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8화
석세스 엔터 윤상열 프로듀서.
전생에서 성필의 숙적이나 마찬가지인 인간이고, 회귀한 뒤에서도 그와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실패해서 석세스 엔터를 나와버렸다.
하지만 관계와는 별개로, 성필은 그에게 많이 배웠다.
“성필아. 너 ‘Next Floor’ 들어봤냐.”
“네, 들어봤죠.”
대형 기획사인 KS 엔터의 주력 걸그룹, 케이어스의 정규앨범 1집 타이틀곡이다.
“오늘도 열 번이나 들었어요. 이야, 뮤비 진짜 기막히지 않아요? 돈 엄청나게 쏟은 거 같은데 우리 회사도…….”
윤상열이 비웃음을 담아 혀를 찼다. 성필은 기분이 확 상해서 말을 멈추었다.
“또 뭐요. 내가 또 뭐 이상한 말이라도 했어요?”
“새꺄. 그거 뮤비 같은 거보다 곡에서 뭐 더 느낀 거 없냐?”
“곡이요? 뭐, KS 엔터답게 곡에도 돈 냄새 나죠.”
“그게? 푸하핳!”
윤상열은 이때다 싶어서 잔뜩 웃었다. 성필은 진지하게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릴까 고민했다.
“야. 내가 그거 카피 딴 건데 한 번 들어봐.”
“죽여버릴까…….”
“뭐?”
“아뇨. 형이 카피 같은 거도 따요?”
“나도 하지 그럼.”
’Next Floor‘의 카피가 재생됐다.
보컬이 빠져 있는 Inst 버전이었다.
성필의 표정이 점점 더 당혹으로 물들었다.
“이거 뭐예요?”
“제정신 아니지?”
“이게 이렇게 썰렁한 곡이었어요?”
풍성하게만 느껴졌었는데, 보컬이 빠지니 뭐 이딴 곡이 있나 싶다.
주가 되는 건 베이스와 드럼, 거기에 짧게 신스음이나 보이스찹이 들어간다.
“케이어스 걔들은 이거 듣고 박자 맞춰서 춤추는 거예요? 어디가 벌스고 코러슨지도 구별이 안 가겠는데?”
“그니까 제정신이 아닌 거지. 진짜 이거 아이돌 애들 갈아서 만든 거야.”
“뭘 위해서 이런…….”
“시대를 안 타는 곡을 만들고 싶었나 보지. 대단하네.”
성필은 윤상열이 순수하게 누군가를 칭찬하는 것을 굉장히 오랜만에 들었다.
“이게 왜 굉장한지는 알겠어?”
또 시작이네.
성필은 한숨을 쉬면서 그가 지식을 자랑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이건 말야…….”
* * *
“사용되는 사운드들은 전부 지극히 노멀해요. 그 노멀한 사운드를 최소한으로 변형해서 곡을 만든 거라고요. 멜로디 라인은 없고 베이스와 드럼만 사용해서요! 가끔 곡을 풍부하게 하려고 신스음을 쓰지만, 정말 가끔이에요. 기본적 사운드만 쓰니까 이 곡은 시대를 안 타요! 히트하면 정말 몇 년, 십 년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거예요!”
“…….”
홍규헌은 입을 다문 채 입술을 매만졌다.
‘얘가 이렇게 흥분한 적이 있었나?’
있다.
주로 멤버들과 관련됐을 때였다.
백설하나 장하양을 데려오자고 했을 적에, 성필은 홍규헌에게 강경한 어조로 나왔었다.
홍규헌이 짐짓 탐탁지 않은 기색을 보일 때, 성필은 부모에게 조르는 아이처럼 떼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 곡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그야 성필의 설명만 들으면 그러했다.
기본 사운드에 충실한 곡. 그렇기에 시대를 적게 탈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특색이 없다.
대체 어떤 형식으로 완성될지 감도 안 온다.
애초에 그냥 미완성곡 같았다.
“사장님과 누나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 이해합니다. 설하 씨도요. 멜로디가 곡의 얼굴이라면 이 곡은 얼굴이 없는 거니까요.”
사람들이 곡을 듣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중에서도 주로 멜로디와 사운드가 좋으면 꽂혀서 쭉 듣게 된다.
곡을 흥얼거릴 때도 가사보다는 멜로디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그만큼 멜로디의 역할은 중요하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얼굴이다.
사람을 처음 볼 때 얼굴을 보고 호감이나 비호감이 드는 것처럼, 곡도 멜로디에서 첫인상이 정해진다.
“멜로디가 버려진 대신 다른 장점이 생겼어요. 만약 이 곡을 써야 한다면, 저는 정말 쓰고 싶지만, 믿음이 필요해요.”
“무슨 믿음?”
“저희 멤버들에 대한 믿음이요.”
갑자기 자신들이 언급되자 멤버들이 의문을 표했다.
“이 곡에 채워지는 건 오로지 멤버들의 색깔이에요. 멤버들의 역량에 대한 믿음이 어지간히 없고는 쓸 수 없는 곡이에요.”
멜로디라는 얼굴이 없다.
그렇다면 그 얼굴이 되는 건 멤버들의 목소리와 보컬뿐이다.
멤버들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없고는 감히 채택하지 못할 곡이다.
“지음 씨.”
“네, 네.”
“이 곡을 저희한테는 소개하기 좀 그렇다고 하셨죠. 이유가 뭔가요?”
“…….”
말하기 힘들었다.
아니, 말할 수가 없었다.
이유를 알려준다면 불쾌해할 게 뻔했기에.
“저는 알 거 같아요. 이 곡을 소화할 수 있으리란 확신이 없어서죠.”
“…….”
“탑급 아이돌 정도 되는 개성이나 특색이 없고서야 곡을 채울 수 없을 테니까. 큰 기획사 정도 되는 지원이 없고서야 온전히 이용하기 힘들 테니까. 그렇죠?”
정확히 짚었다.
정지음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저는 믿어요. 애들이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그래서 이 곡을 꼭 쓰고 싶어요.”
긴 침묵이 회의실 안을 휘감았다. 홍규헌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성필을 응시했다.
성필도 지지 않겠단 듯 시선을 맞추었다.
이윽고 홍규헌이 지친 음색으로 말했다.
“……박 이사.”
“네.”
성필은 결연히 답했다.
정지음의 이 곡은 시대를 몇 년이나 앞서갔다.
제대로 현대에 적용할 수만 있다면 대히트도 꿈이 아니다.
멤버들의 첫 곡은 이게 아니면 절대 안 될 것만 같은 느낌이다.
이성적인 추론을 넘어선 직관으로부터, 성필은 확신을 가졌다.
어떤 말이 나오더라도 홍규헌을 설득할 생각이었다.
“일단 노트북부터 돌려드려.”
“……아.”
성필은 쭈뼛쭈뼛 정지음에게 노트북을 돌려주었다.
홍규헌이 정지음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키 차이가 30cm 정도라, 홍규헌은 목이 뻐근하도록 시선을 올려야 했다.
“지음 씨.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네에…….”
“그리고 너네들.”
부름을 받은 멤버들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한 번만 더 회의 훔쳐 듣거나 이 근처에 오면 가만 안 둬. 알겠어?”
멤버들이 일제히 ‘네!’라고 답했다.
“회의는 조금 있다가 이어서 하자. 분위기 너무 깨졌다. 쉬다가 돌아와.”
* * *
성필과 손혜빈은 휴식을 취하러 회의실을 밖으로 나갔다.
반면 홍규헌과 한구인은 남아 있었다.
“한 이사.”
“네.”
“너 그 곡에서 무슨 느낌 받았어? 아니, 느낌이라기보다 뭔가…… 자그마한 감상이라도 있었어?”
“심심했습니다.”
“그렇지. 곡이 심심하지.”
베이스와 드럼만 쓴 곡이라니?
드럼과 베이스를 중요시하는 D&B(Drum&Bass) 장르도 이렇진 않다.
미니멀리즘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기라도 했나? 솔직히 예술병 걸린 사람이 만든 것 같았다.
“그런데 그걸 만든 게 정지음이야.”
정지음은 유령 작가로 여러 곡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중에는 히트곡도 꽤 섞여 있어서,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허풍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분 만에 곡을 완벽히 카피 따는 것을 보니 진짜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정지음이 그 많은 히트곡들에 유령 작가로 참여했다고 친다면, 걔는 진짜야. 진짜 천재야. 어디에 어느 파트에 어느 정도 참여했는진 모르겠지만, 능력이 있으니 그만큼 시켰을 거 아냐.”
“그렇습니다.”
“……한 이사.”
“예.”
“넌 박 이사의 감을 믿어?”
“지금까지 믿어왔지 않습니까.”
“이번은?”
한구인이 얼핏 웃었다.
“모르겠습니다. 큰 결정이니까요. 저는 담이 작습니다. 곡이 정해지는 순간, 정말 되돌릴 수 없게 됩니다.”
“나는 말이지. 솔직히 박 이사 말 듣고 마음이 기울었어. 그런데 무서워. 저 곡은 그냥 백지야. 그 백지에 우리 애들의 색으로만 칠해야 하는데, 뭐가 나올지 모르겠어.”
“누구나 두려울 겁니다. 그 정도 돈이 걸려있다면 말입니다.”
두렵단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홍규헌은 맹수라도 마주한 듯이 심장이 떨려왔다.
정말로 곡을 선택하고 데뷔를 시켜야 할 때가 오니, 낭떠러지에라도 매달린 기분이었다.
“아버지랑 오빠들, 언니들은 내 입장이라도 아무렇지 않겠지?”
홍규헌과는 만지는 돈의 단위 자체가 다르니까.
“그분들도 이 순간을 뛰어넘었을 겁니다.”
“……그래. 한 이사. 만약 데뷔 계획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가 쓸 돈은 대략 얼마쯤이야?”
“적게 잡아도 5억 이상입니다.”
적게 잡아도 5억.
만 원이 오만 개다.
“이 곡 하나에 5억을 거는 거야.”
홍규헌은 고민에 빠졌다.
아니, 그건 고민보다 공황에 가까웠다.
5억이란 돈의 무게로 헤집어진 뇌 속에서 질문이 하나 튀어나왔다.
“내가 우리 애들만 믿고 5억을 투자할 수 있을까?”
정지음의 곡은 백지다. 그렇기에 멤버들의 색으로만 채워진다.
오로지 멤버들을 믿고서야 쓸 수 있는 곡이다.
그런데 멤버들을 그만큼 믿을 수 있을까?
믿고 있나……?
“구인아.”
“응.”
“이번에도 실패하면 어떡하지?”
한구인이 그녀의 옆에 앉아 손을 잡아주었다. 홍규헌이 손에 힘을 주어 온기를 갈구했다.
“넌 할 수 있어.”
* * *
“너 기획사 말고 마케팅 회사에 취직해. 프레젠테이션 개쩔게 하던데.”
“놀리지 마.”
성필이 부끄러운 태도로 담뱃재를 털었다.
“놀리는 게 아니라 진짜야 진짜! 넌 자존심 떨어질 때 오늘 일 생각하면 되겠다. 방금이 네 인생에서 제일 빛나는 순간이었을 듯.”
성필도 자신의 성격을 안다.
어느 순간 딱 꽂히는 게 있으면 급발진하게 된다.
분노도, 슬픔도, 사랑도, 기쁨도 그러했다.
이번에도 그러했을 따름이다.
“누나는 그 곡 어떻게 생각해?”
“뭘 어떻게 생각해. 작사 맡기고 안무 맡기고 녹음 들어가서 결과물 봐야 알겠는데. 우리나라 누구 데려와서 물어봐도 똑같이 답할걸. 확실한 비전이 있는 사람이면 또 몰라도.”
그 곡은 상자다.
상자 안에는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열어봐야 보물인지 쓰레기인지 알 수 있다.
그 상자를 여는 대가는 수억 원이다. 그리고 상자 안에 든 물건의 값어치를 결정하는 건 멤버들의 가능성이다.
“도박인가?”
“너한테는 도박이 아니지. 넌 확신이 있잖아.”
손혜빈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성필의 성대모사를 했다.
“저는 믿어요. 애들이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그만…….”
“그래서 이 곡을 쓰고 싶어요! 저는 애들을 믿어요오오오오!”
“그만하라고!”
“푸하하하핰! 대체 넌 흑역사가 몇 개냐? 너랑 같이 다니면 지루할 걱정은 없겠다.”
성필이 사납게 담배를 비벼껐다.
둘은 회사로 돌아갔다.
“우리 성필이 대장부다, 응? 아주 그냥 빠꾸가 없어. 자랑스러워 정말. 누구한테 배웠어? 누구한테 매니저 생활 배웠길래 이렇게 잘 컸어?”
“에휴. 누나한테 배웠다 왜. 누나가 스탭들한테 대드는 거 보고 배웠어.”
“아하하! 내가 잘못했네! 근데 너 그 말 했을 때 애들 눈빛 봤어?”
“그 말?”
“저는 애들을 믿어요오……!”
“아 제발 그만 좀 해. 나도 쪽팔리는 말 했던 거 알아.”
“크큭, 그래서 애들 봤냐고.”
“못 봤지. 사장님 보고 있었는데.”
“진짜 애들 다 눈에 하트 뿅뿅이었다?”
“하트는 뭔 하트.”
또 사람 놀리려고 과장하고 있네…….
* * *
멤버들은 1층 소파에 둘러앉아 있었다.
다들 넋이 나간 듯 바닥과 천장만 보았다.
“아이돌 곡이란 게 원래 다 그래요?‘
조아라가 침묵을 깨고 물었다.
대답해주는 이가 없었기에, 그녀는 아이튜브에 들어가서 아이돌곡 Inst를 쳤다.
하나를 골라 들어보니 조금 밍밍하긴 해도 멜로디도 있고, 나름 갖출 건 다 있었다.
보컬 없이 들어도 좋았다.
“그 곡이 이상하긴 하네.”
“…….”
멤버들은 저마다 고민 속에 빠져들었다.
성필이 정지음의 곡을 가지고 했던 말 때문이었다.
‘멤버들을 믿는다’는 말은 저마다의 가슴 속에 깊이 들어왔고, 해석은 저마다 달랐다.
“우리 이제 일어나자.”
장하양이 말했다.
“사장님이랑 이사님들 회의한다고 쉬면 안 되지. 연습하러 가자.”
“네, 맞아요. 연습해야 해요!”
리카도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박 이사님이 저희를 믿어주고 계시잖아요!”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가족에게 보내는 신뢰와 비슷한 급이었다.
부담스러울 만도 하건만, 리카는 오히려 기뻐서 의욕이 넘쳤다.
“아저씨가 그 말 하는 거 영상으로 찍었어야 했는데. 누구 녹음하거나 영상으로 찍은 사람 없어요?”
“없지. 그거 들으면서 어떻게 녹음할 생각을 해.”
여차여차 멤버들은 이전보다 훨씬 굳게 의지를 다졌다.
안 그래도 데뷔가 다가왔단 생각에 열심히 하고 있었으나, 이제 더 열심히 할 것이다.
“쌤?”
백설하는 여전히 앉아 있었다.
바닥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는 어두운 바다 같았다.
안에서 무언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쌤 아프세요?”
백설하는 뭐라 말하려다가 자꾸만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 부정적인 감정을 잔뜩 담아 목소리를 냈다.
“얘들아. 그…….”
백설하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냐.”
“쌤 분위기 타고 오글거리는 말 하려고 했죠? 말해요. 쌤도 아저씨처럼 레전드 영상 하나 남겨요.”
“아라야.”
장하양이 조아라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조아라는 뱀에게 휘감기기라도 한 것처럼 몸이 굳었다.
“그 영상 얘기 꺼내지 말라고 했지?”
“내가 잠시 정신이 나갔었나 봅니다. 살려주세요.”
“언니가 그 얘기 싫어하시잖아. 사람이 싫어하는 말은 하면 안 되지.”
“네…….”
조아라는 깡패에게 끌려 골목으로 들어가는 학생처럼 2층으로 사라졌다.
“쌤도 가요!”
“응.”
리카는 백설하와 팔짱을 끼고 콧노래를 불렀다. 아까 성필이 했던 말을 떠올리니 자꾸만 가슴속에 기쁨이 차오르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그토록 신뢰받고 있단 건 행복한 일이다.
반면 백설하의 눈동자는 여전히 어두웠다.
아까 그녀가 모두에게 하려던 말은 이랬다.
‘저렇게 우리를 믿어주고 계시잖아. 그런데 실패하면…….’
대체 얼마나 실망할까?
지금 성필이 지닌 신뢰가 반대로 튄다면, 그건 단순한 실망이 아니지 않을까?
작용 반작용의 법칙대로, 성필의 신뢰가 역으로 돌아오면 그건 증오나 혐오일지도 모른다.
이미 아이돌로서 실패한 적이 있는 백설하라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그녀는 해체를 선언하는 전 소속사 대표의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
경멸과 분노가 섞인 그 눈빛은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너희가 못해서 해체하는 데 누굴 탓해?’
그 말을 하는 게 성필이라 생각하면.
‘무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