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22화 (22/760)

#022화

어느 댄서 출신 아이돌이 말했다.

처음 연습생으로 들어갔을 때 너무 힘들었다고.

언더그라운드 스타일과 아이돌 스타일은 대척점이 아니지만, 충분한 차이점도 있다.

“언더물? 언더물이요?”

“먼저 표정. 그래, 댄스 퍼포먼스 할 때는 ‘나 몰입하고 있어’, 이런 표정 지을 수 있겠지. 그런데 우리는 곡 분위기랑 외면이 일치해야 하거든. 넌 뭐랄까, 본인에게 너무 심취하고 있다? 그런 느낌이 확 들어.”

조아라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춤에 관해서는 항상 주변 사람들이 떠받들어주기만 했는데, 성필이 웬 되지도 않는 잣대를 들이밀면서 비판하는 것이다.

일단 그녀는 이런 방식의 비판 자체가 익숙하지 않았다.

“아이돌 무대란 건 네가 알던 곳과 전혀 다른 세상이야.”

“난 아이돌이 아니라…….”

“버릇 고치는데 시간 꽤 들겠어. 그리고 자세도 굽었고.”

“자세는 뭔…….”

조아라는 측면 거울을 보았다.

살짝 굽은 어깨와 안쪽으로 모인 어깨.

이걸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댄서들은 숙달하는 장르에 따라 바른 자세에서 점점 멀어진다.

굽히거나 모으는 동작을 자주 하기 때문에 기본 자세가 변화하는 것이다.

멋인 줄만 알았는데.

“……자세가 뭐 어때서요.”

조아라가 은근슬쩍 등과 어깨를 폈다.

들키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지켜보는 사람들은 못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성필이 무언가 말을 더하려 했다. 조아라는 궁지에라도 몰린 기분이었다.

이렇게 대놓고 무어라 한 사람은 처음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욕을 먹어도 이것보다는 덜 굴욕적이리라.

“박 이사, 그만. 평가는 나중에.”

“알겠습니다.”

“저는 좋다고 생각해요. 다음으로 넘어갈까요?”

“…….”

다음은 노래였다.

한구인이 마이크를 준비하는 동안, 홍규헌이 성필의 옆구리를 찔렀다.

“악!”

“너 왜 그래? 쟤한테 욕이라도 먹었어?”

“객관적인 평가를…….”

“아직 의견 수합도 안 됐는데 막 말하면 어떡해. 쟤 봐 쟤. 기가 다 죽었…….”

조아라가 성필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칼만 쥐여주면 당장이라도 달려올 태세다.

“……기가 죽진 않았네.”

“제가 저런 타입 애들 많이 봐서 이러는 거예요. 자기만 잘나서 주변에서 떠받들어준 애들이요.”

“아이구, 우리 박 이사. 전 회사에서 데뷔시킨 아이돌이 뭐 열 그룹은 되나 봐?”

전생까지 합치면 그것도 넘지.

비록 프로듀싱은 아니었지만…….

“암튼 너무 뭐라 하지 마. 난 박 이사 의견도 타당하다고 보긴 하는데, 저기. 한 이사 쪽 봐.”

한구인도 성필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박 이사님이 잘못 말해서 조아라 씨가 나가시면, 정말 가만 안 둘 겁니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성필은 오한을 느끼며 입을 꾹 다물었다.

“시작하겠습니다.”

노래는 뭐…….

조아라는 일반인 이하의 실력이었다.

음정이 ‘솔’까지 밖에 없는 듯, 조아라의 노래는 저음만을 맴돌았다.

진혼곡이라도 읊는 줄 알겠다.

‘춤은 잘 춰도 노래까지 기대한 건 아니었지.’

홍규헌은 충분히 포용할 수 있었다.

노래야 가르치면 얼마든지 실력이 올라간다.

만약 조아라가 그룹에 들어오면 메인 댄서를 맡길 생각이다. 메인 보컬은 백설하가 맡을 테니, 실력은 조금만 키우면…….

“그만, 그만!”

갑자기 성필이 외쳤다.

한구인은 당황해서 곡을 멈췄다. 조아라는 다행이라는 듯 재깍 노래를 그만두었다.

“조아라.”

“또 뭐요. 노래 못 부르는 걸 어쩌라고…….”

“장난으로 부르지 마. 아무리 노래를 못 불러도 진지하게 하긴 해야지!”

“아니라고…….”

노래 못 부른다고 이렇게 멸시까지 받아야 하는가.

물론 조아라만의 감상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대충 불렀다.

어떤 일이든 잘하지 못한단 건 창피하다. 그게 남들에게 보여주는 노래 같은 종류라면 더 그렇다.

본 실력으로 불러서 비판받으면 부끄럽다.

하지만 일부러 실수해서 비판받으면, ‘내 실력은 원래 이 정도가 아니니까’라며 위로할 수 있다.

“그걸 뭐라고 하는지 알아? 자기 장애 전략이라고 하거든. 내 실력은 원래 이런 게 아니야. 난 이 정도는 아니지. 이러면서 자기 위로하는 거라고.”

“…….”

감정의 밑천까지 다 털려서 비판받은 조아라가 부들부들 떨었다.

“다시. 진지하게.”

성필이 그렇게 말하는 동안, 테이블 아래에선 홍규헌이 세차게 그의 옆구리를 찔러댔다.

결국 그가 그만두지 않았기에 소용없는 일이 됐지만.

다시 곡이 나오자 홍규헌이 작게 소리쳤다.

“박 이사 너 진짜 왜 그래? 이거 끝나고 한 이사한테 죽고 싶어?!”

성필이 기억하기로는 거의 처음으로, 한구인이 눈동자에 분노를 담아 태우고 있었다.

둘만 있었으면 주먹이라도 나왔을 것 같다.

“너 그냥 쟤 싫어하는 거…….”

“숨겨왔던 나의―!”

그때, 조아라가 있는 힘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장난으로 부르는 게 아니었다.

음정을 맞추기 위해 폐에서 공기를 끄집어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비참할 정도로 못 불렀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한다는 게 느껴졌다.

“모두―! 네게―! 줄게에에에에―!”

조아라의 얼굴은 홍당무처럼 붉었다.

눈을 꼭 감고 있는 게, 보는 사람에게도 창피함이 전해졌다.

하지만 나쁜 말은 할 수 없으리라.

그녀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조아라 혼자 창피한 보컬 테스트가 끝났다.

‘아 씨 쪽팔려 뒈지겠네 진짜.’

조아라는 영원히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창피한 노래 실력을 들켰으니까.

초등학교 때의 가창 시험 이후 이런 수치는 처음이다.

또 성필에게 혹평이 날아올 줄 알았지만.

“잘했어.”

아니었다.

“감정이 실려있네.”

조아라는 노래를 마치기 직전까지 목구멍에 바위라도 걸린 듯했다.

곡이 끝났을 때는 심장에 무거운 추가 달린 듯했다.

성필에게 들을 혹평을 생각하면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그 예상이 빗나가고 칭찬이 나오니, 불안의 반대급부로 급격한 안도가 찾아왔다.

“하면 되잖아.”

“…….”

아까와는 다른 창피함이 찾아왔다.

당장 ‘빈말하지 마요’, ‘아무 말 대잔치하네’, 그렇게 비꼬아주고 싶지만.

어째선지 비뚤어진 반항심 대신, 가슴이 간질거려왔다.

“그럼 다음은…….”

* * *

“대체 왜 그러신 겁니까!”

한구인이 성필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아까 분위기만 보자면 주먹질하지 않는 게 용했다.

“조아라 씨가 안 하겠다고 뛰쳐나가면 박 이사님이 책임지실 겁니까? 아뇨! 책임 못 지십니다! 조아라 씨 같은 별을 어디서 구하겠습니까!”

“혼자서 김칫국은 다 마시네. 아직 들이겠다고 결정한 것도 아닌데.”

“아닙니까?!”

조아라는 잠깐 휴게실로 가고, 셋은 모여서 테스트의 결과를 논의했다.

“조아라 씨 춤추는 거 보셨잖습니까. 메인 댄서로 손색이 없습니다. 게다가 그 날카로운 눈매. 리카 씨와 백설하 씨에게는 없는 쿨한 매력이 있습니다. 팀 컬러를 맞추는 데도 도움이 될 겁니다.”

“너 아이돌에 관심 없는 거 아니었냐.”

대체 한구인은 조아라의 무엇을 보고 이토록 과몰입하는 것일까.

보육원 봉사활동 때 처음 봤다는데, 그곳에서 백 년에 한 번 나오는 최고의 퍼포먼스라도 목격했나?

“내 감상을 말하자면, 춤은 좋아. 밥 먹고 춤만 췄다면서? 그렇게 말할 자격 되네. 구체적인 사항이야 구분 못 하겠다만. 노래는 뭐어…… 배우면 되고. 또 댄스를 오래 배워서 그런지 포즈도 잘 잡더라. 어떻게 해야 멋지게 보이는지 알아.”

“역시 사장님이십니다. 사장님의 혜안과 신산귀모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냐. 박 이사는 어때?”

“저도 좋아요. 단기 트레이닝 한 달을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랬었지. 아이돌에 관심이 없다고 했었나.”

일단 셋의 의견은 ‘찬성’으로 모였다.

최대한 빨리 그룹을 구성해야 하는 가로 엔터였기에, 이미 댄스가 완숙의 경지에 오른 조아라는 탐나는 인재일 수밖에 없었다.

“결과나 말해주자. 그럼 걔가 정하겠지.”

* * *

리카는 건강즙을 마시러 1층으로 내려왔다.

1층 휴게실 의자에 조아라가 앉아 있었다.

리카의 트레이닝복을 입고서.

“…….”

“…….”

“오하요(안녕).”

놀랍게도 조아라가 일본어를 썼다.

“아, 아, 오하요쟈(‘아침 인사’안녕이) 나쿠테(아니고) 곤니찌와(‘오후 인사’안녕)…….”

“뭐?”

“아, 아. 난데모나이(아무것도 아냐)!”

리카는 눈물을 머금고 도망쳤다.

처음 보는 아이가 자신의 옷을 입고 있어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말이다.

게다가 원래 목적이었던 건강즙도 못 챙겼다.

일진은 무서우니까…….

“조아라 씨.”

한구인, 박성필, 홍규헌이 1층으로 내려왔다.

결과를 전한 건 홍규헌이었다.

“조아라 씨가 저희 회사로 와주시면 감사하겠어요. 들으셨다시피 바로 정식 연습생이 되는 건 아니에요. 단기 트레이닝 한 달 과정을 거친 뒤에도 조아라 씨가 할 마음이 있으시고, 과정에 성의 있게 임해주셨을 때 정식 연습생이 되실 거예요.”

“흠.”

“결정하시기 힘들면 나중에 답 주셔도 괜찮아요.”

조아라는 홍규헌 너머의 둘을 보았다.

러브레터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가슴께에 손을 꼭 모으고 있는 한구인.

누군가 자신을 이토록 바라준다는 게 기쁘긴 하지만, 뭔가 이상한 느낌도 들었다.

한구인은 뭘 보고 자신에게 이토록 집착하는 것일까.

‘이 테스트를 왜 받았더라.’

그래.

박성필이란 사람 때문이다.

그에게 한 방 먹여주기 위해서다.

여기서 거절한다면 좋은 한 방이 되겠지.

“…….”

그런데 기분이 안 난다.

지금도 보라.

성필의 눈동자는 미동 없이 고요하기만 하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란 듯하다.

‘내 춤을 막 씹었었지.’

만약 한 달의 단기 트레이닝 동안 그가 반할 만한 춤을 보여준다면.

그때는 다른 표정을 하고 있을까.

‘그게 복수겠지. 근데 굳이 그럴 필요 있나.’

복수의 순간을 위해서 잘하지도 못하는 보컬 레슨 같은 것을 받아야 할까.

그 시간이면 춤을 몇 개나 연습할 텐데.

백민정 선생의 부탁이 있다지만, 끌리지도 않는 일에 시간을 투입하는 것도 곤란하다.

‘아르바이트도 해야 해서 시간 내는 것도 좀 힘들 거고.’

조아라의 부모는 그녀가 춤만 추는 것을 싫어한다. 어릴 때 딸이 하고 싶대서 보내놨더니, 몇 년 동안 학교도 빼먹고 주야장천 춤만 추는 것이다.

벌써 몇 번이나 그것으로 싸웠는지 모르겠다.

‘곧 있으면 또 그 시즌이긴 하지. 나 학원 그만두라고 학원비 끊는 거.’

아무튼, 학원도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도 해야 한다.

무엇보다 아르바이트가 문제다.

가로 엔터에서 단기 트레이닝을 한다고 치면, 기간이 끝났을 때 다시 학원으로 돌아갈 돈이 없을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못 할 테니까.

‘그래도…….’

성필에게 한 방 먹여주고 싶긴 하고.

“아라야.”

“왜요.”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성필이 울고불고 매달리는 상상을 하고 있자니 그가 말을 걸어왔다.

“너 다니는 학원 계속 다니고 싶으면 그래도 돼. 단기 트레이닝에서 계획한 댄스 학원이 두 개거든. 하나는 스트릿 댄스, 다른 건 아이돌 댄스. 스트릿 댄스 쪽은 유 노 댄스 아카데미에 보내는 걸로 할게.”

“…….”

“그냥, 네가 원하면 그렇단 거야.”

성필의 말은 조아라의 고민을 꿰뚫는 것이었다.

조아라는 같은 학원만 몇 년을 다녔다.

갑자기 학원과 연이 끊어지는 건 두렵다.

비유하자면 갑자기 전학하는 것과 비슷했다.

그런데 그 부분이 해결되면, 가로 엔터에 가는 것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학원도 계속 다니고, 성필의 오만한 콧대도 꺾어줄 수 있고.

게다가 정식 연습생도 아닌데다가 단기 트레이닝이라 고작 한 달뿐이니.

너무나도 그녀의 상황에 잘 맞는 제안이라 오히려 이상한 기분도 들었다.

‘이 아저씨 내 마음이라도 읽는 거 아니야?’

뭐, 아무렴 어떤가.

“하나 물어보고 싶은데요.”

“물어봐.”

“저 들어오는 거 찬성한 사람 몇 명이에요?”

성필이 손가락 두 개를 폈다.

두 사람이라는 뜻.

조아라는 픽 웃었다.

“아저씨, 나 마음에 안 들어요?”

“난 누가 반대했다고 말한 적 없는데.”

그래. 이런 것도 좋다.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을 놀라게 만들어주는 것.

다른 두 명이 찬성하면 눈치를 봐서라도 찬성표를 줄 법도 한데, 성필은 끝까지 반대를 외친 것이다.

‘내가 잘못했다. 미안하다. 그 말이 입에서 나오도록 만들어줄게.’

겸사겸사 한 달치 학원비도 아끼고.

“좋아요. 들어갈게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한구인은 파티라도 열 것 같이 기뻐하고, 홍규헌도 조아라의 손을 맞잡으며 식구가 된 것을 환영했다.

그 가운데 뚱하게 서 있는 성필. 그는 남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 * *

단기 트레이닝 1주 차가 끝났다.

조아라는 기획사로 가는 길에서 지난 1주일을 반추했다.

힘들긴 했다.

하지만 도저히 못 버틸 정도는 아니다.

‘박성필 그 아저씨. 겁은 있는 대로 주고 말야. 뭐? 내가 버티기 힘들어?’

그런 건 보통 애들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겠지.

자신같이 유능한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법칙이다.

‘아무렴. 내가 밥만 먹고 춤만 췄는데. 그 스케줄에 보컬이랑 연기만 들어간다고 힘들겠어?’

물론 트레이닝 일정은 따라가기 벅찼다.

성필이 일부러 트레이너에게 언질을 줬기 때문이다.

단기 트레이닝 기간이니, 열정과 참을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과제를 많이 내달라고.

또한 진도도 빠르게 나가 달라고.

‘두고 봐, 아저씨.’

단기 트레이닝이 끝나는 날, 성필은 놀란 토끼처럼 눈동자를 크게 뜰 것이다.

그리고 조아라의 재능을 칭찬하며 제발 가로 엔터에 남아달라고 하겠지.

그때 조아라는 말할 것이다.

‘아, 별로 내 취향이 아니네요.’

절망에 빠지는 성필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 얼굴을 반찬으로 삼으면 밥 한 공기도 뚝딱 먹을 수 있을 듯했다.

“안냐세요.”

나른한 투로 인사하며 회사 문을 여니, 처음 보는 얼굴이 있었다.

블라우스에 스커트, 헐렁한 카디건을 걸친 여성. 딱 봐도 어른의 분위기가 풍겼다.

조아라가 우물쭈물하고 있자 그녀가 일어나 미소 지었다.

“안녕하세요. 백설하라고 해요. 조아라 님 맞으시죠?”

백설하가 일어나자 조아라는 또 놀랐다.

그녀의 키 때문이었다.

‘몇이야? 170cm 넘는 거 같은데?’

다리도 길고 비율도 남달랐다.

연습생인 리카를 봤을 때는 뭐, 그럭저럭 생겼다고 생각했다.

자기도 크게 꿀리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런데 백설하에게는 정말 아우라가 있는 것만 같았다.

“네. 조아라 맞아요. 그, 백설하…… 님?”

이름 뒤에 ‘님’을 붙이는 게 어색하기만 했다.

그 부분부터, 조아라는 자신이 백설하보다 어리단 마음이 들게 했다.

“보자마자 알았어요. 박 이사님이 이야기 많이 들려주셨거든요. 한 이사님도요.”

“아, 네.”

뭐라고 했을까.

궁금하다.

하지만 물어보기엔 조금 자존심이 상한다.

“춤을 정말 잘 추시는 분이라면서요. 노력도 엄청 많이 하신다구.”

“노력은 뭐. 춤은 좋아서 하는 거고요.”

“예쁘단 말도 많이 들었어요.”

백설하의 예쁘다는 칭찬에는 마치 아이를 대하는 듯한 분위기가 있었다.

실제로 백설하가 연상이기도 했고.

‘근데, 예쁘다고 들었다고?’

그럼 성필이나 한구인 중 한 명이 ‘조아라가 예쁘다’고 말한 것일 텐데.

누가 한 걸까.

그것도 궁금했다.

말해주지 않을까 해서 기다렸지만, 백설하는 할 말을 다 한 듯 가만히 있었다.

“아라 왔어?”

2층 난간에서 성필이 외쳤다.

“응, 왔어요. 안녕하세요.”

“그래. 오늘도 일찍 왔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성필이 계단을 뛰듯 내려온 것이다.

지금까지 본 적 없던 모습이다.

택배 왔단 말을 들은 사람 같다.

성필이 활짝 웃으며 백설하의 앞에 섰다.

“아라랑 얘기는 나눠보셨어요?”

“네에. 방금 막요.”

“…….”

조아라는 성필의 목소리에 서린 기쁨을 읽었다. 게다가 이야기하는 내내 그의 얼굴에는 화색이 감돌았다.

여태껏, 성필은 조아라를 대하면서 이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뭐야.’

이건 마치 사람을 차별하는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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