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회 안 하는 프로듀서-1화 (1/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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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화

성공한 기업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는가.

빌 게이츠, 워렌 버핏, 포드, 록펠러 등등.

그들의 전기는 현대의 신화나 다름없다.

수많은 사람이 기업가의 일화를 읽으며 감탄한다.

역시 이런 사람들은 달라도 뭔가 달라.

일반인이랑 다른 특별한 능력이 있다니까.

박성필도 동감한다.

성공한 기업가는 뭔가 있는 게 틀림없다.

왜냐하면 자신도 가지고 있으니까.

누군가에게 말하면 술 한 잔 거하게 들이켰나 싶을 이야기지만, 사실이었다.

* * *

박성필.

석세스 엔터테인먼트의 부대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연예인의 매니저로 업계에 입문했으며, 온갖 고난을 겪어가며 현재의 위치에 올랐다.

석세스 엔터테인먼트의 개국 공신인 것이다. 그리고 회사의 이름처럼, 박성필은 회사에 성공만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회사 내부의 평가는 좋지 않았다.

“형, 저 진짜 죽을 것 같아요.”

4년 차 아이돌 그룹의 리더, 민규는 성필의 앞에서 울상을 지었다.

당장이라도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애원할 태세였다.

“이번 주 못 놀면 6개월 동안 스케줄 비는 타임이 없다니까요.”

“어쩌겠냐. 너도 알잖아. 인기란 건 영원하지 않아. 끝없이 솟을 것 같다가도 거품처럼 꺼지는 거란 말야. 한 달만 소식이 없어도 죽은 사람 취급하는데, 일이 들어올 때 확 해야지.”

“그건 그렇지만…….”

“이 방송만 나가자. 1박 2일로 깔끔하게. 그럼 하루는 쉴 수 있잖아?”

“하, 하지만 형. 우리 멤버들도 정말 힘들거든요?”

민규는 애원 대신 강경하게 나가기로 작정한 듯 어조를 조금 높였다.

성필에게는 가소롭기 그지없었다.

“이대로 가다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솔직히 이럴 바에야 그만두는 게 더 낫…….”

“너 그거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

민규는 성필의 엄한 목소리에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만두겠다고? 진짜?”

“아니, 형. 그런 뜻 아니란 거 아시잖아요.”

“너 연습생 때 기억 안 나? 깨어나서 잘 때까지 춤추고 노래만 했잖아. 뽑아만 주면 죽어도 좋다면서. 그런데 이제 와서 돈 좀 번다고 일을 안 해?”

“혀엉…….”

“그래. 쉬어. 쉬어봐. 내가 너를 그냥 돈 통으로 보는 줄 아나 본데, 아냐. 난 누구보다 이 회사 애들이 성공하길 바라. 그래서 스케줄을 잡아 오는데, 뭐? 그만두는 게 더 나아?!”

성필이 화내기 직전, 먼저 뜻을 굽힌 건 민규였다.

“죄송해요. 좀…… 제가 그래서…….”

달아오르던 분위기가 급속히 식었다. 성필도 안쓰럽다는 듯 민규를 바라보았다.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목소리 높여서 미안. 나도 잘못했어.”

“아녜요.”

“조금만 더 참자. 재계약 안 한다손 치면 3년 남았잖아. 그래, 뭐 할지는 생각해뒀고?”

“3년 남았는데 벌써부터…….”

“항상 미래는 생각해 둬야지. 아이돌 그만두면 다 타버린 것처럼 가만히 있는 애들 많아.”

“저야 연예인 계속하겠죠.”

“다른 것도 생각해 둬. 물론 네가 이 일 계속한다면 끝까지 돕겠지만. 넌 뭘 하든 될 놈이야.”

“감사합니다.”

민규는 자신이 바라는 휴가를 얻어내지 못했다. 숙소로 돌아가면 멤버들에게 구박받으리라.

성필은 오늘도 한고비 넘겼다.

그리고 고비는 매일, 매주 찾아온다.

이번 상대는 배우였다. 처음 온 건 배우 민지선의 매니저였다.

“강 실장 웬일이야?”

“그게, 지선이가 이번 배역에 대해 조금 부정적인 관점을 고수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맡기 싫대?”

“……완전히 그런 건 아니지만, 만약 연습을 한다면 지장이 있지 않을…….”

“데려와.”

매니저는 아래층으로 민지선을 데리러 갔다. 민지선은 그런 매니저를 타박했다.

“오빠 선에서 끝내준다면서!”

“미, 미안하다. 부대표님 얼굴 보니까 도저히 말이 생각이 안 나서.”

결국 민지선은 성필의 앞에 불려왔다.

그녀는 전부 꿰뚫어 보는 듯한 성필의 시선에 잔뜩 긴장했다. 하지만 자신의 미래를 위해, 이번만은 포기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이번에 잡아주신 배역은 좀…….”

“우리 지선이. 인기 드라마 하나 출연했더니 배가 많이 부르셨구나.”

“……네?”

“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성필은 팔짱을 끼고 몸을 뒤로 뺐다. 사람을 낮잡아 보는 자세였다.

그에 민지선은 기분이 나쁘기보다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녀는 데뷔 2년 차의 배우로 인기가 그럭저럭 있었으나, 연차로 보면 신인이나 다름없었다.

성필도 그녀가 업계에 막연히 가진 두려움을 익히 알았다.

운 좋게 석세스 엔터부터 커리어를 시작해,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 온 사람 아닌가.

“어디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

“……저, 정말 해도 돼요?”

“응, 그럼. 얼마든지 해. 아예 들어온 대본 전부 다 보여줄까? 그거 다 읽고 결정할래?”

누가 들어도 비꼬는 것이었다.

비꼼이 이어질수록 민지선의 기가 죽었다.

“내가 잡아 온 거 거절하고 얼마나 대단한 작품 잡는지 궁금하다 야. 우리 대배우 민지선 님께서 뭘 가져오는지 궁금해 죽을 거 같아. 그래, 생각해 둔 거 있니? 뭐야? 말해줄래?”

이런 비꼼은 인격 모독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민지선으로서는 할 말이 궁했다.

여기서 대판 싸워서 성필의 눈 밖에 났다간, 아예 드라마 출연이 전부 막힐 수도 있다.

“그냥, 할게요.”

“뭐?”

“그, 그냥 부대표님이 잡아준 거 한다구요…….”

“진짜? 괜찮겠어? 마음에 안 드는 거 아니야?”

철저하게 상대를 압박한다. 마치 자신의 행동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도록.

민지선은 그 압박에 굴복했다.

“후우.”

이게 성필이 하는 일이었다.

‘오늘도 힘들었어.’

성필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한 일을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성필은 회사를 위해 일한다고 생각했으며, 수익의 증가를 위해 분골쇄신하고 있었다.

‘석세스 엔터테인먼트.’

소속 연예인 수는 가수, 배우, 예능인 등을 합쳐 70명 이상.

굿즈, 의류, 화장품, 외식 등 부가 사업체도 많으며 코스닥 시가총액 순위 100위 이내.

작년 매출액이 2000억 이상인, 성필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자신의 성이었다.

‘슬슬 때가 됐지.’

성필에게도 꿈이 있다.

매니지먼트 총괄이란 직함을 달고 있으나, 그도 프로듀서가 되고 싶었다.

연예인 관리는 질리도록 했으니, 이제 제작을 하고 싶은 것이다.

배우가 아니라 가수로.

그리고 지금 절찬리에 진행 중이다.

“이번 석세스 엔터의 아이돌 제작은 내가 맡는다!”

성필은 1년 전, 아이돌 제작 프로젝트의 총괄 프로듀서로 임명됐다.

그의 지휘 아래 연습생을 선별부터 곡 모집까지, 모든 프로듀싱이 진행됐다.

그야말로 꿈속에 사는 것만 같았다.

“이 프로젝트는 상열이한테 맡기자.”

그 말에 꿈에서 깨어났다.

또 다른 부대표, 윤상열이었다.

윤상열은 대표가 그리 말하자마자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아, 이게, 참, 갑자기…….”

윤상열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꾸벅꾸벅 잘도 숙였다.

성필은 그 광경을 보며 이를 갈았다.

“성필이는 아이돌리시 아카데미에 집중하자.”

아이돌리시 아카데미.

이제는 흔해서 단물이 다 빠진, 연습생 모아두고 서바이벌시키는 프로그램이다.

석세스 엔터가 그 프로그램에서 탄생하는 걸그룹을 맡기로 했는데, 관리권이 성필에게 주어진 것이다.

“대표님! 그거랑 새 아이돌 제작이랑 병행할 수 있습니다!”

“그렇긴 한데, 아무래도 상열이가 프로듀싱 쪽에 있으면서 더 경험이 많잖아.”

“이번엔 저한테 주신다면서요!”

“조금만 기다려 조금만. 어차피 2년 뒤에는 보이그룹 제작 들어가야 하잖아? 그때는 정말 너한테 맡길게. 이번 분기 우리 실적이 좋지가 않아. 상열이 이름으로 주주들 안심도 시킬 겸 해서, 미안하게 됐다.”

대표 김태훈.

인자하게 생긴 아저씨다.

성필과의 나이 차이는 12살.

그럼에도 함께 고생해서 그런지, 둘 사이에는 격이 그다지 없었다.

“어우, 어쩌냐. 형이 미안하다.”

윤상열은 미안하다는 투로 실실 웃었다.

성필의 머릿속에서 뭔가가 끊어졌다. 시야가 하얗게 변하면서 분노가 몰려왔다.

안 그래도 성필은 윤상열이 싫었다.

성필은 강철과 같은 마음으로 연예인을 대했다. 안 좋은 건 안 좋다고 딱 잘라서 말했다.

그러면 윤상열이 그 틈으로 파고든다.

“성필이가 원래 그래. 좀 애가 꼬였어. 너무 상심하지 마.”

얼마 전 휴가를 대거 빼앗긴 민규도.

“아, 정말? 너 그 배역 엄청 하고 싶어 했잖아. 어쩌냐. 될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성필이한테 말해볼게. 응, 기대는 하지 말고. 에이 뭐가 고마워. 그냥 말만 해보는 건데.”

또 배역을 거부당한 민지선에게도.

윤상열은 그렇게 좋은 역할을 독식했다.

이건 굿캅 배드캅 작전도 아니다. 그냥 성필을 나쁜 놈으로 만들고, 윤상열 혼자 좋은 놈이 되는 것이다.

이러니 성필의 평판이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경영자라고 할 수 있는 부대표가 성필을 지지하긴커녕 나쁘게만 몰았으니까.

“어쩌겠냐, 회사 내외부로 말이 많잖아. 내가 뺏어가는 느낌이라 미안하긴 한데…….”

뺏어가는 느낌이 아니라 정말 뺏어가는 것이었다. 윤상열은 성필이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계속 연예인 매니지먼트나 계속하길 바랐다.

이번 일도 윤상열의 집요한 사주로 발생한 게 틀림없었다.

“너도 아이돌 아카데미인가? 그거 맡잖아.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 인기 많아. 그리고 매니지먼트가 네 특기이기도 하고. 대표님도 너 믿어서 이러는 거지.”

서바이벌 오디션이 인기 많던 건 옛날 일이다.

연습생의 눈물과 노력은 단물이 너무 많이 빠졌다.

이제 눈물은 눈물로도 봐주지 않고, 데뷔를 한다 해도 관심이 크지 않다.

즉, 윤상열은 보석과 돌을 바꾼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미안하게 됐다.”

윤상열이 위로하듯 성필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게 성필의 마지막 이성의 끈을 놓게 했다.

“미안하면 시발 미안하단 표정이라도 짓던가!”

성필이 윤상열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뻑 소리가 나며 윤상열이 뒤집어졌다.

의자와 책상이 우르르 무너지자, 회의실에 있던 인원들은 깜짝 놀라며 멀어졌다.

성필은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윤상열 위에 올라타서 주먹을 휘둘렀다.

그는 첫 번째 주먹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는지 제대로 반격하지도 못했다.

곧 코피를 줄줄 흘리며 정신을 잃었다.

“성필아 미쳤냐?!”

“말려! 뒤에서 잡아!”

어느 사람이 성필을 뒤에서 붙잡았다. 성필은 분이 식지 않아 주먹을 붕붕 휘둘렀다.

“이 좆같은! 내가 프로듀싱하려고 얼마나 참았는데! 이거 하겠다고 몇 년 전부터 말했잖아!”

“서, 성필아 일단 진정…….”

“태훈이 형도 똑같아! 내가 응? 처음 형 만났을 때부터 프로듀싱이 꿈이랬잖아! 그런데 나를 이렇게 대해? 뭔데 대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바닥부터 같이 한 나보다 윤상열 저 새끼가 더 믿음직스러워? 시발 그럼 둘이서 한평생 물고 빨고 살든가……!”

* * *

“미안하게 됐다.”

윤상열이 위로하듯 성필의 어깨를 두드렸다.

성필은 이성의 끈이 끊어지기 직전, 숨을 깊게 들이마심으로써 정신을 차렸다.

“아뇨, 괜찮아요.”

“그럼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자.”

성필은 수첩에 대고 묵묵히 회의 내용을 필기했다.

그렇다, 이게 성필이 가진 기묘한 힘이었다.

미래에 후회하게 될 행동을 미리 볼 수 있는 것.

민규네 그룹의 짧은 휴가를 잘라버린 것도, 배우 민지선의 배역을 마음대로 정한 것도.

전부 미래를 보고 내린 결정이었다.

세상 누구도 가지지 못한 축복이자, 마찬가지로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힘.

이것으로 많은 위기를 넘겼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빠득.

힘을 너무 준 나머지 성필이 쥐고 있던 연필이 부러졌다.

연필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니, 시발 그래도 못 참겠다.”

성필은 옆자리의 윤상열을 발로 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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