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등가의 소드마스터-410화 (410/446)

외전 - 작별 [2]

[42]

각각의 역사를 머금은 육신이 격돌한다.

요하나와 스페라. 서로가 눈동자에 품은 감정은 판이할 만큼 달랐다.

허나 상대를 향한 증오와 살의만은, 똑 닮아 뚜렷하게 빛나고 있었다.

쩌억!!!!!!

격돌과 함께 강력한 충격파가 일며 지면이 바스러져 나간다.

스페라가 충격파를 흘려내며 눈가를 좁혔다.

검을 맞대는 순간, 요하나를 중심으로 뻗어나오던 마나의 기류가 난잡하게 일렁였다.

우웅!!!

요하나가 가변형 코어를 변형시켜 조잡하게 재현해낸 서클이 약동한다.

본래 그런 식으로 조잡하게 서클을 재현해내는 건 자살이나 다를 게 없었다.

허나 육신의 손상을 고려하지 않는 요하나는, 급조한 서클을 활용한 시험적인 시도들을 거리낌 없이 강행했다.

쩌저저저적!!!!!

요하나로부터 발현되는 마법은 엉망진창이었다.

숙련된 마법사가 보았다면 비웃음부터 머금었을, 제대로 구조화되지 않은 마나의 덩어리를 남발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난잡한 마법의 발현이 전장에 예측할 수 없는 변수를 창출했다.

전장을 헤집는 변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경험에 기반한 감각적인 대응이 요구된다.

요하나는 스스로 난잡하게 헤집어버린 전장 속으로 거침없이 몸을 던졌다.

콰아앙!!!!!!!!!

사방에서 폭발과 전류가 흘러댔다.

요하나와 스페라는 균형을 잡는 걸 아예 포기하고 허공을 거닐며 검을 맞댔다.

폭풍에 휘말린 낙옆처럼 허공을 밟아가며 수십 번의 공방을 이어간 끝에.

스페라의 뺨이 길게 찢어졌다.

촥!

생채기에 가까운 상처는 한순간에 봉합되어 사라졌다.

허나 스페라는 웃지 못 했다.

"..."

성검, 그리고 스페라가 존재를 은폐한 악신의 유물들.

스페라는 그 신물과 유물들로부터 경험의 동화를 받아들여 부족했던 전투의 역량을 채워넣었다.

허나 아직은 어설픈 단계일 수밖에 없었다.

오로지 경험의 동화만을 통해 얻어낸 기술들은 아직 완전히 체득되지 못 한 상태였고...

아무리 불세출의 재능을 지닌 스페라라 해도, 경험의 동화를 통해 채워넣은 역량을 실전에서 단시간만에 온전히 발휘하는 건 버거운 일이었다.

그에 반해.

이제까지 혈전을 반복하며 살아남았던 요하나는 새로운 기술과 개념을 체득하고 활용하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요하나와 동화된 역사는 질적인 측면에선 스페라의 것보다 떨어질 수 있었지만.

그것을 활용하는 센스만큼은 요하나가 스페라를 앞질렀다.

카가가가가각!!!!!!!!!

공방이 계속된다.

과도기 속에서 이루어진 요하나와 스페라의 충돌은 이전처럼 깔끔하지 못 했다.

급속하고 불균일한 역량의 발전이 거칠어진 힘의 충돌을 야기했다.

그 난장판 속에서도.

요하나가 그려낸, 살의에 적셔진 검의 궤적만큼은 유려하게 스페라를 향했다.

스페라는 연이어 허공에 새겨지는 검의 궤적을 쫓아가려다 피식 웃었다.

'졌네.'

스페라가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요하나가 혈전을 치르며 이루어낸 간극을, 스페라는 마지막까지 따라잡는 데 실패했다.

또한, 스페라는 한 가지를 더 인정해야 했다.

이대로 요하나에게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지면, 스페라에게 충분히 유의미한 위협으로 발전할 터다.

스페라는 굳이 자신의 숙적이 충분히 발전하기를 기다려줄 생각이 없었다.

더 발전하기 전, 여기서 끝을 맺는 게 옳았다.

츠즈즉-

변화가 일어난다.

스페라를 압박하던 요하나가 불길한 변화를 감지하고 순간적으로 속도를 줄였다.

"...!"

요하나가 원했던 대로... 스페라가 어두운 광휘를 본격적으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스페를 중심으로 일렁거리던 어두운 광휘의 색채가, 누가 보아도 단번에 변화를 눈치챌 수 있을 만큼 짙어져 갔다.

헌데...

스페라는 어두운 광휘를 육신에 두르면서 도리어 요하나를 향해 조소했다.

"나를 이렇게 몰아붙인다고 해도... 과연 네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까?"

"...?"

조소를 이해 못 하는 요하나를 앞에 두고.

스페라가 본격적으로 어두운 광휘를 드러냈다.

그리고.

스페라에게서는 여전히 우아한 품격이 느껴졌다.

"..."

스페라는 어두운 광휘를 무분별하게 발산하지 않고 세심하게 다듬어 육신에 흐르게 하였다.

변질된 권능을 사용한 프레체스와는 달랐다. 프레체스는 어두운 광휘를 모방했을 뿐이었다. 그렇기에 불완전했고, 거칠었고, 불길했다.

허나 스페라에게 주어진 것은, 초월적인 존재들이 정밀한 조정을 거쳐 제련해낸 가장 위대한 축복이었다.

그 축복은... 아름다웠다.

어두운 광휘는 원색적이지 않았다.

갈증의 고통이 있기에 해소의 쾌락을 얻을 수 있고.

비극이 있기에 행복의 가치를 깨달을 수 있으며.

어둠이 있기에 빛의 찬란함에 감사할 수 있듯.

어두운 광휘는 원색적이지 않았기에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큼 아름다웠다.

물론... 스페라가 두른 '축복'은 단순한 신성력이라기엔 명백히 이질적이었다.

허나 그런 이질감 따위가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스페라가 조소를 머금은 채 입술을 달싹였다.

"어차피...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을 믿어."

이 전투를 지켜보는 이들은 분명...

이질감에 의심을 품기보다 아름다움에 현혹되고자 할 것이다.

대륙을 살아가는 신민들에게 스페라는 구원자였고 구원자여야만 했으니까.

물론, 모두가 어두운 광휘의 아름다움에 현혹되길 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경 원정에 참여한 인물 중, 스페라가 발하는 '이질감'에 의심을 품는 자들도 존재할 것이다.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의심을 확신으로 바꿀 것이다. 그렇기에 스페라의 기만이 영원할 수는 없었다.

허나 그 기만이 무너지는 시기는,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요하나, 네가 기대한 상황은 연출되지 않을 거야."

지금 이 자리에서 카일룸의 신민들에게 스페라가 변절자임을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멍청하고 무능력한 범인들도 알아챌 수 밖에 없을 만큼 아주 뚜렷한 증명이 필요했다.

허나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두운 광휘를 본격적으로 발하기 시작한 스페라는...

여전히 너무나 성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다웠으니까.

그녀는 여전히 엘-람의 사랑을 받는 성녀였다.

그것만큼은 기만이나 거짓이 아닌 진실이었다.

"..."

꾸득-

요하나가 침묵한 채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상황이 더욱 여의치 못 하다는 건 충분히 인지했다.

허나 상황이 어렵다고 물러설 수는 없었다.

단순히 어두운 광휘를 드러내게 하는 것으로 부족하다면, 더욱 더 몰아붙이면 될 일이었다.

몰아붙여서, 그 더러운 바닥을 낱낱이 드러내게 하고, 아예 여기서 죽여버리겠다는 각오로 스페라를 찍어누르면 될 일이었다.

으드득-!

서클을 모방하던 가변형 코어의 반절이 심장 내부에서 두꺼운 고리 형태로 변환됐다.

그 직후.

둘로 나누어진 가변형 코어가 서로 반발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코어의 반발은 추력으로 전환되어, 체내를 흐르는 마나의 흐름을 극한까지 폭주시켰다.

으드드득!

요하나가 이를 악물었다.

요하나의 육신을 이루는 핏줄이 금방이라도 살갗을 찢고 떠오를 것처럼 존재감을 드러냈다.

폭주하는 마나로 인해 육신이 손상되는 속도가, 영육의 합일에 의해 육신이 복구되는 속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바로 그 시점이, 요하나가 가장 극한의 육체 능력을 발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본래 요하나는 극한까지 폭주하는 마나를 도저히 제대로 제어할 수가 없어 전투에서 활용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잠깐 정도는 제어 가능하리란 확신이 생겼다.

트드득!

요하나로부터 흘러나온 폭주한 마나의 기류가 격자 형태의 구조를 이루기 시작한다.

팔라딘이 쌓아올린 신성 결계만큼이나 정교한 격자 구조를 이룬 마나의 구조물이, 이내 요하나가 손에 쥔 두 자루의 검을 뒤덮었다.

이제껏 시도해보지 않았던 특수한 검강을 발현한 요하나가 스페라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그리고 가속했다.

!!!!!!!!!!!!!!!!!!!!

요하나가 휘두른 궤적이 스페라의 성검과 맞닿는 순간 눈부신 섬광이 터져나왔다.

단 한 번의 충돌로부터 발생한 폭음이 일대의 대지를 뒤흔들었다.

스페라는, 속이 쓰렸다.

"..."

요하나의 검을 받아낸 반동이 스페라의 속을 메스껍게 만들고 있었다.

물론 공격을 가한 요하나의 육신 또한 금방이라도 꺾여나갈 것처럼 삐걱거리고 있었다.

정말이지, 스페라는 요하나에게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렇게까지 요하나와 비등한 공방을 이어가게 될 것이라곤 스페라는 정말 상상해보지도 못 했다.

그렇기에...

'...여기서 죽이자.'

그리 다짐하며, 스페라가 요하나와 마주 섰다.

벼락처럼 휘둘러진 검의 궤적이 허공에 새겨지며 찰나의 순간 공방이 오간다.

충격파가 너울졌고, 스페라는 몸에 전달되는 반동을 적당히 받아들여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남들이 보기엔 확연히 스페라가 밀리는 모양새였다.

허나 스페라는 힘이 모자라 뒤로 물러나는 게 아니었다.

단지 밀려나는 척을 하며 기회를 노리다가, 다른 이들은 인지 못 할 찰나의 순간 '전력'을 발해 요하나의 영육을 찢어버릴 생각이었다.

요하나 또한 스페라의 노림수를 알고 있었다. 허나 물러서지 않았다.

스페라가 여전히 진정한 전력을 숨기고 있듯, 요하나 또한 보여주지 않은 게 남아 있었다.

스페라의 가증스러운 가면을 벗기기 위해.

요하나는 삶을 걸고 기꺼이 스페라의 노림수에 정면으로 응했다.

쩌엉!!!!!!!!

다시 한 번 굉음이 울려 퍼진 순간.

일순 기이할 만큼의 적막이 두 사람 사이에 내려앉았다.

승부처다.

이 승부의 행방과 대륙의 운명을 결정지을, 그 중대한 승부처가 눈앞에 다가왔다.

요하나의 모든 감각이 스페라에게 집중됐고, 스페라 또한 표정을 지우며 모든 감각을 요하나에게 집중하고자 했다.

헌데.

그 직전에 스페라가 어깨를 움찔 떨었다.

"?"

익숙한... 냄새가 난다.

스페라는 '냄새'를 무시하고 요하나에게 집중하고자 했다.

헌데 그 냄새가 스페라에겐 너무나 강렬했다.

결국 스페라가 승부를 미루고 냄새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보려는 순간.

유리깨지는 소리가 울렸다.

카가가가가각!!!!!

카일룸의 상공을 둘러싼 신성결계가 바스러진다.

신성결계를 바스러뜨린 건 검게 물든 창이었다.

검게 물든 창이, 너무나도 우습게 카일룸의 신성결계를 바스러뜨린 후...

빛살이 되어 요하나를 향해 낙하했다.

"?!"

요하나는 스페라에게 온 정신을 집중하다가 뒤늦게 검게 물든 창에 반응했다.

쩌억!!!!!!!!!

요하나는 간신히 검게 물든 창을 빗겨냈다.

그 직후, 하늘에서부터 칠흑 같은 인영이 떨어져 내렸다.

요하나는 검게 물든 창을 빗겨내고도 스페라에게 시선을 두고 있었으나...

머리 위를 짓누르는 압도적인 악의에 결국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드는 요하나를 향해 사령검이 휘둘러진다.

쩌엉!!!!!!!!!!!!!!!!!

요하나가 두 눈을 부릅뜨며 사령검을 막아냈다.

사령검을 휘두른 안소니우스가, 곧장 가용할 수 있는 모든 힘을 추력으로 변환시켜 요하나를 카일룸 외곽까지 단숨에 밀어붙였다.

예기치 못 한 기습과 압도적인 추력 탓에 요하나는 속절없이 안소니우스가 밀어붙이는 대로 밀려났다.

콰가가가가가각!!!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신성결계가 바스러지고 안소니우스가 요하나를 밀어낼 때까지, 그 모든 게 찰나의 순간 이루어졌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요하나와 안소니우스가 저 멀리 떨어졌고.

스페라는 한순간 카일룸 한가운데 홀로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주위의 시선이 스페라를 향해 집중된다.

짧게 얼을 탄 스페라가, 한쪽 입꼬리를 서서히 뒤틀었다.

"...저 개새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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