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76화 (76/760)

#076화

홍규헌.

회사 운영 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다들 주목. 오늘 들은 거 다 모른 척해.”

전부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리카는 장난 아닌 거 같으니까. 괜히 뭐라고 하지도 말고. 오늘 일은 전부 기억 속에서 잊는 거야. 알겠어? 중간에 박 이사가 장난 안 걸린 거 알아채고, 다들 재미없다고 나간 거야. 방금 말 들은 건 나뿐이고. 그렇게 말 맞추자.”

이러면 대충이나마 수습은 될 것이다.

이대로 만우절 장난은 성필과 리카만의 추억으로 끝난다.

홍규헌은 주먹을 꽉 쥐었다.

‘리카 이 배은망덕한…….’

홍규헌은 품에서 담배를 꺼내며 말했다.

“다 나가.”

그녀의 심기가 나빠졌단 것은 어린아이가 보아도 알 수 있었다.

한구인은 멤버들을 데리고 사장실을 나섰다.

그리고 문을 여는 순간, 성필과 리카가 짜잔 나타났다.

“만우절!”

“입니다!”

다들 놀라기보다는 겁을 먹었다.

모두의 눈동자가 한 사람, 홍규헌에게로 향했다.

“……리카, 박 이사.”

“하이(네)!”

“사장님도 재밌으셨죠?”

“사장실 문 앞에 붙은 종이 봐.”

[나한테 만우절 장난치면 해고함]

“…….”

“…….”

“둘이 손잡고 회사 나가.”

성필과 리카는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야 했다.

그날부터 가로 엔터에 사칙(社則)이 하나 추가됐다.

[만우절 장난 금지.]

* * *

성필은 리카를 학원에서 픽업했다. 그녀는 차에 타서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리카.”

“…….”

“미안.”

“…….”

“내가 장난이 심했지?”

“……죽어.”

“어?”

“죽으라구요! 죽어! 죽어! 이사님 시네에에(죽어어어)!”

리카는 쌓여 있던 감정을 모두 토해내듯 소리를 질렀다.

성필은 뭐라 변명할 게 없었다.

그래서 가만히 리카의 분노를 듣기만 했다.

“앞으론 저한테 거짓말 금지예요!”

“응…….”

“아니 그냥 나가요! 나가세요! 회사 나가세요!”

리카가 이렇게 화내는 건 처음 본다.

애초에 리카가 진심으로 화낼 수 있단 것도 처음 알았다. 그것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알 수 있었다.

“미안…….”

성필의 장난이 끝나갈 때, 리카는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서 통화를 끊었다.

성필의 이야기가 진짜인 줄 알아서 진지하게 대답했으나, 미처 통화가 켜져 있다는 데에는 생각이 닿지 않았던 것이다.

리카는 황급히 핸드폰이 떠올라 통화를 껐으나, 그게 실제상황이었다면 수습이 될 리 없었다.

리카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드니, 성필도 그 순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했다.

그리고 즉석 해서 두 사람이 만우절 장난을 한 것으로 짰다.

리카의 말이 진심이 아니었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이로써 리카의 ‘성필을 따라 나가겠다’는 발언은 두 사람만의 비밀이 되었다.

다르게 말하면, 리카 본인을 포함하여 두 사람이나 아는 비밀이 되었다.

리카가 성필을 얼마나 믿고 따르는지.

“씨이, 씨…….”

리카는 한동안 씩씩대다가 작게 말했다.

“아무 데도 가지 마세요!”

“난 여기에 뼈 묻을 거야. 은퇴하고도 가끔씩 놀러 와.”

“약속이에요!”

둘은 손가락을 걸었다.

“어기면 바늘 천 개 먹기예요!”

“그건 또 뭔데.”

리카는 성필을 잃어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그의 손목을 꼭 쥐었다.

장하양은 리카가 달라붙는 게 너무 과하다고 했었다.

요즘 거리를 벌리고 있는 성필로서는 손을 놓으라 하고 싶었지만, 분위기가 있는지라 그럴 순 없었다.

* * *

여름의 열기가 사방을 뜨겁게 데웠다.

가로 엔터의 생수는 매일 떨어지고, 연습실 바닥은 매일 멤버들의 땀자국으로 젖어 들었다.

“아름이 데뷔하는구나.”

“아름이가 누구야?”

“얘요. 얘가 아름이에요.”

리카는 텔레비전에서 한 얼굴을 짚었다.

이전에 프로젝트 포유 촬영장으로 가는 길에 만났던 석세스 엔터의 연습생, 신아름이었다.

신아름은 당당히 6위를 차지하며 프로젝트 그룹, ‘포유’에 이름을 올렸다.

만약 리카가 프로젝트 포유에 나갔다면 같은 그룹으로 활동했을 것이다.

“아는 분이야?”

“네! 프로젝트 포유 촬영지로 가는 길에 차 얻어 탔어요!”

“아는 사람이 데뷔해서 다행이다.”

“헤헤.”

신아름한테 들은 거라곤 놀림밖에 없으면서도 리카는 순수하게 기뻐해 주었다.

며칠 뒤, 프로젝트 그룹 포유의 멤버 중 한 명이 학폭 논란에 휩싸였다. 그리고 또 얼마 뒤, 그게 사실로 드러나면서 해당 멤버는 탈퇴를 선언했다.

“와, 쟤는 진짜 심하다. 그냥 일진이 아니라 깡패네. 리카 너도 저기 나갔으면 쟤한테 괴롭힘당했던 거 아니야?”

프로젝트 포유 촬영 중 몇몇 연습생들도 학폭 멤버에게 은근한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다.

“아타시(나)는 당당해서 괴롭힘 따위에 굴하지 않아!”

성필은 리카와 조아라의 대화를 들으며 고개를 저었다.

만약 성필이 리카를 진작 빼 오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괴롭힘 때문에 평생에 걸칠 트라우마를 안게 됐을 것이다.

“박 이사님, 아타시(제) 말이 맞죠?”

“그래, 누가 리카를 괴롭히겠어. 이렇게 귀여운데.”

“에헤헤.”

“내 손발 오그라든 거 좀 펴줘요.”

“이사님, 아라쨩도 칭찬해주세요! 아타시(저)만 칭찬받아서 질투하나 봐요!”

“아라는 괴롭힘당할 수가 없지.”

“뭔 뜻이에요. 사람 또 개화나게 하네 진짜.”

“아라쨩 무셔…….”

그날 저녁, 월말 평가가 치러졌다.

특별 심사위원인 정지음이 참석한 채였다.

멤버들이 나간 뒤, 홍규헌이 물었다.

“지음 씨, 어때요. 애들 지금 녹음 들어가도 될 실력이에요?”

“네.”

작곡가에게서 확답이 떨어졌다.

“음역대도 낮고 기교랄 게 크게 없는 곡이니까요. 지금 멤버들 실력으로도 충분할 거예요.”

데뷔곡은 ‘아니’로 확정되었다.

‘아니’는 이후로도 몇 번의 편곡을 거쳤다.

성필의 원래 생각보다 달라지긴 했다. 이전의 미니멀한 사운드보다 풍성해진 것이다.

하지만 그건 현대적인 감성을 고려해서 붙인 것일 뿐, 곡의 전체적인 느낌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거기다 홍규헌의 요청도 있었다.

‘제 목적은 라이브 댄스, 보컬이 가능한 그룹을 만드는 거예요. AR이 없더라도 퍼포먼스가 완벽한 그룹이요. 곡 난이도도 춤추면서 가능할 정도로 낮았으면 좋겠어요.’

즉, 홍규헌은 듣는 것보다 보는 것을 중요시했다.

단순히 듣기 좋은 노래를 만드는 그룹을 바라는 게 아니었다.

팬들이 직접 멤버들의 퍼포먼스 능력을 봐줬으면 하길 바란 것이다.

그 결과 ‘아니’는 꽤 소화 난이도가 낮아져 있었다.

“알겠어요. 그럼 바로 진행할게요.”

정지음은 이번 앨범의 음악 프로듀서로서 참여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에 따른 급료도 받고 있다.

멤버들의 데뷔까지, 그는 가로 엔터의 일원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다.”

앨범 계획 개시 선언이 떨어지자마자, 성필은 멤버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앨범 작업에 들어간다. 지금까지보다 더 힘들겠지만, 너희들이라면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갑자기 웬 군대 말투.”

“긴장하라는 거지. 아라 너도 연습생 생활 오래 했지?”

조아라는 1년 정도 연습생으로 살았다.

춤밖에 모르던 아이가 노래도 곧잘 부른다.

그녀의 노력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안타까운 건, 짐(Gym)에서 정해준 식단 때문에 그녀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단 것이다.

몇 번은 성필에게 못 참겠다며 호소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안정을 찾아가는 듯해서 내심 안도했다.

“1년이면 짧은 거죠.”

조아라가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처음 만났을 땐 단발이었지만, 홍규헌의 요구에 따라 머리를 계속 기른 결과 길이가 꽤 자랐다.

여름이라 많이 덥다는 모양이다.

“아저씨도 고생하셨어요.”

“……!”

예상치 못한 조아라의 말에 성필이 감격했다.

매일 성필을 어떻게 하지 못해 안달인 모습만 보여주는 조아라다.

가끔만 정상적이어도 감동이 물밀듯이 들어오곤 한다.

“아냐. 네가 더…….”

“리카 사람 만드느라 고생 많았다고요.”

“난 원래 사람이었어!”

조아라는 강아지 대하듯 리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키도 리카가 더 클 텐데, 조아라가 언니처럼 느껴졌다.

외모든 태도든 조아라가 부쩍 성숙해져서 가끔 흠칫 놀라곤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점점 미래의 조아라와 닮아가고 있었다.

그녀를 볼 때마다 전생이 떠오른…….

“이사님이 자기 뺨 때렸어! 머리에 이상이 생기셨나 봐!”

“모기 있어서 그랬어.”

성필이 부은 뺨을 쓸며 말을 이어갔다.

“곧 녹음도 들어갈 거야. 가사 충분히 숙달해서 느낌을 익혀. 너희가 전달하고 싶은 감정을 확실히 이해해야 해. 그거 나오면 안무도 맡기고.”

“민정 쌤한테 맡겨요?”

안 그래도 조아라의 학원 트레이너인 백민정은 요즘 가로 엔터에 관심이 많았다.

점점 앨범 제작이 궤도에 올라가고 있으니 안무 의뢰를 따내려는 것이었다.

‘민정이 실력이 부족하진 않지만, 걔한테만 모든 걸 맡길 수는 없지.’

안무 창작비는 비싸다.

그래도 최고의 결과를 위해선 많은 안무가를 찾아야 할 것이다.

“민정이가 너한테 뭐라고 해?”

“아저씨 구워삶아서 일감 구해달라던데요.”

“구워 삶아봐.”

“아이잉, 아저씨이, 해주세요오.”

“민정이한테는 절대 안 맡겨야겠다.”

조아라가 중지 대신 약지를 들어보였다.

“뭐 어쩌라고. 반지 끼워달라고?”

“진짜 민정 쌤한테 안 맡겨요?”

“생각해보고.”

“이사님.”

“어, 하양이.”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요. ‘아니’ 있잖아요. 다른 아이돌들 곡보다 뭔가 허전하다고 할까. 그렇거든요.”

“그건 곡 특성 아니었어요?”

“아냐. 하양이가 잘 짚어줬어. 완성본이 아니니까 당연해. 편곡하고 믹싱, 마스터링도 거쳐야 해. 필요하면 세션 녹음도 하고. 음, 그건 세션 녹음은 필요 없겠네. 암튼 미완성이라서 그러는 거야. 너희 목소리 입힌 뒤엔 훨씬 좋아질걸.”

“그렇구나.”

대충 나올 말은 다 나온 듯했다.

성필은 턱을 매만지며 물었다.

“더 물어볼 거 있는 사람.”

백설하가 소심하게 손을 들었다.

“네, 설하 씨.”

“이건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건데요. 수염 안 깎으세요?”

턱수염을 만지던 성필이 멈칫했다.

나흘 동안 면도를 하지 않은 탓인지 털들이 꽤 굵어져 있었다.

“언니 쉿. 이미지 변신이라도 꾀하나 보죠.”

“아, 그렇구나.”

“그냥 귀찮아서 안 깎았어. 설하 씨 의견은 알았어요. 안 그래도 볼품없는 사람이 수염 기르는 거 싫으시단 거죠. 네, 집에 가자마자 깎을게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런 뜻으로 물어본 거 절대 아니에요!”

“알겠어요. 이해합니다.”

“진짜 아니에요…….”

더 질문은 없었다.

성필은 해산을 외치며 2층으로 올라갔다.

“이사님 말이에요.”

성필이 떠나자 장하양이 운을 뗐다.

“요즘 피곤해 보이시지 않아요?”

“응. 옛날 같지 않으셔.”

옛날의 성필이 불같았다면, 현재의 성필은 겨우 불씨를 유지하고 있는 숯 같았다.

“일이 많이 바쁘신가 봐.”

“명탐정 조아라의 예상. 여자친구 생겨서 기운 다 빠짐.”

“에에, 이사님이 연애할 시간이 어딨어. 이사님이랑 연애하는 사람은 일주일 만에 헤어질걸. 왜 휴일이 없냐면서.”

“그렇게 말하니까 불쌍하긴 하네…….”

성필이 쉬는 날이 있긴 할까?

애초에 멤버들은 성필이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도 감을 못 잡았다.

아직 데뷔한 그룹도 없는 기획사에서 할 일이 그렇게 많나?

“그러고 보니 혜빈 언니랑 한 이사님도 요즘 회사에 잘 없으셔.”

“밥도 미리 만들어두시고.”

왠지 모를 텁텁함이 모두의 입 안에 감돌았다.

“우리가 고민해도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우리는 연습으로 이사님들의 고생에 보답하면 되는 거야.”

“오오, 역시 리더.”

“아직 리더는 아니지.”

백설하가 쑥스러워했다.

그때 성필이 2층에서 내려왔다.

그새 면도를 했는지 수염이 다 없어진 상태이었다.

“저 나갔다 올게요.”

얼굴이 창백해진 백설하는 성필에게 붙어서 계속 변명했다.

“진짜 이사님이 보기 안 좋단 의미가 아니었다니까요. 수염도 괜찮아요…….”

* * *

“예, 들어가세요!”

성필은 차가 사라질 때까지 허리를 펴지 않았다. 그리고 엔진 소리가 멀어질 때가 돼서야 피곤한 표정으로 앞을 보았다.

그는 자연스레 입에 담배를 물었다.

‘나도 가야지.’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집으로 들어가니 적막한 어둠만이 반겨주었다.

불을 켜고 옷걸이 앞에 섰다.

부적이라도 되는 듯 장하양이 선물로 준 목도리를 몇 번 만진 뒤, 옷을 벗고 샤워했다.

침대에 누워선 멤버들의 SNS를 점검했다.

“오, 팔로워 1,000명 돌파.”

조아라의 스타그래프 계정만 증가 속도가 느려 걱정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천 명을 넘어섰다.

솔직히 이 정도만 돼도 감지덕지였다.

정지음의 도움이 없었다면 1,000명은 고사하고 100명도 못 넘었으리라.

‘스타그래프는 그냥 사진 올리는 SNS가 아니에요!’

‘아니야?’

‘이런 사람이 어떻게 기획사 이사인지…….’

정지음에게 모욕을 당하긴 했지만, 그는 확실히 도움이 됐다.

몇 주 동안 정지음은 조아라의 핸드폰을 빼앗다시피 했다.

온종일 스타그래프의 바다를 표류하며 조아라와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을 팔로우했고 하트도 주야장천 누르고 다녔다.

또한 인기 게시물에 오를 수 있도록 해시태그도 연구하고…… 암튼 뭘 많이 했다.

덕분에 조아라의 계정에는 하트와 댓글도 많이 달렸다. 얼마 전에 인기 게시물로 올라간 사진은 하트가 1000개를 넘기도 했다.

‘얘는 춤 말고 사진도 좀 찍어서 올리지.’

댓글을 몇 개 확인하곤 아이튜브로 돌아갔다.

가장 최근에 올라온 백설하의 커버곡은 조회 수가 3,000이 넘었다.

이 또한 정지음의 덕이 컸다.

‘명곡만 불러서 올릴 예정이라고요?’

‘그러면 안 돼?’

‘아니, 어…… 안 돼요! 무조건 신곡 위주로! 사람들이 많이 검색해 볼 곡들만 커버해서 올려요!’

그렇게 했다.

그리고 효과가 있었다.

확실히 신곡으로 커버 영상 방향을 돌리니 해당 곡의 팬들이 가장 먼저 반응해주었다.

게다가 섬네일이 백설하의 얼굴이니, 한 번 보면 영상에 들어오지 않곤 못 배기지.

“이게 3,000을 넘네.”

또 기록 경신이다. 알고리즘의 선택이라도 받은 모양이다.

다른 영상은 조회 수 1,000 넘기도 힘든데 말이다. 일상 영상은 더 처참한 수준이고.

성필은 피곤했으나 눈을 감고 싶진 않았다.

가로 엔터 채널에서 가장 조회 수가 많은 영상으로 들어갔다.

[일본인이 배우는 한국사] 시리즈다.

리카는 한국사도 배우게 됐다. 손혜빈의 강력한 요청 때문이었다.

‘리카가 방송에 출연해서 말실수하면 큰일이잖아.’

한국인 아이돌 중에서도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잘못 말하거나, 역사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건드려서 역풍을 맞는 경우가 많았다.

리카는 더할 것이다. 그래서 한구인의 지도하에 한국사를 배웠다.

[에에?! 칠지도가 한국이 준 거였나요?! 게임 아이템인 줄 알았는데!]

[한국이 아니라 백제가 준 겁니다.]

[백제면 저거 맞죠? 제일 넓은 거!]

[그건 고구려입니다.]

[그럼 오른쪽?]

[신라입니다.]

[나라가 왜 이렇게 많아요?!]

“흐…….”

성필은 옅게 웃으며 댓글로 눈을 돌렸다.

리카가 귀엽다. 데뷔가 기대된다. 더 올려달라 등등. 좋은 반응이 대다수였다.

[한국사 선생님은 소속사 배우인가요? 이름 아시는 분?]

덩달아 한구인의 팬도 생긴 것 같지만, 딱히 이름을 알려줄 필요는 없겠지.

“아.”

갑자기 술기운이 확 돈다.

성필은 자기도 모르게 핸드폰을 손에서 떨어뜨렸다. 그리고 천천히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이게 요즘 성필의 일상이었다.

최근 소원했던 방송가 인맥들과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보려고 노력하는 삶.

하지만 가로 엔터의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

정말 인간적으로 만난단 기색만 풍겼다.

데뷔까지는 아직 멀었다. 벌써부터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니며 도움을 요청하진 않는다.

천천히, 조금씩 관계를 되살리고 더 높이 쌓아가면 된다.

“리카…….”

성필이 꿈속에서 리카를 보는 듯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내일도 힘들 것이다.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고 이야기를 들어준단 건 힘든 일이다. 그게 친한 몇몇이면 몰라도, 성필은 수십 명을 만나고 다녔다.

9년 동안 지속적인 연락과 만남으로 쌓아온 인연들이다.

오직 미래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이 순간만을 위해서.

“얘들아…… 힘내자…….”

성필은 잠꼬대를 몇 번 하다가, 이윽고 완전한 숙면에 빠져들었다.

기상까지 남은 시간, 3시간 42분.

* * *

오늘은 스튜디오를 두 프로, 즉 7시간이나 빌렸다.

대망의 ‘아니’ 녹음 날이기 때문이다.

멤버들은 의지를 다진 채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왔다.

녹음실 안에는 정지음과 작사가 이수연. 그리고 한구인, 손혜빈, 성필이 있었다.

홍규헌은 조금 있다가 온다고 했다. 그렇다고 녹음을 미룰 수도 없다.

스튜디오에서의 시간 1분 1초가 전부 돈이기 때문이다.

“시작합니다.”

녹음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아라야 그거 아니라고!”

정지음이 과몰입하고, 멤버들이 자신감이 없어진 것만 빼면 순조로웠다.

녹음이 한 시간 동안 진행됐을 때, 성필이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쉬다 하죠.”

휴식 시간은 5분으로 했다.

성필은 복도로 나와 텀블러에 물을 담았다.

서 있기 힘든 게 느껴졌다.

가만히 서 있는데도 무릎 쪽이 떨린다.

‘요즘 너무 무리했나. 비타민이라도 사서 먹을까.’

성필이 물을 다 받고 다시 녹음실로 돌아가려던 때, 갑자기 그의 시야가 빙글 돌았다.

또 빈혈인가 싶었는데, 왼쪽 어깨로 강렬한 충격이 전해졌다.

“어?”

쓰러진 건가?

“이사님!”

쓰러졌구나.

겁에 질린 리카의 비명으로, 성필은 자신의 상태를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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