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30화 (30/760)

#030화

우연도 세 번이면 필연이라던데.

‘뭐야?’

설마 저번에 만난 그 장하양인가?

이 정도면 성윤수가 성필에게 영업을 벌이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서울이 얼마나 넓은가?

인구만 천만 명이다.

그런데 같은 사람을 이토록 이른 시일 안에 다시 만날 가능성이 있을까?

운명이거나 누군가의 수작이다.

성필은 잠시 빠져나와 성윤수에게 전화를 걸어서 장하양 이야기를 했다.

[장하양이 누군데?]

“네? 아니, 형이 소개해준 분이요.”

[걔 이름이 장하양이였구나.]

“하아, 어쩐지 번호 줄 때 이름을 안 알려주더라니……. 번호 받을 때 이름도 안 물어봤어요? 써 두지도 않았고요?”

[내가 언제 커피를 흘렸는지 이름 부분에 얼룩이 있더라.]

“그게 말이 돼요?”

[안 될 건 뭐고? 근데 나 좀 억울하다. 내가 뭐 그리 한가한 사람이라고 걔랑 널 만나게 해?]

그렇긴 하다.

[내가 아무리 고깝게 보여도 그렇지. 야, 너 그거 자의식 과잉이야 임마.]

“너무 상황이 딱 맞아떨어지니까 그랬죠.”

[근데 그거 운명 같다. 하늘이 돕는 거야. 정허영 걔 놓치지 말라고.]

“장하양이에요.”

[아무튼.]

“알겠어요. 끊을게요.”

[잘 되면 술 사라.]

대체 몇 번이나 얻어먹으려는 건지 모르겠다.

성필은 다시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연극은 빠르게 시작됐다.

최대한 수강생을 많이 넣으려고 한 티가 났다. 등장인물들이 꽤 많았다.

특히 단역들이 많았다.

저마다 한 자리씩 주고 동기부여 시키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성필로서는 주연밖에 기억에 남지 않았다.

한 명만 빼고.

‘진짜 하양 씨네.’

그녀의 대사는 단 세 마디였다.

그마저도 임팩트는 없었다.

연기는 뭐…….

‘갈 길이 멀었네.’

못하는 건 아니다.

배경과 분위기에 녹아드는 능력은 있다.

하지만 사람들을 사로잡는 존재감과 분위기가 부족하다.

무대나 카메라 앞에 선 프로 배우들은 연기할 때 풍기는 아우라 자체가 다르다.

장하양은 아직 부족했다.

“미아아아안!”

남자 주인공이 어장 관리를 한 것에 사죄하는 장면을 끝으로 막이 내렸다.

성필은 박수를 치려다가 멈추었다.

주변이 조용했기 때문이다.

참가한 배우들이 우르르 나와서 인사하는 순간에만 조촐한 박수가 나왔다.

‘다들 너무 무게 잡는 거 아닌가. 수강생들 다 울겠네.’

성필은 일부러 박수를 크게 쳤다.

앞줄에 앉은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성필을 본다. 개의치 않고 계속 박수 쳤다.

그러자 무대에 선 장하양도 성필을 알아보았다. 그녀는 놀란 듯 몸이 굳어서, 대기실로 들어가는 타이밍도 한 박자 느려졌다.

배우 인사도 끝나니 관객들이 우르르 나가기 시작했다.

‘……끝?’

성필도 얼떨결에 사람들을 따라서 나갔다.

“딱히 눈에 띄는 애는 없네.”

“그래요? 저는 삼촌 역이 꽤 좋던데. 사극 쪽으로 밀어 넣으면 괜찮겠지 않아요? 수염도 막 있고. 요즘 정통 사극 같은 건 다 망하긴 했지만요.”

배우 매니지먼트 관계자 같은 사람들이 몇 마디 나누었다.

성필은 귀를 쫑긋 세웠다.

배우라면 그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러냐. 나는 잘 모르겠다.”

“뭐, 될 법한 애들은 학원에서 집중적으로 오디션 준비시키겠죠.”

장하양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들었건만, 씁쓸한 현실만이 귀에 들어왔다.

매표소가 있는 휴게실 한 편에는 극장 주인이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게 보였다.

정말 고맙다느니, 다음에 꼭 보답하겠다느니, 그런 대화가 오갔다.

성필은 더 있을 필요를 못 느끼고 극장을 나왔다.

‘장하양…….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에 없네.’

미래엔 배우가 되는 것을 관뒀거나, 아니면 무명 배우로 근근이 살아가는 듯했다.

‘아직 스무 살이라니까 제 길을 찾아서 갔겠지.’

성필은 장하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녀의 미래를 판단할 재료는 없었다.

동정심은 주제넘은 감정이다.

그저 ‘미래엔 기억이 없네’ 정도로, 성필의 평가는 끝났다.

“이사님!”

뒤에서 장하양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급하게 나온 듯 숨을 헐떡이는 장하양이 서 있었다.

무대 위에서의 복장을 갈아입지도 않았다.

“저 보러 오신 거예요?”

장하양이 기쁜 얼굴로 답했다.

성필의 가슴이 답답해졌다.

저런 얼굴로 물어보는데 아니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게다가 하양 씨는 내가 아이돌 기획사 소속이란 걸 알아. 나는 학원 연극에 참관으로 올 사람이 아닌데…….’

연기 학원이 적당한 사람을 불러 자리에 앉혀둔단 소문이 돌면 학원이 피해를 입으리라.

성윤수의 부탁으로 왔다고 떠벌리는 꼴이 될 테니, 그에게 누를 끼칠 수도 있다.

성필은 거짓말을 싫어한다.

하지만 이번은 어쩔 수 없다.

선의의 거짓말!

“네. 배우가 목표라고 하셨잖아요. 한번 보러 왔어요.”

“감사합니다!”

그녀는 어떻게 찾아왔냔 말은 하지 않았다.

아마 성윤수에게 들었으리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의심이 없다니, 나중에 사기라도 당하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

“어떠셨어요?”

“아쉬웠어요.”

“네?”

장하양의 미소에 금이 간다.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고 있단 게 느껴질 정도였다.

“대사가 적은 게 아쉬웠어요. 연기하시는 거 더 보고 싶었는데.”

“아…… 아아, 아아! 난 또!”

장하양이 입을 가리고 거리가 떠나가라 웃었다.

“어쩔 수 없죠. 저 학원 다닌 지 몇 개월밖에 안 됐거든요. 선배들도 있고, 저보다 잘하는 사람이야 지천에 널렸는 걸요. 당연히 짧죠!”

“연기 배우신 지 얼마 안 되셨어요?”

“어, 그건 아닌데. 암튼 암튼! 나중에는 연극이든 드라마든 훨씬 길게 나올 테니까요. 그때는 충분히 오랫동안 봐주셔야 해요?”

큰일이다.

장하양은 성필이 계속 이곳에 올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환하게 띤 미소를 보면 알 수 있었다.

마치 팬을 대하는 듯한 태도였다.

“네. 미디어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아니, 꼭 그러길 바랄게요.”

“감사합니다!”

말하면서도 심장이 아팠다.

미래의 장하양은 성필의 기억 속에 없었으니까.

타인의 꿈이 무너질 것을 미리 아는 건 결코 달갑지 않았다.

장하양은 고개를 숙인 뒤 다시 극장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저기요.”

성필이 그녀를 불렀다.

“네?”

“이런 말씀 드리는 게 굉장히 실례된단 건 아는데. 배우 언제까지 도전할 생각이세요?”

“언제까지라뇨?”

“나이를 정해두고 계신다거나.”

“음, 아하하. 모르겠어요. 쭉? 계속? 그러게요. 생각해본 적이 없네요. 왜요?”

쭉. 계속.

많은 배우들이 오랜 시간 동안 노력한다.

배역 하나를 얻지 못해서 몇 개월, 몇 년 동안 고통과 고뇌 속에서 살아간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건 극히 일부뿐이다.

아마 장하양도 그들 중 하나가 될 것이고, 결국은 지쳐서 떨어질 것이다.

성필은 미래를 안다.

배우 매니지먼트도 담당했던 몸이니 웬만한 배우의 이름은 머릿속에 있다.

그곳에 장하양의 자리는 없다.

“잠시만요.”

성필은 아까부터 눈에 담아두던 꽃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보라색 튤립을 한 송이 사 와서 장하양에게 내밀었다.

배우가 무대에 섰을 때 줄 만한 선물은 꽃밖에 없지.

“팬으로서 드리는 선물이에요.”

장하양은 실패할 것이다. 그렇다고 ‘성공 못 할 테니까 그만둬’라고 말할 수는 없다.

성필이 그런 위치에 있는 인간도 아니고, 설령 미래를 알더라도 함부로 남의 꿈을 접으라 마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혹시 아는가.

오늘 성필의 격려와 응원이 그녀의 미래를 바꿀지도.

더 열심히, 더 즐겁게 연기를 공부해서 나중엔 정말 유명 배우가 될지도 모른다.

종국에는 배우의 길에서 떨어질지라도, 걸어가는 길에 조금이라도 버팀목이 있길 바란다.

힘들고 의지가 꺾일 때 오늘의 기억이 그녀에게 기운을 줬으면 좋겠다.

“와, 와아.”

장하양은 튤립을 멍하니 보았다. 그리고 살짝 손을 떨며 그것을 받았다.

“사심 있으신 건 아니죠?”

“그렇게 생각하시면 오히려 제가 곤란해요.”

“아하하, 장난이에요. 와. 선물 받은 거 처음이에요. 아, 당연한가? 와아, 와.”

그녀는 계속 튤립을 보며 감탄했다.

그냥 꽃 한 송이일 뿐인데 말이다.

“만화 같아요. 제가 어릴 때 본 옛날 만화가 있는데 주인공이 배우거든요. 근데 첫 번째 팬이 꽃을 주는 장면이 있었어요. 무슨 꽃인지는 기억 안 나는데 그것도 보라색이었거든요. 신기하다.”

튤립을 돌려도 보고 향기도 맡아보던 그녀는 갑자기 ‘앗!’하며 놀랐다.

“무대 정리하러 가야 하는데! 저 가볼게요! 선물 고마워요!”

장하양은 자그마한 꽃을 양손으로 소중히 쥐곤 극장으로 들어갔다.

‘조금 아쉽긴 하네.’

차라리 리카처럼 연예인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테스트를 받아보도록 계속 설득했을 것이다.

방금도 다시 물어볼까 싶었다.

하지만 배우를 지망하는 사람에게 아이돌 해보라고 계속 권유하는 것도 실례이니 그만두기로 했다.

성필은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그 순간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 * *

성필이 도착한 곳은 어느 광장 앞 야외무대였다. 사람들의 약속 장소로 흔히 이용되는 장소다.

겨울인데도 사람들이 많다.

“이사님.”

약속 상대가 성필을 먼저 찾아냈다.

코트와 목도리로 완전무장 한 장하양이었다.

성필은 얼굴에서 피곤을 지우고 반갑단 듯 미소 지었다.

“오랜만이네. 잘 지냈지?”

“이사님은 피곤해 보이시네요. 제가 괜히 불러낸 거 아니죠?”

“아니야.”

둘은 거리를 걸었다.

곧 있으면 크리스마스다.

축제 분위기를 내려고 꾸며진 거리에는 형형색색의 불빛과 장식이 가득했다.

“여기 갈까.”

적당한 분위기의 포차 안으로 들어갔다.

술과 안주를 시킨 뒤, 성필과 장하양은 서로를 보기만 했다.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던 눈싸움은 성필이 웃는 것으로 끝났다.

“또 내가 졌어?”

“이예! 안주는 이사님이 사는 걸로!”

“오랜만에 연락했네.”

“그 말 아까도 했잖아요. 오랜만이라고요.”

“……그랬지.”

둘은 첫 만남 후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았다.

아니, 처음에는 꽤 자주 연락했다.

성필은 연기계에 대한 여러 정보를 장하양에게 알려주었다.

오디션 일정이나 심사위원의 성격, 혹은 이미 기용된 배우가 대본을 해석한 방식 등등.

여러모로 이용할 가치가 많았던 정보들이었다.

그 연락도 시간이 지날수록 적어졌다.

장하양이 성필과 대화하길 꺼렸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성과가 없던 게 부끄러워서였다.

‘요즘은 좀 할 만해?’

라고 물으려던 성필은 황급히 입을 닫았다.

4개월 만의 연락이니 단순한 안부는 아닐 것이다. 어쩌면 드라마의 조연을 따냈다거나, 그런 좋은 소식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말없이 과자를 집어 먹는 장하양을 보니, 그것도 아닌 듯했다.

“저 있잖아요.”

“응.”

“배우 그만두고 싶어요.”

성필은 새삼스레 놀라지 않았다.

이미 예상했다.

문제는 ‘언제’ 그만두느냐였다.

둘이 만난 지 5년이 흘렀다.

장하양은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배우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도저히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그건 재능 때문일까, 아니면 운이 없는 걸까.

성필이 생각하기엔 둘 다였다.

“이사님한테는 직접 뵙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아, 어차피 볼 사람은 이사님밖에 없네. 헤헤.”

장하양이 웃었다.

옛날처럼 쾌활하지 않았다.

술을 입에 머금고 웃는 것만 같았다.

“이사님 덕분에 5년이나 할 수 있었어요. 감사드려요.”

장하양은 5년 전에 집을 나왔다.

가정사가 복잡하단 건 들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성필도 몰랐다.

홀로 돈을 벌고, 간간이 학원에 다니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치도록 오디션장을 돌아다녔다.

그런데도 무명이다.

많은 배우들이 오랜 시간을 거쳐 스타가 된다.

5년 따위 별거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장하양에게는 너무도 힘든 시간이었다.

이 이상 버티는 게 힘들 정도로.

“저 신세 한탄해도 돼요?”

“그럼. 몇 년 동안 나만 보면 괜찮은 척만 했잖아.”

“보였어요?”

“보이지. 오늘은 한탄 좀 해봐.”

“……힘들었어요.”

가정 상황이 받쳐주지 않는다.

오히려 부모님은 장하양이 버는 돈을 가져가지 못해 안달이었다.

월 고작 수십만 원 버는 게 전부인 아이에게는 가혹한 처사였다.

“오디션 시간 맞추기도 힘들고, 혹시 캐스팅되면 그만둬야 하니까 아르바이트도 잡을 수 없고. 희망고문 당하면서 배만 곯고, 냉방에서 떨고, 아무리 꿈이 있더라도 너무 힘들었어요.”

성필은 경청했다.

외면은 평온했으나 마음속에서는 죄책감이 삐죽삐죽 튀어나오고 있었다.

저토록 열악하게 지내왔는지는 몰랐다.

장하양은 힘들단 말을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실수로 나오더라도 장난기가 섞여 있었다.

“아니, 아니, 배고프고 춥고 덥고 한 건 차라리 나았어요. 그것보다 더 힘든 건, 아무도 저를 인정해주지 않는단 거였어요. 무명이니까. 꿈만 꾸는 철부지처럼 보일 테니까, 이해해요.”

장하양은 테이블만 바라보았다.

일부러 성필의 눈을 피하고 있었다.

“저는 배우 지망생이 아니라 그냥 백수였어요. 심지어 가족들한테도요……. 아무도 제 꿈을 이해해주려고 안 했어요. 그게 가난한 것보다 더 힘들었어요.”

짧은 신세 한탄이 끝나고, 장하양은 고개를 들어 성필을 보았다.

“그런데 이사님만 저를 봐주셨어요. 기뻤어요. 당연히 기쁘죠. 그래서 더 열심히 했는데, 아무리 해봐도 안 되네요. 죄송해요.”

“나한테 죄송할 게 뭐 있어.”

“……저, 저.”

장하양은 말을 더듬었다.

항상 쾌활하고 자신만만했던 그녀의 모습이 아니었다.

하고 싶은 말은 머릿속에만 있을 뿐, 목구멍에서 나올 생각이 없는 듯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장하양이 목에 걸린 뼈를 억지로 뱉어내듯 말했다.

“저, 배우 그만둬도 돼요?”

장하양이 허락을 구했다.

이로써 두 사람의 관계가 끝났다.

장하양은 배우란 꿈을 꾸었다.

도중에도 몇 번이나, 몇십 번이나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성필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이젠 정말 못 하겠어요.”

그의 응원과 도움에 보답하고 싶었기 때문에, 진작 포기했어야 할 것을 억지로 쥐고 있었다.

“그만해도 돼.”

성필이 후련하게 답했다.

그 또한 몇 번이나 장하양에게 말하려고 했다.

‘배우는 아닌 것 같다.’

‘이제 포기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하지만 감히 장하양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성필이 입도 뻥끗 못 할 정도로, 그녀는 기꺼이 고난을 견디며 배우란 꿈에 집착해왔다.

항상 힘든 티도 내지 않고 긍정적인 말만 하는 장하양에게, 성필은 현실적인 조언을 꺼낼 수 없었다.

이룰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꿈이라도, 타인이 그만두라고 말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했다.

둘 다 서로 때문에 서로를 속였다.

둘 모두에게 상처뿐인 관계였다.

“고생 많았다.”

5년 전, 성필은 장하양에게 용기를 주었다.

성필은 그녀의 첫 번째 팬을 자처했다.

그런 그가 붙잡으려는 기색도 없이 ‘그만둬’라고 하는 것에, 장하양은 새삼스레 슬픔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성필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유일하게 자신의 꿈을 지지해줬던 사람에게 꿈을 포기한다고 말하는 건 쉽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장하양은 배우를 포기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이사님 말 따라서 아이돌이나 해볼 걸 그랬어요. 아, 방금 말은 취소. 이사님 회사 분들한테 실례였네요. 저 같은 게…….”

심각한 말을 한 뒤에 즉시 농담을 하는 게 장하양다웠다.

하지만 성필은 그 농담을 받아주지 못했다.

갈 곳 없이 들썩이기만 하던 성필의 입술은 결국 말을 뱉어내지 못하고 꾹 닫혔다.

성필은 5년 전을 떠올렸다.

그때 장하양을 응원하지 않고, 이후로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1년, 2년 정도 도전하다가 그만뒀을 것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며 5년 동안 꿈에만 매달리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진작 꿈을 접고 어딘가에 취업해서, 지금쯤이면 안정적으로 살고 있을지도 몰랐다.

나름의 행복을 찾아, 가끔 이루지 못한 꿈을 떠올리며 슬픈 기분에 젖어 들 뿐.

지금처럼 고통 속에서 살아오진 않았으리라.

전부 그때의 성필 때문이다.

‘팬으로서 드리는 선물이에요.’

튤립을 내밀며 그렇게 말했었다.

알량한 동정심으로 장하양을 응원했다.

그 응원 때문에 장하양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건 응원이 아니라 저주였다.

성필은 고작 말 한마디로 장하양의 5년을 날려버렸다.

* * *

“저기요!”

성필이 황급히 뒤를 돌아봤을 때, 장하양은 없었다.

이미 극장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튤립의 잔향이 남아 성필의 코를 간지럽혔다.

미래의 광경에서 느꼈던 죄책감과 후회가 전신을 찌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만두게 해야 해.’

그런데, 어떻게?

‘다른 길을 권유하자.’

어떤?

“……아이돌?”

갑자기 ‘당신은 배우가 적성이 아니에요.’라고 할 수는 없다.

장하양이 상처받을 것이고, 아니면 오히려 오기가 생겨서 계속할 수도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쪽이 더 잘 어울린다고 지속적으로 설득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배우의 길에서 내려오게 해야 해.’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든, 장하양이 마음을 바꾸게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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