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등가의 소드마스터-409화 (409/446)

외전 - 작별 [1]

[41]

요하나 데펜시오 변경백.

마경과 인접한 전선에서 수많은 공적을 쌓아올린, 현 제국제일검이라 평가받는 인물.

허나 약 2년 전에 발생한 사건 이후.

요하나의 위업이 부풀려진 허상에 불과하다는 비방이 대륙 전역에 번졌다.

부상을 입었다는 요하나가 아무 해명도 없이 칩거해버렸기에 그러한 비방은 더욱 힘을 얻었다.

현 제국은 본디 '루나'라는 단 한 명의 강자에 의지해 기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한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제국이 거짓과 과장을 보태 영웅을 '만들어냈다'가 그것이 들통 났다고, 많은 이들이 그리 생각하며 제국과 요하나를 비웃었다.

조소 어린 여론이 아무리 번져도 제국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제는 많은 이들이 요하나가 진정 부풀려진 영웅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허나 그게 무지하고 방만한 머저리들의 멍청한 착각이었음이...

성국의 수도, 카일룸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

요하나의 육신이 섬광이 되었다.

그건 '빠름'을 그럴듯하게 치장하기 위한 과장된 비유 같은 게 아니었다.

범인이 바라보는 시야에서 요하나는 실제로 섬광이 되었다.

어지간한 강자들조차, 충분히 떨어진 거리에서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요하나의 움직임을 시야에 제대로 담지 못 했다.

검이 휘둘러지는 궤적에 따라 거칠게 바스러지는 풍경만이... 모두의 시야를 뒤덮었다.

정면에서 맞설 수 있는 검격이 아니었다.

그 잘난 하이템플러나 로얄가드라 해도 요하나의 검격을 감히 정면에서 받아낼 수 있다고 입에 담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헌데 그 요하나가 떨어뜨리는 낙뢰를 앞에 두고.

스페라가 정면에서 성검을 맞댔다.

!!!!!!

스페라 프리슬란.

이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기적의 상징.

허나 그녀에게 대단한 무력적인 활약을 기대하고 있었던 이들은 생각보다 몇 없었다.

스페라는 분명 요하나와 함께 불세출의 재능을 지녔다고 평가받던 인재였기는 했지만, 현재로서 스페라는 '천재성'보다는 '상징성'이 부각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헌데 전장보다는 차분하게 왕좌를 지키며 성국을 이끌었던 스페라가 요하나와 검을 맞대고 있었다.

파멸적인 요하나의 검격에 순순히 압도되지 않고, 성검을 움직이고 있었다.

!!!!!!

성국의 신민들은 기껏해야 갓 성인이 된 것 같은 외관을 지닌 두 소녀의 격돌에 도저히 개입할 수가 없었다.

그럴 역량을 지닌 자가 카일룸에서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요하나와 스페라는 서로의 호흡이 닿을 만큼 근접한 거리에서 맞붙고 있었다.

두 소녀의 움직임과 두 소녀가 그려내는 궤적이 너무나도 빠르고 파괴적이어서, 도저히 둘 중 한 명을 돕겠다고 무언가를 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로얄가드쯤 되는 실력자라면, 반쯤 도박을 하는 심정으로 몸을 던지는 것까지는 가능할지도 몰랐다.

허나 로얄가드인 파울라는 제자리에 멈춘 채 온몸의 감각만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었다.

"..."

...이질감이 든다.

분명 스페라가 두른 광휘는 성스럽고 장엄하기 그지없었다.

광휘에 드리운 약간의 어두움이, 도리어 광휘의 색채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헌데... 파울라는 그 어두운 광휘로부터 이질감을 느꼈다.

마경에서 겪었던 그날의 감각이 자꾸만 상기되며 파울라의 피부를 간지럽게 만들었다.

파울라는, 너무 같잖아서 화제가 되었던 괴소문을 잠시 떠올렸다.

스페라가 타락해서 혼종이 되었다는 바로 그 괴소문을 말이다.

그건 누구나 실소가 나올 만큼 아무 근거 없는 같잖고 악의적인 괴소문이었다.

그래야만 했다.

콰아앙!!!!!!!!!

요하나의 검격에 스친 지면이 쪼개지다 못 해 먼지로 변한다.

요하나는 두 자루의 검을 멈추지 않았다.

이곳은 적진이었다. 스페라와 거리가 벌어지는 순간 사방에서 방해가 들어올 터다.

방해 없이 스페라와 맞붙기 위해서는 악착같이 스페라와의 간격을 가깝게 유지해야만 했다.

사실, 그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두운 광휘의 특수성을 제외하면 요하나는 모든 면에서 스페라를 앞서고 있었다.

속도도 검술의 역량도 아티펙트의 성능조차도 요하나가 우위였다.

물론 스페라가 지닌 어두운 광휘의 특수성은 그 모든 우위를 무위로 돌릴 만큼 강대했지만, 스페라는 외부의 시선 탓인지 어두운 광휘의 활용을 제한하고 있었다.

요하나의 목적은 스페라의 가면을 벗겨 내는 것이었다.

자신의 목적을 상기하며 몸을 회전시킨 요하나가, 같은 지점에 검의 궤적을 세 번 중첩시켰다.

쩌엉!!!!!!!!

스페라가 간신히 성검을 뒤틀어서 공격을 막아냈다.

충격을 이기지 못 하고 뒤로 미끄러지는 스페라를 요하나가 단숨에 따라잡았다.

속도도 검술도 요하나보다 뒤떨어지는 스페라가 의존할 수 있는 건 힘의 특수성뿐이었다.

어두운 광휘의 특수성에 의존한 힘싸움 말고는, 스페라가 지금의 불리를 역전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요하나는 스페라가 스스로 가면을 뜯어내길 강요하며 스페라를 찍어눌렀다.

콰앙!!!!!!!!!!

"..."

"..."

이제는 한계다.

더는 제한된 어두운 광휘만으로 이 공방을 이어갈 수 없다는 걸, 요하나도 스페라도 꿰뚫고 있었다.

요하나의 노림수는 틀리지 않았다.

스페라는 결국 자신이 물러설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음을 인정하며 성검을 가볍게 잡았다.

츠즉!!!

요하나가 스페라를 향해 어서 가면을 뜯어내라는 듯 낙뢰를 떨어뜨렸다.

이제껏 요하나가 발했던 그 어떤 낙뢰보다 일그러진 궤적을 그려낸 낙뢰가 화려한 잔상을 남기며 스페라에게 떨어져 내렸다.

그에 맞서, 스페라의 성검이 일직선의 둔중한 궤적을 그려냈다.

폭풍이 일었다.

!!!!!!!!!!

두 사람이 그려낸 필살의 궤적이 충돌한 결과는...

완벽한 상쇄.

처음 습격을 가했던 직후부터 호흡조차 고르는 일 없이 스페라를 몰아붙이던 요하나가, 일순 검의 흐름을 멈추었다.

직전의 충돌에서 스페라는 힘으로 요하나의 공격을 찍어눌러 상쇄한 것이 아니었다.

스페라는 요하나의 공격을 기술적으로 상쇄시켰다.

"..."

그건 불가능한 일이어야 했다.

스페라가 지닌 검술의 역량으로는 요하나의 공격을 그리 우아하게 상쇄시킬 수 없어야만 했다.

스페라가 검술의 역량을 숨기고 있었다...? 그것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요하나가 끔찍한 혈전을 반복할 동안 스페라는 그저 왕좌에 앉아 있었다.

요하나와 스페라의 재능은 비등하다고 칭해질만 했기에, 더더욱 경험의 유무가 역량의 간극을 만들어내야 했다.

헌데 대체 어떻게... 방금의 일격을 기술적으로 상쇄시켰지?

요하나가 의아함을 드러내며 스페라를 응시하자, 스페라가 성검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입술을 달싹였다.

"내가 그저 넘쳐흐르는 힘에 취해 건방을 떠는 것이라 생각했어?"

나는 그렇게 멍청하지는 않은데.

스페라가 그리 중얼거리며 담담하게 웃었다.

"요하나... 나는 '사도'야."

단순한 추종자가 아닌, 초월적인 존재들의 선택을 받은 사도.

그리고 단순한 '추종자'와 '사도'를 구분 짓는 대표적인 사도의 특권 중 하나는... '경험의 동화'였다.

스페라에게 귀속된 신물, 혹은 유물들을 거쳐 간 이전 주인들의 경험이...

지금 이 순간 스페라에게 녹아들고 있었다.

이제까지 경험의 동화를 억제하고 있던 스페라는 유물을 통해 흘러드는 피비린내 나는 역사들을 받아들였다.

동화, 공명, 혹은 침식이라 칭해야 하는 이 과정을... 재능 없는 범인은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 했다.

범인의 의지와 재능으로는 유물로부터 전해지는 그 방대한 역사들을 제대로 흡수하고 활용할 수 없었다.

결국 경험을 제대로 이해하고 응용할 수 있는 재능이 없다면.

아무리 경험의 동화를 이룬들 대단한 경지를 이루는 건 불가능했다.

레이가 참살했던 1황자가 그러했듯 말이다.

"..."

과거, 리실로테는 '사도의 강함은 사도로 선택된 존재가 본래 내재하고 있던 재능의 크기와 직접적으로 비례한다'고 잠정적으로 결론 내렸었다.

리실로테가 내렸던 결론은 큰 틀에서 보자면 얼추 정답에 가까웠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자일수록 경험의 동화를 통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스페라는...

불세출의 재능을 타고난 인재였다.

동화되기 시작한 막대한 역사와 경험들을 스페라는 실시간으로 정제해내서 필요한 형태로 구축해내기 시작했다.

스페라가 검을 쥔 손아귀의 각도를 조금씩 수정해보며, 이번엔 먼저 요하나를 향해 다가가며 속삭였다.

"요하나, 네가 아무리 긴 시간 전장을 떠돌아도... 날 상대로 검술의 우위를 점하는 건 무척이나 이루기 힘든 일이 될 거야."

쩌엉!!!!!!!!!!

다시 두 소녀가 충돌한다.

대부분의 조건은 변하지 않았다.

속도와 아티펙트의 성능은 요하나가 우위였다.

스페라가 두른 어두운 광휘의 농도도 그대로였다.

헌데, 딱 하나. 검술의 역량이... 점점 더 균형을 이루기 시작했다.

"...!!"

오히려 뒤집힌다.

요하나는 속도를 얻기 위해 섬세함을 희생했고, 그 섬세함의 희생으로 인해 발생한 틈을 스페라가 관측해내기 시작했다.

검술의 역량이라는 핵심적인 균형추가 반대쪽으로 기울면서, 전투의 양상까지 단번에 역전되었다.

카가가가각!!!!!!!!!

요하나가 지면을 긁으며 미끄러졌다.

아직은 할 만했다. 그러나 요하나는 스페라를 몰아붙여 가면을 뜯어내야만 했다.

반드시 그래야만 했는데, 여전히 어두운 광휘의 활용을 제한하고 있는 스페라에게 도리어 밀려나고 있었다.

요하나의 눈동자가 붉게 충혈됨과 동시에 전투 내내 유지되었던 평정심에 처음으로 균열이 갔다.

그 흔들림을, 스페라는 놓치지 않았다.

후우욱!!

성검이 둔중한 궤적을 그리며 요하나의 가슴을 향해 파고들었다.

속도에 치중하느라 제대로 빈틈을 메우지 못 한 요하나는, 스페라에게 일격을 허용해야 했다.

콰아앙!!!!!!!!!!!!

요하나가 후방으로 한참을 미끄러졌다.

스페라의 일격은 요하나의 어깨를 보호하던 능동형 방어 아티펙트가 대신 막아주었다.

그리고, 정상급 중에서도 성능이 특출하다고 평가받던 능동형 방어 아티펙트는 스페라의 일격을 상쇄하고 완전히 파괴됐다.

"..."

스페라와 거리가 벌어져 버렸고, 이곳은 적진이었다.

요하나는 단숨에 포위됐고, 다음 순간 요하나를 향해 사방에서 일시에 공격이 쏟아져 내렸다.

요하나는 호흡을 거칠게 내쉬었다.

이 상황을 타개할 명쾌한 답이 생각나지 않아, 두통이 일고 가슴이 꽉 막혔다.

스페라의 가면을 벗겨 내야 하는데, 지금 이대로는 그 목적을 도저히 달성할 수 없어 보였다.

요하나가 이를 악문 채 초조함을 품은 그 순간.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우리의 역사에 종언을 고했다.]

불멸을 포기했던 그날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우리를 실망시키지 마라. 그리고, 기억하거라.]

가장 어두운 전장에서도.

"...너는 혼자가 아님을."

쏟아져내리는 폭격을 마주하며, 요하나가 검 자루를 쥔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꾹 눌렀다.

상대는 사도다. 초월적인 존재들의 야합으로 인해 태어난, 불합리의 화신이었다.

그렇기에.

요하나 또한 모든 수단을 활용해야 했다.

"영혼을 이루는..."

[영혼을 이루는 우리의 역사가, 너와 함께할 것이다.]

그날이 맹세를 떠올리며.

요하나는 영혼에 깃든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 본 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건 분명 침식에 가까웠다. 불가역적으로 '요하나'의 자아를 손상시키는, 그런 침식에 가까웠다.

허나 요하나는 광기 어린 의지와 갈망, 그리고 불가해의 재능을 집중시켜...

흘러드는 영혼의 역사를 정제하여 필요한 형태로 구축해내기 시작했다.

"나는... 멈추지 않아."

시야가 밝았다.

막대한 화력이 요하나를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몸으로 막아낼 수는 있겠지만, 이대로 포위망에 둘러싸이면 스페라를 놓치게 된다.

설령 포위망을 뚫고 스페라에게 닿을 수 있다고 해도 수많은 성국의 병력을 참살해야 했다.

그럼 작전은 실패나 마찬가지였다.

쏟아지는 화력을 빗겨내고 스페라에게 다시 가속하기엔 마법의 도움이 필요했다.

요하나의 가변형 코어가 일시적으로 절반으로 나뉘었다.

절반으로 나뉜 한쪽이 심장을 가르고 팽창하더니... 이윽고 서클의 형태를 모방했다. 영혼의 역사 속 마법사의 삶에서 체험했던, 바로 그 서클의 형태를 말이다.

요하나를 중심으로 마나의 기류가 팽창했다.

!!!!!!!!!

"...?"

스페라가 요하나를 향해 쏟아져내리는 폭격을 구경하다가 눈가를 좁혔다.

어떤 마법적인 작용이 쏟아져내리는 폭격을 상쇄하고 빗겨냈다.

그 직후.

한 줄기 섬광이 일렁이는 마나를 뒤집어쓰고 하늘로 상승하더니.

다음 순간 유성처럼 스페라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하...!"

요하나에게서 무언가 '변화'를 감지한 스페라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웃음을 머금고 성검을 다시 잡았다.

스페라의 표정은, 진심으로 꽤 즐거워 보였다.

"정말이지..."

우리는, 닮아 있었다.

카일룸에 발을 들인 모두가 경악을 머금고 얼어붙은 공간 속에서.

초월자의 선택을 받은 사도의 역사와.

필멸자의 영혼이 쌓아올린 순환의 역사가.

충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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