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등가의 소드마스터-401화 (401/446)

외전 - 이단 [2]

[33]

"음..."

데런은 잠시 옆머리를 긁적였다.

데런은 요하나가 심적인 여유를 가지기를 바랐지만, 말해봤자 요하나가 들어줄 리 없어 보였다.

잠깐의 고민 끝에 어깨를 으쓱인 데런이 목소리를 가볍게 높였다.

"준비하는 게 있기는 한데... 자세한 건 이따가 루나한테 물어봐요."

"알겠어."

데런 말마따나 제대로 된 설명을 듣기 위해서는 루나에게 묻는 게 요하나에게도 더 편했다.

고개를 끄덕인 요하나는 황제를 먼저 알현하기 위해 몸을 돌렸다. 제국의 귀족으로서 응당 이행해야 할 도리였다.

본래의 황좌에는 레이가 아직 머물고 있었기에, 황성에는 새로운 알현실과 황좌가 마련되어 있었다.

알현실로 찾아간 요하나가 몸을 낮추며 예를 갖췄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새로운 알현실은 제국의 권위에 걸맞게 충분히 웅장하고 우아했다.

허나 이 알현실의 가장 높은 곳에 앉아 있는 황제는 어째선지 행복하게 웃고 있지 못 했다.

못 본 사이 젖살이 많이 빠진 레아를 향해, 요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동안 보체 강녕하셨습니까?"

"아... 언니는, 다친 곳은 괜찮나요?"

레아는 여전히 요하나를 언니라 불렀다.

보는 사람이 없기에 그리 불렀다지만, 황제로서 적절한 언행은 아니었다.

그래도 요하나는 맑은 목소리로 답했다.

"주어진 의무와 역할을 다하지 못 한 채, 긴 시간 폐하를 보필하지 못 하여 송구합니다."

"아뇨, 언니, 그건..."

"저는 괜찮아요."

요하나가 레아의 허락 없이 몸을 일으키더니, 팔다리를 이리저리 꺾어보았다.

유연하게 움직이는 육체를 레아 앞에서 선보인 요하나가 싱긋 웃었다.

"저는 정말 괜찮아요."

"아... 그... 다행이네요."

레아는 요하나를 따라 어렵사리 웃었다.

그래도 조금은 더 편하게 요하나와 몇 마디를 나눈 후, 레아가 요하나의 휴식을 위해 빠르게 알현을 마무리했다.

"그만 들어가서 쉬어요."

"예, 폐하.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채 뒤로 물러난 요하나는 알현실의 문이 닫히기 전에 고개를 들어 레아를 마주 보았다.

1년 반만에 많이 성장한 레아를 보며, 요하나는 새삼스레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며 밝게 웃었다.

"많이 의젓해지셨네요, 폐하."

"...!"

쿵!

알현실의 문이 닫혔다.

레아는 잠시 놀란 얼굴을 했다가, 이내 잔잔하게 웃었다.

그리 잔잔하게 웃으면서도 레아는 요하나가 정말 괜찮은 것인지 걱정했다.

아무리 1년 반만에 보았다고 해도...

어째선지 요하나가 참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

알현을 마친 후.

요하나가 루나를 찾아갔다.

루나는 18개월 전과 다를 바 없는 얼굴과 눈빛으로 요하나를 맞아주었다.

요하나는 다짜고짜 스페라에 관해 묻지 않고, 좀 더 포괄적인 질문을 던졌다.

"요즘 어때?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전선에 큰 문제는 없어?"

"...아직은 괜찮아."

"그렇다면 다행이네. 다른 일은 없고?"

"... 최근에는 대륙 방위 체계를 구축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

"아, 그거? 본격적으로 시작했구나?"

요하나도 루나가 준비하고 있던 대륙 방위 체계에 관해서는 대략적이나마 알고 있었다.

"그... 세운다는 건물 이름이 뭐였지?"

"화이트타워."

"아, 맞다. 화이트타워."

현재 진행 중인 '대륙 방위 체계'의 핵심은 황실 마탑의 오벨리스크였다.

제국은 본래 우주를 탐색하는데 특화되어 있던 오벨리스크의 탐색 기능을 지상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개조하는데 집중했다.

또한 제국은 오벨리스크와 연동 가능한 '화이트타워'라는 건축물을 설계했고, 이 화이트타워를 제국을 비롯한 대륙 각지에 건설하여 완성시킬 계획이었다.

대륙 각지에 건설될 화이트타워가 오벨리스크과 연동되면 루나가 계획한 대륙 방위 체계의 구현이 가능해졌다.

요하나가 과거에 적당히 알아듣고 넘겼던 대륙 방위 체계의 계획안을 떠올리며 루나에게 물었다.

"필요한 기술 개발은 끝난 거야?"

"...거의."

화이트타워는 거대한 마나의 파장을 넓은 지역에 흩뿌릴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강력하고 불규칙한 마나의 파장을 산발적으로 흩뿌려서,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간섭이나 반사 효과 등을 이용해 일대의 위험 요소를 탐색하고 경고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화이트타워의 초기 설계 목적이었다.

얼핏 듣기에는 간단해 보이지만, 제대로 된 탐색 효과를 얻기 위해 고려해야 할 변수가 지나치게 많아서 실현하기까지 난점이 많다...고 요하나는 들었었다.

그럼에도 루나가 거의 다 되었다는 걸 보니, 필요한 데이터와 기술은 거의 마련된 것 같다고 생각하며 요하나가 다시 물었다.

"완성되면 예전에 말해줬던 대로 수상한 움직임을 전부 찾아낼 수 있어?"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가능할 거야."

진군하는 군대처럼 대규모 인파가 결집한다면 무조건 파악 가능했다.

마법의 발현을 미리 감지할 수 있었고, 이질적인 힘을 가진 존재 또한... 화이트타워 활성화 이후 데이터가 충분히 쌓인다면 파악 가능할 수 있었다.

그것 외에도 장기적으로 화이트타워에 다양한 기능이 추가될 예정이었다.

일시적으로 게이트 기능을 활성화시킬 수 있도록 하거나, 혹은 오벨리스크를 통해 전달된 화력을 투사 가능하도록 말이다.

거기에 더해 화이트타워는 계획대로 활성화될 시 대륙 전역의 특정 좌표를 정확하게 전달 가능했다.

그 좌표를 활용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이제는 요하나도 잘 알았다.

물론 본격적으로 작동시킨다면 신기술이 다수 적용된 만큼 이런저런 문제가 돌출되겠지만, 제국의 역량을 집중시키면 대처 가능하리라고 요하나는 믿었다.

"그러면 대륙 방위 체계는 이제 완성되기만 기다리면 돼?"

"...반발이 있어."

"반발? 누가?"

"가장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곳은 노르드야."

"노르드...? 북쪽에 있는 국가?"

"맞아."

노르드는 제국 중심에서 북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국가였다.

국토 전체가 험악한 산지에 가까웠는데, 좋은 광물이 다량 생산되는 것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작은 국가이기도 했고, 국토가 험해 인구 밀도도 떨어져서 큰 힘을 가진 국가는 아니었다.

요하나는 노르드가 반발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짧게 중얼거렸다.

"까불고 있네."

사실 노르드가 아무 이유 없이 반발하는 것은 아니었다.

노르드가 좋은 광물이 많이 생산되는 지역이라지만, 대륙의 끝자락에 있는데다 국토가 험해서 큰 전략적 가치를 지닌 지역은 아니었다.

또한 전선의 후방에 위치해 있었기에 당장 벌어지고 있는 대전쟁에 '직접적인 위협'을 받을 일이 없었다.

헌데 노르드의 국토에 화이트타워가 건설된다면, 노르드는 지금 이상으로 강력한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급등했다.

화이트타워는 앞으로의 전쟁에 가장 핵심적인 전략 시설이자, 적들의 최우선 표적이 될 테니 말이다.

노르드는 제국, 혹은 다른 국가들의 안전을 위해 노르드의 안전이 지금 이상으로 희생되길 바라지 않았다.

노르드의 고위층은 현재 진행되는 대전쟁을 돕기 위해 이미 충분히 많은 물자를 동맹국에게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게 또 아주 틀린 주장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화이트타워는... 감시 장비였다.

적들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대륙의 모든 존재를 추적·감시할 수 있는 장비였다.

제국의 영향력, 기실 루나의 영향력을 대륙 전역에 확장하기 위한 장비를 국가의 땅에 들인다는 게 달가운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이와 같은 이유로 노르드는 국토 내에 화이트타워를 건설하는 것을 매우 부정적으로 여기고 반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요하나는 이해가 안 가는 투로 혼잣말을 했다.

"대체 뭘 믿고 까분대?"

"..."

18개월 전.

요하나는 지하 시설에서 스페라와 마주쳤다가 간신히 탈출했다.

그후 1년 반을 오벨리스크에서 칩거했는데, 그 사건을 가지고 대륙 전역에 뒷말이 많이 나오게 됐다.

당연히도 부정적인 뒷말이 많았다.

제국이 억지로 요하나의 역량과 명성을 부풀려 포장하다가 이번에 망신을 당하게 됐다고, 그런 뒷말들이 한동안 떠돌았다.

그렇다 보니 제국의 권위, 혹은 제국을 향한 공포심도 손상을 입게 되었다.

물론 루나의 역량에 관해서까지 의심하는 머저리들은 극소수였으나, 어쨌든 제국을 과거보다 만만하게 평가하는 기류가 생긴 것도 사실이었다.

루나는 굳이 그런 잡다한 이야기들을 요하나 앞에서 입에 담지는 않았다.

"...성국의 부추김이 있었어."

과거보다 제국의 이미지도 좀 만만해진데다 성국의 부추김까지 더해진 덕분에 노르드는 꽤 강경하게 나오고 있었다.

다른 세력 또한 눈치를 보며 노르드의 목소리에 편승할까 간을 보고 있었고 말이다.

요하나가 덤덤하게 답을 내렸다.

"밟아야겠네."

"그래."

"어떻게 할 거야?"

"이단."

"...?"

요하나는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으나, 루나의 설명을 듣고 이내 상황을 이해했다.

노르드는 멀고 먼 과거에 엘-람이 아닌 '다른 존재'를 섬겼다고 유명한 지역이었다.

물론 그에 관한 제대로 된 자료는 남아있지 않았고, 단지 구전되는 이야기가 유명할뿐이었다.

현재는 노르드 또한 대륙의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신성 교단의 가르침을 우대하고 있었다.

허나 어쨌든 멀고 먼 과거에는 이단을 섬겼다고 유명한 지역이다.

이 대륙의 운명이 걸린 중대한 시기에 노르드의 고위층이 이단을 섬기려 했다는 명분을 들어 밟아버리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증거가 있냐고? 증거는 만들면 됐다.

정당한 방법이든 부정한 방법이든 지금은 화이트타워의 건설에 반발하는 세력을 찍어눌러야 했다.

"노르드가 이단을 섬겼다는 명분을 내세워 무너뜨릴 생각이야?"

"그 명분을 내세워 노르드에 군사를 보내서..."

루나가 서랍에서 오래된 책 한 권을 꺼내 탁자 위에 내려놨다.

"그들이 과거에 섬긴 초월적인 존재에 관한 단서를 확보하고, 접촉을 시도할 거야."

"...?"

"...그렇게 보이도록, 상황을 꾸밀 거야."

"어째서...?"

"스페라를 움직이게 하기 위해."

"아...!"

요하나는 루나의 작전을 대충이나마 이해했다.

스페라가 과연 그 미끼를 물어줄지 아직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시도해서 손해 볼 일은 아니었다.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는 요하나를 향해 루나가 입술을 달싹였다.

"...아직, 계획을 진행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해."

"알았어. 기다리고 있을게."

"...제플린에게 가 봐. 네 힘에 적합한, 새로운 무장을 개발해야 하니까."

"응."

요하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을 떠나려는 요하나를 향해 루나가 한 마디 덧붙였다.

"...데런을 불러줘."

"데런? 알았어."

"..."

요하나가 나가고 나서, 루나는 보존 처리가 된 금서를 조용히 내려보았다.

이번에도... 어쩌면 신뢰할 수 있는 자의 희생이 필요할 수도 있었다.

루나는 침묵을 지키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데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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