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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57화 (57/760)

#057화

곧 있으면 장하양의 첫 오전 연습 시간이 끝난다. 초조하게 10시가 되길 기다리며 2층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10시가 되자 2번 연습실의 문이 열리며 장하양이 밖으로 나왔다.

성필은 신경 쓰지 않는 척 소파에 앉아 있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다리를 떨었다.

터벅 터벅 터벅.

‘오나? 이쪽으로 오나?’

터벅 터벅 터벅.

1층 휴게실로 물을 마시러 왔던 장하양은 다시금 2층 연습실로 올라갔다.

“…….”

창문 밖으로 세차게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보였다.

‘나는?!’

왜 나만 안 주지?

그때 문득 옛날에 장하양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사님이랑 있으면 긴장돼서 잠이 깨거든요.’

‘내가 어색하면 말을 하지 그랬냐. 앞으론 한 이사님이랑만 다니게 해줄까?’

‘아하하, 그래 주실래요?’

그땐 그저 농담인 줄 알았지만, 장하양은 이후로도 비슷한 느낌의 말을 해왔다.

‘이사님이랑 있으면 긴장되니까요.’

정말, 진짜 그냥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어?’

그래서 선물도 안 주는 거야?

묘하게 섭섭하다.

아니, 그냥 섭섭하다.

당장 창문을 깨고 밖으로 뛰쳐나가 세상 사람들이 모두 듣도록 소리 지르고 싶었다.

‘이건…… 이러면 안 되는데…….’

선물이란 게 직장에선 민감한 부분이다.

선물을 주려면 전체에 돌리는 게 기본이다.

못 받은 사람이 기분 나쁜 건 물론이고, 구성원들 사이에서 잡음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기획사에선 막대 과자의 날이나 화이트데이 등등에 선물교환을 금지하기도 한다.

안 그래도 기 싸움이 있는 연습생 사이에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거면 모르겠는데, 의류는 너무 눈에 잘 띄잖아.’

만약 선물을 못 받은 대상이 멤버 중 한 명이었다면 성필이 홍규헌에게 보고했을 것이다.

그리고 장하양을 불러서 그러면 안 된다고 충고했겠지.

문제는 그 대상이 성필이란 것이다.

‘이걸 문제 삼으면 내가 선물 못 받은 게 문제라고 말하는 게 되잖아.’

전생의 관록까지 다 더해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모를 상황이다.

뭣보다 장하양에게 어떤 의미로든 꺼려지고 있단 게 충격이다.

“고민 있으세요?”

성필이 생각하는 사람 포즈로 몇 시간이나 같은 자리에 있자 백설하가 말을 걸어주었다.

역시 이럴 때는 백설하에게 상담하는 수밖에 없겠지.

“아 그게…….”

상황을 말해주려던 성필은 그녀의 패딩 주머니에서 삐져나온 털장갑을 보곤 입을 다물었다.

백설하는 성필의 시선을 느끼곤 헤실헤실 웃었다.

“하양이가 줬어요. 밤마다 항상 뜨개질했었거든요. 미안하고 고맙기도 하네요.”

“하양이가 멤버들을 잘 챙기네요.”

“정말 그래요. 요즘 말도 없고 그러길래 걱정했는데, 뜨개질로 이거 만드느라 조금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대요. 꼭 크리스마스 시기에 맞추고 싶었다나. 힘들면 쉬엄쉬엄했어도 됐는데.”

“하하…….”

“아, 죄송해요. 먼저 말씀하려고 하셨죠.”

“설하 씨가 왜 프리사이즈 옷 자주 입는지 궁금해서요.”

“……그거 때문에 몇 시간 동안 고민하신 거예요?”

백설하는 부끄러워하면서 허둥댔다.

그러더니 작게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란 답을 내놓았다.

음, 그렇구나.

“구, 궁금한 거 있으면 그냥 물어보세요. 그렇게 고민 안 하셔도 돼요. 이상하게 안 생각하니까요.”

“감사합니다.”

성필은 더 우울해졌다.

저녁이 됐다.

“이사님. 저 오늘 몸이 안 좋은 거 같은데 일찍 숙소에 들어가 봐도 될까요?”

장하양이 조퇴를 선언했다.

저녁에 가는 게 무슨 조퇴냐 싶지만, 가로 엔터의 공식 트레이닝과 자율 연습 시간은 10시까지다.

그야말로 고3이나 다름없다.

“병원 갈까?”

“아니요. 쉬면 나아질 것 같아요.”

성필은 홍규헌에게 허락을 받고 장하양을 데려다주려고 했다.

오늘은 한구인이 귀가 담당이었기에 그가 한다고 했으나, 성필이 사양했다.

“일하다가 오셨잖아요. 제가 할게요.”

요즘 한구인은 바쁘다.

과거 연습생 탐색 때의 성필과 비슷했다.

반면 요즘 성필은 한가했다.

“아닙니다. 정해진 건 지켜야죠.”

성필은 직업의식 투철한 한구인을 억지로 소파에 앉혔다.

결국 장하양을 데려다주는 건 성필이 됐다.

그녀는 여느 때나 다름없이 즐겁게 성필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웃는 것도, 라디오를 돌리는 것도, 가끔 창밖을 바라보는 것도 평소와 똑같았다.

성필은 장하양을 향해 어떻게 운을 떼야 할지 고민했다.

‘왜 나한테만 선물 안 줘?’

아니, 이건 강요 같지.

‘애들한테 장갑 줬더라. 사장님이랑 한 이사님한테도.’

은근한 협박 같다.

‘나한테는 안 줘……?’

이건 비굴하고.

성필은 깊게 숨을 쉬고, 그냥 떠오르는 말을 뱉기로 했다.

“하양…… 아?!”

“어?”

갑자기 장하양이 코피를 쏟았다. 그녀는 당황하면서 코피를 손으로 받았다.

“어, 어어? 어?”

“앞으로 몸 기울이고 턱 들어! 코, 거기 코 위에 눌러!”

성필은 티슈를 뽑아서 그녀에게 주었다.

운전 중이라 온전히 신경을 집중할 수 없었다.

티슈를 넘겨주고 다시 핸들을 잡으니, 성필의 손에도 피가 묻어 있었다.

성필은 엑셀을 최대로 밟았다. 그리고 길가에 차를 세우고 장하양을 아무 상가로나 데리고 갔다.

“어서오…….”

“화장실 어디에요?!”

“저, 저기요.”

성필은 장하양을 화장실 안으로 들여보냈다.

“피 그치면 나와!”

“느, 느에에.”

선물을 못 받았단 사실을 알았을 때보다 100배는 초조했다.

성큼성큼 화장실 주위를 맴돌다가, 어느 여자 손님이 화장실 근처로 오자 성필은 번뜩 이곳이 베이커리란 것을 깨달았다.

카페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웅성이면서 성필을 보고 있었다.

성필은 카운터로 다가가 자연스럽게 주문했다.

“코피 났을 때 좋은 음료는 없나요?”

“네?”

“……그냥 아메리카노 주세요.”

아메리카노가 나오자 장하양도 나왔다.

“괜찮아? 그쳤어?”

“네.”

“병원 가자. 몸 안 좋다더니 많이 아픈 거 같다.”

“아니에요. 저 코피 많이 나봐서 아는데, 이거 괜찮은 코피에요.”

“코피에 괜찮은 코피가 어딨어!”

문 닫기 직전인 가정의학과로 들어가서 제발 봐달라고 사정사정했다.

처방은 놀랍게도.

“많이 피곤하신 거 같네요. 약 챙겨드릴게요.”

그렇겠지…….

다시 차로 돌아오자마자 장하양이 배시시 웃었다. 성필도 그 웃음을 보니 제정신으로 돌아오는 듯했다.

‘하긴 내가 오버하긴 했지. 가게에서 소리치고 뭐라 하고. 어이가 없을 거야.’

생각해보니 병원까지 간 건 정말 오버였다.

‘코피에 괜찮은 코피가 어딨어’라고?

다시 그 말을 떠올려보니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졌다.

“이사님 여기 보세요.”

장하양이 옷소매를 걷어서 손목을 보여주었다.

붉었다.

“그건 왜 그래?”

“이사님이 제 손목 잡으셨잖아요. 엄청 세게.”

“아까? 아, 그랬구나. 내가 경황이 없어서. 미안. 아니, 진짜 진짜 미안. 많이 아팠지? 하…….”

“괜찮아요.”

피부가 하얘서 그런지 붉은 자국이 유난히 도드라졌다.

미안함과 창피함이 뒤섞여 성필은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말도 못 했다.

장하양도 조용해서 더 그랬다.

“푹 쉬어.”

“네. 감사합니다.”

장하양이 들어간 뒤, 성필은 길거리에서 쪼그려 앉았다.

“하아.”

오늘따라 힘드네.

자기 자신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도 하양이 선물 생각하는 내가 싫다.’

장하양은 몸도 안 좋고 피곤해서 코피까지 흘렸는데 말이다.

* * *

크리스마스 당일 저녁.

숙소에 가로 엔터 인원이 전부 모였다.

주방이 북적거린단 이유로 한구인을 제외한 모두가 거실에 모여 있었다.

한구인이 직접 쫓아낸 거라서 다들 ‘도와주겠다’의 ‘도’도 꺼내지 못했다.

“한 이사님 무서워.”

“요리엔 진심인 남자구나.”

리카가 방에서 보드게임 중 하나를 가져왔다.

보드게임은 어렸을 때부터 리카의 취미였다.

집에도 산처럼 쌓여있다는데, 고향에서 부모님이 하나씩 보내주신다고 한다.

“무슨 게임이야?”

“할리갈리!”

차례대로 카드를 뒤집으면서, 테이블에 똑같은 과일이 다섯 개 드러났을 때 종을 치면 점수를 얻는 게임이다.

흥미가 없던 성필과 장하양은 빠지고 남은 네 사람끼리 게임을 즐겼다.

쾅!

“끼에에에에엑!”

홍규헌이 종을 친단 것을 리카의 손등을 내려쳤다.

“미안. 안 다쳤어?”

“‘미안 안 다쳤어’?! 한 번도 아니라 세 번이잖아요?! 명백한 고의잖아요?!”

“이게 원래 이런 게임 아닌가.”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을 배려해 달라구요!”

“너희도 진심으로 해.”

리카가 씩씩거리면서 다음 게임으로 넘어갔다.

같은 모양의 과일이 다섯 개가 나오고, 역시나 반사신경이 좋은 홍규헌의 손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

리카는 그것을 보고도 종으로 손을 뻗었다.

쾅!

리카가 홍규헌의 손등을 내려쳤다.

“…….”

복수했단 생각에 미소를 띤 리카는 의기양양히 홍규헌을 보았다.

홍규헌이 정색하고 있었다.

리카가 입술을 숨기며 시선을 피했다. 그런데도 입가에서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두려움과 통쾌함이 섞인 목소리로 사과했다.

“으에, 에, 으, 죄, 죄송, 합니다아, 헤헤…….”

“이거 위험한 거 같은데 다른 게임 할까요?”

“으, 응. 그래요. 이거 위험하네. 야, 리카. 뭔 이런 걸 가져와.”

“아니, 계속하자. 계속해야 해.”

쾅. 쾅. 쾅. 쾅. 쾅.

할리갈리가 리카와 홍규헌의 물리력 싸움으로 변했다. 백설하와 조아라는 방관자가 되어 오들오들 떨기만 했다.

게임은 홍규헌과 리카의 손등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으로 끝났다.

“난 리카가 참 좋아. 권위에 숙이지 않고 대항하는 모습, 내가 바라는 진정한 인간의 모습이야.”

“저 뼈 부러진 거 같은데요.”

“엄살 부리지 마.”

“박 이사니임…… 사장님이 괴롭혀요오……. 저 손등 호호 해주세요.”

“너도 사장님 손 내려쳤잖아. 망치 있었음 망치로 쳤겠더만.”

차이는 있지만, 둘 다 기본적으로 자존심이 강한 성격이다.

보드게임 몇 개를 번갈아 하니 한구인이 요리를 끝냈다.

모두 합심하여 식탁으로 요리를 옮겼다.

“한 이사님 저 질문!”

“하십시오.”

“호텔조리학과 나오셨나요?”

“하하, 그분들에 비하면 부족하기 그지없는 실력입니다.”

안 부족한데.

요리의 핵심은 대부분이 고기였다. 육해공이 전부 모여 모두의 코를 제대로 자극했다.

심지어 생긴 건 어찌나 보기 좋은지 모르겠다.

“다들 맛있게 드셔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잠깐.”

기독교도인 홍규헌이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왠지 모르지만 리카도 따라 했다.

“먹자.”

“사장님 잠시만요.”

“왜?”

“그, 할 게 있어서요.”

장하양은 빠르게 방으로 갔다가 선물 포장지를 들고 왔다.

“박 이사님.”

“응? 나?”

“네. 선물이에요.”

“……나, 나?”

“네.”

포장지를 뜯으니 털목도리가 나왔다.

한구인의 목도리는 남색이었으나, 성필의 목도리는 검은색이었다.

“직접 뜬 거야?”

“네. 원래 다른 분들이랑 같이 드렸어야 했는데, 이사님 건 좀 오래 걸렸어요. 크리스마스 때 다 못 맞출 거 같아서 다른 분들 먼저 드렸어요. 크리스마스에 박 이사님 것만 안 드리면 이상하잖아요.”

다행히 목도리는 크리스마스에 완성됐다.

장하양은 이전에 조퇴하고 숙소에서 새벽까지 뜨개질만 했다.

그렇게 겨우 다 만든 것이다.

“뭐야. 박 이사만 선물 못 받았던 거였어?”

“어쩐지 아무것도 안 걸치더라. 선물 잘 안 하는 사람인 줄 알았네.”

“목도리 해봐요!”

성필이 목도리를 둘렀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이사님?!”

“나, 난 또 뭐라고. 그냥 완성이 늦게 된 거였구나. 하양이가 나 싫어하는 줄 알았어.”

“제가…… 제가 이사님을 왜 싫어해요?”

“아니, 그냥. 그런 줄 알았다고. 나 혼자.”

“감동적이구만.”

홍규헌이 어린애 대하듯 성필의 눈물을 티슈로 닦아주었다.

분위기가 다운되기 전에 홍규헌이 식사 시작을 선언했다.

당연하달까, 맛있었다.

다들 감탄 중인 가운데 홍규헌이 말했다.

“장하양 따라 한다고 전부한테 선물 돌릴 생각하지 마. 그런 거 안 해도 돼. 하려면 개인적으로 몰래 하든가. 남들한테 알리지 마. 장하양 네가 잘못했단 게 아니라, 괜히 전통처럼 굳어지게 압박감 갖지 말란 거야. 알겠지?”

성필이 적극 동의했다.

식사는 만족스레 끝나고, 남은 건 지옥 같은 설거지였다.

가위바위보에서 진 백설하와 조아라가 하게 됐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데.”

“둘이서 하면 빠를 거야.”

“한의사님이 주방을 폭격 맞은 거처럼 만들어놨다고요. 언제 끝내요 저걸.”

“……저도 돕겠습니다.”

“한의사님은 쉬어요.”

조아라가 한구인을 바닥에 앉혔다.

그것도 모자라서 아무 짓도 하지 못하게 눕혀버렸다.

“저 이제 가야합니다만.”

“그래. 우린 이제 갈게. 너희들끼리 재밌게 놀아라. 박 이사도 가야지?”

“네.”

“아앗! 잠깐만요! 가시기 전에 사진 찍어요! 하양 언니가 준 선물들 다 끼고요!”

홍규헌은 사진이란 말에 질색했지만, 모두의 강권에 어쩔 수 없이 털모자를 썼다.

“하양 언니는 장갑 없어요?”

“응. 내 건 못 했어.”

“에에. 그럼 제 거 하나 끼세요.”

“내 거도.”

“나도.”

장하양은 양손에 장갑을 낀 건 물론이고, 한쪽 귀에 장갑이 걸리기까지 했다.

손은 세 개가 아니니까.

“목도리도 둘러요!”

장하양은 한구인, 성필 두 사람과 공유하는 형태로 목도리를 둘렀다.

자연스레 장하양이 중앙에 있게 됐다.

거기에 더해 홍규헌이 털모자까지 씌어주었다.

장하양은 처음엔 당황했으나, 나중에는 행복한 미소를 띠었다.

그녀에겐 처음 겪어보는 가족다운 크리스마스였다.

“가로 엔터 파이팅!”

창밖으로 눈이 내렸다.

* * *

[일정 나왔어요. 2월 말쯤부터 연습생들 합숙에 들어갈 거예요.]

“합숙이면 얼마나 하나요?”

[딱 100일로 잡았어요. 그동안 보안 때문에 핸드폰 못 쓰는데 괜찮으시죠?]

“그럼요. 당연히 그래야죠.”

리카가 출연하는 ‘프로젝트 포유’의 촬영일이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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