뒤틀렸다.

소리가, 움직임이, 빛이, 촉감이, 모든 게 증폭된 듯 감각을 울려댔다.

촉각만이 아닌 모든 감각이 개미가 되어 몸 위를 기어가는 듯했다.

‘몇 개월 동안 이렇게까지 심해진 적은 없었는데…….’

고통을 참지 못한 신아름은 길거리에 쪼그려 앉았다.

캐리어에서 유리병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그곳에서 알약을 집어 혀 위에 올렸다.

‘얼마 안 남았어.’

이제 조금밖에 없다.

비싼 약인데.

‘이걸 삼키면…….’

이 고통도 끝이다.

하지만 그 후에는…….

“그거 먹으려고? 하지 마. 더 우울해지기만 할걸.”

신아름 2호가 신아름의 앞에 나타났다.

“그냥 나랑 수다나 떨면서 집까지 가자. 집에 가면 뭐 어때서. 엄마한테 사실대로 말하고, 껴안고 울고, 위로받고, 뭐 그게 끝이잖아.”

“맞아 맞아.”

3호기가 2호기의 어깨를 짚었다.

“너무 슬퍼하지 마. 사람 사는 거 다홍치마…… 새옹지마인가? 어쨌든 힘내고 아, 방금 지나간 남자가 너 쳐다봤다. 잘생겼던데. 재워달라고 해봐.”

신아름은 약을 삼켰다.

물도 없어서 목구멍에 뻑뻑이 걸렸다.

곧, 신아름 2호기와 3호기가 자취를 감추었다.

사람을 미치게 하는 증폭된 자극들도 사라졌다.

모든 게 정상적으로, 일반 사람이 보는 풍경으로 돌아왔다.

신아름은 몸을 일으켰다. 캐리어를 쥐고 당당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아.”

신경 거슬리게 하는 망상과 환영이 사라진 세계에서, 신아름은 집중할 게 없었으므로, 우울함이 찾아왔다.

아주 깊은 우울함.

신아름은 병이 있다.

* * *

[팀장님 하이!]

“그래.”

안 그래도 기다리던 참이었다.

신아름이 전화를 주고 난 뒤, 성필은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됐을지 궁금해서 잠자기 힘들 지경이었다.

“포유 나왔어?”

[음, 모르겠어요. 회사에도 얘기해봤는데 남아 있으라고만 하더라고요.]

“그럼 남아야지 뭐.”

[전에 팀장님이 이거 전화로 할 얘기는 아니라고 했잖아요. 오늘 만나실?]

“아…… 오늘?”

시안을 맡긴 안무가 중 한 명이 시안을 보러 오라고 했다.

영상으로 받아도 괜찮지만, 이왕이면 직접 보고 싶었다.

처음으로 받는 시안이라 기대돼서 꼭 직접 보고 싶었건만.

“잠시만.”

성필은 핸드폰 마이크 쪽을 손으로 가린 뒤 손혜빈에게 말했다.

“누나. 오늘 시안 하나 나오는데 누나가 봐주면 안 돼?”

“뭐? 오늘 오랜만에 저녁에 일 없는 날이었는데. 그냥 파일로만 받으면 안 돼?”

“에이. 직접 가서 봐줘야 안무가님 체면도 살지. 정 안 되면 한 이사님한테 부탁해줘.”

“에휴, 내가 갈게. 근데 누구길래 시안 보러 가는 거까지 스킵해?”

“아는 애.”

성필은 신아름에게 말했다.

“그래, 오늘 보자.”

[네넹.]

“근데 너 나한테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알지? 세상에 다른 기획사 연습생까지 신경 써주는 사람이 어딨어?”

[팀장님이 나 놔두고 도망갔잖아요. 에프터 케어 서비스죠 이건.]

“네가 안 온댔잖아. 죽어도 고맙다곤 안 하네.”

[알라뷰.]

“에휴.”

[알라뷰.]

“미투다 새꺄.”

[헤헤.]

성필은 남은 일을 끝내고 나설 채비를 했다.

‘응? 그러고 보니 약속 장소를 안 정했네.’

회사를 나오며 신아름에게 전화를 걸었다.

“앗! 박 이사님 벌써 퇴근하시나요! 저희는 열심히 땀 흘리면서 연습하는데 너무해요!”

또 테라스 테이블에서 달을 보고 있던 리카가 성필의 곁으로 뽈뽈 다가왔다.

“저희 옆에서 같이 고생해주세요!”

“심보 고약하네 진짜. 나도 나름 고생하고 있거…….”

[여보세요?]

“어, 아름아.”

“아름이인가요? 아름아 나 리카야!”

리카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고향 친구에게 전화라도 온 듯 폴짝폴짝 뛰었다.

성필은 그런 리카가 귀엽단 듯 웃으며, 핸드폰을 리카에게 넘겼다.

“잘 지내고 있어?”

[응. 리카 너는?]

“나는 잘 지내! 나 어제도 프로젝트 포유 재방송 봤어!”

[고마워. 근데 리카.]

“응응!”

[핸드폰 팀장님한테 넘겨.]

“에.”

리카는 쭈뼛거리며 핸드폰을 성필에게 넘겼다.

“벌써 끝났어?”

“하, 하이(네). 저는 이만 가볼게요…….”

리카가 어쩐지 쓸쓸한 뒷모습을 남기며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팀장님 왜 전화했어요?]

“약속 장소를 안 정했더라. 어디서 만날까. 내가 데리러 가…… 아니다. 석세스 엔터 쪽으론 고개도 안 돌려서 그쪽으로는 못 가겠다.”

[저 룸카페에 있어요. 주소 찍어줄 테니까 이리로 와요.]

“……뭐?”

룸카페라고?

성필의 등골로 오한이 내달렸다.

“야 너 설마 또…….”

[네. 맞아요.]

“너 괜찮았잖아. 무슨 일 있었…… 아니다. 빨리 갈게.”

성필은 재빨리 차에 탔다.

‘갑자기 또 병이 도졌나? 왜?’

신아름은 한계까지 몰렸을 때 하는 행동이 있다.

폐쇄된 방 안에서 불을 끄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다.

모든 감각을 닫아두고 끝없이 자신의 내부로 침전한다.

기분 전환이나 스트레스 해소법 같은 게 아니다.

‘진짜 큰일이야.’

더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나마 제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 자극을 전부 차단하는 것이다.

‘길아 좀 뚫려라 빨리 좀!’

신아름은 병이 있다.

전생에서도 끝까지 고쳐지지 않았던 병이다.

* * *

“신아름 얘 어디 갔어?!”

“연락도 안 받아요!”

“집에는 가 봤어?”

“없는 거 같아요. 지금 매니저 한 명 보내놨는데, 아파트 관리실 직통으로 연락하고 찾아가도 없대요.”

“친한 애들한테도 다 연락 돌려봐.”

신아름이 사라졌다.

내일이면 솔로 컴백이다.

석세스 엔터는 인력을 총동원하여 신아름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내일 컴백이라면, 늦어도 새벽 2시부터는 스태프들이 움직이기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신아름이 없으니 모두 속이 탔다.

“어떻게…… 박성필 부대표님한테도 연락할까요?”

“너 미쳤냐?! 우리 선에서 끝내야지 당연히! 그분 귀에 들어가면 어떡하게? 너 감당할 수는 있어?”

“죄, 죄송합니다.”

“애 관리도 못 한다고 우리만 욕 뒤지게 처먹겠지. 우리 선에서 꼭 해결해야 한다고…….”

성필은 태국에 있었다.

주력 보이그룹의 동남아시아 투어를 지휘하기 위해서였다.

그것만 해도 머리가 터질 지경일 텐데, 신아름의 실종 소식까지 전한다면 그냥은 안 끝난다.

하지만 어떻게든 소식은 성필의 귀에 들어갔다.

“하, 끝났다…….”

매니지먼트 1팀장이 성필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팀장의 손은 얼어붙기라도 한 듯 세차게 흔들렸다.

어떤 욕이라도 먹을 준비를 하고 있던 팀장은.

[고생하고 있다. 힘들겠지만 더 찾아봐 줘.]

오히려 욕을 먹었을 때보다 더 겁이 났다.

“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잘못했을 때 혼내는 상사와 묵묵히 격려하는 상사.

겪어본 사람은 안다.

묵묵한 격려를 던지는 쪽이 더 무섭다.

폭풍전야와 같은 것이었으므로.

“흐아아아…….”

통화가 끝나자, 팀장은 자신의 출셋길에 제동이 걸렸단 생각에 현자타임이 왔다.

“여기 없으신 게 그나마 다행…….”

“다행?! 이 미친놈이 선 넘네! 신아름이 돌아오기라도 했냐?! 뭐가 다행이야!”

“죄, 죄송…….”

“죄송할 시간에 한 걸음이라도 더 뛰어! 전화 한 번이라도 더 돌려! 하아, 신아름 이 미친 또라이가!”

성필이 이곳에 없어서 다행이다, 그 말은 틀렸다.

성필은 소식을 듣자마자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공항에서 내린 즉시 신아름의 집으로 향했다.

고급 아파트의 앞, 경비가 성필을 막았다.

신아름은 전화도 안 받는 터라 사정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파트에서 직통으로 신아름에게 연락했다.

“집에 없으시다니까요. 몇 번이나 전화를 걸…….”

[들어오라고 하세요.]

경비의 눈이 크게 뜨였다.

아까까지 석세스 엔터 소속 매니저의 성화에 규칙도 어기고 세 번이나 연락했던 터였다.

당연하게도, 바로 옆에 있던 매니저도 깜짝 놀라 거의 혼절하기 직전이 됐다.

성필은 그 매니저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아름이 돌아올 거라고 회사에 연락해.”

성필은 신아름의 집 문 앞으로 향했다.

짧은 노크 후 기다렸다.

반응이 없었다.

손잡이를 잡고 돌리자, 이미 열려 있었다.

집 안의 모든 불이 꺼져 있었다. 성필은 긴 복도를 지나 거실로 들어갔다.

어둠 안에서, 신아름이 바닥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유리창에 붙어 아래를 보는 중이었다.

“내 차 오는 거 보고 있었냐?”

“네.”

신아름이 밝게 웃었다.

성필이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너 미쳤냐?! 내일이 컴백인데 숨으면 어쩌자는 거야! 이 또라이가 회사 망하게 만들려고 작정했어?!”

“헤헤.”

“헤헤? 헤헤?! 이 미친…… 야, 당장 따라 나와. 약 먹고.”

“약 먹기 싫어요 그거.”

“그럼 어쩌라고 대체?!”

“팀장님.”

신아름은 성필을 항상 팀장님이라고 불렀다.

부대표가 된 지금마저도.

“저 있잖아요. 석세스 엔터에 들어와서 힘들었던 거 말해보라면 천 개도 말할 수 있는데요. 어, 좋았던 거 떠올려보라고 하면요, 머릿속이 흐려져요.”

행복한 적이 없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것일까.

성필은 솟아오르는 미안함을 억누르며 겨우 화난 표정을 유지했다.

“저는 연예인 하면 안 됐던 거 같아요.”

“연예인 해서 이런 데 살잖아.”

“몰라요.”

“그래서. 우리 회사 명예에 똥칠을 하시겠다?”

“하면 안 돼요?”

성필이 무릎을 꿇었다.

“부탁할게 아름아아…… 이번만. 적어도 6주만 활동해주면 안 될까? 아, 아니. 내가 피디 어떻게든 구워삶을 테니까 3주! 딱 3주만!”

신인일 때는 성필이 갑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신아름이 갑이다.

이것이 엔터계의 생리다.

처음엔 매니저가 갑, 아티스트가 을.

하지만 아티스트가 유명해지면 그가 갑, 매니저가 을이 된다.

권력은 유명세에서 나온다.

“으음…….”

성필은 참을성 있게 신아름의 답을 기다렸다.

한 5초 정도.

“뭘 고민하고 자빠졌어?! 너 임마 위약금으로 이 집이랑 다 뺏겨볼래?! 법원만 2, 3년 다니면서 살고 싶어?!”

“헤헤.”

“아이고 뒷골 땡겨 죽겠다…….”

“이제 괜찮아졌어요.”

신아름은 벌떡 일어나서 기지개를 켰다.

“준비할게요, 기다리세요.”

“이 나이 먹고도 로드 일을 하고 있네……. 인생 자괴감 든다…….”

드레스룸으로 가볍게 향하는 신아름을 성필이 불러세웠다.

“야. 너 점점 심해지는 거 같다. 네 말이 맞아. 연예인은 너한테 안 맞아. 이번 활동만 끝내고 그만두자. 계약 해지해줄게.”

“아, 뭔데. 팀장님 약한 모습 안 어울려요. 방금 무릎 꿇는 것도 완전 깼어요.”

“너 다음에도 이러면 진짜 우리 회사 뒤집어져.”

“그래서 나를 쫓아내시겠다? 리스크 관리하는 거예요 지금?”

“나가기 싫으면 일 똑바로 해!”

신아름은 ‘뉘에 뉘에’라고 말하며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다.

성필은 방의 불을 모두 켰다.

핸드폰을 보니 메시지만 가득하지 전화는 없었다. 그 누구도 감히 성필에게 전화를 걸 용기를 내지 못했다.

‘얘 집 비밀번호라도 1팀장한테 알려줘야 하나? 또 이러면 정말 큰일인데.’

그때 전화가 왔다.

신아름이었다.

“뭐 하자는 건데.”

[팀장님 알라뷰.]

“미투다 임마.”

[어, 말투가 험한데? 확 안 가?]

“Me too.”

전화가 끊겼다.

“하아.”

신아름의 변덕이 하루 이틀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변덕의 치료제가 성필이라는 것도.

이유는 안다.

신아름은 성필을 의지하고 있다.

사실 그 대상은 누구라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녀의 앞에 빨리 나타나기만 했다면 말이다.

성필은 신아름에게, 돌아가신 아버지의 대체재에 불과했다.

신아름의 ‘팀장님’은 ‘아빠’와 동일한 단어였다.

성필은 그렇게 생각했다.

* * *

신아름은 룸 안의 불을 모두 끄고 바닥에 앉았다. 창문이 없어서 밖은 볼 수 없었다.

그녀는 우두커니 있었다.

약의 효과가 점점 떨어진다.

‘요즘 괜찮아졌었는데.’

곧이어 병세가 나타났다.

감각이 증폭된다.

룸 밖에서 들리는 사소한 소리마저도 콘서트장의 대형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과 비견됐다.

문틈으로 옅게 들어오는 빛은 태양과 같았다.

모든 감각이 불쾌하게 커져만 갔다.

그리고 신아름의 방어기제가 발동했다.

“봐. 약은 도움이 안 되잖아.”

2호기가 신아름의 옆에 딱 붙었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시간 아깝게. 이 시간에 연습을 더 하겠다. 아, 석세스 엔터로는 못 돌아가려나?”

3호기도 신아름의 옆에 딱 붙었다.

“그냥 포유로 돌아가면 되잖아. 뭐해 대체.”

모든 감각이 극도로 커진 세계에서, 신아름의 정신은 그에 간섭받지 않기 위해 가상의 청중을 만든다.

모든 신경이 가상의 청중에 쏠릴 수 있도록.

당연하게도, 가상의 청중은 증폭된 자극들을 무시할 수 있을 만큼 심한 말을 내뱉는다.

신경 쓰지 않고는 못 배길 만한, 신아름의 무의식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기억들을.

“에휴. 뭔 인간이 이렇게 약해? 넌 어릴 때부터 이러지 않았어?”

“맞아 맞아. 우리 아빠도 그래서 집 나간 거 아니야?”

“집을 나가? 돌아가신 거 아니야?”

“얌마. 그건 남들한테 말하기 쪽팔리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고. 우리 버리고 갔잖아.”

“아, 그랬었지. 그때 뭐라면서 나갔더라?”

신아름은 가만히 앉아 그것을 들었다.

그러면 적어도 귀를 찢는 소음과 눈을 부수는 빛은 없었으니까.

“또 버림받지 않으려면 노력해야지 신아름!”

망상, 환각, 우울, 불안 기타 등등.

그게 신아름의 병증이었다.

“빨리 돌아가서 연습이나 하…….”

룸의 문이 열리고 성필이 나타났다. 그는 신아름을 보자마자 외쳤다.

“야 이 씨 이 꼴이 되도록 경섭이한테 안 말하고 뭐 한 거야?!”

그 고함에 2호기와 3호기가 사라졌다.

모든 감각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불은 또 왜 다 끄고 있어?”

성필이 신아름의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 룸의 불을 켰다.

그리고 문을 쾅 닫았다.

신아름의 신경을 거슬리게 할 행동이 마구잡이로 터져 나온다. 그의 행동 중, 신아름이 통제할 수 있는 건 없다.

“약은 있지?”

“팀장님. 저 있잖아요. 오늘…….”

성필에게 대답하는 대신 신아름은 윤상열에게 당했던 것을 전부 털어놓았다.

그것을 듣는 성필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그걸 듣고도 그냥 ‘예’하고 나왔어?”

신아름은 대답 없이 자기 할 말만 했다.

“팀장님. 저 섹세스 엔터 들어와서요. 좋았던 일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싫었던 일밖에 안 떠올라요.”

성필의 심장이 철렁거렸다.

그녀가 지금 하는 말은, 미래에 솔로 가수가 돼서 했던 말과 같았다.

안티의 악플들과 팬들의 과도한 기대로 인해 도망쳤던 때와 같단 것이다.

데뷔조에서 밀려난 스트레스는 그토록 거대했다.

“팀장님이랑 있을 때 빼고요. 팀장님이 꽉 막힌 꼰대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갑자기 왜 나 욕하는데.”

“그때가 좋았어요.”

신아름이 일으켜달라는 듯 손을 내밀었다.

“팀장님. 저 연습 결석 안 하고 쭉 나오면 소원 들어준다고 하셨죠? 옛날에요.”

“내가?”

“네. 그거 지금 쓸게요.”

그녀가 자꾸만 손을 꼼지락댔다. 빨리 잡아달라는 뜻이다.

성필이 그녀의 손을 잡고 일으켜주었다.

“옛날로 돌아가게 해주세요. 팀장님도, 경섭 오빠도 있던 때로요.”

“뭐? 나, 나랑 경섭이가 석세스 엔터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거……?”

신아름이 고개를 저었다.

“1+1.”

“어?”

“경섭 오빠랑 저랑, 1+1이요.”

“응?”

“가로 엔터로 가게 해달라고요.”

“엉?”

“왜 자꾸 못 들은 척해요!”

응?

“그, 그냥 포유에 가! 거기서 1년 버텼다가 나오면 너 데려가려는 기획사 발에 챌 텐데 왜…….”

“요즘 요정은 소원에 토도 달아요?”

말하는 꼬라지하곤.

성필은 신아름의 버릇없음에 뭐라고 하진 않았다.

신아름은 성필의 검지를 꼭 쥐고 있었는데, 많이 긴장한 듯 아예 손가락에 피가 통하지 않을 만큼 꽉 쥐었다.

그녀도 이 소원을 아무렇게나 정한 건 아니리라.

‘4인조는 성공률이 낮아. 나는 애들이 성공할 거라고 믿긴 해도, 이왕이면 수가 많으면 좋아. 문제는 한 명을 더 받을 때 발생하는 비용이야. 하지만 아름이는…….’

이미 완성된 상태다.

하지만 이런 사안은 성필 마음대로 정할 게 아니었다.

아무리 신아름의 상태가 안 좋다 하더라도, 동정심과 정 때문에 회사에 들일 수는 없는 노릇…….

“헤헤, 안 되겠죠?”

신아름이 성필의 검지를 놓았다.

아니, 놓으려고 노력했다.

머리로는 자신의 부탁이 억지란 것을 알아도, 그녀의 몸만은 성필을 놓지 않는 것이다.

성필은 반사적으로 답했다.

“조건이 있어.”

“말하세요.”

“첫째, 내 말에 절대복종. 석세스 엔터 때처럼은 안 돼. 연습 째거나 멤버들이랑 싸우거나 그딴 거 절대…….”

“네.”

“생각하고 대답해!”

“으음, 네!”

“너 복종이란 말뜻은 아냐?”

벌써 머리가 아파온다.

“……둘째는.”

* * *

다섯 번째 멤버를 받으면 어떨까요?

“박 이사. 돌았어?”

그렇겠죠…….

“박 이사님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시는…….”

“성필아 너 왜 그래? 데뷔 이제 6개월 정도밖에 안 남았는데 무슨 다섯 번째 멤버야?”

“형 어디 아파요?”

그, 그렇겠죠…….

자신을 쳐다보는 네 쌍의 눈을 보고도, 성필의 어깨는 주눅들 줄을 몰랐다.

주눅 든 건 성필의 마음뿐이다.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며 의연하게 말했다.

4인조는 위험합니다!

“그 말, 6개월 전의 박 이사한테 그대로 들려주고 싶네. 누구보다 4인조에 찬성했으면서 그딴 말을…….”

그렇네요…….

성필도 인지 부조화를 겪는 중이었다.

현재의 성필이 과거의 성필을 비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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