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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27화 (27/760)

#027화

“우리를 다 부를 일이 있나?”

조아라가 조금 긴장해서 물었다.

홍규헌은 리카, 백설하, 조아라를 한곳에 불러 모았다.

기본적으로 세 사람은 홍규헌을 만나는 일이 적었다. 그녀는 웬만하면 사장실에만 있었기 때문이다.

“에이, 아라쨩 너무 걱정하지 말라구. 내가 이 회사에 들어와서 무서웠던 일은 하나도 없었어.”

“사장님이 이렇게 따로 부른 적은 있어?”

“어?”

없다.

리카는 홍규헌에게 불려간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리카도 두려워졌다.

“혹시…….”

백설하가 운을 떼자 리카와 조아라가 쳐다보았다. 연장자에게 지혜를 구하는 눈빛이었다.

“해체라거나…….”

“에에에엑?! 아직 시작도 못 했는데 무슨 해체예요!”

“응, 그렇지? 해체보다 나쁜 일은 아닐 테니까 긴장 풀어.”

두 사람 다 백설하에게 당했단 것을 깨닫곤 허탈하게 웃었다.

백설하의 장난으로 확실히 불안은 사라졌다.

셋은 연습실 안으로 들어왔다. 한구인과 성필이 카메라를 이리저리 만지고 있었다.

“왔어? 여기 카메라 앞에 서 볼래? 응, 거기쯤에.”

어색하게 카메라 앞에 서 있던 중 홍규헌이 들어왔다.

“리카가 중앙에 서.”

성필의 말에 셋의 자리가 바뀌었다.

“음. 역시 설하 씨 키가 크네요.”

“네?”

백설하의 반문에 성필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손을 저었다.

성필과 홍규헌은 그녀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말을 주고받았다.

눈치 빠른 리카의 가슴에서 불안이 다시 피어올랐다.

‘이건 센터를 정하는 거야!’

아이돌 그룹은 저마다의 위치가 있다.

대충 정하는 게 아니라 가장 완벽하게 보이도록 자리를 잡는 것이다.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리더는 항상 중앙이다.

중앙! 센터! 가장 눈에 띄는 자리!

“……리카야 갑자기 뭐해?”

리카는 허리에 손을 얹고 시크한 눈빛으로 사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매일 거울 앞에서 포즈를 연습한다.

물론 트레이닝복을 입고 취해봤자 멋이고 뭐고 없었다.

그래도 리카는 필사적이었다.

“리카야 불편하게 있지 말고 편하게 있어.”

“저는 이게 제일 편해요.”

“……아, 그러냐. 이제 아라가 중앙에 와볼래.”

“어째서욧!”

리카가 크게 반발했다.

“1분도 안 봤잖아요!”

그쯤 되면 백설하와 조아라도 어떤 상황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이젠 연습생도 셋이다.

‘중앙’을 정할 수 있는 인원인 것이다.

그게 그룹 멤버가 전부 모였을 때까지 갈지는 모르겠으나, 뭐든 첫인상이란 게 중요하다.

초반부터 중앙으로 인식된 사람은 후일에도 중앙에 설 가능성이 높다.

“리카 비켜봐. 내가 중앙에 서라잖아.”

“아, 아라쨩…….”

리카가 혈육에게 배신이라도 당한 듯 공허히 말했다.

조아라는 자신만만하게 중앙으로 걸어가 포즈를 취했다.

“오케이, 다음은 설하 씨.”

“너무 빠르지 않아요?!”

“뭐 하는 줄 알고 빠르대.”

조아라는 비밀 병기를 사용하기로 했다. 그녀는 큰 눈망울로 한구인을 바라보았다.

한구인은 움찔하더니 시선을 피했다.

“으그르으그극.”

“이빨 그만 갈고 나와.”

마지막 차례는 백설하였다. 그녀는 쭈뼛쭈뼛 중앙에 섰다.

홍규헌과 성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키가 가장 크니까 밸런스가 맞네.’

조아라와 리카의 키는 고만고만한 수준이었다.

저 셋으로 위치를 정한다면, 역시 백설하가 센터에 와야 옳았다.

성필은 몇 번 포즈나 시선을 돌릴 것을 요구하며 차분히 관찰했다.

“다들 고생했어. 나가봐.”

조아라와 리카는 저마다의 불만을 품고 연습실을 나갔다. 백설하만이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평온했다.

성필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으나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그의 의도를 홍규헌이 대신 말해주었다.

“백설하가 제일 나은 거 같은데?”

성필이 리카, 백설하, 조아라 중 누구와 가장 친하냔 질문을 받는다면, 그는 단연코 백설하라 답할 것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성필과 나이 차이가 가장 적기에, 어린아이나 다름없는 리카나 조아라보다 더 말이 통했다.

또한 백설하가 나머지 둘보다 연장자이기에, 그녀만 눈에 넣고 있으면 다른 아이들은 알아서 성필을 따르게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요컨대, 일부러 더 친해지려고 노력했단 것이다.

“예, 그러네요. 설하 씨가 제일 나아요.”

그게 다른 사람 눈에는 편애로 비출 수 있다.

그래서 성필은 ‘백설하가 중앙에 가장 잘 맞다.’라는 말을 쉽게 꺼낼 수 없었다.

“물론 이 멤버 구성에서는 그나마 셋 중에 설하 씨가 낫다는 거예요. 그런데…….”

마지막으로 리카의 키를 쟀을 때가 163cm였다.

조아라는 164cm다.

반면 백설하는 170cm가 넘는다.

셋이 섰을 때 밸런스를 고려하자면 백설하가 단연 베스트다.

하지만 미묘하다.

“그저 키뿐이지만, 리카랑 조아라의 분위기를 죽여요. 심하게 말하면 둘을 백댄서…… 아니, 보조 댄서처럼 보이게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7, 8cm 차이는 크다.

백설하가 중앙에 섰을 때, 그녀의 기다란 신장이 리카와 조아라의 기세 자체를 죽여놓고 있었다.

“적어도 설하 씨랑 비슷한 느낌이나 체격의 멤버가 하나 더 필요할 거 같아요.”

“나도 박 이사 말에 동감이야.”

“저기, 아라 씨는 어땠습니까?”

“……한 이사. 하나만 묻자. 너는 조아라가 리더나 센터가 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해?”

“음.”

한구인은 답하길 꺼렸다. 그것은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센터와 리더는 다른 개념이지만, 보통은 같이 차지하는 경우가 많지? 내가 봤을 때 아라는 리더로서 좀 그래.”

조아라는 누군가에게 응석을 부리면 부렸지, 받아줄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사람을 챙겨주고 신경 쓰기엔 나이가 어리기도 하다. 그런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백설하는 트레이너 경험도 있고 리더를 맡기면 잘할 거 같아.”

“동의합니다. 저도 무작정 아라 씨를 밀어주고 싶은 게 아닙니다.”

“그런데?”

“그냥…… 실망하실 거 같아서 그럽니다. 나중에 아라 씨가 저한테 오늘 뭐 한 거냐고 물어보실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때 그럴듯하게 포장할 말이 필요해서 여쭤봤습니다.”

“뭐어, 조아라가 실망할 수도 있겠지. 근데 그룹 포지션 짤 때면 항상 있는 일이잖아. 감내해야 해. 물론 아라가 깽판 치고 소리 지르고 난리 피울 수 있겠지만.”

“그렇게까지는…….”

“하지만 그걸 케어하는 게?”

한구인은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제 일이군요.”

“믿고 있다구, 구인쨩.”

“…….”

“…….”

“그냥 리카 따라 해봤어. 그만 쳐다봐.”

홍규헌은 회의의 끝을 선언하듯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조금씩 그림이 보이네. 고작 세 명이지만. 앞으로도 두 사람한테 기대가 커. 빨리 연습생들 모아줘.”

그녀는 재빨리 연습실을 나갔다.

“부끄러워하시네요.”

“개그 욕심이 있으신 분입니다. 대부분 실패해서 부끄러워하시지만요. 다음에는 웃어드리는 게 좋겠습니다.”

사장의 비위를 맞추는 것도 월급쟁이의 숙명이니까.

* * *

[뭔 연습생을 소개해달래.]

“그렇게 됐어요 형.”

[어떻게 기획사를 가도 그런 하꼬에 가냐. 너 정도 되면 데려가려는 기획사 있지 않았어?]

하꼬란 단어에 성필이 발끈했다.

하지만 재빨리 심호흡으로 화를 가라앉혔다.

“자금은 탄탄해요.”

[네가 간 곳이니까 장점이 있겠지.]

성윤수는 말이 너무 필터를 안 거쳐서 문제다.

모델 에이전시의 사장으로 있는데, 저런 성정으로 어떻게 회사를 운영하는지 잘 모르겠다.

“제가 학원부터 바닥까지 전부 돌아보고, 기획사에서 나온 애들이랑도 웬만하면 다 접촉해봤거든요?”

[없어? 아이돌도 인재난이 심각하구나.]

“아뇨, 딱히 그런 건 아닌데…….”

성필의 마음에 드는 아이가 없는 것이다.

그는 이번 아이돌 제작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임하고 있다.

시작부터 보석만 모아서 만들어보고 싶은 것이다. 어중간한 건 보고 넘기지 못했다.

[그래서 마지막 종착역이 추천받는 거냐?]

“네.”

성필의 몸은 한 명이다.

아무리 열심히 돌아다녀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러니 안목 있는 사람들에게 부탁하는 것도 방법이다.

‘문제는 소개받았는데 거절하는 경우지.’

소개해준 사람은 당연하고 소개된 사람도 기분이 나쁠 테니까.

상대의 안목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웬만하면 쓰지 않으려 했던 방법이지만, 성필도 슬슬 급해지기 시작했다.

‘서울을 다 뒤졌는데도 사람이 없는 거 같아.’

폰 너머로 종이를 뒤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딱 떠오르는 얼굴이 한 명 있긴 한데.]

“정말요? 아이돌 하면 괜찮겠다 싶은 애가 있어요?”

[나야 아이돌 하면 괜찮은 애는 모르지. 근데 연예인으로 괜찮은 애는 있어.]

“오. 형님이 소개해주시는 거면 믿을 만하죠.”

[근데 마지막으로 만난 게 3년 전인데.]

“…….”

[어디 보자. 연락처를 여기다 적어뒀는데. 아, 이거다. 받아 적어.]

성필은 그가 불러주는 번호를 저장했다.

[그때 몇 살이랬더라. 중학생이었나 고등학생이었나 그랬을 거야. 오디션장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얼굴이 훤칠하더라고. 언제 만나게 될 것 같아서 연락처 받아뒀어.]

“사진은 있으세요?”

[있겠니?]

“얼굴도 모르고 만나는 건 좀 그런데요.”

[네가 걔랑 어떻게 되든 신경 안 쓸 거야. 미안해하지 마. 너랑 나 사이에 그런 걸로 감정 상할 게 있냐?]

지금 당장 성필의 감정이 상하고 있었다.

마치 적당히 먹고 떨어지란 태도 같아서 화가 나려 했다.

하지만 성윤수쯤 되는 인물이 아무렇게나 말할 리도 없고, 성필은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알겠어요. 바쁘실 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다음에 술이나 먹어요.”

[새끼. 기분 안 좋으면 목소리 팍 내려가는 버릇은 아직도 못 고쳤네. 미안해 내가. 근데 걔가 진짜 내 기억에 남았다니까. 잘해봐.]

성필은 통화를 끊고 그에게 받았던 번호를 노려보았다.

번호에서 얼굴이 보이기라도 할 것처럼.

당연히 그럴 리는 없다.

한숨을 쉬며 뒤로 도니 리카가 서 있었다.

“흐억 깜짝야! 뭐야. 왔으면 말을 해.”

“왔어요.”

“준비 다 했어? 이제 갈까?”

“방금 전화 뭐예요? 연습생?”

“응. 연습생 관련된 일.”

“또 들어오는 거네요…….”

“……? 그게 왜?”

“아녜요.”

성필은 리카를 태우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이제 연습생들 많아지면 이사님이 태워주는 일도 많이 없겠네요.”

“응. 나중에는 너 혼자 귀가해야 할 수도 있어. 그래도 할 수 있는 한은 해볼게.”

“저희 때문에 매일 밤에 집에 가시고. 죄송스럽네요.”

“……너 왜 그래 갑자기.”

“저도 이런 게 이상하단 건 알아요. 집까지 태워다주는 기획사라뇨. 이렇게 친절한 곳이 또 있을까요.”

“너 열 있어?”

“하아, 저도 정말 행운아예요.”

성필은 등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갑자기 리카가 왜 이러는 걸까.

“이사님. 오랜만에 카페나 갈까요. 저 커피 마시고 싶은데.”

“아니. 난 안 가고 싶은데.”

“아아앙! 7칼로리짜리 아메리카노 먹을 테니까 가요! 가요오오!”

“진짜?”

“네. 저도 학습 능력이 있어요. 이사님이 당분 안 줄 거 뻔히 알아요…….”

너무도 빨리 포기를 배워버린 18살이다.

“근데 너 솔직히 집에서는 식단 잘 안 지키지?”

“지켜요!”

“그러냐.”

연습생이라고 항상 식단을 조절할 수는 없다.

사람이니 과자나 기름진 음식도 먹고 싶다.

특히 여자 연습생들은 먹을 것에 더 집착이 심하다. 성필도 전생에서 식단 관리가 힘들다면서 우는 아이들을 몇 봤었다.

“이사님이랑 약속했잖아요. 당연히 지키죠.”

비록 말뿐이라도 고맙기만 하다.

둘은 근처의 프랜차이즈 카페로 들어갔다.

“아, 한라봉 에이드 맛있겠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이요.”

“그냥 맛있겠다구요…….”

성필은 메뉴판에서 눈을 떼고 카운터 직원을 보았다.

순간 시선이 못 박힌 듯 떨어지지 않았다.

‘와. 진짜 배우상이네.’

일반인이 봐도 아우라가 남다른 사람이었다.

카페 안의 남자들은 자주 흘끗거리며 카운터를 보았는데, 이 점원 덕분에 카페 매상도 상당히 올랐으리라.

“이사님.”

리카가 낮아진 음성으로 성필을 불렀다.

목소리보다 그녀가 소매를 당기는 것으로 성필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직원이 익숙하다는 듯 미소 지었다.

“쿠폰 만들어드릴까요?”

“어, 네.”

그녀는 쿠폰에 도장을 두 장 찍고 성필에게 주었다.

두 사람은 커피를 받고 자리로 향했다.

“자주 그렇게 정신 잃으세요?”

“정신을 잃는다라…… 틀린 말은 아니지.”

“대리석 안에서 다비드상을 본 미켈란젤로처럼요?”

“오, 리카 그런 말도 알아? 똑똑하네.”

“이사님이 해줬던 말인데.”

“내가? 그랬던가?”

“…….”

성필이 벽 쪽에 자리를 잡았다.

당연히 맞은 편에 앉을 줄 알았던 리카가 성필의 옆에 앉았다.

거리도 가깝다.

문득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이렇게 달라붙었었다.

“할 말 있으면 해. 이상한 짓 하지 말고.”

“옛날 생각나네요. 그때도 이렇게 이사님이랑 같이 앉았었는데. 정말 즐거웠었는데.”

“네가 KS 엔터 데뷔조 떨어졌을 때 말이지? 즐거웠었는지는 모르겠다…….”

리카가 계속 달라붙어서 카페 밖으로 도망가기까지 했었다.

길거리에서까지 전속력으로 쫓아오던 리카는 성필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주기 충분했었다.

그녀가 성필을 추월해서 무릎을 꿇었을 때는 충격에 혼절할 것만 같았었다.

“그때 기억나세요? 저희 서로 얼굴만 봐도 웃고 그랬잖아요.”

“너 기억이 좀 이상하지 않냐. 근데 왜 자꾸 밑밥을 깔아. 할 말 있으면 하라니까.”

“아련하고 흐릿한, 정말 행복했던…….”

“나 간다.”

“나빠! 히도이(너무해)! 박 이사님 요즘 저한테 쌀쌀맞은 거 아세요?!”

“내가?”

“네! 니가!”

“뭐?”

방금 리카가 ‘네가’라고 한 건가?

띠동갑인 성필에게?

“야, 리카. 내가 편하게 대해준다고 네가 이러면 안 되는…….”

“키미(너)! 키미! 키미! 키미! 키미! 당신!”

리카가 보기 드물게도, 아니.

보기 드문 건 아니지만 진심으로 흥분했다.

“옛날에는 제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면서요! 막 저 칭찬도 많이 해주시구! 제가 세상의 보배라면서 빨리 세상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말을 하면서 감정이 북받치는지,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저랑 같이 일하게 된 게 엄청 행복하다고 하셨잖아요!”

“내가…….”

“네! 이사님이요! 저 이사님이 했던 말 그대로 똑같이 따라 하고 있는 거라구요! 아까부터 그랬어요! 토씨 하나도 틀린 게 없어요! 왜냐?! 제가 그날 집에 가서 일기에 쓰고 힘들 때마다 읽었으니까요!”

성필이 당황해서 몸을 뒤로 물렸다.

리카가 멀어진 거리만큼 다가왔다.

“근데 이사님은 하나도 기억 못 하시구! 그때 이사님은 간이든 쓸개든 다 빼줄 것 같았는데, 막 친절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설하 쌤 앞에서 헬렐레하기만 하구!”

“헬렐레……?”

“저한테는 쌀쌀맞게 대하고 저만 차별하고! 하물며 저보다 아라쨩한테 더 잘해주잖아요!”

“아, 아니. 내가 뭐 언제 그랬다고 그래.”

백설하는 몰라도 조아라는 진짜 아니다.

“허! 언제? 뭐? 옛날에 이사님이 했던 말 똑같이 해볼까요?”

성필은 리카의 기억력이 무서웠다.

애초에 그녀가 이렇게 쌓인 게 많을 줄 몰랐다.

성필은 침을 꼴깍 삼켰다.

“제가 예전에 이사님한테 아저씨라고 불렀을 때 이러셨잖아요! ‘한 번만 더 아저씨라고 부르면 가만 안 둔다.’ 엄청 무섭게 말해서 지금까지 한 번도 그렇게 부른 적 없어요! 근데 아라는 아저씨라고 백번 천번 불러도 가만히 두잖아요! 그게 차별이 아니면 뭐예요! 왜 아라만 그렇게 불러도 되는 건데요! 그리고 왜 아라한테만 카페라떼 사줬어요?!

다른 건 몰라도 마지막 지적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저는 이유를 알아요. 이사님이, 이사님이…….”

리카의 눈가에 물기가 맺혔다.

“이사님이 옛날에 저 꼬시면서 했던 말 전부 뻥이었으니까!”

리카의 뺨을 타고 내려가는 눈물과 함께, 성필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냥 적당한 기획사에서 적당히 트레이닝받은 애를 적당한 마음으로 데려온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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