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5화
“어, 네?”
성필은 달려가다가 넘어질 뻔했다.
장하양이 즉시 대답하며 상체를 일으킨 것이다. 그녀는 막 잠에서 깬 사람처럼 눈가를 손등으로 비볐다.
“너…….”
“지금 몇 시예요? 헥, 한 시? 아, 그런데 이사님은 왜 회사에 계세요?”
“잤어?”
“네. 그런가 봐요.”
“뭐 그딴 자세로 자!”
성필의 고함에 장하양이 몸을 떨었다.
“왜, 왜 화내세요?”
걱정해서였다.
진짜 실신이라도 한 줄 알고 심장이 떨어지는 듯했는데 갑자기 벌떡 일어나니, 안심한 나머지 목소리가 올라간 것이다.
“화내는 게 아니라…… 너 쓰러진 줄 알았어. 소리 질러서 미안.”
오늘따라 사과할 일이 많다.
장하양은 눈을 빠르게 깜빡이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아뇨 제가 죄송하죠. 이사님 간 떨어지게 만들어서 죄송해요.”
“그래, 진짜 떨어질 뻔했어. 일어나. 가자.”
“저 데리러 오셨어요?”
“너 걸어간다는데 어떻게 나 혼자 집에서 발 뻗고 자겠냐.”
“이건 진짜 죄송해지는데요. 그냥 가시지.”
성필이 집에 돌아왔을 때는 2시였다.
정말 하루가 끝난 것이다.
‘4시간 뒤에 기상해야 하는 거 실화냐.’
노예도 이런 노예가 없다.
심지어 자발적 노예다.
“박 이사 아주 칭찬해. 수당도 안 받고 자진해서 야근을 하고 말야. 딱 내가 찾던 인재야.”
왠지 모르게 홍규헌의 목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렸다.
성필은 씻지도 못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 * *
장하양이 가로 엔터에 들어온 지도 2주나 지났다.
슬슬 트레이닝 스케줄에 익숙해질 때쯤이었다.
공식적으로 가로 엔터의 일요일은 휴일이다. 하지만 리카, 백설하, 조아라 모두 회사에 나왔다.
원래 장하양은 1주 차 일요일에는 출근하지 않았다. 그러나 2주 차에는 분위기에 휩쓸려 회사로 왔다.
‘집보다 여기가 낫기도 하고.’
심지어 한구인도 출근해선 점심과 저녁까지 만들어준다.
장하양이 그에게 왜 출근했냐고 물어보니.
“네 분 다 나오신다고 하시기에 저도 왔습니다. 어차피 집에서는 할 것도 없거든요. 그리고 리카 씨와 수업 보충하기로 약속도 했습니다.”
“한 이사님 같은 분을 워커 홀릭이라고 하죠?”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라고 말하며, 한구인은 1층 복도를 대걸레로 청소하고 있었다.
회사에는 정기적으로 청소업체가 오는데도 말이다.
한구인은 심각한 워커 홀릭이었다.
장하양은 이번 기회에 다들 자유시간에 뭘 하는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처음엔 조아라였다.
‘아라는 또 춤추겠지?’
1번 연습실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보았다.
거울 앞에 서 있던 조아라가 갑자기 거울을 손바닥으로 팍 쳤다.
가만히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던 그녀가 씨익 웃었다.
“존나 매력 있어.”
조아라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자신이 가장 예쁘게 보이는 각도를 찾았다.
장하양은 못 본 척하기로 했다.
‘설하 언니는 뭐 하고 있을까?’
회사를 샅샅이 뒤져도 백설하는 발견되지 않았다. 장하양이 지쳐서 터덜터덜 걷고 있는데, 어느 방에서 한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카가 한구인의 수업을 듣고 있었다.
“리카 씨. 다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구분구적법이란, 쉽게 말하자면 도형을 잘라서 넓이를 구하는 겁니다. 여기 보세요. 과거에는 이런 곡선을 가진 도형의 넓이를 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구분구적법이…….”
“저는 문과로 갈까 봐요.”
“저번에는 한자가 어려워서 안 간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한자야 외우면 되죠. 근데 제가 수학 머리는 진짜 없나 봐요.”
리카가 아예 책상에 엎어졌다.
한구인이 부드럽게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리카 씨. 공부는 능력이 아니라 노력의 문제입니다. 어려워 보이는 것도 계속하다 보면 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리카 씨는 머리가 좋습니다. 춤도 잘 추시잖습니까.”
“그게 머리랑 상관이 있어요?”
“있습니다. 생각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건 지능의 영역입니다. 마음만 있으시다면 이런 수학 따위는 리카 씨에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풀 죽어 있던 리카가 한구인의 격려를 받곤 자그맣게 미소 지었다.
“근데 정말 지능이랑 공부랑 상관없나요?”
“리카 씨. 지능이 아니라 지능 지수입니다.”
“네?”
“인간의 전체적인 지능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는 없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웩슬러 지능 검사가 측정하는 건, 기껏해야 수리논리 지능이나 언어 지능 정도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지능 지수랑 공부랑 상관이 없나요?”
“상관 계수로는 0.50 정도 됩니다.”
“50%? 엄청 높잖아요?!”
“50% 확률로 공부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 마침 딱 좋군요. 상관계수와 결정계수의 관계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네, 네?”
“예를 들어 지능검사 점수와 성적 간의 상관계수 r이 0.50이라고 하면, 전체 변량에 의해 예언되는…….”
배울 게 늘어버린 리카의 표정이 점점 더 안 좋아졌다.
하지만 싫어하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진실로 스승과 제자처럼 마음과 지식을 주고받았다.
장하양은 그 광경을 보자 마음이 따뜻해지는 듯했다.
그녀는 회사 탐방을 끝내고 빈 연습실로 들어갔다. 스트레칭을 마친 뒤 음악을 켰다.
‘이제 연습하자.’
열심히 해서 회사에 남아야지.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던 장하양은 문득 한구인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생각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 즉 춤도 지능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머리가 나빠서 춤을 못 추나?’
* * *
일요일, 성필은 회사로 출근했다.
딱히 일이 있어서는 아니고 조아라를 보기 위해서였다.
성필은 조아라가 있는 연습실로 들어갔다.
“아라…….”
조아라가 의자에 발을 걸치고 불량한 자세를 잡고 있었다.
그녀는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거울을 한동안 응시하곤 뿌듯한 미소를 띠었다.
“너 개 매력 있다. 이래도 되냐?”
성필은 못 본 척하고 연습실 문을 닫았다.
‘나중에 다시 오자.’
사무실로 들어가니 백설하가 컴퓨터를 쓰고 있었다.
그녀는 성필이 들어오는 것을 보곤 맹수를 마주친 사람처럼 움직임이 멎었다.
눈동자가 화면과 성필을 오갔다.
“뭐 하세요?”
“아…….”
성필이 조금 급한 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컴퓨터 안에는 가로 엔터의 여러 자료가 들어 있다.
만약, 정말 만약이지만, 백설하가 그 자료를 장난으로라도 빼간다면…….
“아이튜브 보고 계셨네요.”
“네, 네.”
백설하는 어느 걸그룹의 뮤직비디오 댓글란을 보는 중이었다.
“어제 핸드폰 충전을 깜빡해서. 쉬는 김에 영상이라도 보려고…….”
“여기 컴퓨터 함부로 쓰시면 안 돼요.”
“죄송합니다…….”
“댓글 읽는 게 재밌긴 하죠. 근데 이거 나온 지 꽤 됐잖아요. 트렌드 파악하시려면 다른 것도 많은데.”
“이게 제일 좋아서요.”
“뭐가요?”
백설하는 말실수했단 듯 입술을 뻐끔거렸다.
“어, 어어, 댓글 보면서, 으, 저희 노래에 이런 댓글 달리면 어떨까…… 상상해보는 게…….”
쉽게 말해서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었단 것이다.
딱히 부끄러워할 건 아니다.
자신의 성공한 모습을 그리거나 망상해보는 건 좋은 동기부여 방법이다.
“다른 그룹한테 달린 댓글 자주 보세요?”
“자주 보는 건 아니고요. 가끔…… 진짜 가끔 봐요.”
백설하가 이러니 괜히 짠해 보였다.
옛날에 아이돌로 활동했을 때도 이런 망상을 끝도 없이 했었겠지.
“데뷔하고 시간 좀 지나면 다 볼 수도 없을 만큼 댓글 많이 달릴 거예요.”
“그러면 좋겠네요.”
백설하는 의자에서 비켜난 뒤, 다시금 사과하고 나가려 했다.
“설하 씨. 가는 길에 아라 좀, 아니. 그냥 제가 나중에 할…….”
“아라 불러드릴까요?”
“아, 그래 주실래요? 감사합니다.”
“……편하게 부탁하셔도 돼요.”
백설하가 나가고 얼마 뒤, 얼굴이 붉어진 조아라가 들어왔다.
백설하에게 자뻑하는 장면이 들킨 모양이다.
“왜요. 왜 불렀어요.”
“아라야, 이리 컴.”
“나쁜 말이면 안 들을래요. 나중에 리카한테 전달해줘요.”
“리카가 전서구야?”
“뭐야. 진짜 나쁜 말인가 봐.”
조아라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성필의 앞에 쪼르륵 다가와 섰다.
“아라야.”
“갑자기 목소리 왜 이래.”
“너 지금도 힘든 거 아는데, 내 부탁 좀 들어줄 수 없을까?”
“……부탁? 나한테요?”
“응, 부탁.”
조아라는 재빨리 의자를 끌고 와 성필의 앞에 두었다.
그녀가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한껏 거만한, 동시에 뿌듯함이 담긴 표정이었다.
“들어볼게요.”
“하양이가 배우는 게 많이 느리잖아.”
단기 트레이닝 2주 차도 끝나간다.
성필은 주마다 트레이너들에게 장하양의 상태를 듣는다.
빈말로도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장하양은 요령이 없는 수준이 아니다.
명백히 배우는 게 느렸다.
매일 밤까지 홀로 보충 연습까지 하는데도 이러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근데 최종평가는 2주 하고도 조금밖에 안 남았고. 지금부터 하양이가 평가 준비하는 거 도와주라.”
“난 또 뭐라고. 알겠어요.”
“어? 이렇게 쉽게?”
“뭐요. 내가 단칼에 쳐낼 줄이라도 아셨나?”
“응. ‘나도 바빠 죽겠는데 왜 그래야 해요!’라고 반항할 줄 알았는데…….”
“아저씨 나 싫어하죠?”
“우리 아라 최고야. 너무 좋아.”
“너무 좋아?”
“왜, 싫어?”
“그럼 제일 좋아는 누구예요?”
“난 사장님이 제일 좋아.”
“미친 직장생활력. 어디 가서 굶을 일은 없으시겠네. 오늘부터 가르치면 돼요?”
“그래 주면 더 좋고. 내가 같이 가서 하양이한테 말해줄게.”
“귀찮게 뭘 그래요. 내가 말할게요.”
조아라는 성필이 부탁했단 게 썩 마음에 드는지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근데 솔직히, 우리 세 명 중에서도 서열이 있죠? 누가 1위?”
“열 손가락 다 아프지.”
“예에 예에. 다 평등해서 리카는 아저씨한테 매달려도 안 쳐내고, 나는 머리카락만 만져도 쳐내시는 거죠. 알겠습니다요.”
그녀는 성필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사무실을 나갔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어린애 같은 투정이라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역시 그때 일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구나.’
화날 정도는 아니지만 가슴 한편에 쌓아둘 만한 일이긴 하다.
조아라는 어떻게 해야 화를 풀어줄까.
전생의 조아라는 분명…….
‘그러면 되겠다.’
성필은 책상에 턱을 괴고 백설하가 보았던 영상의 목록을 훑었다.
아이튜브에는 성필의 아이디로 로그인되어 있었기에 시청기록이 남아 있었다.
가장 위에서부터 기록을 하나씩 삭제해갔다.
‘진짜 뮤비에 달린 댓글만 보셨나 보네.’
그것도 꽤 오랫동안.
잠깐 쉬는 동안 봤다기에는 시청 시간이 너무도 길었다.
거의 한 시간은 됐다.
‘설하 씨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구나. 하긴 일요일이면 게을러지지.’
뭐라고 할 생각은 없다.
쉬는 날 회사를 나오는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니까.
‘응?’
아이돌 뮤비만 가득한 시청기록 속, 이질적인 제목의 영상이 있었다.
[아, 썸 타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클릭해서 보니 어느 아이튜버가 썸 타는 법을 6분에 걸쳐서 설명하고 있었다.
성필은 끅끅대며 웃었다.
‘그래. 설하가 아무리 성숙한 모습을 보여도 아직은 애지.’
데뷔 후 3, 4년 차 정도 되면 연애 금지 조항을 풀어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금지한다 해도 지켜지는 경우는 드무니까.
아예 주의점을 각인시키고 자유를 주는 편이 나을 때도 있다.
정말 신기한 게, 아이돌들은 회사가 연애하지 말래도 어떤 경로로든 연애를 한다.
컴퓨터 이메일로 연애편지를 주고받는 애들까지 봤었다.
‘좋을 때다. 좋을 때인데…….’
연애금지라는 조항에 막혀서 젊음을 바치고 있다.
우스운 일이다.
눈만 맞아도 사랑할 청춘들을 모아두고, 연애를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을 하다니.
심지어 계약서라는 힘을 동원해서까지 말이다.
‘만인의 사랑을 받아야 하지만, 한 명에게 사랑을 주면 안 되는 건가…….’
연애금지조항은 인권 측면에서도 항상 지적되곤 한다.
하지만 대중들이 원하기에, 그리고 회사는 대중들을 잡고 싶기에, 또 아이돌은 대중들의 찬양을 바라기에.
기묘한 관계 속에서 ‘연애금지조항’은 이어져 오고 있었다.
‘나중엔 나아지는 날이 올까.’
성필은 마지막 시청기록까지 삭제했다.
이제 회사에서 할 일은 끝났다.
끝났는데, 뭔가 일을 더 하고 싶다.
가만히 있으니 답답함이 심장을 꽉 쥐고 있는 기분이다.
‘하양이는…….’
재능이 없다.
아니, 단순히 재능이 없단 말로 표현이 될까?
성필은 그녀가 트레이닝받는 것을 지켜보면 절로 한숨까지 나왔다.
만약 장하양의 미래를 보지 않았다면, 진지하게 그만두길 권유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비주얼이 좋아도 아이돌은 아티스트다. 예술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직업이다.
비주얼은 아이돌의 기본적 요소이긴 해도 본질적인 요소는 아니다.
성필이 아직까지 장하양을 붙들고 있는 이유는 장하양이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잠재성, 그리고 그녀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다.
‘만약 최종 테스트까지 이런 상태라면 난 어떡해야 하지.’
처음이자 마지막인 아이돌 프로듀싱.
그게 성필의 마음가짐이었다.
그런데…… 죄책감 때문에 멤버를 받아도 괜찮을까?
* * *
“언니. 내가 하는 말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줘요.”
“응.”
조아라는 최대한 걸러서 말했다.
“이대로면 언니는 최종 테스트에서 탈락할 수도 있어요. 기본만 하고 있기엔 시간도 없어요. 오늘부터 최종 시험에서 할 곡 골라서 연습해요. 학원쌤들이 준 과제도 못 해가겠지만, 회사에서 떨어지는 것보다야 쌤들한테 혼나는 게 낫잖아요.”
“나 도와준단 거야?”
“네.”
조아라는 간접적으로 ‘너 기본도 못 하니까 편법 써서 빨리 테스트 준비하자’라고 한 것이다.
이 제안에 숨겨진 의미 때문에, 성필은 조아라와 함께 가서 장하양에게 말하려고 했었다.
충분히 기분 나빠할 수 있는 제안이기에, 성필이 최대한 포장해주려고 했다.
“고마워!”
조아라가 포장을 잘한 것인지, 아니면 장하양의 천성이 착한 것인지.
장하양은 조아라가 해준 말이 마냥 기뻤다.
“제가 언니가 추면 좋을 만한 거 골라왔거든요? 어려운 파트도 별로 없어요. 뼈대는 서너 시간 만에 익힐 수도 있을 거예요.”
초심자인 장하양을 기준으로 삼아서 서너 시간이란 것이었다.
조아라의 경우엔 영상을 한번 보고, 몇 번 동작을 따는 것만으로도 다 외울 수준이다.
곡은 청순 걸그룹의 대명사 럽라이크의 ‘보내주세요’였다.
“이런 느낌인데 어때요?”
“좋은데?”
“그럼 이걸로 할게요.”
그렇게 조아라의 댄스 트레이닝이 시작됐다.
한 시간 뒤.
장하양이 땀범벅이 된 채로 무릎을 꿇었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숨이 거칠었다.
조아라가 장하양을 거칠게 다룬 게 아니었다.
‘이건…… 체력도 없고 요령도 없고.’
장하양은 조아라와 같은 학원들을 다녔다.
하지만 장하양은 기초반이었기에, 조아라는 그녀가 연습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심각하단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 정도였을 줄이야.
“10분 쉴게요. 여기 물 드세요.”
“고, 고마워어…….”
장하양은 물을 입에 대려다가 말았다.
지금 물을 마시면 토할 것 같았다.
거친 호흡은 멈추지 않았다. 그나마 괜찮은 상태가 된 건 15분이 지났을 때였다.
그제야 장하양은 물 한 모금을 마셨다.
“언니, 운동 안 하죠?”
“으응. 안 해.”
“……이제 시작해요.”
벌써 20분이나 쉬었다.
조아라는 장하양에게 외운 부분을 춰보라고 요구했다.
0.8배속으로 했는데도 장하양은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했다.
자주 극초반의 안무를 잊어먹기까지 했다.
“하나! 둘! 셋! 넷! 이거요! 이렇게 하는 거라니까요!”
조아라도 본의 아니게 목소리가 자꾸만 높아졌다.
“아, 맞다. 그랬지.”
“다시 해볼게요.”
4시간이 지났다.
조아라는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냈다. 그녀의 앞에는 죽은 듯이 쓰러져 있는 장하양이 있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력까지 소모한 것이다.
‘이렇게 연습해서 고작 1절? 아직 기본 동작도 다 못 땄다고?’
갈 길이 멀다.
만약 성필이 조아라에게 장하양의 지도를 부탁하지 않았다면, 장하양은 다른 사람들처럼 최종 시험이 1주일 남았을 때 준비에 들어갔을 것이다.
‘이 언니는 100% 떨어졌어.’
고작 일주일로 어떻게 할 수 있을 수준이 아니다.
“언니. 내일부터 자율 시간에는 나랑 같이 연습해요.”
“…….”
“언니.”
“…….”
“……언니?”
“으, 응?”
장하양이 바들바들 떨면서 몸을 일으켰다.
“들으셨어요?”
“미안. 힘들어서. 못 들었어.”
“내일부터 나랑 자율 시간에 연습하자고요. 괜찮죠?”
“응. 고마워. 너도 바쁘잖아. 근데…….”
“괜찮아요 괜찮아.”
조아라는 성필의 부탁에 충실히 임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이 정도면 조아라의 말을 무시하고 있다 봐도 좋을 정도로, 장하양은 춤을 습득하는 게 느렸다.
하지만 그것도 나흘이 지나니 성과가 났다.
“하아, 흐어, 흐엨, 크흡…….”
장하양이 짐승 같은 숨소리를 내며 엔딩 포즈를 취했다.
마침내 그녀가 모든 동작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나흘 동안 연습했다곤 하지만, 학원 가는 시간을 제외하곤 하루에 몇 시간 하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춤 하나를 외우기엔 넘치고도 충분하며, 더 나아가 디테일까지 점검해 볼 시간이었다.
‘4일 걸려서 이 정도 수준이라고?’
뭔가 좋은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조아라가 세운 기준에 너무도 미치지 못했다.
조아라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끝났단 신호를 주었다.
장하양의 몸이 허물어졌다.
이제는 이 광경도 익숙했다.
“몸 괜찮아지면 나한테 말해줘요.”
조아라는 연습 시간을 칼처럼 나누지 않았다.
저번에 휴식 15분을 딱딱 지켜서 했더니, 장하양이 갑자기 쓰러져선 토한 적도 있었다.
“나, 나, 이제 좀 좋아진 거 같아.”
15분이 지났을 때쯤 장하양이 일어났다.
“더 쉬세요.”
“아냐. 할 수 있어.”
“……그럼 시작할게요.”
춤의 흐름은 전부 외웠다.
이제는 세세한 디테일을 점검해야 한다.
곡의 초반 부분, 손등으로 꽃받침을 만들듯 턱을 훑는 동작.
“어깨 올리지 마시고.”
“이렇게?”
“아뇨. 손이 올라간다고 어깨도 올라가는 게 아니라니까요. 어깨는 계속 내려야죠.”
“이렇게?”
“고개는 반대로요.”
“응.”
“아니. 어깨 올리지 말라니까요.”
하나를 시키면 다른 하나가 안 된다.
같은 것을 몇 번이나 반복해야 고쳐진다.
“됐다. 이렇게 1절만 해봐요. 제가 말씀드린 부분 신경 써 가면서요. 0.8배로 할게요.”
“응.”
조아라의 눈이 퀭해진 데 비해 장하양은 여전히 밝기만 했다.
답답하지도 않은 건가?
장하양은 조아라가 가르쳐주었던 디테일들을 최대한 살리려고 했다. 하지만 역시, 빼 먹는 부분이 꽤 많았다.
조아라는 기대 없이 장하양의 춤을 보았다.
‘트레이닝 기간이 며칠 남았지? 10일 조금 더 남았었나. 그때까지 다 할 수 있을까?’
애초에, 장하양이 아이돌이 되어도 괜찮은가?
그녀가 배우는 속도는 초심자라서 그렇다기엔 너무도 느렸다.
정말 재능 자체가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
드디어 성필의 안목이 틀리는 날이 왔구나,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만약 자신이 장하양을 멋지게 가르쳐낸다면?
‘아라야. 역시 너밖에 없다. 네가 이 회사의 빛이야. 조아라! 조아라! 조아라! 조아라!’
조아라의 머릿속에서 무릎 꿇고 그녀를 찬양하는 성필이 그려졌다.
그녀는 웃음을 끊기 위해 입가를 매만졌다.
점점 망상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던 도중.
“어?”
조아라가 장하양에게서 무언가를 보았다.
그것을 발견하자마자 조아라가 소리 지르면서 장하양에게 다가갔다.
“언니 미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