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화
그녀도 창작형 아티스트가 가지는 힘을 알았다. 옛날에 좋아했던 아이돌 그룹이 직접 작곡했던 곡은 어째선지 더 애착이 가곤 했으니까.
“알겠어. 나중에 짧게 가르쳐보자.”
성필은 홍규헌의 결정에 속으로 환호했다.
‘리카가 작곡 능력을 가지는 건 중요해.’
아이돌을 나누는 기준이 여러 개 있는데, 그중에는 기획형과 자율형이 있다.
창작 능력을 길러주고 보장하느냐가 둘의 경계였다. 그리고 미래의 세계적 그룹 ‘WTP’는 특유의 창작 능력이 성공 요인으로 꼽혔다.
‘팬들은 아이돌 멤버가 직접 만든 곡과 가사에 더 몰입할 수 있으니까. 부르는 사람도 마찬가지야. 곡에서 진실성이 느껴지지.’
하지만 그것만이 성필의 유일한 목적은 아니었다.
‘편곡의 천재.’
현재 서울 어딘가에 박혀 숨죽이고 있을 미래 최고의 편곡가.
그를 가로 엔터 전속으로 데려올 수만 있다면, 아이돌 멤버의 작곡 능력은 엄청난 빛을 발할 것이다.
‘한 이사님 말이 맞아. 리카가 작곡을 몇 년 배워도 전문가보다는 못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천재 편곡가가 붙으면?’
원곡자인 리카의 감정선과 뿌리는 남겨두면서, 그의 재능을 입혀 명곡으로 탄생시키는 게 가능하다.
미래에서도 그는 편곡의 재능으로 명성을 얻었다.
“저기, 레슨 말이 나와서 하는 건데요. 아예 전속 작곡가를 두고 그 사람한테 가르치게 하는 건 어떨까요?”
“그건 정말 안 돼. 우리가 언제 그룹을 데뷔시킬지도 모르는데 벌써 작곡가를 전속으로 두는 건 자금 낭비잖아.”
홍규헌이 냉철하게 지적했다. 성필은 수긍하면서도 아쉬웠다.
‘어쩔 수 없지. 지금부터라도 연을 만들어 놓자. 연습생 다 구한 뒤에 접촉하면 늦지는 않겠지.’
“오케이. 리카한테 시킬 트레이닝 목록은 이걸로 마무리할게. 박 이사는 학원이랑 트레이너들 알아보고 나한테 보고해.”
“알겠습니다.”
* * *
한동안 연습생 찾기에는 진전이 없었다.
‘영 눈에 띄는 애가 없네.’
성필은 미래에 성공할 아이돌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현재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찾아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원래 성공할 애들 빼 오는 것도 마음에 안 내키고.’
리카야 원래 일본에서도 솔로로 데뷔할 예정이었다. 게다가 성필은 리카에게 일본에서의 성공 이상을 가져다줄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 가로 엔터로 데려오는 것도 큰 거부감이 없었다.
“오늘도 허탕이야?”
“예. 그렇게 됐습니다.”
매일 홍규헌을 찾아 보고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빨리 연습생을 모아야 하는데도, 성필은 후보만 추려올 뿐 막상 선택의 시간이 되면 ‘안 된다’란 말만 했다.
“뭐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홍규헌은 성필을 이해해주었다.
아이돌 그룹에서 멤버 구성은 알파이자 오메가다. 최고를 위해서라면 몇 주는커녕 몇 달도 기다릴 수 있었다.
성필은 그런 홍규헌이 고마우면서도 동시에 미안했다.
‘미래의 지식만 있으면 연습생 정도야 빨리빨리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성필은 가슴에 묵직한 짐을 지고 리카를 데리러 갔다.
홍규헌은 연습생에게 최고의 대우를 약속한 만큼, 트레이닝 학원도 좋은 곳에 보내주었다.
학원 안에 들어가자 데스크의 직원이 익숙한 듯 인사해왔다.
“리카는요?”
“휴게실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아, 그리고 리카가 이거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말씀드릴게요.”
“뭔데요?”
직원이 큰일이라도 이야기할 것처럼 목소리를 낮추었다.
“리카, 초코팅팅 절반이나 먹었어요.”
“……어디서 났는데요?”
“휴게실 냉장고에 있던 거 꺼내먹었어요.”
성필은 갑자기 가슴속에서 열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초코팅팅. 성필도 좋아하는 과자였다.
그 칼로리는 무려 한 조각에 200이다. 세 개만 주워 먹어도 밥 한 끼에 필적하는 양이다.
‘리카 요 녀석이 나를 배신해?’
체중 관리는 연습생의 기본이다.
리카의 체중과 몸매는 완벽하기 그지없었다. KS 엔터에서 집중적으로 관리받았으니 당연했다.
그게 요즘 들어 무너지는 듯했다.
“체중 관리 정도야 껌이죠. 맡겨만 두세요! 저 혼자 운동하고 식단 챙기고 다 할 수 있어요!”
그 말을 믿고 성필은 리카에게 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리카가 체중계에 올라갈 때마다 눈금이 조금씩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말했다고 하시면 안 돼요?”
“당연하죠.”
성필은 작은 분노를 품고 휴게실로 향했다.
문 앞에서 숨을 가다듬고 문고리에 손을 가져가려던 찰나.
“악!”
갑자기 문이 확 열리며 성필의 이마를 강타했다. 그는 꼴사납게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죄, 죄송합니다!”
천장이 번쩍이는 와중에도, 성필은 목소리가 참 곱다고 생각했다.
“이사님!”
어느새 리카가 성필의 곁으로 다가와 부축해주고 있었다.
성필은 이마를 쓸며 자신을 공격한 원인을 보았다.
“괜찮으세요? 어떡해…….”
걱정스럽게 성필을 쳐다보는 여자가 있었다.
아프고 황당한 와중에도, 성필은 그녀의 외모에 정신이 팔렸다.
‘완전 배우상이다. 아니, 아나운서?’
외모부터 분위기까지 단정한 느낌이 흘러넘친다.
어쩌면 당황한 모습까지 이리도 절제되어 있을까. 저 정갈함의 막에 감춰진 매력과 아름다움이 틈을 비집고 어떻게든 나오려 하는 게…….
“많이 아프세요?”
성필이 말하지 않자 그녀는 더더욱 당황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성필은 옷을 털며 일어났다.
“이사님 어떡해요! 아프죠?! 언니 때문이야! 언니가 이렇게 만들었어!”
리카의 일갈에 그녀는 어찌할 줄도 모르고 자신의 손만 꾹꾹 만지작댔다.
“이사님 살려내!”
“리카야 조용히 해.”
“헤헷.”
“저는 괜찮습니다. 학생분은 안 다치셨어요?”
학생분이란 말에 그녀는 일순 당황했다. 하지만 곧 입술 사이로 옅은 기쁨이 새어 나왔다.
“네, 저도 괜찮아요. 안 다치신 거 맞죠?”
성필은 앞머리를 만져서 붉게 달아오른 이마를 숨겼다. 그리고 치근덕대는 리카를 살짝 밀어낸 뒤에 품에서 명함을 꺼냈다.
“아아, 박성필 이사님이시구나. 리카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그래요? 좋은 이야기였으면 좋겠네요.”
“앗! 이사님이 언니한테 작업 건다! 10살 차이는 범죄예요!”
“내가 언제?!”
성필은 리카를 혼내는 시늉을 하는 동안에도 그녀의 나이를 계산했다.
10살 차이.
즉, 그녀는 20살일 것이다.
“백설하라고 해요. 부족하지만 리카를 가르치고 있어요.”
“고생이 많으시겠네요.”
“저를 가르치는 데 왜요?!”
“아녜요. 리카 엄청 잘해요. 제가 가르칠 게 거의 없는걸요.”
“너무 칭찬만 하지 않으셔도 돼요. 때론 진실을 말하는 게 성장에 더 도움이 되잖아요.”
백설하가 작게 웃었다.
리카는 마음에 안 든단 눈빛으로 성필을 쏘아보았다. 그녀는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자 성필의 소매를 당기며 빨리 가자고 했다.
“저 바빠요. 빨리 가요.”
“어? 아, 맞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성필이 고개를 숙이며 떠나가자 백설하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음.”
뭘까.
이 가슴의 두근거림은.
아니, 성필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이사님 손가락 페티시 있으세요?”
“페티시라…….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웠어? 무슨 뜻인지는 알아?”
“세요쿠 도차쿠데스.”
“어려운 단어를 아네.”
“어? 알아들으셨어요?”
“성욕 도착 아냐? 일본어 한자어랑 한국어 한자어는 비슷하게 읽히는 경우가 많으니까, 대충은 알아들을 것 같아. 그리고 나 손가락 페티시 없다.”
“에이. 백 선생님 손가락만 보고 계시던데?”
“뭔 말도 안 되는 소릴…….”
성필은 백설하와 헤어졌을 때를 떠올렸다.
그녀는 얇고 긴 손가락을 흔들며 이별을 고했다. 좌우로 흔들리는 손을 따라 움직이는 다섯 개의 흰색 손가락…….
마치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보았던 것처럼, 성필의 뇌리에는 백설하의 손가락이 뇌리에 깊이 박혀 있었다.
“손가락이 참 하얗더라.”
“리얼. 백 쌤 피부 진짜 하얘요.”
학원을 나서니 거센 바람 소리가 덮쳐왔다.
리카는 지긋지긋하다는 듯 과장되게 귀를 막았다.
“커피 사줘요, 커피. 아이스 커피 먹고 싶어요.”
“너 초코팅팅 먹었다면서.”
“아, 아니에요! 안 먹었어! 안 먹었어요!”
“사장님한테 비밀로 해줄 테니까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라.”
리카의 눈동자에 온갖 고뇌가 지나갔다.
잠시 후, 그녀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뭔데요?”
“백설하 선생님에 대해 좀 알려줘.”
“10살 이상은 범죄예요!”
리카가 성필의 목을 손날로 쳤다.
* * *
“윽…….”
리카는 텀블러를 받자마자 앓는 소리를 냈다.
“그렇게 얼굴 찌푸리지 마. 한 이사님 정성을 무시하는 거야?”
“무시하는 게 아니라…… 맛없어요.”
“얼마나 고마우신 분이니? 이 세상 누구보다 네가 건강하길 바라시는 분 중 하나일 거야.”
한구인은 직접 과일, 야채 등을 사 와서 건강음료를 만들었다.
몸에도 좋고 칼로리도 적당하기에 리카에겐 딱이었다.
“이거 드셔보신 적 있어요?”
“아니.”
“괴상해요.”
“너 또…….”
“아녜요! 한 이사님 마음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구요! 저도 한 이사님이 앞치마 두르고 주방에 있는 모습은 섹시해서 좋다고 생각해요!”
“뭐……?”
“근데 그 섹시한 모습의 이면에는 지옥 같은 맛을 가진 이 건강즙이 있다구요! 솔직히 말하면 맛없어요!”
리카는 울상을 지으며 건강음료를 원샷했다. 그녀의 입술이 초록색으로 물들었다.
성필은 확 풍기는 채소 냄새에 절로 인상을 썼다.
“봐요! 이사님은 냄새도 싫어하면서 저한테는 뭐? 한 이사님의 정성을 생각해라?! 이건 학대라고 생각합니다!”
“네가 식단을 안 지킨 게 원인이잖아.”
“…….”
리카는 입을 다물고 유리창 안을 보았다. 성필도 그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안에서는 백설하가 열심히 학생을 지도하고 있었다.
“이름 백설하. 나이 스물하나.”
“나랑 10살 차이라고 했잖아.”
“9살이나 10살이나.”
“야, 그게 얼마나 큰지…….”
“아이돌로 데뷔하고 2년 활동했지만 갑작스럽게 회사가 박살 났어요. 그래서 지금은 보컬 트레이너로 활동 중.”
“능력은 어때?”
실패한 아이돌 그룹 멤버가 보컬 트레이너라고 하면,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기 마련이다.
실력이 없어서 실패한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니까.
“진짜 지려요.”
“그런 말 쓰지 마.”
“앗, 죄송.”
하지만 백설하는 보컬 능력이 상당히 뛰어난 듯하다.
어찌나 뛰어난지 겨우 스물에 유명 보컬 학원 임시 트레이너로 활동할 정도니까.
“연습생 때 혼자서 노래 관련 책도 많이 읽었대요. 백 쌤 진짜 많이 알아요.”
“혼자서 배웠다고? 대단하네.”
특히 이 학원의 트레이너로 있는 게 그랬다.
많고 많은 보컬 학원 중에서도, 이곳은 꽤 유명세가 있었으니까.
옛날, 오디션 프로그램 붐이 일어나고 실용음악과와 보컬과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곳의 졸업생이 보컬 학원 트레이너가 되거나 직접 학원을 차리는 경우가 많았다.
“경쟁이 심했겠네요.”
“그랬긴 해. 근데 요즘은 안 그래.”
트레이너의 공급이 많아지긴 했으나, 대부분 능력이 좋지 못했다.
보컬 시장이 과열되자 자연스레 레슨비도 싸졌다. 싼 맛에 아무나 썼다가 괜히 연습생들 이상한 습관만 들이게 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우리도 데였었고. 그래서 이 학원에 우리 애들 고쳐달라고 보내기도 했어. 한번 버릇 잘못 들이면 고치는 데 엄청 오래 걸리더라.”
“우리요?”
“……아니, 옛날 회사. 어쨌거나 이 학원은 옛날에 붐이 일어났을 때도 철저히 검증된 사람만 쓰던 곳이야. 임시긴 해도, 백 선생님이 여기서 일하는 건 대단한 일이지.”
“흐음. 그러고 보니 백 쌤 연습생 생활만 7년 넘게 했댔어요.”
리카는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솔직히 저는 모르겠어요.”
“뭐가?”
“백 쌤이 있던 그룹이 왜 실패했는지요. 백 쌤처럼 예쁘고 노래도 잘 부르고 귀엽고 노래도 잘 부르는 사람이 있잖아요.”
“장점이 많이 겹치네.”
“저는 이런 말 싫어하지만, 그룹을 멱살 잡고 이끄는 멤버가 있기도 하잖아요. 한 명이 그룹을 먹여 살리는 그런 거요. 백 쌤이면 인기도 많았을 거 같은데.”
성필도 백설하가 있던 그룹을 검색해 보았었다. 안타깝게도 자료가 별로 없었다.
기획사가 노력한 흔적은 보이지만,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른 것 같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이 업계에 빠삭한 성필에게조차 기억이 잘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멤버만 좋다고 그룹이 흥하는 건 아니잖냐. 회사의 지원도 중요하지.”
리카는 천천히 성필에게로 눈을 돌렸다.
무언가 물어보고 싶지만, 감히 입을 뗄 수 없단 기색이었다.
성필은 픽 웃었다.
“걱정 마. 사장님이랑 내가 죽어도 너는 띄워줄 거야. 넌 그냥 열심히 하기만 하면 돼.”
“정말요?”
“그래. 한 이사님이 만든 건강음료도 잘 마시고. 한 번만 더 식단 관리 잘못하면 짐(Gym)으로 보내버릴 거야.”
성필은 일단 리카를 믿기로 했다.
KS 엔터에서 식단 관리와 운동법은 죽도록 배웠을 테니, 의지만 있다면 혼자서 실천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만약 의지가 부족하다면, 그때는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 외에 방법이 없어진다.
“다시는 과자 조각도 안 쳐다볼게요…….”
“믿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거, 백 쌤한테 물어봤어?”
“넵. 다시 아이돌 하고 싶냐고 물었거든요.”
“그래서?”
“안 하고 싶대요.”
성필은 탄식을 삼켰다.
백설하는 외적 조건으로만 보면 완벽했다.
최근에 봤던 사람 중에서는 가장 마음에 들었다.
“왜?”
“그냥…… 지금에 만족해서? 그리고 곧바로 데뷔할 거 아니면 스물한 살은 늦기도 했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리고 만약 다시 데뷔하면 아이돌은 절대 안 하고, 가수가 되고 싶대요. 앨범 하나 내는 게 꿈이라고 하시던데요.”
성필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사실, 백설하가 눈에 밟힌 건 단순히 외적으로 뛰어나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어디서 봤나 했더니, 이제 확실하네.’
8년 뒤, 사그라졌던 국민 오디션 열풍이 다시 찾아온다.
유행은 돌고 돈단 말은 알았지만, 그때는 성필도 꽤 놀랐었다.
단물이 다 나와서 더 이상 빨아먹을 게 없다고 생각했던 게 오디션 프로그램이었으니까.
어쨌든, 백설하는 그 프로그램의 준우승자임이 틀림없었다.
‘솔로로 데뷔해서 상당히 성공했었지.’
아마 아이돌로 실패한 뒤에도 가수의 꿈을 계속 지니고 있었으리라.
‘리카 말대로 스무 살은 늦긴 했지. 백 쌤 본인도 아이돌에는 흥미가 없어 보이고.’
직접 말이라도 꺼내 볼까 생각했지만, 역시 나이가 걸렸다.
현재 스무 살이면 데뷔할 때는 몇일까?
23? 24?
7년을 아이돌로 달리기엔 나이가 많다.
‘그래. 차라리 나중에 솔로로 데뷔하는 게 더 행복하겠지.’
성필은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잉? 백 쌤한테 할 말 있는 거 아니었어요?”
“아니. 그냥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거야.”
“역시 나이에 걸맞지 않게 추파를 던지려던 거였군요……. 범죄자야 범죄자.”
“야, 그런 거 아니랬지.”
후련하게 나가려던 성필의 걸음이 멈췄다. 뒤따라오던 리카가 그의 등에 이마를 박았다.
“악! 갑자기 왜 멈추세요?”
성필은 그러고도 십몇 초를 가만히 서 있었다.
서서 죽은 건가, 리카가 확인하려던 찰나 그가 뒤로 홱 돌았다.
“나이가 뭔 상관이야.”
성필은 백설하가 있는 방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지레짐작하고 포기하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다. 뭐든 직접 물어보기 전까지, 그 사람의 마음은 알 수가 없다.
“제가 물어봤다니까요.”
“내가 물어봐야 속이 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