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5화
“무대 영상이 없으면…… 저희가 퍼포먼스를 만들어야 하는 거예요?”
처음 성필이 과제를 줬을 때 ‘다 너희들 마음대로 해도 돼’라고 하긴 했다.
그때는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무대 영상이 없을 리 없잖아요. 이거 노래 조회 수만 쳐도 천만이 넘는데. 찾아보면 나오겠죠.”
“그렇겠지?”
“노래부터 들어봐요.”
조아라의 태평한 답에 백설하도 긴장을 가라앉혔다.
그래, 들어보고 더 찾아봐도 늦지 않을 것이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통해 청량한 멜로디가 울려 퍼졌다.
단 2초만으로도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을 만한 아름다운 음악이다.
멤버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니 더 좋았다.
‘좋다. 왜 이런 노래를 몰랐지?’
프리코러스도 탁월했다.
노래가 하이라이트에 진입하리란 것을 명확하게 알려주면서도, 프리코러스만 계속 이어지길 바랄 정도로 감미로웠다.
마침내 하이라이트에 도달하자 빌드업된 사운드들이 폭발하듯 쏟아졌다.
거기에 더해 메인보컬의 목소리도.
‘이거 3옥타브야?’
백설하가 놀랐다.
그저 짧게 3옥타브까지 올라갔다면 백설하도 이토록 놀라진 않았으리라.
하이라이트는 3옥타브대에서 안정되게 이어진다. 최대는 3옥타브 레까지 올라갔다.
‘이걸 춤까지 추면서 부를 수 있어?’
절로 목이 아파왔다.
이 곡의 난이도를 파악한 건 백설하만이 아니었다.
리카도 헛웃음을 흘리면서 멤버들의 반응을 살폈다.
두 사람은 눈을 마주치곤 쓰게 웃었다.
“랩이다.”
두 번째 코러스가 끝나자 곧바로 랩이 나왔다.
다행히도 어렵지 않은 데다가 짧았다.
다만 랩하는 사람의 음색이 넘사벽으로 좋아서, 간단함에도 완벽히 소화 해내긴 어려울 듯했다.
곡이 끝나자 장하양이 물었다.
“어려운 곡이에요?”
백설하는 쉬이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가 코러스 파트를 맡는다면, 멤버들이 느끼는 곡 자체의 난이도는 낮아질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부분이 쉬운 건 아니다.
EMC라는 완성된 그룹이 온 힘을 쏟아서 만든 곡이니 쉬울 리가 없었다.
“연습만 하면…….”
그리 말하려던 백설하는 장하양의 습득 속도를 떠올리곤 입을 다물었다.
‘하양이 파트를 줄이는 수밖에 없나.’
“지금 바로 파트 배분해요?”
“일단은 안무 영상 찾아보자. 분명 있을 거야. 공식적인 게 아니더라도 팬미팅 같은 데서 했을 수도 있으니까.”
없었다.
“영어로 쳐보자.”
없다.
“진짜 공식 안무가 없다고?”
“앗! 일본어로 치니까 무대 영상이 나와요!”
절망에 빠져 있던 멤버들이 리카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두 분밖에 무대에 없으세요. 오, 우와. 콘서트장이다. 사람 엄청 많아요.”
관객들은 대부분이 여자였다.
백색의 형광봉을 흔들면서 EMC 멤버의 등장에 세찬 환호를 보내주었다.
“다행이다. 두 명만이라도 안무를 딸 수 있으면 더 수월할…….”
없었다.
두 사람은 마이크에 대고 노래만 불렀다.
간단한 동작은 있었지만, 그건 관객의 흥을 돋워주려는 것에 불과했다.
백설하는 목구멍이 콱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단순히 안무가 없어서가 아니라, EMC 멤버가 하이라이트를 소화하는 것을 봐서였다.
‘저렇게 편안하게 3옥타브까지…….’
심지어 아까까지 관객들에게 호응하느라 펄쩍펄쩍 뛰어다녔으면서 말이다.
아이돌로서의 격이 느껴진다.
백설하는 내심 옛날에 속했던 그룹이 망한 게 운 때문이라고만 여겼는데, 역시 성공하는 그룹은 이유가 있었다.
“안무는 창작해야겠는데…….”
모두의 시선이 조아라에게 향했다.
조아라는 팔짱을 꼈다.
“내가 나설 때가 왔군.”
“앗. 댄서분들이 올려둔 코레오그래피(안무)가 있어요. 이거 보고 하면 안 돼요?”
“…….”
리카가 초를 치긴 했으나, 조아라도 다른 사람의 것을 베끼는 게 더 마음이 편했다.
그녀가 아무리 춤을 오래 췄더라도 전문 댄서와는 비교가 안 되니까.
oh my own의 코레오그래피 영상은 두 개 정도가 있었는데, 모두 댄스 학원에서 제작한 것이었다.
그것을 본 조아라가 실망했다.
“기본 동작들만 엉성하게 합쳐둔 거잖아.”
“그러게. 본격적으로 만든 게 아니야.”
학원 홍보용으로 대충 짜깁기한 느낌이다.
심지어 안무는 곡 전체가 아니라 1절까지밖에 없었다.
두 개 다 그랬다.
모두의 시선이 다시 조아라에게 향했다.
조아라가 뾰로통해져서 말했다.
“왜. 댄서분들이 만들어두신 안무나 보고 하지.”
“아라쨩 사랑해.”
“참나.”
“아라야. 부탁해.”
“쌤도 저 안 믿었었…….”
“아라야아.”
장하양이 조아라의 팔을 끌어안고 뺨을 부볐다.
조아라는 짐짓 인상을 찌푸린 채 답했다.
“어쩔 수 없구만.”
“조아라! 조아라! 조아라! 조아라! 조아라!”
리카의 환호성 가운데서 조아라가 결연하게 말했다.
“내 첫 번째 커리어는,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요시(좋아). 파트 배분하자.”
“나 방금 멋진 말 했는데.”
백설하가 가사를 출력해서 멤버들에게 나눠주었다.
저마다 볼펜을 들고 계속 음악을 들었다.
“각자 하고 싶은 부분 있으면 말해줘.”
“센세(선생님)가 정해줘요.”
“하지만…….”
“쌤. 문화는 다수결로 정해지지 않아요. 문화는 소수의 천재가 길을 개척하는 거예요!”
“……다들 괜찮아?”
끄덕끄덕.
“알겠어. 그러면…….”
백설하가 전에 있던 기획사는 주간 평가 때마다 곡 카피만 몇 개씩 시키고 했다.
노하우가 적은 기획사였다.
그저 많이 추고 따라 하면 실력이 늘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효과는 별로 없었다.
트레이너 없이 아이들끼리만 춤을 추는 게 효과가 클 리 없었다.
‘이럴 때는 도움이 되네.’
파트 배분은 정말 질리도록 해봤으니까.
백설하는 멤버들의 특성을 고려하면서 파트를 배분했다.
“다 같이 허밍하듯이 가볍게만 불러보자. 힘 안 줘도 돼. 하나, 둘, 셋, 넷.”
[리카: 넌 왜 내 말 안 들어
내 목소리만 점점 높아져]
[조아라: 넌 내 말대론 안 돼
어느샌가 멀리 떠났어]
[백설하: 저기, 저기
나를 보면서도
너는, 너는
떨리지도 않아?]
[장하양: 난 너와 함께 live]
[oh my own
언제나
oh my own
어디서나
oh my own
끝까지
oh my own]
“여기까지가 벌스1이거든. 뒤로는 코러스인데 난이도가 높아서…….”
노래가 익숙지 않은 조아라와 장하양은 배제되어야 한다.
다행히 두 사람은 어쩔 수 없다면서 이해해주었다.
[리카: 너와 함께]
[백설하: 멀리 떠나 네가 싫대도
깨어나 같이]
[리카: 너도 그려봐 손을 잡고
oh my own]
여기까지 딱 1분 30초다.
뒤의 1분가량도 처음과 구조는 같다.
문제의 부분은 코러스2 다음에 나오는 랩이다.
그나마 리카가 희망이었지만.
“저도 랩은 배운 적 없어요.”
“음, 어떡하지. 싱잉랩이니까 기교는 크게 필요 없을 거 같긴 한데.”
“제가 할게요.”
장하양이 손을 들었다.
백설하는 최대한 그녀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부드럽게 물었다.
“랩 해 본 적 있어?”
“아니요. 그런데 저한테는 노래보다 쉬울 거 같아요. 제가 음역대가 낮잖아요.”
성필이 표현하길, 장하양의 목소리는 무겁고 울렸다.
외모와 잘 매치되지 않기에 배우로서는 감점 요소지만, 아이돌로서는 반전 매력이 될 수도 있다.
“한번 해 볼래?”
“넵!”
[장하양: 선생님 이게 사랑인 거죠?
어떤 때 어떤 곳에서 너를 보아도
몽글몽글 부드러워
노력해봐도 떨어질 수 없죠
침대에 누워서도 생각이 나게
너를 떠올리기만 해서는 안 되게]
뒤이어서는 또 코러스가 나온다.
“오오, 하양 언니 느낌 있어요. 읽기만 했는데도 랩 같아요.”
“그래? 헤헤, 아라한테 칭찬받으니까 기분 좋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조아라의 파트가 문제다.
하이라이트를 백설하와 리카가 독점하다시피 하니.
“그럼 마지막 프리코러스를 내가 해 볼게요. 여기가 조금 짧으니까 내가 소화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괜찮겠어?”
“안 돼도 해 보는 거죠.”
파트 배분이 끝났다.
왠지 뭔가 될 것 같은 분위기가 멤버들을 휘감았다.
이거 어쩌면 성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성필과 홍규헌, 한구인을 깜짝 놀라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장하양도 멤버들과 파트를 나누면서, 이것이 경쟁이 아니라 협동이란 생각이 더 강해졌다.
더는 위도 아프지 않았다.
“남은 건 안무네. 리카랑 내가 보조해줄게.”
조아라의 능력은 인정하지만, 그녀에게만 맡기면 상당한 난이도의 안무가 튀어나오리라.
“저는 뭐할까요?”
장하양도 열정을 불태우며 물었지만, 그녀는 딱히 할 게 없었다.
“랩 연습하고 있을래?”
“네.”
백설하는 다른 이들보다도 의무감을 느꼈다.
아직 리더로 확정된 건 아니지만 벌써 리더가 된 듯이 행동했다.
다른 이들이 백설하를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월말 평가까지 30일.
시작.
* * *
“웁…….”
장하양이 음식을 먹다 말고 헛구역질을 했다.
성필은 다급히 티슈를 내밀었다. 장하양은 괜찮다면서 손을 저었다.
“먹기 힘들면 그만 먹어.”
“아니에요. 먹을 수 있어요.”
장하양은 살을 찌우기 위해서 점심마다 외식을 했다.
다른 아이들에게 요구되는 섭취 칼로리양보다 더 많았다.
리카였으면 좋다면서 그릇을 비웠을 텐데, 장하양은 그것도 힘들어했다.
“빨리 건강해져야…….”
“그만 먹어.”
“……네.”
성필의 단호한 태도에 장하양이 수저를 내려놓았다.
샐러드는 다 비웠지만, 메인 요리는 반 접시도 더 남아있었다.
둘은 차를 타고 회사로 돌아갔다.
“선생님 이게 사랑인 거죠? 어떤 때 어떤 곳에서 너를 보아도. 몽글몽글 부드러워.”
조수석의 장하양은 가사를 보면서 열심히 중얼거렸다.
성필은 무언가에 열중하는 장하양을 보니 뿌듯해졌다.
“무리하고 있는 거 아니지?”
“네. 잠도 잘 자고 먹는 것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열심히 먹는 연습생이라.
모든 아이돌 연습생의 꿈 아닐까.
“근데 이거 가사가 이상한 거 같아요. ‘선생님 이게 사랑인 거죠?’라고 존댓말로 묻잖아요. 그런데 다음은 바로 반말이에요.”
“좋아하는 사람을 보는 도중에 마음속으로 선생님한테 묻는 거 아닐까.”
“선생님 이게 사랑인 거죠?”
“왜 나한테 묻는데.”
“이사님 이게 사랑인 거죠?”
성필은 갑작스런 개사를 듣곤 피식 웃었다.
“어떤 때 어떤 곳에서 너를 보아도 몽글몽글……. 이 몽글몽글이란 것도 이상해요. 보는데 몽글몽글하다니. 뭘까요 이게?”
“글쎄. 나중에 EMC 보면 직접 물어봐.”
“으음…… 마음이 몽글거린다? 그런 걸까요? 무슨 뜻일까요.”
“너한텐 좀 이르지.”
“가르쳐주세요.”
“스스로 배워야 하는 거야.”
회사에 도착하니 손혜빈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 7시 맞아?]
“응. 근데 진짜 오게? 안 귀찮아?”
[빨리 애들 보고 싶어서 죽겠어. 지금 도망칠까? 나 어차피 곧 여기 나가는데?]
[대표님한테 말씀드릴게요.]
[아, 미안 미안 미안 미안 미안! 유머 유머. 유머 몰라?]
오늘은 월말 평가를 보겠다고 선언한 시점으로부터 7일째 되는 날이다.
멤버들의 퍼포먼스를 점검하는 것 겸해서, 주간 평가도 시행하기로 했다.
그녀들에게만 맡겨두면 자칫 괴작이 나올 수도 있다.
엇나간 부분을 잡아주는 것도 필요하다.
[이놈의 회사는 나한테 왜 이리 집착하는지.]
“누나가 이상한 말 해서 그렇잖아.”
[너는 내 편 들어줘야지. 아, 설하 씨 오늘 앨범 가져왔대?]
“안 그래도 회사에 앨범 두고 다니셔.”
[나는 펜 뭐 가져가지? 빤짝이?]
“아무거나 가져와.”
전화를 끊은 성필은 느긋하게 휴식을 취했다.
연습생 탐색도 멈춘 상태이기에, 아이들을 데려다주는 것 외엔 업무랄 것도 없었다.
7시에 가까워지자 성필과 한구인은 연습실에 책상과 의자를 들여놨다.
성필, 한구인, 손혜빈이 앉아 있을 곳이었다.
멤버들은 종일 연습하다가 지금은 1층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곧 손혜빈도 연습실로 들어왔다.
“성필이 하이! 한 이사님도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한 이사님 오늘은 더 멋지신데? 애인분이라도 만나러 가시는 거예요?”
“아닙니다.”
“어? 그럼 매일 이렇게 멋지신 거예요?”
한구인이 아니었다면 상상으로 손자까지 봤을 만한 발언이었다.
“감사합니다. 혜빈 님도 아름다우십니다.”
“……아니, 하하. 저 아름답단 말 처음 들어봐요.”
“그렇습니까? 너무 많이 들으셔서 무뎌지셨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보통은 그냥 예쁘다고 하죠!”
손혜빈이 평소보다 더 크게 웃었다.
상상으로 손자를 본 건 손혜빈인 것 같다.
한구인은 그녀의 수다에도 젠틀하게 미소 짓거나 고개만 끄덕였다.
시간이 되자 멤버들이 차례로 연습실에 들어왔다.
아이들을 본 한구인의 표정이 긴장으로 물들었다. 잘 준비했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손혜빈과 대화하던 때와 비교하면 극적이기까지 한 변화다.
“한 이사님 연하한테만 흥미 있어?”
“농담으로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마. 아라 아직 미성년자란 말야.”
“난 누구라고 말한 적 없는데?”
“……불순한 건 나였고요.”
“여러분. 집중해주십시오.”
한구인의 요청에 성필과 손혜빈도 진지해졌다.
멤버들은 한껏 긴장했다.
마이크를 쥔 백설하는 손까지 떨었다.
비단 그녀만이 아니라 저마다 긴장했다는 사인을 보냈다.
“시작, 할게요.”
음악이 흐르고 퍼포먼스가 시작됐다.
곡의 길이는 3분 30초 정도.
그 시간이, 성필은 길게만 느껴졌다.
“…….”
멤버들은 성필과 눈을 잘 마주치지 못했다. 그녀들도 잘 못 했단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성필은 일부러 미소를 지었다.
“잘 봤어. 피드백은 나중에 전달해줄게. 수고했어.”
“네.”
넷이 쪼르르 연습실을 나갔다.
한구인이 불안하게 물어왔다.
“잘 못 한 겁니까?”
그는 멤버들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이만큼 준비했단 것에 감명받았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보았기에 ‘이 정도면 괜찮네’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의 기준을 충족한 퍼포먼스이긴 했다.
하지만 전생부터 전문적으로 아이돌을 보아 온 성필과, 직접 스테이지에서 뛴 손혜빈은 달랐다.
“성필이 너부터 말할래?”
“어. 먼저…….”
둘이 차례로 단점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성필이 큰 틀에서 문제점을 잡아냈다면, 손혜빈은 댄스 가수로 활동한 경력을 살려 구체적인 문제점을 찾아냈다.
성필이 막연하게 설명할 수밖에 없는 단점이 손혜빈의 설명으로 보완됐다.
한구인도 그들의 지적을 듣곤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군요. 그럼 피드백은 어떻게 전달할 생각이십니까?”
“제가 설하 씨 불러서 할게요.”
직접 모두에게 전달하는 건 효과가 안 좋다.
성필의 말을 저마다의 시선으로 해석하여 자칫 잘못하면 분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
전달자만 신뢰할 수 있다면, 하나의 통로로만 의견을 전달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이다.
당연히 전달자는 백설하였다.
“한 이사님 수고하셨어요. 누나도.”
“나한테만 말이 짧네.”
“가는 길에 밥이라도 먹을까? 아, 밥 먹고 왔겠네.”
“멤버분들한테 밥 사주면 안 돼? 너한테 혼나면 다 우중충해질 텐데.”
“안 혼내. 조곤조곤 잘 얘기할 거야.”
성필은 연습실을 나서 2층 난간으로 다가갔다.
다들 1층 소파에 모여 있을 줄 알았는데, 있는 건 백설하와 리카뿐이었다.
성필이 계단을 내려가자 백설하가 소리를 듣곤 흠칫했다.
“설하 씨.”
“네, 네!”
“잠깐만.”
“……네.”
성필은 백설하를 응접실로 데려갔다.
그녀의 영입 제안을 했을 때 외엔 온 적 없는 곳이었다.
백설하는 무릎에 손을 얹곤 자꾸만 땅을 봤다.
‘일단 침묵하자.’
침묵은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지금부터 성필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절대 가벼워서는 안 된다.
한마디 한마디가 백설하의 가슴을 찔러야 한다.
위로는 비판 다음에 해도 된다.
침묵과 함께 속절없이 시간만 갔다.
고작 1분 정도 흘렀으나 백설하에게는 한 시간과 같았다.
이쯤이면 됐겠지, 그리 생각한 성필이 입을 열려고 한 순간.
“이사님. 저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백설하가 물기가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애들을 이끌 능력이 없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