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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17화 (17/760)

#017화

가로 엔터 이사, 한구인의 아침은 빠르다.

6시가 되자 커튼이 자동으로 걷히며 스피커에서는 클래식이 흘러나왔다.

비발디의 사계, 여름이다.

한구인은 몽롱한 정신으로 가만히 누워 있다가, 여름 1악장이 3분쯤 흐르자 이불을 박찼다.

파리가 웽웽거리는 듯한 바이올린 소리가 신경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음.”

알람을 끄고는 바로 샤워했다.

개운해진 몸으로 아침밥을 먹은 후, 방으로 들어와 책을 펼쳤다.

그렇게 3시간이 지났다.

점심을 먹은 후, 다시 방으로 들어와 책을 펼쳤다.

그렇게 5시간이 지났다.

‘나가자.’

한구인의 진정한 하루는 오후 5시 30분에 시작됐다.

일주일 전 사둔 선물이 들어 있는 종이백을 들고 집을 나섰다.

항상 차를 타고 다니지만, 오늘은 달랐다.

퇴근 시간, 번잡한 버스에 타자 사람들의 눈길이 느껴졌다.

자신의 외모가 이목을 끈다는 건 옛날 때부터 습득한 지식인 터라, 딱히 신경 쓰이지 않았다.

우월감이나 만족감도 없었다.

오히려 스멀스멀 작은 불안감이 올라와서, 억지로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야 했다.

‘리카 씨는 오늘도 회사에 계시겠지.’

주말인데도 참으로 열심이다.

한구인 자신은 오늘 집에서 책밖에 읽지 않았는데 말이다.

얼른 회사가 번창해서 일거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버스에서 내렸다.

생기가 빠져나간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도로변에 드러난 곳은 모두 상가였으나 손님들이 많아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편의점이 가장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리라. 하지만 진정 시선을 끄는 곳은 따로 있었다.

‘벌써 건물이 다 밀렸잖아.’

퇴근이 다가온 시각임에도, 넓은 범위를 둘러싼 공사장 가림막 안은 여전히 인부들이 작업하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저 장소가, 오늘 한구인이 이 동네로 온 간접적인 이유였다.

“아 쫌! 반칙하지 말라고!”

“이게 왜 반칙인데!”

한구인의 목적지는 상가 거리 뒤편으로도 꽤 들어가야 나오는 보육원이었다.

낮은 담장 너머로 술래잡기인지 뭔지, 뛰어다니며 노는 아이들이 몇몇 보였다.

“어, 형!”

“오빠다 오빠!”

초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 여럿이 한구인을 발견하자 우르르 몰려왔다.

한구인은 팔을 펼쳐 그들을 안았다.

“잘 있었어?”

“응. 형 말대로 공부도 열심히 했어.”

“거짓말! 쟤 공부 하나도 안 해!”

“거짓말하지 마!”

아이들은 별것도 아닌 이유로 고성을 주고받았다. 한구인은 아이들을 안아주려 굽혔던 무릎을 폈다.

아이들의 시선은 한구인이 든 종이백에 박혔다.

본능적으로 선물이 들어 있단 걸 알아서였다.

물론, 한구인은 선물을 바로 나눠주는 실수는 범하지 않았다.

모든 건 원장의 손을 거친 뒤 아이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어, 구인이 왔어? 오는 날 아니지 않아?”

국 통을 옮기던 원장이 한구인을 알아보곤 다가왔다. 국 통은 다른 직원이 받고, 원장은 한구인을 안쪽 방으로 안내했다.

“못 보던 애가 있던데요.”

“아아, 새로 들어왔어. 이름은 김민형.”

김민형, 김민형.

한구인은 그 이름을 몇 번이나 곱씹었다.

이름이란 아이들이 온전히 가지고 있는 유일하다시피 한 것이었으므로, 실수로라도 잘못 부르고 싶지 않았다.

“이거 과자랑 학용품입니다. 과자는 이빨 안 썩을 거 같은 걸로만 골라왔습니다.”

“과자가 다 이빨이 썩지 뭐. 매번 고마워.”

처음 원장이 한구인을 봤을 때, 그는 대학생이었다.

한구인의 집은 부유했다. 그럼에도 그는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돈을 조금씩 모아 100만 원이 모일 때마다 보육원에 기부했고, 기부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이 보육원과의 인연은 거의 10년에 달했다.

“그런데 원장님. 이 근처에 공사 있잖습니까.”

“아, 그거.”

원장이 난색을 표했다.

이 낡은 동네에는 얼마 전부터 활기가 돌고 있었다. 그 공사 때문이었다.

7층 높이의 복합 문화 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하는데, 아직은 건물 용도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구인이 그것을 알고 있는 이유는, 문화 센터 건립을 홍규헌의 부친이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땅 팔라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주변에서.”

7층 규모의 복합 문화 센터가 들어선다. 그럼 주변 땅값은 자연히 오르기 마련이다.

공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땅과 건물을 사들이는 자가 많았고, 목적이 표면화되기 직전인 지금 땅값은 더 오르고 있었다.

“그랬지. 요즘 다 건물 빼고 난리더라.”

그런 상황에서, 보육원의 입장은 미묘했다.

조금 심한 말이지만 보육원은 혐오시설이다.

보육원이 들어온다 하면 반대부터 하는 게 자연스런 이치다.

보육원의 아이들은 거리가 가까운 학교로 배정되기에 근처의 학부모들이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 동네의 땅값은 점점 오르고 있으니, 그것을 가속하기 위해선 보육원의 폐지가 필요했다.

문화 센터의 주인도 보육원이 눈에 거슬릴 게 틀림없었다.

“나도 뭐, 그러려고.”

“그럼 아이들은 어떻게 됩니까?”

한구인은 그답지 않게 목소리를 높였다.

원장에 대한 배신감마저 느끼고 있는 와중이다.

“……학생한테만 말해주는 건데. 실은 저기 공사 시작하기 전부터 나한테 정보가 왔었어.”

“네?”

“다른 곳에 보육원 자리를 알아봐 주겠다고. 그런데 그걸 내가 바로 믿겠어? 여기 보육원 만드는 데만 해도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무려 시장님 허가가 필요하잖아.”

보육원 목적으로 땅을 산다고 하면 누가 팔거나 건물을 내어주겠는가.

“근데, 근데 말야. 그게 되더라고. 이 건물 넘기고 그쪽으로 가면 딱 맞아. 시설도 더 좋고, 또 후원도 꽤 해주겠다고 해서.”

“그 땅 주인분이 말입니까?”

“그러니까 학생이 걱정할 필요 하나도 없어.”

꿈에서나 나올 법한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한구인은 그것을 믿었다.

그 누구도 아닌, 홍규헌의 부친이 진행하는 일이니까.

‘이것 때문에 온 거였는데. 원장님 말대로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잖아.’

문화 센터 건립 소식을 듣자마자 보육원부터 걱정했다.

며칠 전부터 아이들 걱정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잤건만, 이렇게 쉽게 해결될 줄이야.

“감사합니다.”

“나한테 뭐가 감사해. 나도 이거 밥 벌어먹으려고 하는 일인데.”

“아이들이 들으면 울 겁니다.”

“말실수했네. 애들한테는 말하지 마.”

말은 저래도, 원장은 좋은 사람이다.

“오늘 공연 있는데 보고 갈래?”

“공연이요?”

“무슨 학원에서 댄스 공연해준대. 봉사활동이지.”

보육원에 오는 봉사활동이라고 해봤자 봉사 시간이 필요한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 대부분이다.

언젠가 대학교 연극부가 와서 연극을 해주기도 했다지만, 댄스 공연이란 건 또 신선했다.

“애들이 좋아합니까?”

“고등학생들은 안 보겠단 애가 좀 있지. 걔들이야 그러려니 하고. 근데 초등학생, 중학생 애들은 아주 좋아라 하던데.”

들어보니 학원 공연팀은 아이돌 곡을 공연에 포함한 모양이다.

보육원은 놀거리가 많지 않다.

한 명 한 명 스마트폰을 가질 수도 없으니, 텔레비전이 유일한 오락 매체라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음악방송은 특히 인기가 많다.

한구인이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도 연예계에 발을 담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누구’ 만난 이야기를 해주면 아이들은 아예 뒤집히곤 했다.

“그럼 오랜만에 왔으니 공연 보고 저녁 정리하는 거 도와드리겠습니다.”

“주말인데 미안하네. 그럼 도와주는 김에 무대 만드는 것도 도와줘.”

한구인은 직원들과 함께 가장 큰 방을 비웠다.

원래 책상이나 저학년 놀이기구가 있던 곳인데, 최대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집기를 구석으로 싹 밀었다.

아이들은 방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흥미가 있는 아이도, 없는 아이도 있었으나 대부분이 오늘 공연을 관람하기로 한 모양이다.

“안녕하세요!”

얼마 뒤 문이 열리고 학원 공연팀이 도착했다.

아마 학원 원생들인 듯했다.

모두 나이가 앳돼 보였다.

그들은 가져온 스피커를 설치한 뒤 음향이 제대로 나오는지 확인했다.

그사이, 한구인은 회사 단톡방을 보며 엄한 시간만 죽였다.

[한구인: 리카 씨. 건강즙 남았습니까?]

[리카: 아직 많음요]

[박성필: 거짓말임. 건강즙 다 떨어짐.]

[리카: 악마]

[한구인: 내일 회사에 가서 만들어 두겠습니다]

[리카: 주말 출근 에반데]

[홍규헌: 여기 수다방 아니고 공지방이다]

[리카:(머쓱한 사자 이모티콘)]

[박성필:(하트를 쏟는 사자 이모티콘)]

[한구인: 그 이모티콘 어디서 받습니까?]

[홍규헌: 여기 공지방이라고]

한구인의 귀로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왔다.

요즘 한창 상한가를 치는 걸그룹의 타이틀곡이다. 아이들이 즐거움의 비명을 내질렀다.

반면, 한구인은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애초에 그는 한국의 대중음악에 조예가 깊지 않았다.

아니, ‘맞지 않는다.’가 더 옳은 표현이리라.

문득 가슴 안에 검은 침전물이 쌓였다.

‘내가 이 일을 해도 될까.’

아무리 히트 친 케이팝 곡을 들어도 한구인의 가슴에는 어떤 울림도 주지 못했다.

감상은 ‘좋구나’ 정도에서 끝났다.

그에 비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은 어떤가. 첫 선율부터 코끝이 찌르르 떨린다.

혹은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은? 마지막 악장 때는 절로 가슴이 웅장해진다.

성필이나 홍규헌에게 말한다면 화낼지 몰라도, 한구인에게 케이팝이란 고작 10, 20년 정도 유행할 음악 사조에 지나지 않았다.

‘박성필 이사님이 말씀하신 아이돌의 아우라라는 것도…… 잘 모르겠어.’

사람 놀리려고 지어낸 말인 것 같기도 하다.

한구인은 한숨을 쉬고 고개를 앞으로 들었다.

열심히 공연하는 사람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만 있는 것도 실례였다.

그리고 어느 댄서와 눈이 마주쳤다.

“…….”

“…….”

둘은 명확하게 서로를 보았다.

그 순간 한구인의 가슴이 크게 뛰었다.

뇌수가 아래로 떨어지고 다시 위로 솟구치는 기분.

잠깐 시간이 멈추고, 다시 그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케이팝의 강렬한 멜로디에 따라 그녀의 몸은 아름답게 흘러가길 반복했다.

검은 크롭티와 숏팬츠 차림이었으므로, 그것은 마치 살 색의 비단이 바람을 맞고 나부끼는 것 같았다.

연보랏빛 머리칼이나 옷의 움직임도 춤의 한 부분처럼 느껴졌고, 음악은 춤을 위해 존재하는 방청객인 것만 같았다.

누가 케이팝을, 케이팝 댄스를, 아이돌을 유행이 지나갈 음악 사조라고 불렀는가?

‘이건 예술이야.’

정확히는, 그녀의 존재 자체가 예술이다.

* * *

한구인은 댄스팀이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그들이 어느 학원 소속인지 알아냈다.

자신의 신분을 밝힌 뒤 나중에 찾아가겠다고 했으나, 버스를 타고 가는 길 마음이 바뀌었다.

한구인은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 그 학원으로 향했다.

‘이 마음이었구나.’

성필이 갑자기 뒤를 돌아 백설하를 쫓았을 때.

한구인은 내심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바로 이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는 사랑의 불길.

이것이 성필이 강조하고 또 강조했던, 아이돌에게 반했다는 감정이리라.

“허억, 허억.”

한구인은 4층에 위치한 댄스 학원까지 멈추지 않고 뛰었다.

문 앞에 섰을 땐 숨이 꽤 찼다.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흥분해서 신발장에서 슬리퍼로 바꿔 신지도 않고, 그는 안으로 들어섰다.

이래서야 도둑이나 침입자로 오해받아도 할 말이 없겠으나, 이미 그런 것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아.”

그러다 한구인은 그녀를 발견했다.

연습실 1이라고 적힌 방 안, 문에 작게 난 유리창 너머로 그녀가 보였다.

바닥에 앉아 공연에 쓸 옷을 직접 바느질하고 있는 그녀에게서 말 못 할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어느 학자는 라오콘이란 조각을 보고 수백 페이지에 이르는 글을 썼다.

지금의 한구인도 그러한 미적 열정을 느꼈다.

한구인은 문을 열었고, 그녀도 그를 보았다.

미의 현현이 그의 눈앞에 나타난 듯했다.

“저, 저기. 저 이런 사람입니다.”

그녀는 갑작스레 나타난 한구인에게 경계의 빛도 띠지 않았다.

대신 빠르게 그의 손에서 명함을 낚아챘다.

귀찮음이 묻어나는 손길이었다.

“혹시 아이돌 연습생 해보실 생각 없으십니까?”

그녀가 입술을 살짝 열었다.

한구인은 기대했다.

승낙이나 거절의 말보다, 일단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단 사실이 기뻤다.

그녀는 한구인이 처음 발견한, 열정적으로 영입하고 싶은 대상이었으니까.

“아― 필요 없어요. 나가요.”

그리고 그런 상대에게 처음 들은 말은, 다름 아닌 매몰찬 축객령이었다.

* * *

성필은 전날 홍규헌에게 부탁했던 일을 떠올렸다. 탐탁지 않아 하는 그녀에게 ‘제발 휴가 하루만 쓰게 해주세요’라고 했던가.

사실, 연가를 쓰는 건 딱히 타박받을 일이 아니었다.

한 달에 하루가 쌓이도록 법제화되어 있고, 쓸려면 언제든지 쓸 수 있어야 한다.

다만, 홍규헌이 탐탁지 않아 할 이유가 있었다.

“휴가 쓰고 다른 기획사 도와주러 간다고?”

“네. 거기 로드가 도망쳤대요.”

“대타도 없대?”

“둘이 한 번에 도망쳤대요.”

“뭔 기획사가 그따위인데.”

연가를 쓴단 사실보다, 연가를 쓰고 한다는 게 또 다른 회사의 업무를 돕는 것이니.

홍규헌은 탐탁지 않았다.

그래도 허락해주긴 했다.

“새로 오신 로드님이에요?”

새벽 5시, 보이그룹 7명을 숙소에서 픽업하자 그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내왔다.

막내로 보이는 이가 짐짓 거만 떨며 말했다.

“이번엔 또 얼마나 버티…….”

“로드 아니고요. 이 회사에 들어오지도 않을 거고요. 다른 기획사에서 온 대타예요. 오늘 하루만 지낼 사이니까, 서로 얼굴 붉힐 일 없었으면 해요.”

“아, 네.”

막내가 머쓱하게 답했다.

그 후로는 뭐, 성필이 자주 했던 일이었다.

샵에 가고, 방송국에 가서 일정 확인하고, 무대랑 대기실 분주하게 뛰어다니고, 리허설 때마다 살짝 긴장하고, 순서 헷갈릴까 걱정하며 왔다 갔다 하고.

“고생했다 야.”

다른 일을 마치고 온 친구, 유하음이 멋쩍게 웃으며 음료를 건넸다.

“근데 별로 안 힘들었나 보네?”

성필의 안색은 평소보다 더 좋았다.

“제대로 된 일을 하는 게 오랜만이라서 그런가. 오히려 활력이 더 도네. 지금 회사에서는 하루 종일 연습생만 찾으러 다니거든.”

“연습생을 찾아? 오디션은?”

“이름빨이 안 먹히는 기획사야. 하아, 이제 뭐 지방까지라도 찾으러 가야 할 거 같애. 도저히 안 보이…….”

“아.”

바닥 쪽에서 짜증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필이 시선을 주니, 한 여자가 돗자리에 누워서 사납게 쳐다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성 백댄서들이 가장 많이 입는 복장인 디스코 숏 팬츠에 탱크 톱을 입은 사람.

연보랏빛 머리카락이 특징적이었다.

“아, 씨…….”

‘바.’

‘씨’ 다음에 부정확한 비읍 발음이 들렸다.

아마 ‘씨바’라고 말하려 한 거겠지.

“뭐야아…….”

그녀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욕지거리를 뱉어내고, 다시 바닥에 머리를 대고 잠에 들었다.

성필이 복도를 걷다가 무심코 그녀의 발을 친 것이다.

백댄서에게는 대기실이 잘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복도에 대기하곤 하는데, 그녀도 그런 듯했다.

성필은 뒤늦게라도 사과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누워서 눈을 감았고, 욕을 듣기도 해서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이 뭔지도 몰랐다.

“죄송합니다.”

성필은 어중간하게 짧은 사과를 남기고, 결국 그냥 지나가려고 했다.

밑을 안 보고 다닌 자신의 잘못도 있으니…….

‘근데 방금 그 얼굴. 어디서 봤던 거 같은데. 뭔가 엄청 익숙한…….’

“‘아 씨바’? 방금 씨바라고 했어요?”

성필이 기억해내려고 걸음마저 멈추었을 때, 유하음이 성필을 대신해 마땅한 행동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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