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 역전 [2]
[39]
워프게이트.
대륙의 모든 국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전략시설이다.
특히나 성국은 현재 운용 가능한 워프게이트가 하나밖에 없었기에 방위 병력을 충분히 주둔시키고 있었다.
워프게이트의 방위를 담당하는 하이템플러, 포르투나는 갑작스러운 파병에 의한 병력 공백을 점검하기 위해 워프게이트 인근을 순찰하고 있었다.
헌데 순찰 도중, 카일룸의 북쪽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쿠웅...!!
"...!"
단순한 사고인가, 아니면 기습인가.
만약 기습이라면 아주 거슬리는 타이밍에 찌르고 들어왔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지 않은 타이밍에 기습을 받았다고 해도 신속하게 침입자들을 배제할 수 있으리라 포르투나는 확신했다.
성국의 중심지인 카일룸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경계를 강화하라."
포르투나가 휘하의 부대에 명령을 내리며 워프게이트의 방위 상황을 점검했다.
헌데 두발로 뛰어다니며 상황을 점검하던 찰나, 포르투나가 다급히 방패를 지면에 꽂았다.
"이런...!!"
콰앙!!
방패로부터 신성결계가 전개됨과 거의 동시에 한 줄기의 빛살이 방패의 중앙에 명중했다.
흙먼지가 일어났고, 주변의 병사들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고 당혹스러워 했다.
포르투나는 방패를 뽑아내 흙먼지를 밀어내며 고함을 내질렀다.
"엘프!!!!"
엘프, 그들 중에서도 샤프슈터라고 불리우는 전사들.
은신과 요격에 특화되어 있는 그들의 접근을 포르투나조차 뒤늦게 알아차렸다.
포르투나와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던 성국의 마법사 한 명은 어느새 어깨를 적중당해 중상을 입고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포르투나가 격앙되어 소리 질렀다.
"샤프슈터다!! 진형을 갖추고 대응하라!!!"
화아악!!!
포르투나가 본격적으로 성물을 활성화시켰다.
일단 성물을 활용해 샤프슈터의 공세를 막아내며 포르투나는 이를 갈았다.
샤프슈터는 상대하기 까다로운 특수 전력이었고, 더군다나 그들 대다수가 엘프의 영역에 상주하는 이들이라 정보가 극히 적었다.
만약 제국이 기사단 하나 정도의 전력을 움직였다면 성국은 분명 미리 정보를 얻어 경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샤프슈터는 성국을 비롯한 인간 세력의 눈을 벗어나 있는 존재들이었고, 소규모 중대 단위에 근접하는 숫자의 샤프슈터가 기습을 가하기 위해 이동했음에도 성국은 그 움직임을 파악하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콰아앙!!!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상황에 샤프슈터의 요격이 이어지니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포르투나는 신성한 빛으로 전장을 밝히며 샤프슈터를 추격해 반격까지 가했다.
워프게이트의 방위 병력은 엄선된 정예인 만큼 혼란 속에서도 자기 임무를 다했다.
그들의 활약 덕분에 워프게이트는 가동만 중단되었을 뿐 무사히 보호받고 있었다.
하지만, 카일룸의 모든 병력이 워프게이트의 주둔군처럼 뛰어나지는 못 했다.
콰앙!! 콰아앙!!!
샤프슈터의 기습은 카일룸의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성국의 병력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해지는 은밀한 요격에 우왕좌왕했다.
노르드로 급히 부대를 편성해 파견하느라 발생한 병력 공백과 지휘체계의 혼란이 상황을 악화시켰다.
절대적인 전력의 격차가 매우 컸기에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수습은 되겠으나, 지금 당장 모든 혼란을 진화하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그 와중.
포르투나는 침입자로 판단되는 이들이 카일룸의 중심부로 향하는 길목으로 뛰어드는 광경을 목격했다.
저 길목 끝에 있는 것은, 이제는 신민들에게 '교황청'이라 불리기 시작한 신성한 기관이었다.
포르투나가 분개하며 고함을 내질렀다.
"제국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더러운 변절자 놈들이 감히...!!!"
*
스페라는 다리를 꼰 채 왕좌에 앉아 있었다.
카일룸에 기습이 가해졌음은 당연히 스페라 또한 인지하고 있었다.
스페라는 지금의 상황이... 상당히 흥미롭게 느껴졌다.
제국이 노르드에서 사건을 일으킨 게 지금의 기습을 위한 양동의 의미도 겸하고 있다는 것은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헌데 제국이 이 기습을 통해 대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스페라는 아주 궁금했다.
"예상은 가는데 말이야..."
침입자들의 본대라고 판단되는 이들이 교황청으로 향한다는 보고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제국의 최고 전력인 루나는 이번 기습에 대규모 파괴 마법을 일절 동원하지 않았다.
대량 학살은커녕 불필요한 사상자의 발생은 최대한 억제하는 형태의 기습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건... 여론전을 위한 포석이라고 해석할 수 있었다.
만약 제국이 오늘 스페라의 정체를 대외적으로 밝혀내서 '기적을 이룬 성녀'라는 상징성을 추락시키고자 한다면, 당연히 보는 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거기에 제국이 이번 작전을 진행하는데 과한 학살이 발생하면 스페라의 정체와는 별개로 제국을 향한 여론 또한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불필요한 사상자의 발생을 최대한 억누르는 것일 터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제국의 노림수가 무엇인지는 꽤 분명하게 보였다.
허나 스페라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은, '대체 어떻게 내 앞에 닿을 것인가?'였다.
루나는 여전히 황성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루나를 제외하면, 제국 측 인물 중 스페라의 힘을 일부나마 확실히 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되는 강자는 기껏해야 '울트' 정도였다.
허나 울트는 현재 마경과 맞닿은 최전선에서 악신의 추종자들을 저지하고 있었다.
그 둘 정도를 제외하면 그나마 가망이 있는 인재는 요하나였다.
요하나는 분명 범인을 압도하는 불세출의 재능을 지니고 있었지만... 검을 쓰는 기사인 만큼 투사 가능한 단순 화력은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아티펙트의 보조를 받는다고 해도 여기까지 닿는 게 가능이나 할까?
스페라가 웃음을 머금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아무렴, 제국이 아무 근거 없이 이리 무리한 작전을 강행할 리는 없을 테니까.
콰앙!!!!!
그리고, 스페라의 예상대로 요하나는 강력한 저항에 직면했다.
카일룸의 방위 병력 중 다수는 여전히 제대로 정비되지 못 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허나 교황청으로 향하려는 침입자가 발견되자, 근방에 있던 전투 병력만큼은 단숨에 집결하여 침입자를 배제하려 했다.
콰아아앙!!!
머릿수가 한참 우세한 성국의 병력이 화력으로 침입자들을 짓눌렀다.
그들은 화력을 투사한 후폭풍으로 인해 카일룸에 추가적인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감수하며 침입자들을 옥죄어 제압하려 했다.
"방심하지 마라!! 계속해서 압박해!!"
"피해를 감수해서라도 시야를 확보해!! 도주로를 막는다!!"
카일룸의 일부 구역이 초토화되더라도, 교황청으로의 진입만큼은 용인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그들에게서 흘러나왔다.
요하나는 커다란 건물 뒤로 잠시 몸을 숨긴 채 호흡을 골랐다.
분명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인데, 제국의 대원들은 덤덤하게 요하나를 바라보며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요하나를 비롯한 제국의 대원들 모두가 최전선에서 혈전을 치르며 살아남은 자들이었다.
이런 빌어먹을 경험쯤은 수십 번도 더 겪었기에, 동요하고 싶어도 동요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쥬세핀이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다른 대원들을 미끼로 쓰고 혼란을 틈타 홀로 교황청에 잠입하는 것이 가장 확률 높은 수였다.
허나 요하나는 짧게 명령했다.
"뚫고 지나간다."
쩌엉!!!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요하나가 무너지는 건물을 뚫고 가속했다.
가장 가까이 있던 템플러의 흉갑을 요하나의 어깨가 강타했고, 템플러는 찌그러진 흉갑과 함께 한참 떨어진 건물에 처박혔다.
앞서 나가는 요하나의 뒤를 제국의 대원들이 따랐다.
여전히 절대적인 전력의 격차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수년 동안 하루도 끊임없이 이어진 빌어먹을 혈전은 제국의 많은 것들을 발전시켰다.
전략, 전술, 기술, 마법, 아티펙트 등 전투에 활용되는 모든 요소가 몇 단계는 진보를 이루었다.
그리고, 요하나를 비롯한 제국의 대원들은, 그 빌어먹을 혈전의 생존자이자 제국이 이룬 진보의 정수와 마찬가지였다.
정말이지 모든 면에서.
그들의 날카로움은 카일룸의 병력들과는 궤를 달리했다.
콰가가가가각!!!
급조된 카일룸의 방어군이 삽시간에 돌파당하기 시작했다.
성국의 병사들은 대체 무엇 때문에 이리 무력하게 돌파당해야만 하는지 이해하지 못 했다.
숫자 상의 전력은 성국의 방어군이 훨씬 우세였다. 제국의 대원들이 이룬 평균적인 경지가 대단히 높은 것도 아니었다.
허나 제국의 대원들은 하나의 생물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적재적소에 아티펙트를 활용해서 방어군의 진형을 붕괴시켰다.
너무나 생소한 기능들을 지닌 아티펙트의 출현과 제국 대원들의 압도적인 연대에 의해 결국 방어군의 중앙이 돌파당했다.
쩌억!!
요하나가 손에 닿는 템플러의 머리를 움켜쥐고 지면에 박아넣었다.
다른 대원들의 실력도 실력이었으나, 하이템플러마저 압도하는 요하나의 무위는 신앙이 깊은 성직자조차 마른 침을 삼키게 만들었다.
반쯤 와해된 방어군을 방치하고 요하나와 제국의 대원들이 목표 지점을 향해 재차 가속하려는 찰나.
하늘에서 섬광이 일었다.
화아악!!!
"...!!"
이곳은 성국의 수도인 카일룸이다.
그리고 요하나가 발을 들이려 하는 곳은 카일룸의 심부였다.
당연히, 카일룸의 심부로 향하는 길이 그리 만만할 리 없었다.
츠즈즉!!!
지역 전체에 중첩되어 있는 신성 결계를 활용한 요격 병기가 활성화되고 있었다.
과거 황성에 존재했던 것과 비슷한 개념의 병기였으나, 비교적 위력이 축소된 대신 빠르게 활성화되어 적을 정밀하게 요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코마. 그리 이름 붙여진 병기가 하늘 위에서 신성 결계로부터 전해지는 섬광을 받아들여 응집시켰다.
거대한 병기인 만큼 화력만큼은 인간이 받아낼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넘어서 있었다.
허나 요하나는 홀로 앞으로 나섰고, 코마가 요하나를 향해 빛줄기를 쏟아냈다.
!!!!!!!!!!
시야가 환하게 물듦과 동시에.
요하나는 육신과 공명하는 영혼의 기류를 마나와 뒤섞어 코팅하듯 몸을 뒤덮었다.
코마는 신성력을 기반으로 하나 공격의 형태는 열선 병기에 가까웠다.
강렬한 빛줄기에 담겨 있는 신성력의 농도는, 요하나가 느끼기엔 너무나도 묽었다.
카일룸에서 병기를 들고 있던 많은 이들이 코마가 섬광을 쏟아내는 광경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코마의 섬광과 맞닿은 침입자가 흔적 없이 증발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섬광을 쏟아내던 코마의 장갑에.
어느 순간 균열이 일었다.
콰가각!!!!!!
삽시간에 균열이 번져나간 코마가 허공에서 조각이 났다.
그리고 코마의 섬광이 쏟아졌던 열기의 중심에서, 요하나가 너무나도 무사한 모습으로 걸어나왔다.
"..."
"..."
"..."
잠시 침묵이 일었다.
교황청을 수호하는 카일룸의 진정한 고위 전력들이 나타나 요하나의 앞을 막아서며 당혹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지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그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요하나는 더운 바람을 느끼며 앞으로 나아갔다.
요하나를 저지하려 하는 이들이 요하나를 이해할 수 없음은 당연했다.
지금의 요하나는, 인간의 의지와 광기와 기적이 맞물려 탄생한...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 했던 하나의 특이점과 같았다.
과거의 요하나는 육신의 손상을 감당하지 못 해 가변형 코어와 오버드라이브를 사용하는데 큰 제약이 있었다.
허나 이제는 아니었다.
요하나의 심장에 위치한 가변형 코어가 극단적인 변형을 이루기 시작했다.
*
굉음이 몇 번 더 건물을 울렸다.
자리를 피할 것은 권고하는 이들을 물린 스페라가 기대감을 품고 왕좌를 지켰다.
이내, 익숙한 얼굴이 스페라를 찾아왔다.
스페라가 미소를 머금으며 인사했다.
"어서와, 요하나."
요하나가 답했다.
"더러운 입 다물어, 스페라 프리슬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