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79화 (79/760)

#079화

“아름이 너 미쳤어?! 1+1은 뭔 얼어 죽을 1+1이야! 너 포유 마치고 돌아오면 데뷔할 그룹도 있는데 가긴 어딜 가려는 건데!”

민경섭이 분노를 쏟았다.

그는 신아름의 어깨를 잡고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그녀는 피식 웃으면서 민경섭의 손목을 잡고 진정하라며 아래로 내렸다.

“말이 그렇단 거죠. 그만큼 제가 오빠 석세스 엔터에 남아 있는 거 못 보겠다고요. 사람이 꼴이 그게 뭐예요?”

“내가 뭘…….”

“리카.”

신아름이 리카와 팔짱을 꼈다.

리카는 그녀의 힘에 이끌려 점점 성필에게서 멀어졌다.

“두 분이 깊은 대화 나누게 우리는 빠져 있자. 방탈출 카페 가볼래? 전에 갔는데 재밌더라.”

“에, 우리만?”

“왜. 싫어? 싫으면 뭐.”

리카가 신아름에게 질질 끌려갔다.

“이사님 빨리 아타시(제) 사진 찍으세요! 오늘 예쁘게 입고 왔어요! 제가 사라지기 전에 빨리 사진을 남기세요오……!”

리카가 저 멀리 사라졌다.

성필과 민경섭은 멀거니 둘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보았다.

“……카페라도 갈래?”

민경섭이 거하게 한숨을 쉬었다.

둘은 카페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컵에 붙은 물방울이 조용히 아래로 흘러내려 갔다. 성필은 물방울이 테이블에 닿을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윽고 민경섭이 입을 열었다.

“제가 요즘 힘들긴 한가 보네요. 애들한테도 티가 다 났나 봐요.”

“너 감정 엄청 티나.”

“형이 할 말은 아닌데요.”

“왜. 회사에 뭔 일 있어?”

예전에 신아름이 ‘윤상열 또라이’니 뭐니 했을 때, 민경섭은 강하게 그녀를 질책했다.

왜 외부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느냐고 말이다.

그는 석세스 엔터에 소속감을 느꼈고, 돈을 받는 것 이상으로 헌신했다.

원래 그런 성격이다.

성필이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도, 민경섭은 답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민경섭은 결심을 굳힌 듯 아메리카노를 꿀꺽꿀꺽 마시곤 시원히 말했다.

“붙어 있기 힘들어요.”

“윤상열 때문에?”

“네. 형이 나가니까 매니저나 직원들 대신 싸워줄 사람도 없고. 사실상 김태훈 대표님은 경영만 힘을 쓰니까, 프로듀싱이나 매니지먼트 관련은 윤상열 원탑 체제잖아요. 그러니까…….”

요컨대 윤상열의 인간 됨됨이가 문제였다.

그는 본인이 우수하다고 생각했으며, 그게 어느 정도 사실이었기에 은근히 다른 사람을 깔보는 성격이 들었다.

성필이 있었을 적에는 그게 적나라하게 표현되지 않았다. 하지만 성필이 사라지자, 윤상열은 견제할 신하가 없는 왕처럼 되어버렸다.

“김 대표님도 윤상열 말에는 쩔쩔매고 말이에요. 아니, 윤상열 대단한 인간인 건 아는데 너무한 거 아니냐고요. 그냥 자기 회사인 줄 알아.”

독불장군 스타일이란 건가.

하지만 단순히 업무적으로만 그랬다면 민경섭이 이토록 고통스러워할 이유로는 부족했다.

“자기 스트레스를 저한테 풀어요. 제가 형 나간 뒤에는 매니저 팀 관리했거든요. 애들 앞에서 저 혼내고, 또 따로 불러서 지랄하고, 미치겠어요.”

성필은 그의 말에 백번 공감했다.

전생에서도 윤상열의 그런 수작질에 얼마나 당하고 살았던가.

김태훈 대표와의 인연이 없었다면, 그리고 그가 적절히 중재하지 않았다면, 성필은 진작 석세스 엔터를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전생에서도 석세스 엔터를 나오지 않았던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왜 안 나와?”

“제가 나가면 다른 직원들이 저 같은 취급 당할까 봐요. 또 연습생 애들도 눈에 밟히고.”

성필이 석세스 엔터를 나오길 꺼렸던 이유와 같았다.

“계속 거기 있을 거야?”

“모르겠어요.”

만약 평범한 고민 상담이었다면, 그 고민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직장인이 ‘퇴사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건, 대부분 단순한 농담에 불과하다.

그저 무엇이 힘들었는지, 어떤 부분이 마음에 안 드는지, 그런 것들을 들어주다 보면 상대의 기분은 풀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성필은 그렇게 들어주기만 할 생각이 없었다. 신아름의 부탁을 받기도 했고, 가로 엔터에도 매니저가 필요하니까.

“매니저 일은 어때? 아예 매니저 일에 신물이 나?”

“아니요. 제가 배운 게 이거뿐인데 뭘 어쩌겠어요. 일 자체는 좋죠. 담당이 성장하는 걸 보는 낙도 있고.”

“그럼 나와서 우리 회사 와.”

“……생각해볼게요.”

안 오겠단 뜻이다.

민경섭은 집으로 돌아가면 ‘석세스 엔터를 나오면 안 되는 이유’를 수백 개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잠을 자며 오늘 느꼈던 분함은 잊어버리고, 여느 때와 같이 석세스 엔터로 출근하겠지.

“경섭아. 나도 그랬고, 너도 석세스 엔터에서 오래 근무한 건 맞아. 하지만 네가 석세스 엔터에 책임감 느낄 필요는 없어. 김태훈 대표나 윤상열이 너를 그렇게까지 생각할까?”

“…….”

“그 인간들 입장에서 넌 그냥 기계야. 석세스 엔터에서 오래 버티면 또 뭐가 될 줄 알아? 아니야. 그냥 직급 높은 매니저일 뿐이야. 아무리 올라가고 발버둥 치고 실적을 쌓아봤자, 네가 될 수 있는 건 고작 직급 높은 매니저라고. 매니지먼트 총괄, 그딴 직함 달아도 결국 매니저야. 로드나 다를 바 없어.”

“형 매니저 일 싫어했어요? 그렇게 나쁜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네.”

“석세스 엔터가 그렇단 거야.”

“가로 엔터는 좀 달라요?”

슬슬 민경섭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성필이 설득의 말을 꺼내려 할 때.

‘로드매니저 구하자.’

홍규헌의 말이 떠올랐다.

로드매니저를 구하자는 건…… 민경섭을 받아들이면 로드매니저로 쓰자는 건데.

“형?”

“……잠시만.”

성필은 밖으로 나가 홍규헌에게 전화했다.

일요일에 전화하긴 미안했지만, 상황이 급박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왜?]

홍규헌은 숨을 거칠게 내쉬고 있었다.

호흡이 규칙적인 것을 보니 운동이라도 하는 듯했다.

“일요일에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잠시 통화 괜찮으실까요?”

[어. 뭔데.]

성필은 민경섭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로드를 구하랬더니 경력직 매니저를 구하고 자빠졌네.]

“죄송합니다…….”

[경력 인정해줘야지. 경력 찬 매니저는 구하고 싶어도 구하기 힘드니까. 연봉은…….]

다행히 호의적인 답이 돌아왔다.

“정말 감사합니다. 빨리 결정하기 어려우셨을 텐데.”

[박 이사가 구한 사람이잖아. 믿어.]

어떻게 한마디 한마디가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 있을까.

성필은 홍규헌에 대한 존경심이 솟아났다.

통화가 끝나고, 재빨리 민경섭에게 돌아가 이직 조건을 설명해주었다.

“일단 급료는 이렇게 맞출 거고. 업무는…….”

성필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민경섭은 점점 더 가로 엔터에 호의적으로 변해갔다.

“업무는 사실상 로드매니저네요.”

“데뷔할 때까지는 그렇지. 그리고 너도 이쪽 업계에 인맥 좀 쌓였으니까, 얼마 후에는 나랑 같이 영업도 다니자.”

“석세스 엔터 덕분에 쌓은 인맥인데, 회사를 옮겨서도 통할까요?”

“네가 사무적인 관계가 아니라 인간적인 관계를 쌓아왔으면 통하겠지.”

민경섭은 모든 조건을 들어보고도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러더니 신아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 아름아. 재밌게 놀고 있어?”

[네.]

[이사님 살려주세요! 여기 너무 무서워요! 아타시(저) 좀 내보내 주세요! 왜 돈을 주고 무서워해야 하는 건데요?! 살려줘요!]

[리카 떨어져. 저기 가서 암호나 마저 풀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모오 야다(이제 싫어)!]

“아름아. 나 많이 힘들어 보였어?”

[네. 저 들어오자마자…….]

[손님. 핸드폰은 사용하시면 안 되는…….]

[바쁜 전화예요. 사진 안 찍을게요. 네네, 힘들어 보였냐고요?]

“응.”

[곧 죽을 것처럼 굴더만. 오빠는 거울도 안 보고 살아요? 그대로 있다간 화병으로 죽을 거예요.]

“……그래, 알겠어. 고맙다.”

민경섭이 전화를 끊고 눈을 빛냈다.

“갈게요.”

* * *

다시 만난 리카는 혼이 빠져나간 듯했다.

리카와 민경섭이 포로 교환되듯 각자 성필과 신아름에게로 향했다.

“리카, 오늘 재밌었어. 다음에 또 놀자.”

“……이야(싫어).”

“뭐라고?”

“이, 이야아, 기대된다.”

신아름과 민경섭이 노을을 배경으로 떠나갔다.

“우리도 가요!”

“너 묘하게 밝아 보이네. 아름이랑 헤어진 게 그렇게 좋아?”

“노 코멘트.”

리카가 걸음을 옮겼음에도 성필은 못 박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

리카는 성필이 자신을 놀리는 건가 싶어서 그의 소매를 잡고 쭉쭉 당겼다.

“빨리 가요.”

“잠시만.”

성필은 멀어진 신아름과 민경섭을 향해 뛰어갔다.

“형?”

“아름아. 잠시만.”

성필은 신아름을 데리고 민경섭과 약간 거리를 두었다.

“왜요?”

“너 연습생 계약 1년 안 남았지?”

“처음 왔을 때 5년 맺었으니까 이제 그 정도겠네요. 곧 재계약할 거 같고요.”

“힘들어?”

신아름은 아까 장난으로 ‘1+1’이란 말을 했다고 하지만, 그녀는 장난으로라도 회사를 나가겠다고 말할 아이가 아니다.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연습 안 나갈 거예요!’라곤 해도, ‘회사 나갈 거야!’라곤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미래에도.

신아름은 민경섭과 닮은 부분이 있었다.

“다짜고짜 힘들다뇨. 아아, 이거 뭐 팀장님 여자 꼬시는 법이에요? 아무나 붙잡고 힘드냐고 묻고, 힘들다고 하면 위로해주는 거? 진짜 얍삽하다.”

신아름이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리란 건 안다. 그래서 성필은 본인이 할 말만 했다.

“거기 있는 거 힘들면 나와도 돼. 그럼 내가 다른 기획사 알아봐 줄게.”

신아름이 크게 웃었다. 그녀의 어깨너머로 의아한 표정의 민경섭이 보였다.

“제가 미쳤다고 석세스 엔터 나가요?”

“그래. 혹시나 해서 물어봤어.”

“걱정해주는 건 고맙네요. 석세스 엔터 안 돌아오실래요?”

“응 안 가.”

성필은 신아름을 민경섭에게로 돌려보냈다.

그녀는 빨리 가라는 듯 성필을 향해 손을 휘휘 저었다.

멀어져가는 둘을 바라보는 성필의 곁에, 어느샌가 리카가 붙어 있었다.

“무슨 얘기 하셨어요?”

“별거 아냐. 우리도 가자.”

“하이(네).”

“숙소로 바로 가면 되지?”

“에.”

차에 탄 리카는 왠지 모르게 뚱해져 있었다.

“왤케 기운이 없어. 아름이가 괴롭혔어?”

“아니요.”

“근데 왜 그래?”

“……이대로 끝이에요?”

그제야 리카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있었다.

오랜만에 꾸몄으니 바로 숙소로 돌아가는 게 아까운 것이다.

성필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놀러 가고 싶어?”

“네 네네 네네네 네!”

“난 피곤해서 빨리 쉬고 싶은데.”

“에.”

“미안. 다음에 언니들이랑 놀러 가.”

“…….”

리카가 한층 더 뚱해졌다.

위협에 몸을 부풀린 복어 같다.

성필은 개의치 않고 출발했다. 그녀는 아예 팔짱을 끼고 고개까지 돌려버렸다.

자신은 삐쳤으니 빨리 풀어달라는 제스처였다.

그렇게 쭉 성필을 무시하는 태도를 취했으나, 곧 무시할 수 없는 사태에 직면했다.

“여기 숙소 가는 길 아닌데요?”

성필은 답하지 않았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낙산 공원이었다.

“이, 이사님…….”

“짜잔, 서프라이즈. 사람 많은 데는 좀 그래서 여기 왔어. 조용히 산책하는 것도 괜찮지? 예쁜 사진 많이 찍어줄게.”

“네 네네 네네네 네!”

입구의 매점에서 음료를 산 뒤 위로 올라갔다.

“사람 잇빠이(잔뜩) 있는데요.”

“아, 오늘 일요일이었지.”

둘은 포토존으로 유명한 성곽길로 향했다.

“흐억, 헉……. 리, 리카 나 너무 힘들어.”

“빨리 오세요!”

“조금만 천천히 가자…….”

계단이 너무 많은 데다가 리카가 너무 빠르다.

성필이 느려지자 리카가 성필의 옷 소매를 잡고 끌어주었다.

“운동 좀 하세요! 그러다가 일찍 돌아가시면 어떡해요!”

“못 하는 말이 없네!”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구요!”

“운동은 하고 있어. 유산소 운동을 안 하는 거지. 넌 운동 많이 해서 좋겠다…….”

짐에도 다니고 매일 춤까지 추니, 체력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것이다.

“아앗! 표지판이다! 모험 떠나는 거 같아서 두근두근하네요! 어디로 가볼까요?”

“놀이광장.”

“이사님은 모험 2회차셨군요. 두근거림이 사라졌어요.”

“나만 따라와.”

“첫 번째 모험 동료는 누구였나요!”

“전 여친.”

“트라우마 ON.”

성곽길을 본 리카는 감탄하며 입을 벌렸다.

“예뻐요!”

“내가 좀 예쁘긴 하지?”

“이사님 말고 성벽이 예쁘다고요.”

“농담한 건데 왜 정색하는데.”

둘은 성곽을 따라 걸었다. 리카는 성곽 너머로 펼쳐진 야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는 대한민국의 수도라는 서울에서 2년을 넘게 지냈으나, 그다지 놀아본 적이 없었다.

가로 엔터로 오고 나서도 활동 범위는 숙소와 회사 정도가 전부였다.

요즘 들어 멤버들과 몇 번 놀러 가곤 했지만, 그 경험은 또래와 비교해 현저히 적었다.

그래서 그런지 고작 산책에도 눈에 띄게 즐거워한다.

“빨리 아타시(저)의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담으세요!”

성필은 포즈를 잡은 리카의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가면서 좋은 장소가 나오면 어김없이 멈춰서 사진을 찍었다.

“헤헤, 스타그래프 올려야지.”

“안 돼.”

“왜요?”

“사람들이 남자친구랑 갔냐면서 오해할 수도 있잖아.”

“이사님이랑 왔다고 하면 되잖아요.”

“어떤 아이돌이 회사 이사랑 여기를 와.”

“안 오나요?”

“안 오겠지.”

“소난다(그렇구나). 그럼 이사님은 왜 저랑 여기 왔어요?”

성필은 옅게 웃으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나무에 붙어 포즈를 취하던 리카도 그의 곁을 따랐다.

“리카, 넌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난 널 친구라고 생각해.”

“에에, 아타시(저)는 이사님을 이사님이라고 생각해요.”

“그래 네 마음 잘 알겠다…….”

“비즈니스 관계란 뜻이 아니에요! 으응, 토모다치(친구) 카테고리는 아닌데…….”

“알겠다니까. 굳이 수습하려고 안 해도 돼…….”

“에이, 그냥 친구해요 그럼. 이사님이 그걸로 좋으시면요!”

리카가 친구를 대하듯 성필의 어깨에 본인의 어깨를 붙였다.

“리카. 우리 선은 지키자. 내가 진짜 네 친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중인격인가요?!”

둘은 성곽길의 끝에 도달했다.

사실상 정상이나 마찬가지인 곳에서, 두 사람은 벽에 딱 붙어서 달을 보았다.

“별이 예쁘네요.”

“어디?”

“저기요.”

“저거 인공위성이야. 깜빡이잖아.”

“아앗! 별빛이 모두 죽어버린 세계군요.”

“모두 죽은 건 아니지. 여기 있잖아.”

“어디요?”

성필이 리카를 가리켰다.

“미래의 스타.”

“우욱…….”

“하늘에 별이 없는 건 리카가 여기 있어서가 아닐까. 가장 반짝이는 별이 길을 잃고 내 옆에 있잖아.”

“오글거려서 주글 거 가태…….”

리카가 토하는 시늉을 했다. 그리곤 곧바로 밝게 웃었다.

달에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태양과 달리 바라볼 수 있어서 그런 걸까.

사람의 마음을 휘어잡는 무언가가 있다. 그 무언가에 이끌려, 두 사람이 침묵을 지키며 계속 달을 보는 게 이어졌다.

그러다 성필이 문득 떠올라서 말했다.

“츠키가 키레데스네(달이 아름답네요).”

“……크흨.”

“왜. 이거 아니야?”

“이사님 발음 너무 구려요. 츠가 아니라 츠!”

“츠키가?”

“츠! 트츠! 츠! 츠! 그냥 츠가 아니라 앞에 티읕이 들어가는 느낌으로!”

“츠…… 모르겠다.”

“일본어 공부해주세요! 나중에 귀화하실 수도 있잖아요!”

“일본…… 뭐, 그래.”

“정말 하시나요?!”

“아니.”

“에에…….”

“일본 살기 좋아?”

리카는 일본의 장점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둘은 조금 더 산책을 이어갔다.

* * *

리카는 1층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았다.

다시 보기를 이용해서 이미 종영한 지 꽤 지난 프로그램인 ‘프로젝트 포유’ 재방송을 보았다.

‘아름이다.’

리카는 신아름이 나오는 무대만 골라서 보았다.

어째서인지 리카는 신아름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같이 프로젝트 포유 촬영장으로 차를 타고 가며, 신아름에게 들은 거라곤 짓궂은 장난이 전부였는데도 말이다.

리카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포유의 무대를 감상했다.

똑똑.

누군가 회사 입구를 두드렸다.

리카가 고개를 홱 돌리니, 검은 정장의 남자가 인상을 잔뜩 쓰며 유리문 안쪽을 보고 있었다.

밖에선 안이 잘 안 보인다.

리카는 입구로 달려가 문을 살짝 열었다.

“누구세요?”

“아, 드디어 열려으아아악!”

남자가 들어오려 하자 리카가 재빨리 문을 닫았다. 문에 발이 찍힌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경찰 부를 거예요!”

“놔, 놔!”

“나가요!”

“나, 나갈게! 나갈게!”

남자가 재빨리 발을 뺐다.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리카를 죽일 듯이 보았다.

“누구세요!”

경계심이 잔뜩 담긴 물음이었다.

리카는 왼손으로는 핸드폰을 쥐고 110(일본의 112)을 누를 준비를 마쳤다.

“규헌이 오빠거든! 작은 오빠! 넌 뭐냐 이 쥐방울만 한……!”

“이랏샤이마세(어서 오세요)!”

리카가 문을 활짝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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