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55화 (55/760)

#055화

[이번에 ‘프로젝트 포유’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거든요.]

“아이돌 연습생 서바이벌인가요?”

[이름에서도 느낌이 오죠? 근데 이게 말이죠. 다른 건 다 준비가 됐고 진행도 되고 있거든요. 연습생만 모이면 시동 들어갈 거 같아요. 아이돌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게 인지도잖아요. 제가 딱 박 팀장님 생각이 났죠. 아이돌 만드신다고 하셔서. 여기 나오시면 좋을 거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은근히 성필을 위한다는 말투였지만, 성필은 그 내면에 숨겨진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사람이 잘 안 구해지겠지.’

연습생 서바이벌은 단물이 다 빠지다시피 했다. 거기다가 조작 논란까지 터지고 난 뒤엔 ‘독이 든 성배’ 같은 느낌이 됐다.

시청률이나 화제성은 그럭저럭 보장되겠지만, 만들면 구설수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때문에 중국이나 일본으로 플롯이 수출되고 있을 뿐, 국내에선 만들 엄두를 못 냈다.

‘나도 전생에서 처음 듣고 놀랐지.’

독하다 정말.

아무리 시청률이 고파도 연습생 서바이벌을 또 만들어?

당연히 성필과 석세스 엔터는 관심도 안 줬다.

나중엔 나름 시청률도 나오고 프로젝트 그룹도 그럭저럭 잘 돼서 배가 아프긴 했지만…….

그래도 후회는 안 했다.

당시 준비하던 그룹이 좋은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었다.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아, 그런데 연습생 서바이벌이라.”

[……뭔가 걸리는 점이라도 있으신지.]

당연히 문제가 있다.

이 시기를 살아가는 누구든 프로젝트 포유에 참가하는 것을 꺼린다.

화제성과 인지도에 목마른 중소기업을 제외하곤 그렇다.

‘대형 신인들이 참가하지 않으니 제작진도 속이 쓰리겠지.’

제작진도 신대륙을 향해 모험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내심 ‘다 망했다’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후일 밝혀지는 것이지만, 메인 PD가 직접 돌아다니면서 출연자를 찾았다고 한다.

심지어 아이돌 연습생도 아닌 사람에게까지 말이다.

‘이 작가님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최대한 참여하는 게 좋겠지. 나중에 굵직한 작품들 많이 맡으시니까.’

이현성 작가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으리라.

생각보다 연습생이 안 구해져서다.

밑의 작가들을 시켜도 될 캐스팅에 본인이 직접 나서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성필이 대단한 기획사에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인원은 몇 명까지 받아주시나요?”

[한두 명 정도 가능할 것 같아요. 인지도가 낮은 회사에서 우르르 나오면 또 말이 나올 수도 있어서…….]

바닥에 떨어진 음식도 주워 먹을 처지에 조건은 또 까다롭다.

이런 식으로 연습생을 모으니 섭외가 어렵지.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한 기획사의 떼거지 참가를 허용하면, 아예 기획사끼리의 대전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것도 이름도 못 들어본 중소기획사들끼리의 대전…….

“사장님한테 말씀드려 볼게요.”

[감사합니다. 기한은…….]

성필은 그의 말을 메모하고 전화를 끊었다.

끊어진 전화를 멀뚱히 보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완성체는 1년 프로젝트 걸그룹. 앨범, 콘서트, MD상품, CF모델료, 방송출연 등의 수익을 다 합하면 50억 정도 벌었지. 기획사랑 방송국끼리 나눠 먹을 거 생각하면 우리에게 돌아올 돈은…….’

1억 언저리려나.

많이 번 것이다.

제작진들의 초기 예측을 뛰어넘은 수치로 성공하기도 했으니.

하지만 멤버들의 1년을 소모하고도 가치가 있는가? 이렇게 물으면 애매하다.

‘얼굴이 알려지긴 하겠지. 그렇다고 그게 효과가 클까. 언플은 좀 할 수도 있고, 팬도 어느 정도 생기겠지. 그런데 그게 데뷔하는 아이돌로서의 신선함을 뛰어넘는 메리트인가…….’

한 명만 유명하면 악성 개인 팬이 생길 수도 있다. 멤버 한 명만 유명한 그룹이 되면 이후의 활동에도 악영향만 준다.

멤버 간의 사이도 틀어질 게 분명하다.

보통 프로젝트 그룹은 흥하지만, 후일 다른 그룹으로 흩어졌을 땐 좋게 되는 일은 드물다.

‘전부 최종 10인 이내에 들었을 때의 얘기지만.’

만약 가로 엔터의 멤버들 중 한 명이 최종 인원에 든다면, 전생의 원래 최종 멤버가 됐을 사람이 밀려난다.

도덕적인 책임감이…….

‘없어.’

프로젝트 포유로 탄생하는 그룹의 9, 10위는 같은 기획사였다.

그리고 데뷔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학폭 논란이 터진다.

오디션 프로젝트 그룹이 시작하자마자 삐걱댄 것이다.

학폭 논란에 휩싸인 인원 두 명은 끝까지 버티다가, 증언이 줄줄이 나오자 울며 겨자 먹기로 팀에서 나왔다.

프로젝트는 삐걱댐을 넘어서 가라앉기 직전까지 가버렸다.

그런데도 프로젝트 포유는 나름 순항을 했으니, 그룹을 맡은 매니지먼트사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최종 인원에 우리 애들이 들어도 학폭한 애들을 밀어낸 게 될 테니까.’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다.

성필은 다시 장하양이 있는 곳으로 갔다.

“누구예요?”

“아는 사람.”

“내가 아는 사람 얘기해 줄까?”

“오, 그 노래 추억이다. 20대 초반에 많이 들었는데. 그것도 배웠어?”

“네. 그래서 누구였어요?”

“어? 그냥 아는 사람이라니까.”

역시 사람이 촉이란 게 있는 것일까?

장하양도 뭔가 눈치챈 듯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장하양에게 프로젝트 포유를 알리고 싶진 않았다.

‘만약 우리가 거기에 멤버들을 내보낸다 해도, 하양이는 아닐 테니까.’

장하양은 첫 심사에서 E등급을 받고, 첫 번째 무대에서 탈락할 게 분명했다.

‘아닌가? 오히려 비주얼로 화제가 되려나.’

PD가 장하양의 외모에 감명을 받아 밀어주면 뜰 수도 있겠다.

“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다 읽어가요.”

“아직도 읽고 있었구나.”

“제가 줄글은 잘 못 읽어서요, 아하하…….”

책을 준 뒤로부터 몇 개월이나 지났다.

그러고 보니 그 만화책의 2권을 아직도 못 보고 있다.

나중에 숙소 상태 점검하러 갈 때 받아와야겠다.

“읽어보니까 재밌어?”

“네. 감정이입이 돼서 좋았어요.”

“문학소녀네.”

* * *

성필은 홍규헌에게 프로젝트 포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것으로 얻을 수 있는 것과 잃을 것을 최대한 간결하게 정리해서 전달했다.

“그거 무조건 나가는 게 이득 아냐? 근데.”

홍규헌은 조금 어이가 없단 투로 말했다.

“박 이사 자신감이 넘치는구나. 매일 애들 믿는다 믿는다 하더니, 정말 그러네.”

“뭐가요?”

“무슨 내보내면 무조건 최종 선발에 들어갈 것처럼 얘기하잖아.”

“……그랬어요?”

“최종 선발에서 떨어졌을 때의 메리트랑 디메리트는 뭔데?”

생각도 안 했다.

당연히 최종 인원에 들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홍규헌은 그런 성필을 보고 실소를 머금었다.

“자신감 있는 모습 보기 좋아. 오만은 아니길 바라. 내보낼 애는 리카지? 박 이사 얘기가 리카에 맞춰져 있는 거 같은데.”

“맞아요.”

무당인가?

내보낼 멤버 특징이나 이름은 입에 담지도 않았는데.

“리카가 트레이닝하기 제일 애매하긴 해. 이미 다 찬 그릇에 물 넣는 거 같아. 조아라처럼 스트릿 댄스에 정통하게 만드는 것도 그렇고, 백설하처럼 아예 보컬에 집중시키는 것도 그렇고. 아예 현대무용이라도 건드려 볼까 싶기도 하네.”

“리카는 리카만의 매력이 있죠.”

“예를 들면?”

“예뻐요.”

“어이가 없네.”

“마음도, 의지도, 모든 게 다.”

“소름…….”

홍규헌은 정말 소름이라도 돋은 듯 자신의 어깨를 쓸었다.

“출연시킬 수 있는 멤버는 한두 명이라면서. 그런데 리카 한 명만 내보내는 거야?”

“네. 다른 멤버들은 집중해서 트레이닝할 부분이 있잖아요. 보완할 곳이요.”

“그렇지. 근데 난 개인적으로…… 뭐어, 활동 끝내고 받을 돈은 딱히 관심이 없어. 아니, 그것도 중요하긴 한데. 난 인지도를 쌓았으면 해. 만약 내보낸다 치면 최대한 많이 내보내고 싶어. 이왕이면 전부 다.”

“그럼, 그러면…… 애들이 전부 다 데뷔하면 어쩌죠?”

홍규헌은 개그맨의 필살 개그라도 들은 것처럼 배를 잡고 웃었다.

“박 이사 너 중증이다 진짜. 사람이 눈동자가 이렇게 맑을 수 있나? 눈에 의심이 없어.”

“칭찬이죠?”

“칭찬이지. 아, 너무 웃어서 배 아파……. 리카 우리 회사 들어왔을 때 이후로 이렇게 웃은 적 처음이야.”

“리카가 뭐 웃겼나요?”

“아니. 술 먹고 네가 나한테 고백했던 게 백미였지.”

“그건 영상 지웠죠?”

“한 이사 핸드폰 안에 있어.”

“…….”

“어쨌든 금방 결정할 건 아니야. 생각, 또 생각해보고 결정하자.”

“……네.”

“어깨 펴. 대장부가 축 처지기나 하고. 술 먹고 그럴 수도 있지.”

사장실에서 나갈 때까지 홍규헌은 연신 웃음을 터뜨렸다.

성필은 부끄러웠다.

* * *

프로젝트 포유에 나가는 인원은 자원으로 받기로 했다.

성필은 프로젝트 포유 소식을 멤버들에게 알리러 연습실로 들어갔다.

조아라가 장하양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마안…….”

“이런 걸 영상으로 찍어야 하는데. 한 이사님 불러올까?”

“아라쨩 진짜 일진 같아.”

“뭐 하는 거야.”

장하양이 애벌레처럼 바닥에 드러누워 있고, 조아라가 그런 장하양의 허리나 등을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그럴 때마다 장하양은 힘이 풀려서 움찔거렸다.

“아저씨 이거 봐요. 하양 언니 손만 대도 자지러져요.”

“하, 하지 마아…….”

근육통 때문이었다.

장하양은 일주일에 세 번 짐에 가는데, 그때마다 온몸에 근육통이 생긴 채로 다음 날 출근했다.

오늘이 그날이었다.

“구해줘요 박 이사님!”

“설하 씨는 어딨어?”

“물 가지러요.”

“설하 씨 오기 전에 영상으로 찍자.”

“아, 아아……!”

근육통으로 고생하는 아이돌이라니, 귀한 자료다.

이후 백설하에게 혼났다.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열려. 너희들도 나갈 수 있어.”

멤버들의 머리 위에 일제히 느낌표가 떴다.

“미디어에, 텔레비전에요? 저희가 텔레비전에 나가요?”

“응. 하지만 조건이 있어. 나가는 사람은 약속 하나 해야 해. 떨어진다면 우리 회사에서 1개월에서 3개월 정도 나가 있을 거고. 최종으로 뽑히면 1년 4개월 정도 나가 있는 거야. 그 기간 동안 아이돌로서의 자질을 다 갖춘다고 약속해.”

프로젝트 그룹으로 뽑히면 활동곡을 질리도록 연습할 것이다.

기본기에 소홀할 가능성이 높다.

걱정되는 건 역시.

“설하 씨는 춤. 아라는 보컬. 리카는, 리카는, 좀 더 귀여워지도록.”

“하이(네)!”

“그리고 하양이는 상처받지 말고 들어. 네가 자질이 없단 게 아니라…….”

“알아요. 저는 나가도 의미가 없잖아요.”

먼저 말해주니 고맙다.

‘왜요!’라면서 반발해오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납득시켜야만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장하양의 부족한 점을 조목조목 짚어야 하니, 서로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수십 명이랑 경쟁하면 신경증으로 위에 구멍 뚫릴걸요. 전 여기 있는 게 더 좋아요.”

“고마워. 자, 그럼 나가고 싶은 사람!”

세 사람 다 손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손나(그런)!”

“아앗! 제 흉내 내지 마세요! 인종차별이에요!”

“너희들 왜 그래. 텔레비전에 너희가 나왔으면 정말 좋지 않겠니?”

백설하와 조아라가 눈치를 보았다.

먼저 입을 연 건 백설하였다.

“저도 제가 부족하단 걸 알아요. 거기서 경쟁하면서 실력까지 쌓는단 건 욕심 같아서요.”

“나도 동감요. 나가면 부끄러울 거 같고.”

“아이돌이 텔레비전 나가는 걸 부끄러워하면 어쩌잔 거야?!”

“애초에 나 학교 때문에 못 나가는 거 아닌가.”

“유급해!”

“자기 일 아니라고 막말하시네. 뭐, 그래도 아저씨가 제발 나가 달라고 무릎 꿇고 부탁하면 못 나갈 것도 없…….”

“리카 너는?”

“증말 짜증 난다.”

지목된 리카는 검지를 마주치며 난색을 표했다.

“아타시(저)는 멤버들이랑 같이 데뷔하고 싶어서요……. 욕심인가요……?”

어쩜 이리 마음씨가 고울까.

“리카. 왜 꼭 네가 데뷔한다고 생각해?”

“에? 무슨 소리예요 언니. 제가 나가면 우승해버리는 게 당연하잖아요? 순풍만범이라구요!”

어쩜 이리 성필과 생각하는 게 비슷할까.

“데모(그래도) 저는 쌤이랑 언니랑 아라쨩이랑 동시에 한 무대에서 처음으로 서고 싶어요! 무대 뒤엔 사장님이랑 박 이사님이랑 한 이사님이 계실 거예요!”

멤버들이 감동한 듯 입을 다물었다.

성필도 마찬가지였다.

“아타시(저) 대견하죠? 마구 마구 칭찬해줘도 된다구요?”

“리카야. 잠깐 따라와.”

성필은 리카를 데리고 연습실 밖으로 나갔다.

“얼마나 칭찬해주시려고 밖에까지 나오셨어요? 이 정도니 되려 기대가 되네요!”

“사장님이 너한테 바라는 게 있어.”

“사장님이요?”

“나가서 인기를 모아 와. 인지도를 올려. 그게 우리 회사의 성공과 직결될 거야. 사장님은 네 두 어깨에 모든 걸 걸었어.”

“모든 거……? 제, 제 어깨에 회사의 운명이 걸려 있나요?”

“그래. 한 이사님도, 나도 그걸 바라고 있어. 물론 두렵겠지. 망설여지겠지. 하지만 저 빛나는 언덕 위에 열매가 있어. 그곳에 갈 수 있는 건 너뿐이야. 리카.”

성필이 리카의 양어깨를 무겁게 눌렀다.

“선택은 네 몫이야.”

리카는 입을 굳게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연습실로 들어가 선언했다.

“아타시(저), 소녀 가장이 됩니다!”

“그거 안 좋은 의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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