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4화
손혜빈은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했다.
“좀 강하게 말하면 저건 보이그룹 전용 컨셉이고 퍼포먼스야. 걸그룹은 저런 서사를 못 써. 아니, 쓸 수야 있는데 사람들이 안 좋아해. 예를 들어줄게.”
손혜빈은 걸그룹과 보이그룹의 곡을 하나씩 틀어주었다.
걸그룹 곡의 제목은 ‘한 걸음씩’이었다.
보이그룹은 ‘내일도’였다.
“자. 둘 다 서사가 비슷하지? 풋풋한 청춘이 좋아하는 이성에게 다가간다는 내용이잖아. 그런데도 표현 방식이 전혀 달라.”
걸그룹은 수줍게 조금씩 다가간다면, 보이그룹은 서툴더라도 부딪히고 본다는 느낌이었다.
“이 둘이 바뀐다고 생각해봐. 어떨까?”
“괜찮을 거 같은데요.”
“응, 괜찮지. 하지만 두 곡의 성적은 더 낮았을 거야.”
세상 모든 것에는 서사가 있다.
서사는 국가, 민족, 인종, 문화권, 계층, 환경, 성별, 인종, 종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편하고 좋게 받아들이는 서사는 인간이 가진 특성에 따라 달라. 보편 서사라고 불러. 그게 가사의 흡입력에, 춤의 몰입도에도 영향을 끼쳐. 미국에는 흑인 래퍼가 대부분이지? 백인에게 힙합의 서사가 맞지 않기 때문이야. 만약 네가 ‘포기하지 않고 꿈을 쫓는다’는 내용이랑 격렬한 퍼포먼스를 바란다면 얘네보다는…….”
손혜빈은 또 다른 걸그룹의 뮤직비디오를 찾아주었다.
‘남들이 뭐라 하든 신경 쓰지 않고 내 갈 길 가겠다’는 내용의 곡이었다.
“네가 보여준 거랑 비슷한 내용이지? 그런데 표현 방식이 전혀 달라.”
손혜빈은 조아라의 눈높이에 맞춰 잘 설명해주었으나, 조아라는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해가 안 되는 게 아니라, 이해는 했지만 불만이 있는 것이다.
“내가 여자라서 못 한다는 뜻이잖아요.”
“맞아. 반대로 남자라서 못 하는 것도 있어. 남자 아이돌이 걸그룹 춤이나 노래 커버하면 ‘희화화한다’는 댓글이 달리고 그래. 사람들이 못 받아들이는 거야. 혼성 그룹이 점점 사라지는 건, 그냥 그룹 내부 사고 때문만이 아니라 남녀의 서사를 맞추기 어려웠던 것도 이유야.”
조아라는 자신이 생각하던 이상형이 부정당하자 한껏 울적해진 듯했다.
손혜빈은 조아라를 격려했다.
“나중엔 네가 바라는 걸 온전히 할 수 있을 거야. 예술가란 남들이 이해해주지 않아도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사람이잖아. 하지만 일단 실력을 인정받아야 해. 사람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거기에 자신의 메시지를 넣는 것부터 시작해야지.”
“……네.”
“다른 롤모델을 찾으란 뜻은 아니야. 롤모델을 늘려봐. 다른 걸그룹은 어떻게 성공했나. 왜 사람들이 그 그룹을 좋아하나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모든 아티스트는 시작부터 한계를 맞이해. 그건 성별일 수도, 신체일 수도, 환경이나 심지어 성격일 수도 있어. 그 한계를 늘려나가는 게 아티스트로서의 의무이자 목표야.”
조아라가 쓸쓸히 퇴장했다.
다음 멤버는 나오지 않았다.
손혜빈이 의아하게 여겨 뒤를 보자, 모든 사람이 놀란 듯 그녀를 보고 있었다.
“진짜 전문가 같다…….”
성필이 감탄했다.
* * *
멤버들의 의견을 모두 수합했다.
“조아라는 그렇다 치고 나머지 애들은…….”
리카는 6년 차 걸그룹의 몽환 컨셉 곡을 골랐었다.
어두운 드레스를 입은 채 고혹적인 퍼포먼스가 인상적이었다.
‘분위기로 씹어 먹는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이건 애들이 소화 못 할 거 같아.”
“데뷔 연차 쌓이면 시도해 볼 수 있겠네요.”
백설하는 최근 상한가를 치고 있는 7인조 걸그룹을 롤모델로 꼽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고, 인기 있고 퍼포먼스가 멋지기 때문이었다.
“얘들은 곡에 돈 진짜 많이 쓰겠지?”
“네. 진짜 돈 바른 곡이란 직감이 딱 와요. 사운드가 매번 새로워.”
장하양은 롤모델이 없다고 했다.
뭐든 시켜만 주시면 하겠다는데, 아직 아이돌에 관심을 가진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이해했다.
“이거 세 개를 다 섞으면 뭐가 나오냐.”
“고혹적이고 강렬하고 프로페셔널한…….”
“……그냥 아이돌이네.”
홍규헌은 지친 듯 의자에 몸을 기댔다.
‘뮤직 프로듀서가 있으면 더 쉬운데…….’
음악을 가져다 두고 생각하면 컨셉의 범위를 크게 좁힐 수 있다.
컨셉부터 정하려니 망망대해에 쪽배 하나 띄운 기분이었다.
“사장님.”
“어, 왜 박 이사.”
“메시지부터 생각해보면 안 될까요?”
“메시지?”
“네. 마지막에 애들한테 질문했었잖아요.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냐고요.”
그 나이대가 갖는 고민과 꿈, 감성을 말해보라고 했었다.
그랬더니 만장일치로 나온 단어가 있었다.
“꿈?”
“네.”
“꿈 좋지. 보통 데뷔 앨범에 그런 곡 꼭 하나씩은 들어가 있지. ‘우리는 힘차게 나아갈 거야’ 같은 느낌으로. 아까 조아라가 보여준 것도 걔들 첫 정규 앨범 수록곡 1번이었잖아.”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알아. 하아, 꿈이라. 그래. 컨셉을 처음부터 밀고 나갈 수야 있겠냐. 아티스트의 정체성은 계속 변화하는 건데. 그럼 메시지에 집중해볼까.”
“사장님.”
성필에 이어 손혜빈이 손을 들었다.
“백워드로 해볼까요?”
“거꾸로?”
“네. 컨셉이 먼저가 아니라 곡부터 구해봐요. 저희 기획사에서는 출시 아티스트 선정, 컨셉 설정, 곡 수급 순이긴 했는데요. 그건 프로듀싱 시스템이 체계화되어서 할 수 있던 거거든요.”
요컨대, 가로 엔터는 명확한 컨셉을 정해도 프로듀싱 과정에서 체계적으로 밀고 나가기 힘드니 아예 곡부터 구하잔 뜻이었다.
일리 있었다.
홍규헌도 이전의 그룹을 만들 때는 뮤직 프로듀서가 있어서 곡을 먼저 완성했었다.
“그럼 진짜 중구난방으로 곡을 받게 될 텐데…….”
지금도 중구난방이긴 하다.
사실 이미 데뷔한 어느 특정 그룹을 목표로 삼으면 일사천리로 밀고 갈 수 있으나, 그건 가로 엔터의 자존심이 상해서 안 된다.
남을 베끼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래. 곡부터 구해보자. 그럼 퍼블리셔에 연락을…….”
회의는 곡 의뢰와 수급 문제로 넘어갔다.
* * *
조아라는 연습이 시작되기 전, 홀로 연습실로 와서 아이튜브 영상을 찾아보았다.
이전에 모두의 앞에서 자랑스레 소개했던 보이그룹, 시에이스의 ‘Astronaut’였다.
엄청난 난이도의 퍼포먼스다.
격렬한 춤을 추면서 라이브까지 완벽히 소화한단 점에서 그랬다.
마지막 하이라이트에서 폭죽이 터지며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르는 부분에선 소름까지 돋았다.
물론 조아라가 가장 눈여겨보는 부분은 댄스였다.
오랜 시간 준비했을 게 분명한 군무였다.
‘우리가 하면 이런 느낌이 안 산다고?’
조아라는 일어나서 ‘Astronaut’를 따라 추었다.
질리도록 보아서 눈에 익어 있었고, 몇 번 카피도 했던 터라 물 흐르듯 출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껏 단순히 카피했던 때와 달랐다.
혼신을 다해서 추었다.
표정과 분위기도 맞추었다.
확실히, 느낌이 안 산다.
‘군무니까 혼자 하면 당연히 느낌이 안 살지.’
하지만 그것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작아.’
조아라는 몸이 작다.
물론 여성 평균보다는 크다. 하지만 남자와 비교하면 작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시에이스의 멤버들은 모두 장신이었다.
팔을 한 번 휘둘러도 조아라가 하는 것과는 전혀 달리 보였다.
조아라는 발꿈치를 들었다.
키가 조금 커졌다.
그 상태에서 다시 추었다.
‘아까보단 나아.’
팔을 휘두를 때는 타점을 더 강하게 때렸다.
근육에 힘을 더 주었다.
어떻게든 그들의 춤을 모방하려고 노력했다.
이미 결과는 알았다.
‘불가능해.’
여자가 남자의 춤을 완벽히 모방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건 춤을 오래도록 배워왔던 조아라가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저 느낌만은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영상 속 모든 관객이 환호하는 것처럼, 저 강렬한 무대를 재연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가까워지려 할수록 멀어지는 듯했다.
‘한계를 넓혀가는 게 아티스트로서의 의무…… 라고 했지. 성별이란 한계를 넘을 수 있나?’
신체 자체에서 오는 한계다.
그로부터 모든 문제가 파생된다.
조아라는 인상을 찌푸렸다.
키가 더 컸다면.
팔과 다리가 더 길었다면.
골반이 좁았다면, 가슴이 들어갔다면.
춤에서의 ‘선’을 더 완벽히 구현할 수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조아라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보았다.
가슴부터 시작해서 몸을 한 차례 쓸었다. 그녀의 손은 골반에서 걸렸다.
조아라의 스승인 백민정은 말했었다.
‘춤은 인간의 신체가 가진 아름다움을 극대화시켜 표현하는 거야.’
그리고 남자와 여자가 가진 아름다움은 다르다.
조아라는 그 말이 싫었다.
그녀가 목표로 하는 댄서는 미국의 남자 댄서였다. 그가 나왔던 ‘댄싱 스타’란 프로그램을 수십 번이나 돌려보았다.
그런데 백민정이 했던 말은 조아라가 자신의 우상처럼 될 수 없다고 말하는 듯했다.
초등학생 때는 백민정에게 화를 내기도 했지만, 머리가 굵어질수록 천천히 납득해버렸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평평했던 몸에 굴곡이 나타났으니까.
그게 오늘에 와선 완전한 이해로 다가왔다.
‘다르구나.’
그렇다면.
‘그 다름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지?’
예나 지금이나 조아라의 목적은 댄서였다.
목표가 아이돌이더라도 목적은 바뀌지 않는다.
조아라는 다시 한번 가슴과 골반을 쓸었다.
‘이게 아름답게 보이나? 그럼 어떻게 해야 더 아름답게 보이지?’
단순히 가슴을 털고 골반을 튕기는 게 전부가 아닐 것이다.
그건 심미적 감동을 자아내는 게 아니라 단순히 성욕을 불러일으키는 데 불과할 것이다.
조아라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어느 책에 꽂혔다.
조아라는 1층에 비치된 책꽂이로 갔다. 한구인의 건의로 설치된 것인데, 대부분 한구인이 가져온 책밖에 없었다.
어느 날 한구인의 책 설명회가 열렸는데, 그때 그가 해줬던 이야기가 조아라의 머릿속에 떠올렸다.
‘이건 미학에 관한 책입니다.’
‘미학이 뭔데요?’
‘아름다움의 본질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이 책은 철학적인 면보다 미술 쪽을 조명하고 있으니 여러분이 읽기에도 더 적합…….’
‘다음.’
‘……다음으로 소개해 드릴 책은…….’
“이거다.”
조아라는 ‘미학 입문’을 집었다.
그곳에는 르네상스 시대, 여성의 신체를 표현한 수많은 그림이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설명도.
“신체의 아름다움(美)이란…….”
조아라는 책을 읽었다.
* * *
세상에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못 하는 것도 있다.
그중 하나가 작곡가에게 곡을 받는 것이다.
유명 작곡가는 성공이 불확실한 중소기업에 곡을 주고 싶지 않아 한다.
‘허탕만 얼마나 치고 있는지 모르겠네.’
성필은 인맥을 동원해서 어떻게든 이름난 작곡가와 만나려고 했다.
그래, 만나기는 했지.
우연을 가장하고 마주치거나, 아예 사적인 자리에 합석하거나, 작업실 앞에서 기다리거나.
온갖 방법으로 만나고 진지한 자리도 몇 번 정도 가져보았지만, 돌아오는 답들이라곤 담백했다.
‘저랑은 스타일이 안 맞는 거 같네요.’
이 정도로 말해주면 다행이다.
‘죄송합니다.’
딱 잘라서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성필은 새삼 의지를 잃거나 하지 않았다.
이런 일이야 수없이 겪어왔으니까.
“성필이 오늘도 수고.”
손혜빈은 사무실 자리에 앉아 헤드폰을 꼈다.
그녀는 뮤직 퍼블리셔로부터 받은 데모곡들을 살피고 있었다.
‘누나도 고생하고 있겠지.’
손혜빈도 곡 수급 때문에 여러 사람을 만나고 다니고 다녔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일을 부끄러워했다.
SMS 엔터에 있을 때는 협조를 받을 때 고개 따위 안 숙여도 됐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뭐라도 더 해주고 싶어서 안달이었지.
하지만 배경이 가로 엔터로 바뀌자마자 대우가 확 바뀌니, 손혜빈은 꽤 곤란을 겪고 있었다.
“누나도 수고해.”
성필은 오늘 만나기로 한 작곡가, 권순영의 작업실을 검색해보았다.
성필은 권순영 작곡가의 곡을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았다.
단지 대중이 좋아하는 곡을 잘 만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건 귀중하고 대단한 능력이다.
다만 성필의 마음을 울리지는 못했다.
‘의외로 가깝네.’
권순영 작곡가는 지금까지 만났던 이름 있는 작곡가 중에선 가장 우호적이었다.
어쩌면 오늘은 괜찮은 곡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핸드폰을 보며 권순영의 작업실로 가는 길을 외우던 중, 앞에 그림자가 졌다.
조아라가 있었다.
“아저씨.”
“응?”
갑자기 조아라가 춤을 추었다.
딱 한 동작만.
상체를 옆으로 빼고 골반을 강조한 동작이었다. 그 상태로 멈춰서 조아라가 물었다.
“성욕이 생겨요?”
“너 돌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