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8화
“의외로 빨리 모아졌네요.”
[하하, 그렇죠?]
프로젝트 포유 제작진 대부분이 발품을 팔면서 연습생을 모은 덕분이었다.
어떻게든 이름값 있는 기획사의 연습생을 모으기 위해 자존심까지 다 버리고 탐색에 나선 결과, 이 시점에 이르면 그럭저럭 괜찮은 연습생 풀을 모으게 된다.
정재성 작가는 숨길 수 없는 피곤함을 풀풀 풍기며 말을 이었다.
[따로 미팅은 필요 없어요. 합숙의 시작이 곧 촬영과 방송이 시작되는 기점이거든요.]
“알겠습니다.”
방송에 가로 엔터가 개입할 여지는 없었다.
오로지 연습생만 보내고 손가락만 빨며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이전 연습생 서바이벌과 비슷했으나, 기획사의 개입을 원천차단하려는 의지가 사뭇 돋보인다.
조작에 ‘조’ 자도 나오지 않게 하려는 노력 때문일까.
[더 궁금한 거 있으신가요?]
“없습니다.”
[그럼 알려드린 날까지 해당 장소로 와주시면 되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리카에게 그 소식을 알려주었다.
“드디어 제가 텔레비전에 나오는군요!”
“잘해야 해.”
“알아요! 연습생이 나오는 방송이란 방송은 전부 봤어요! 눈에 띌 수 있는 행동이라면 뭐든 할게요!”
“부정적인 건 빼고.”
리카는 열의가 넘쳤다.
성필에게 ‘회사의 운명이 네게 달렸다’는 말을 듣곤, 리카는 전장에 나서는 사무라이처럼 의지의 칼날을 벼려냈다.
“오늘부턴 나랑 뭐 하나 더 하자.”
“뭐든 할게요!”
“방송에서 하면 안 될 행동. 하면 좋은 행동. 그리고 어떤 모습이 좋게 보이는지 그런 거 같이 연구할 거야.”
“재밌겠다!”
“그 전에 수업 들어야지.”
“재밌겠다…….”
음악사 수업은 매주 잘 진행되고 있었다.
이전 주에는 후기 낭만파 음악을 끝으로, 한구인의 신나는 클래식 여행이 끝났다.
오늘부터는 성필이 교사가 된다.
“너무 풀 죽은 거 아니야? 내 수업은 현대니까 네 감성에 맞을 수도 있잖아.”
“100년 전 재즈 음악 같은 거 들고 오시진 않겠죠?”
“…….”
성필이 교실로 들어가자 멤버들은 수다를 멈추었다. 그녀들의 눈에는 희미한 기대가 깃들어 있었다.
클래식의 늪에서 빠져나온단 것만으로도 학습 동기를 유발하는 데는 충분했다.
물론 그녀들이 클래식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몇 달이나 클래식을 들어왔으니 질릴 만도 했다.
“한 이사님만큼 잘 가르치진 못하겠지만 잘 부탁한다.”
소소한 박수가 쏟아진 뒤, 성필은 보드마카를 잡고 화이트보드에 글자를 썼다.
한 단어 썼을 뿐인데도 리카가 반응했다.
“◯스!”
“어, 그래. 맞아.”
“◯스!”
“그만해애…….”
백설하가 화끈 달아오른 얼굴로 리카를 제지했다.
성필은 글자를 다 쓰고 물었다.
“다들 영어 잘 배우고 있나 확인 한번 해볼게. 이거 읽을 수 있는 사람.”
“섹…….”
“리카 말고. 아라가 한번 읽어볼래?”
“이거 성희롱이에요. 한의사님한테 이를 거야.”
“…….”
“제가 읽을게요.”
장하양이 혀를 꼬아가며 화이트보드에 쓰인 단어들을 읽었다.
“◯스 앤 드러그스 앤 로큰롤.”
“오케이.”
“아하하.”
“이 문장이 뜻하는 나라가 있는데 맞춰볼 사람?”
조아라가 손을 들었다.
“일본.”
“난데(어째서)?! 일본은 저렇게 문란하지 않아!”
“음…… 과거의 일본.”
“인종차별이야!”
“그럼 리카가 말해볼래?”
“우후후, 쉽죠 이런 거. 아메리카!”
“땡.”
“에?”
대부분의 멤버가 미국이라 생각하고 있던 터라 성필이 ‘땡’이라고 하자 당황이 퍼졌다.
쉽사리 다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또 조아라가 손을 들었다.
성필은 무시했다. 하지만 조아라가 계속 손을 들었기에 그녀를 지목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
“땡.”
“쓰읍, 그럼 모르겠는데.”
“그냥 묻는 건데, 독일이라고 답한 이유가 뭐야?”
“독일이 그렇게 하드하다던데.”
안 물어볼걸.
“하드하다가 뭐야? 어렵단 뜻이야? 두껍다?”
“뭐, 대충 거칠단 뜻이에요.”
“독일이 거칠어?”
“숙소에서 말해줄게요.”
그만해.
하양이한테 그런 거 가르쳐주지 마.
“크흠. 답은 영국이야.”
“영국은 신사의 나라잖아요! 박 이사님이 거짓말한다!”
성필은 ‘◯스 앤 드러그스 앤 로큰롤’이란 록 음악을 들려주었다.
현대의 감성으로 듣기에 썩 좋은 음악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녀들이 록에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록은 영미권에서 시작돼서 전 세계로 퍼져나갔어. 전통적 질서에 대한 도전, 젊은이들의 문화로 각광을 받았지. 록은 저항의 상징이었어. 흔히 우리가 가진 로커에 대한 이미지가 과격한 것도 기원이 이래서야. 당시에 젊은이들 사이에 퍼진 문화는…….”
“푸흡.”
“……문화는.”
“크흨.”
“아라야. 왜. 뭐가 웃겨?”
“아니, 죄송, 아저씨가 젊은이라고 말하는 게 웃겨서.”
보드마카 이마에 던져버릴까.
“2차 대전이 끝나고 이성에 대한 신뢰가 허물어졌어. 젊은 사람들은…….”
“킄.”
“……기성세대가 만든 문화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지. ‘우리는 평화롭게 자랐지만, 우리가 물려받은 세계를 편치 않은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말에 당시 젊은 사람들의 생각이 다 담겼지.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으로 생겨난 문화가 반권위주의, 마약, 반전(反戰) 운동, 환경 운동, 자유로운 성관계, 성해방 운동 등등이 있어.”
성에 관한 내용이 나오니 멤버들이 집중하는 게 보인다.
원래 이게 주가 아니지만, 멤버들이 관심 있어 하니 조금 이야기를 더 해줘야겠다.
“이건 프랑스 얘기지만, 어느 대학에서 남학생들이 여학생 기숙사를 점거한 사건이 있었어.”
“문란해요!”
“학교가 남, 여 기숙사를 분리하려고 했거든.”
“분리된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뭐, 옛날에는 붙어 있었겠지.”
“문란해요!”
“유럽 조상님들이 너흴 보면 한탄하겠다. 아무튼 그 사람들 생각은 이랬겠지. ‘남자랑 여자랑 뭐가 달라?’. 어때, 저항 정신이 느껴지지?”
“……다르지. 그런 이유로 여자 기숙사를 점거해요? 아무리 봐도 딴생각 있는 거잖아.”
조아라는 프랑스인들의 불타는 저항 정신에 동의하지 못했다.
“그 저항 정신의 음악적 표현이 록이었던 거야. 자, 음악 하나 또 들어보자. 너희들한테도 익숙할 거야.”
“비틀즈!”
반주를 듣자마자 리카가 반응했다.
한구인이 영어 수업 자료로 질리도록 썼기에, 멤버들은 비틀즈 곡들을 거의 다 외우다시피 했다.
“이 비틀즈의 활동 시기와 맞물려 영국 문화는 세계적인 전성기를 맞아. 이른바 브리티시 인베이전이지. 당시 젊은 사람들의 감성에도 맞아서, 정말 전 세계로 록이 퍼져나가게 돼. 영국이 문화로써 세계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였어.”
성필이 멤버들과 눈을 맞추었다.
“케이팝도 이렇게 될 거야. 난 너희들이 그 최전선에 서길 바란다.”
성필의 수업은 재밌었다.
음악과 이야기가 적절히 섞여 멤버들의 흥미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백설하는 수업을 들을수록 어깨가 무거워졌다.
‘이사님은 우리한테 어느 정도 수준까지 바라시는 거지……?’
그저 인기 있는 아이돌 정도가 아닌가?
끝나고 교실을 나가는 순간까지, 백설하는 가볍게 성필의 수업을 넘길 수 없었다.
몇 번이나 그의 말을 곱씹고 고민을 거듭했다. 그럴수록 가슴이 무거워졌다.
밤이 되고 멤버들이 퇴근할 시간이 찾아오자 한구인은 회사를 순회했다.
불이 안 꺼진 곳은 없나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다 교실까지 이르렀다.
화이트보드를 본 한구인이 눈을 비볐다.
[◯ex and Drugs and rock'n'roll]
“……???”
뭘 가르친 거지?
* * *
“오예. 오늘은 제가 먼저예요!”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리카가 샤워하러 쏜살같이 달려갔다.
남은 멤버들은 거실에 축 늘어졌다.
매일 힘들게 트레이닝을 받는 터라, 숙소에 와서도 무엇을 할 기력이 없었다.
“치킨…… 시켜 먹을래요?”
조아라가 조심스레 제안했다.
아무도 응답해주지 않았다.
“진심 아니었어요.”
조아라는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다가 힘이 빠져서 가만히 엎드렸다.
“얘들아. 오늘 박 이사님 수업 있잖아.”
“◯스 앤 드러그스 앤 로큰롤. 예이.”
“그거밖에 기억 안 나?”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을 상상해봐요오, 흐으응.”
존 레논의 ‘이매진‘이란 곡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조아라는 힘없이 그것을 흥얼거리다가 또다시 바닥을 굴렀다.
“한 이사님 수업 때도 느꼈지만, 우리한테 바라는 게 큰 거 같아. 그냥 아이돌 정도가 아니야.”
“그렇지 않을까요? 연습도 엄청 많이 하잖아요.”
“연습도 그렇지만…….”
가로 엔터는 멤버들에게 아낌없이 지원해주었다. 백설하가 전에 있던 기획사에서는 꿈도 못 꿔봤을 대우였다.
피부와 헤어 관리는 물론 마사지에다가, 심신과 유연성 단련이라면서 요가까지 배운다.
나머지 트레이닝은 말할 것도 없다.
식단도 알아서 해결하거나 적당한 음식도 아니고, 한구인이 정성 들여 만든 음식으로 제공해준다.
거기에다 영어, 음악사 수업도 있다. 추후에는 일본어도 배울 것이라 한다.
힘들긴 해도, 이 정도면 호사스럽다고 말할 수준의 대우였다.
대형 기획사가 아닌데도 말이다.
“가로 엔터 정도가 보통 아니었어요? 연습생들 힘들단 게 이래서 힘든 거 아닌가?”
“아니야. 절대 아니야. 우리 회사가 이상한…… 아니. 좋은 거야.”
“투자를 많이 하니까 바라는 수준도 높겠네요.”
“응. 하양이 말대로야. 엄청나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높을 거야.”
한구인은 멤버들이 현대의 ‘모차르트’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오늘의 성필은 ‘비틀즈’를 예로 들었다.
정말 그 정도 수준을 바라는 것인가?
음악사에 한 획을 긋는 아티스트가?
“나중에 작곡도 배울 거라고 하셨었지…….”
“예전에 박 이사님 목표가 최고의 아이돌을 만드는 거라고 하셨어요.”
“최고의 아이돌?”
그냥 들어도 숨이 턱 막히는 목표인데, 성필이 말했다고 하니 무게감이 남달랐다.
애초에 아이돌이란 게 그 정도 수준의 아티스트로 성장할 수 있는 건가……?
“다 씻었어요!”
리카가 위풍당당히 등장했다.
“야 이시카와 리카.”
“응?”
“옷 입고 나오라고 몇 번이나 말해. 안 되겠다. 규칙으로 추가해야겠어. 언니들 동의하죠?”
끄덕 끄덕.
“에에, 아라쨩 히도이(너무해). 같은 여자인데 뭐 어때.”
“뭐 어때? 하아, 진짜 넌 안 되겠다.”
“때, 때리려구?”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놀이를 체험시켜줄게.”
리카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 그건 규칙 위반했을 때만 하기로 했잖…….”
“내 마음에선 너 삼진아웃이야.”
“나 씻을게.”
백설하가 용인해준다는 듯이 자리를 떴다. 장하양은 벽을 보고 돌아누웠다.
리카가 오들오들 떨고 있는 중, 조아라가 베개를 들고나왔다.
“에잇!”
조아라가 리카를 바닥에 엎드리게 한 뒤 베개로 머리를 덮었다.
그리고 저항이 불가능한 리카의 정수리에 약하게 딱밤을 날렸다.
“꺄아악! 다스케떼(도와줘)! 성추행이야!”
“또 할 거야 안 할 거야?”
“안 할게요! 안 할게!”
“이번엔 믿어도 돼?”
“으응…… 풀어줘어…… 가슴 눌려서 아파…….”
“괘씸하네.”
“아야!”
리카는 풀려나자마자 옷을 입었다. 그리고 힘들어서 가만히 앉아 있는 조아라에게 달라붙었다.
“아라쨩 화난 거 아니지?”
“다음부터 그러지 마. 이번까지 합치면 네 번이나 말한 거잖아. 다음엔 이렇게 안 끝나.”
“어떻게 할 건데?”
“화해 의자까지 갈 거야.”
화해 의자란 성필이 지정해준 대화 장소였다.
서로 눈을 보면서 손을 맞잡고 불만을 말하는 것이다.
“나 진짜 화날 거 같으니까.”
“으, 응. 미안. 내 몸을 그렇게 싫어하는 줄 몰랐어. 고멘(미안)…….”
“나도 때려서 미안해.”
“아냐. 안 아팠어. 딱밤이잖아.”
조아라가 리카를 안아주었다.
* * *
가로 엔터 사람들이 리카를 배웅하기 위해 회사 앞으로 나왔다.
리카는 힘차게 경례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아프지 마. 건강하게 지내. 잘해야 해. 방송 씹어먹어 등등.
여러 격려의 말이 나왔다.
리카는 환히 웃으면서 답하다가 갑자기 얼굴이 일그러졌다.
“네, 다녀오.”
일그러졌던 얼굴이 펴졌다가 금세 울상으로 바뀌었다.
“다녀오, 흑…….”
“야.”
조아라가 리카를 박력 있게 안았다. 리카는 조아라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리카의 키가 더 컸기에 조아라가 슬쩍 까치발을 들어야만 했다.
눈치 있는 리카는 살짝 쪼그렸다.
“울지 마. 100일 뒤엔 보잖아. 편지 보낼게. 방송도 계속 보고.”
“우웅. 고마워 아라쨩. 머리카락 한 가닥만 뽑아줄래?”
“부적으로 쓰게? 좀 기분 나쁜데.”
“먹으려구. 머리카락은 위장에서 안 녹는대. 계속 함께 있…….”
“꺼져.”
조아라를 시작으로 리카는 멤버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가 포옹했다.
“쌤. 저 꼭 보컬 평가 1위 받고 올게요.”
“할 수 있을 거야. 힘내.”
백설하는 리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줬다.
“언니. 제가 빛나는 모습 꼭 봐주세요. 카메라에 대고 항상 손하트 날릴게요. 받아주셔야 해요.”
“응. 본방사수할게.”
장하양은 리카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리카는 울먹임을 그치고 떠나려 했다.
“리카. 나는 안 안아줘?”
홍규헌이 말했다.
리카는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도도도도 뛰어가서 안겼다.
“너 키 왜 이렇게 크…….”
“사장님! 저 꼭 회사를 일으킬게요! 제가 꼭꼭 우승해서 가로 엔터를 살릴 거예요!”
“아직 안 망했…….”
“응원해주세요!”
홍규헌의 품에서 벗어난 리카가 한구인을 보았다. 한구인은 악수하려는 듯 손을 내밀었다.
어림도 없지.
바로 포옹했다.
“리카 씨 너무 강하게 안지 마십…….”
“한 이사님이 해준 음식 그리울 거예요. 한 이사님이 하시는 재밌지만 쓸모없는 지식도요. 한 이사님의 극존칭도, 전부 다 그리울 거예요. 이사님이 주신 책으로 자기 전마다 공부도 꼭 할게요.”
“……다녀오십시오.”
다음은 성필이었다.
리카는 성필의 가슴팍에 눈물을 닦았다.
“너 일부러 이러냐?”
“이 옷 빨지 말고 가지고 계세요. 제가 생각나면 이 눈물 자국을 봐주세요.”
“참 고맙다. 차라리 네 물건을 하나 주지 셔츠에 눈물을 닦냐.”
“이사님 우세요?”
“아니…….”
“울잖아요오…….”
“누가 보면 군대라도 가는 줄 알겠네.”
조아라가 핀잔을 주어도 둘은 울음을 그칠 줄 몰랐다.
“이번엔 진짜 진짜 다녀오겠습니다!”
리카는 눈물을 걷어내고 다시금 힘차게 경례했다. 그녀가 차 조수석에 탄 뒤, 성필이 운전석에 탔다.
둘 다 방금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 눈물을 먹었다.
“2시간 동안 또 같이 있어야 하는데 괜히 사람 울리고 있어…….”
“2시간밖에 못 있어요? 힝…….”
50분 뒤.
두 사람은 어색한 공기 속에서 앞만 보았다.
“……아까 일 없던 걸로 할래요? 어색하네요.”
“그러자. 휴게소 들러서 뭐라도 먹을까?”
“좋아요!”
잠시 후, 두 사람은 휴게소에서 핫도그와 밤빵을 사 먹었다.
“거기 가면 간식도 안 주겠죠?”
“아마 그러겠지. 나도 자세한 건 몰라.”
“매일 편지 써주실 거죠? 저 기다릴게요. 안 오는 날엔 잠도 안 잘 거예요.”
“밤 좀 새겠네.”
“진짜 안 써주실 거예요? 혼또니(정말로)?! 아앙, 써줘요! 써주세요! 저 외로워서 도망갈 거예요! 도망가서 이사님 집에 쳐들어갈 거예요!”
“알겠으니까 그만 흔들…….”
주차장, 성필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잡혔다.
“돌아버리겠네.”
한 남자가 차 본넷을 연 채 욕설을 지껄였다.
그 옆에는 리카 또래의 아이가 세상 다 산 얼굴로 쪼그려 앉아 있다.
“경섭이?”
짜증으로 한껏 찌푸린 얼굴의 남자는 성필을 보더니 눈이 솥뚜껑처럼 커졌다.
“성필 형?”
‘성필 형’이란 말에 소녀도 성필을 보았다. 그녀는 경섭이라 불린 남자보다 더 놀랐다.
“티, 팀장님이다, 대박.”
리카가 성필을 보며 불안하게 물었다.
“팀장님이란 게 무슨 소리예요? 이사님은 이사님이잖아요.”
“……내 전 회사 동료랑 연습생이야.”
석세스 엔터테인먼트 매니저, 민경섭.
그리고 연습생인 신아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