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8화
“웬일이야?”
[팀장님이랑 저랑 일 있어야만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죠. 목소리 듣고 싶어서 연락했어용.]
“일 있어야 연락하는 사이잖아.”
[놀라운 통찰력.]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성필은 업무용 핸드폰을 따로 뒀다.
석세스 엔터의 연습생들이 아는 번호는 그 핸드폰의 번호이다. 그리고 성필은 석세스 엔터를 나오며 그 핸드폰을 부숴버렸다.
물론 석세스 엔터 관련된 번호를 제외하고는 새 폰에 전부 옮겨두었다.
[경섭 오빠한테 물어봤어요.]
“그러냐. 그래서 왜 연락했어.”
[경섭 오빠 일자리 좀 알아봐 줘요.]
민경섭.
신아름과 마찬가지로 프로젝트 포유 촬영장으로 가는 길 차에 태워줬던 석세스 엔터의 매니저다.
“네가 무슨 인력사무소냐? 왜 걔 일자리 걱정까지 해줘.”
[아니. 저 프로젝트 포유 촬영 동안 경섭 오빠랑 계속 떨어져 있었잖아요? 오랜만에 돌아오니까 분위기 장난 아녜요.]
성필은 귀를 쫑긋 세웠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성필은 내심 석세스 엔터가 폭삭 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라고?
회사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다.
‘드디어 제 기도를 들어주신 겁니까 신이시여.’
[윤상열 그 또라이랑 사이 안 좋아진 거 한눈에 딱 보여요. 경섭 오빤 말도 잘 안 하고.]
“못 버티겠다 싶으면 자기가 알아서 나오겠지.”
[아시잖아요. 경섭 오빠 옹고집인 거.]
“그렇긴 하지.”
민경섭은 고문을 받더라도 입도 뻥끗 안 할 인물이었다.
어떤 고난과 고통이 있어도 묵묵히 버티는 모습은 성필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한창 석세스 엔터의 인력이 부족하고 스케줄은 많을 때, 그는 최대 48시간 동안 수면을 취하지 않고 매니저 업무를 했었다.
한 번 자면 돌이킬 수 없다던가 뭐라던가.
거의 숨이 턱 끝까지 차서 덜덜 떠는데도 절대 눈을 감지 않았었다.
[어떻게든 버티려는 거 같은데, 아시잖아요.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제일 큰 거.]
“세상 다 살아본 거 같은 말투네.”
[저 같은 애 또 없어요. 누가 회사 매니저까지 이렇게 걱정하겠어요?]
그만큼 민경섭의 상태가 심각하단 뜻일 것이다. 신아름마저 그냥 넘기지 못할 정도로.
[경섭 오빠가 팀장님은 잘 따랐으니까, 당장 석세스 엔터는 집어치우고 나오라고 해주세요.]
“내가 보자고 하면 눈치 까고 안 나올 텐데.”
[그래서 제가 딱 생각을 해뒀죠. 경섭 오빤 제가 데려갈 테니까 팀장님은 걍 나오시면 돼요.]
“아직 일자리 알아봐 준다고 말도 안 했는데.”
[안 해주시게요? 해주시면 저 포유 앨범 나왔을 때 친필 사인이랑 굿즈도 보내드릴게요.]
자기애가 매우 큰 아이다.
‘내가 그런 걸 받고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나.’
좋아한다.
아무리 안 좋게 석세스 엔터를 나왔더라도, 성필은 아직도 그곳의 연습생들에게 애착이 있었다.
신아름의 친필 사인이랑 굿즈라고?
안 받곤 못 배기지.
“그래. 갈게.”
만약 민경섭이 정말 회사를 옮길 마음을 먹는다면 꼭 가로 엔터로 데려오고 싶었다.
보증된 매니저였으니까.
성필은 그녀에게서 약속 장소와 일시를 듣고 메모했다.
[그리고 리카도 데려오세요.]
“리카는 왜?”
[제가 경섭 오빠 데려가는 변명이 리카 보러 가는 거니까 그러죠. 저 이제 스타잖아요. 혼자서 돌아다니면 안 돼요.]
스타는커녕 그룹이 학폭 논란에 휩싸여서 가라앉기 직전 아닌가.
물론 매니지먼트사의 강행 돌파로 데뷔에도 성공하고, 이후에도 좋은 성적을 거두긴 하지만.
그래도 현재 그룹 ‘포유’는 초상집 분위기일 것이다.
“아직 숙소 안 들어갔어? 매니저 따로 안 붙었나 보네.”
[네. 시간 좀 남아 있어요.]
“알겠어. 그날 리카 데리고 갈게.”
[알라뷰(I love you).]
“미투.”
전화를 끊고 리카를 찾으러 밖으로 갔다.
연습실이나 휴게실에도 없었다.
지금 시간이면 회사 안에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이다.
혹시 가출이라도 한 건가…….
“아, 저깄네.”
1층 유리 벽 너머로 테라스 의자에 앉아 있는 리카가 보였다.
화보를 찍는 듯 가만히 앉아 하늘을 보고 있었다. 성필은 밖으로 나가서 리카의 옆에 앉았다.
“뭐해?”
“달 보고 있어요.”
“예쁘네.”
“아타시(제)가 예쁘긴 하죠.”
리카는 장난스레 답하면서도 시선은 달에 고정되어 있었다.
“왜 그래. 무슨 고민 있어?”
“아니요. 고향에서도 저 달은 똑같이 보이겠구나, 그런 생각 하고 있었어요.”
리카는 향수를 느끼고 있는 듯했다.
아무리 한국이 익숙해졌더라도 십수 년간 살아온 고향보다 나을까.
아닐 것이다.
“아이돌 끝나면 고향에 돌아갈 거야?”
“모르겠어요. 귀화 시험 볼까요? 아님 이사님이 일본 귀화 시험 봐주세요.”
“내가 왜.”
“에에, 너무해. 제가 보고 싶지 않으세요?”
“그래서 지금 많이 봐두려고.”
둘은 말없이 한동안 달을 바라보았다.
“리카.”
“하이(네).”
“일요일에 시간 있어?”
“너무 고전적인 방법이에요! 좀 더 낭만적으로 권해주세요!”
“예를 들면?”
“츠키가 키레데스네(달이 아름답네요).”
“무슨 뜻이야?”
“에헤헤. 일본어 공부해주세요! 나중에 귀화 시험 보셔야 하니까요!”
“달이 아름답네요, 란 뜻입니다.”
갑자기 어둠 속에서 한구인이 나왔다.
성필은 물론 리카까지 깜짝 놀랐다.
가로 엔터의 앞은 가로등이 없었는데, 그렇다 보니 어둠 속에서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나타난 것이다.
“이제 일 끝나신 거예요?”
“예.”
“에엑! 한 이사님 옷이 땀 범벅이에요!”
“날이 덥잖습니까. 그런데 리카 씨 나츠메 소세키 좋아하십니까? 저는 ‘도련님’을 가장 좋아합니다.”
“에, 저 나츠메 소세키 안 읽어봤는데요…….”
“일본인 맞으십니까?”
“제 정체성을 단정 짓지 마세요!”
“훌륭한 대답입니다.”
“달이 아름답단 거랑 나츠메 소새끼가 무슨 관련이 있어요?”
“소새끼가 아니라 소세키입니다. 박 이사님은 모르시는군요. 썰이지만, 나츠메 소세키가 ‘I Love you’를 ‘달이 아름답네요’라고 번역했다고 합니다.”
성필이 리카를 보자 그녀가 어벙하게 웃었다.
“에헤헤.”
“확실히 느낌이 있네. 일요일에 시간 있냐는 말보단 훨씬 낫다.”
“두 분 일요일에 어디 가십니까?”
“네. 일이 있어서요. 한 이사님 더우실 텐데 빨리 들어가 보세요. 안에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뒀어요.”
“감사합니다.”
한구인은 넥타이를 부드럽게 풀어 헤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일요일 괜찮은 거지 그럼?”
“네. 단, 박 이사님이 저를 충분히 즐겁게 할 만한 계획이 있다면요!”
“미안. 자신이 없네.”
“벌써 포기?! 초식남은 인기 없다구요!”
신아름이 지정한 장소는 그냥 음식점이었다.
리카를 배려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일식집이다.
“신아름 기억해?”
“네!”
“걔가 너 보고 싶대.”
“앗! 저도 드디어 연예인을 보는 거네요!”
텔레비전에 나오고, 이제 아이돌로 데뷔했으니 연예인이 맞긴 하다.
“근데 너 괜찮아? 아름이한테 놀림 받기만 했었잖아.”
선입견이 심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사실 성필 때문에 심어졌을 확률이 높다.
촬영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신아름이 또라이니 뭐니 하며 경계하라고 말했으니까.
“보고 싶어요! 말도 놓은 친구니까요!”
“친구 커트라인 너무 낮네.”
이상하게도 리카는 신아름에게 관심이 많았다.
오직 신아름 때문에 프로젝트 포유 모든 회차를 보았을 정도였다.
“나랑은 말 안 놨으니까 친구 아니야?”
“이사님은 이사님이에요!”
박성필, 충격!
“그러냐…… 그럼 일요일?”
“니치요비(일요일)!”
* * *
가로 엔터 멤버들에게 공식적으로 주어진 휴일은 일요일이다.
연습생은 근로자가 아니기에 주5일 근무 같은 법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렇다고 홍규헌이 주6일을 나오라고 강제한 건 아니었다.
원래 멤버들은 일주일을 전부 연습하러 나왔으나, 홍규헌이 쉬면서 하라고 했기에 6일로 줄었다.
그런 일요일, 멤버들은 비몽사몽 아침밥을 먹었다.
오늘의 아침 당번은 리카였다.
“리카 오늘 힘 좀 썼네.”
손이 많이 가는 요리가 아침밥으로 나오는 경우는 드물었다.
한구인이 직접 쓴 요리 레시피책은 1에서 5단계로 난이도가 정해져 있는데, 오늘 리카가 내놓은 건 무려 4단계 난이도의 음식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야만 시도해 볼 만한 것이다.
“에헤헤. 오늘은 눈이 빨리 떠져서요.”
“그럼 나도 오늘은 힘 좀 써볼까?”
점심 당번은 장하양이었다.
그녀의 요리 실력은 썩 뛰어나진 않은 데다가, 고난도 요리에 실패한 경력이 많았다.
하지만 누구도 ‘괜찮아. 쉬운 거 만들어’라고 하지 못했다.
리카는 설거지까지 마치고 단장을 시작했다. 조아라는 아침을 먹고 다시 잤기에 리카의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요시(좋아).”
거울을 몇 번이나 본 리카가 방을 나섰다.
복도에서 장하양과 마주쳤다.
“리카 어디 가?”
“네! 아, 저 오늘 점심 안 먹어도 돼요! 저녁은 상황 보고 톡할게요!”
“응, 어디 가는데?”
“박 이사님 만나러요!”
장하양의 눈동자가 빠르게 위와 아래로 움직였다. 1초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장하양은 리카의 외견을 파악하길 마쳤다.
엄청나게 꾸몄다.
“이사님을 왜…….”
“앗! 늦었어요!”
단장에 시간을 너무 쓴 까닭이었다. 리카가 허겁지겁 신발을 신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잠깐…….”
“하이(네)?”
“……아니야, 잘 다녀와.”
“하이(네)!”
리카가 후다닥 숙소를 나섰다.
* * *
“오, 우와…….”
리카가 성필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자그마한 것이라도 놓치지 않겠단 듯, 거의 눈을 성필에게 고정시킨 상태였다.
“왜 이렇게 꾸미고 오셨어요!”
“난 오늘 네 매니저로 나온 거야.”
“이사님이 아타시(저)의 매니저?”
“매니저의 품격은 곧 스타의 품격이지. 평소 같은 편한 옷으론 안 돼.”
“오늘 아름이 보러 가는 거 아니었나요!”
“맞아. 아이돌과 아이돌(예정)의 만남이잖아.”
거기다 오늘은 어찌 보면 민경섭의 이직을 설득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설득의 절반은 외모로 먹고 들어간다고 한다.
깔끔한 옷과 후줄근한 옷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다.
혹시라도 ‘이 형 힘들게 지내는구나’란 생각을 심어주고 싶진 않았다.
‘사장님의 명예도 달린 일이야!’
슬랙스에 흰 티, 블레이저가 전부인 세미 정장 스타일이지만, 평소의 성필과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저도 꾸미고 오길 잘했네요!”
“그치. 근데 평소랑 너무 달라서 놀랐어.”
“제가 어때서요?! 평소랑 똑같잖아요!”
“네 말이 맞아. 전혀 차이가 없네.”
“뭐가 똑같아요?! 제가 얼마나 시간을 쏟았는데!”
“어쩌란 거야 대체!”
성필은 리카를 데리고 약속한 음식점 앞으로 갔다.
신아름과 민경섭을 굳이 찾으려 할 필요도 없었다.
둘은 가게 밖의 웨이팅 의자에 앉아 있었다.
성필이 앞에 서자 신아름이 활짝 웃었다.
“여기 생각보다 인기가 있네요. 스타그래프에서 보고 골랐는데.”
“그럴 거 같더라.”
웨이팅 의자는 세 개였다.
민경섭과 신아름이 두 개를 차지하고 있으니 하나가 남아 있었다.
“리카 네가 앉아.”
“앗! 에스코트 받는 기분이에요! 그런데 아타시(저) 혼자 앉으면 죄송한데. 제가 이사님 무릎에 앉는 건 어떨까요?”
“내가 네 무릎에 앉는 건 어떨까?”
“제 허벅지가 부서져 버려요!”
리카가 가볍게 의자에 앉았다.
“경섭아 오랜만이다.”
“네 형. 형도요.”
신아름이 전화로 했던 말은 사실이었다. 민경섭은 딱 봐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말투나 표정에서도 의욕이 없다.
“민경섭 매니저님 안녕하세요!”
“어, 그래. 이름이 뭐였더라.”
상태가 정말 심각하다.
민경섭은 사람 이름을 잊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성필처럼 굳이 메모장에 적어두지 않더라도, 뇌에 하드디스크라도 있는 것처럼 얼굴과 이름을 외우곤 했다.
“이시카와 리카! 19세! 꿈은 아이돌입니다!”
“응, 그랬었지. 잘 지냈고? 2년만인가.”
“반년도 안 지났는데요?!”
신아름이 성필의 신발을 툭툭 찼다. 그녀를 보니 ‘보셨죠? 이런 상태예요.’라는 듯 어색하게 웃었다.
얘 이런 캐릭터 아닌데.
자기를 걱정하면 했지, 누군가를 신경 써 줄 위인은 아니다.
‘경섭이가 많이 심각하긴 한가 보다.’
웨이팅을 끝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리카는 돈카츠 세트를 시켰는데, 고향의 맛이 나진 않는다고 했다.
“주방장이 일본에서 유학도 했다던데.”
“도쿄에서 한 건 아닌가 봐.”
“리카 너 도쿄에 살았어?”
“가와사키에 살았어!”
“내가 못 들어본 거 보니까 시골인가 보네.”
“도쿄 바로 옆인데?! 전철로 몇십 분밖에 안 걸려!”
“도쿄 사는 건 아니잖아.”
“으, 응. 그렇긴 하지…….”
“수도권 사는 사람이 서울 산다고 말하는 거랑 비슷한가.”
“나, 난 고향을 사랑해! 안 부끄러워!”
신아름은 옛날처럼 리카를 놀리지는 않았다. 의외로 대화도 꾸준히 이어갔다.
성필은 두 사람이 대화하는 것을 듣기만 할 뿐 끼어들지는 않았다.
대신 민경섭에게만 관심을 쏟았다.
그는 그릇에 얼굴을 처박을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깨작깨작 밥만 먹었다.
‘언제 얘길 꺼내지.’
아마 신아름은 성필과 민경섭이 둘만 있을 시간을 만들어줄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말을 꺼내봤자 진지하게 흘러갈 것 같지도 않았다.
“하아.”
민경섭이 갑자기 한숨을 쉬었다.
아무런 맥락도 없이 말이다.
속에 쌓인 게 많은 듯했다.
“팀장님.”
밥을 거의 다 먹어갈 때쯤, 대화의 타깃이 성필로 변경되었다.
“거기서 잘 지내고 계세요? 저희 버리고 가셔서 좀 살기 좋아요?”
“말하는 본새 봐라. 그래, 잘 지낸다. 너무 행복하다. 만족해?”
“네, 팀장님이 잘 지내시는 거 보니까 저도 행복해요. 리카. 팀장님이 잘해주셔?”
“이사님이야!”
“아, 이사님이랬나. 근데 나한텐 팀장님인데?”
“에.”
“팀장님이 잘해주셔?”
리카가 떨떠름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얼만큼 잘해줘?”
“에에…… 그냥 잘해주시는데.”
“그냥이 어딨어. 1에서 10까지 고르라면 어느 정도야?”
“으, 음. 구?”
“와, 팀장님. 리카가 하는 말 들었어요? 팀장님이 부족하다는데?”
“십! 십! 십! 십! 십!”
“리카 좀 그만 놀려라.”
“십! 십! 십! 십! 십!”
“리카 너도 진지하게 받아주지 마.”
“구 점 만점에 십 점이에요!”
“알겠으니까 목소리 좀 낮춰.”
신아름은 필사적인 리카를 보고 깔깔 웃었다.
정말 사람 놀리는 낙으로 살아가는 녀석이다.
그녀를 보고 있자면 조아라가 선녀처럼 느껴진다. 조아라는 적어도 하는 행동이 귀엽기라도 한데, 신아름은 골탕 먹이려는 의도가 너무 잘 느껴진다.
‘경섭이도 고생 많았겠네.’
민경섭은 이제 아예 석상처럼 고개만 푹 숙인 채 가만히 있었다.
사람이 얼마나 힘들면 이럴까.
“쟤 걔 아니야?”
“어어, 맞아. 포유.”
그때 구석 쪽 테이블에서 어느 손님의 목소리가 성필의 귀에 잡혔다.
테이블 옆의 유리창을 통해 반사된 모습을 보니, 남녀커플이 이쪽을 가리키며 무어라 하고 있었다.
“……학폭……포유…….”
그다지 좋은 말은 아닌 듯했다.
포유는 학폭 멤버가 한 명 드러난 것만으로도 나머지 멤버 전체가 의심을 받고 있었다.
아예 프로젝트 포유란 프로그램 전체가 재평가당할 지경이었다.
안 그래도 인지도가 낮은 기획사의 연습생들이 많았기에, 연습생들의 과거도 알아보지 않고 껄렁한 애들만 막 모은 거 아니겠느냐. 그런 식의 추측도 난무했다.
더 심하게 나가서 아예 학폭 그룹이란 말까지 나돌기도 했다.
신아름도 그것을 들었는지 표정이 썩어갔다. 리카는 어쩔 줄 모르고 눈동자만 굴렸다.
“밥 다 먹었지? 나가자.”
“네.”
“저기요.”
갑자기 축 늘어져 있던 민경섭이 어깨를 쫙 펴고 뒤로 돌았다. 그리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쑥덕대던 커플의 앞으로 갔다.
“네, 네? 저희요?”
“네. 저희 아름이는 학폭 안 저질렀어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애가 상처받으면 어떡해요. 여러분한테는 한순간의 대화거리겠지만, 아름이는 집에 가서도 오늘 들은 말 생각하면서 울 수도 있어요. 평생 기억에 남을 수도 있고요.”
커플들은 민경섭의 기세에 밀려 입도 뻥끗 못 했다. 설마 그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할 줄은 몰랐으리라.
갑자기 민경섭이 정색을 지우고 입꼬리를 올렸다.
“저희 아름이는 착하고 바른 애니까, 앞으로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당연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미친놈처럼 보일 것이다.
민경섭은 테이블로 돌아와 신아름의 어깨를 툭 쳤다.
“가자.”
신아름이 민경섭의 뒤를 쫄쫄 따라갔다. 리카와 성필도 뒤늦게 일어났다.
“민경섭 매니저님이요, 이사님이랑 비슷한 거 같아요.”
“뭐가?”
“그으, 잘 모르겠는데 분위기가요.”
민경섭은 성필에게서 매니저 일을 배웠다.
그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민경섭은 석세스 엔터에서 박성필 2호기로 불리곤 했다.
밖으로 나오니 민경섭이 신아름에게 사과하는 중이었다.
“미안. 나 때문에 너한테 안 좋은 글이라도 올라가면…….”
“됐다고요. 올라가면 뭐 어때요. 저 사람들이 먼저 욕한 건데. 아, 팀장님 나왔다. 팀장님!”
신아름이 민경섭의 등을 밀어 성필의 앞에 세웠다.
“경섭 오빠 가로 엔터에 데려가 주신다고 했죠?”
“뭐?”
민경섭이 무슨 소리냔 듯 물었다.
역시, 신아름은 그에게 아무런 내막도 알려주지 않은 듯했다.
“어, 그렇지 뭐. 경섭이만 좋으면.”
“아름아 그게 뭔. 형은 또 무슨 소리예요. 제가 형네 회사를 간다고요?”
“아, 싫어?”
성필은 조금 당황했다. 그가 거절했기 때문이 아니라, 갑자기 신아름이 급발진해서 이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었다.
조금 진지하고 산만하지 않은 분위기에서 그의 고민을 들어보고 싶었다.
그 뒤에 이직 이야기를 꺼내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싫다 좋다 문제가 아니죠. 멀쩡히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응, 그렇지.”
분위기가 어색해지는 찰나, 신아름이 민경섭의 옆에 착 붙어서 말했다.
“지금 경섭 오빠 데려가면 신아름이 공짜!”
“……어?”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