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 불멸 [3]
[29]
섬광이 두 자루의 검을 휘감았다.
요하나는 어두운 물결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검을 휘감은 섬광이 궤적을 그려낼 때마다 어두운 물결이 무력하게 흐트러져 나갔다.
어둠은 감히 요하나가 발하는 광휘에 저항하지 못 했다.
요하나가 그려내는 궤적은 점차 더 안정되고 날카로워졌다.
초월의 편린이 만들어낸 기적이 대지와 하늘을 범하며 길을 열었다.
요하나는 끝없이 이어지는 어두운 물결의 저 너머에서 '괴이'를 느꼈다.
저 너머의 괴이가 발하는 힘이 요하나에게는 생소하지 않았다. 저건 이미 경험해본 괴이였다.
요하나는 그 괴이와 처음 마주쳤을 때 무력하게 무릎 꿇고 허겁지겁 도망쳐야만 했다.
목숨을 걸고 전력을 다했음에도 일방적으로 짓이겨지고 동료의 희생을 통해 간신히 목숨만을 건졌다.
그토록 무력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손에 쥐고 있는 이 광휘가 있다면, 저 괴이한 존재에게도 대적할 수 있으리란 막연한 확신이 요하나를 일으켰다.
저벅!
하르시아가 섰던 전장을 걸으며, 요하나는 저 너머에 있는 첫 번째 혼종을 향해 나아가려 했다.
어둠을 베어내고, 대지와 하늘을 갈라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못 해... 요하나는 결국 휘청거리며 넘어지려 했다.
초반에 요하나가 공간검의 마나를 통제하지 못 해 바스러졌던 육체가 더는 부하를 견디지 못 하고 조각나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요하나는 조각나서 떨어져 내리는 육체를 버리고 앞으로 다시 걸었다.
저벅!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그런 충동이 요하나를 앞으로 이끌었다.
너를 돕기 위해, 홀로 떠나가려는 너를 붙잡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기에...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무지했고 안이했고 나약했기에 겪어야만 했던 후회를 또다시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요하나는 검을 입에 물고 부러진 발목에 괴물의 뼛조각을 박아넣어 지지대로 삼아서라도 다시 걸음을 옮겼다.
허나 처절한 의지만으로는 결국 기적을 이룰 수가 없었다.
사지의 관절이 꺾여나가고 허리가 굽어버린 육신이 결국 지면을 향한다.
완전히 주저앉으려는 육신을 질질 끌며, 요하나가 안타까움을 견디지 못 하고 저 너머로 손을 뻗으려 했다.
그 찰나.
리실로테가 전개했던 환영이 요하나의 시야에서 벗겨져 나갔다.
화아아아악!!
"...!!"
감각이 환원된다.
검게 물든 대지는 사라지고 망가진 육체는 어느새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시야가 일변한 요하나가 자리에서 비틀거렸으나, 그럼에도 넘어지지는 않았다.
혼란이 뇌리를 헤집는 와중에도 균형을 잡은 요하나가 두통을 참아내며 눈가의 눈물을 닦아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리실로테가 입을 열었다.
"훌륭하구나."
극찬이었다.
리실로테가 훌륭하다고 평할 만큼의 재능은 역사에 몇 존재하지 않았다.
리실로테는 요하나가 정신적인 혼란을 수습하기를 잠시 기다려주었다가, 말을 덧붙였다.
"그래서 더욱 안 되겠어."
공간검의 계승은 불가하다.
리실로테의 말뜻을 파악한 요하나가 짧게 물었다.
"어째서."
"먼저 인정하마. 네 재능이라면 공간검의 계승이 정말 가능할 수도 있겠어."
과거에 죽어나간 인재들 덕분에 어지간한 시행착오에 관한 데이터는 충분히 쌓여 있었다.
요하나 본인의 의지와 재능 또한 더없이 훌륭했다.
이 정도면 공간검의 계승을 위한 필수적인 준비는 대부분 갖춰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제 남은 가장 큰 문제는, 요하나가 황족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요하나에게는 황족이 지닌 용혈도 드래곤하트도 없었다.
용혈과 드래곤하트는 황족이 단명하게 하는 요인이기도 했지만, 재능에 따라 코어로 인해 신체에 걸리는 부하를 감경해주는 장치로 활용할 수도 있었다.
요하나는 그게 불가능했고, 인간의 심장은 공간검의 코어를 견디기 힘들었다.
과거에 제국은 그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자궁에 코어를 생성한다는 대안을 세워 성과를 냈다.
허나 결국 '성공작'을 배출하지는 못 했기에, 자궁에 코어를 생성한다는 대안은 미완으로 남아 있었다.
물론 그 미완의 이론을 완성하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리실로테는 레이를 통해 공간검을 계승하기 위해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보강해야 하는지 더욱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여전히 다수의 문제가 잔존해있지만... 그래, 해결할만할 것이다."
"그런데?"
"언제나 우리의 발목을 붙잡는 건 시간이지."
리실로테가 피식 웃었다.
"어설프게 서둘렀다가 잃기에는 너의 재능이 너무나 아깝구나."
"..."
"혹여 자만하지 말거라. 공간검의 계승은 서두른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너의 재능이 훌륭하다고는 하나 하르시아에 미치지는 않는다. 하르시아에 비하면 너나 나는 결국 범인에 지나지 않는다."
리실로테의 인도에 따라.
요하나가 공간검을 계승하기 위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코어를 구성하고, 공간검을 체득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20년은 걸리겠지."
리실로테가 단언했다.
20년은 짧은 시간이다.
하르시아의 전설을 재현하기 위해서라면 충분히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리실로테가 '고작' 20년을 입에 담은 것은 그만큼 요하나를 고평가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네게 20년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정면 승부에서 충분히 혼종을 꺾을 수 있는 역량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상대가 요하나와 비견되는 재능을 타고난 스페라인만큼 쉽기는 않겠지만 분명 승부라는 게 성립은 될 것이다.
허나 그건 무의미한 가정이었다.
"하지만 아이야, 이 서사는 20년 안에 결말을 맞이할 것이다."
리실로테가 말하는 서사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대전쟁을 가리켰다.
어떠한 결말을 맞이하든, 이 대전쟁은 20년 안에 마무리된다.
그건 리실로테의 확신이었다.
요하나가 공간검을 재현할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이미 모든 일이 끝난 뒤일 터다.
대체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제국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칼을 대전쟁 내내 창고에 박아두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
요하나는, 리실로테를 향해 공간검을 완성시킬 시기를 내가 앞당길 수 있다고 건방을 떨지는 않았다.
그 대신 짧게 물었다.
"대안이 있어?"
"..."
리실로테는 신중해졌다.
요하나는 제국의 가장 중요한 카드 중 하나였다.
리실로테가 지닌 염원을 위해서라도, 요하나는 자기 역할을 다해주어야 했다.
되도록 빠르게 요하나를 전력화해야 하는 시기임을 감안하면 하르시아의 공간검은 적절한 선택지가 아니었다.
"..."
요하나는 혼자가 아니다.
적어도 하르시아처럼 모두를 등지고 홀로 전장에 서서 희생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요하나가 반드시 적이 지닌 특이성을 압도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어떻게든 대응할 수 있는 수준만 되어도 충분했다.
그마저도 일반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지만... 리실로테가 제시할 수 있는 선택지가 하나 있었다.
"...소울웨폰(Soul Weapon)."
"...?"
"내가 이론화시키고 실증을 끝낸... '개념'이야."
무기가 아닌, 개념이다.
요하나가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리실로테를 보았다.
그러자 리실로테가 허공에 홀로그램처럼 보이는 그림을 그려내며 설명을 시작했다.
"이제까지 인간의 영혼은... 제물 따위로 바쳐져 의식의 일부로 사용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마땅한 활용처가 없었지."
애초에 영혼의 직접 활용은 명백히 금기의 영역이었다.
허나 가장 소중했던 존재를 잃어버린 리실로테의 맹목은 그런 금기 따위에 제약되지 않았다.
리실로테는 인간의 혼에 관한 연구를 발전시켜 혼을 직접적인 '동력원'으로 활용하는 방법까지 창조해냈다.
"인간의 혼은 4차원 시공간 너머에 걸쳐 있어. 그렇기에 혼을 동력원으로 삼아 발생시킨 힘은 외부의 간섭에 강한 내성을 지니지."
일례로 리실로테가 발현한 소울웨폰은 에른스트의 절대권역 내에서도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단점은, 위력이 별로야."
리실로테가 농담을 건네듯 피식 웃자 요하나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자 리실로테가 서클이 있어야 할 자기 심장 부근을 톡툭 두들기며 설명을 이었다.
"소울웨폰의 개념을 완성시키고 실증한 이후에야 깨달았지. 이건 마법사보다 기사에게 어울리는 기술이야. 섞어야 하거든."
소울웨폰은 단독으로 운용해서는 제대로 된 위력을 발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섞어서, 융합해야만 했다.
"기사가 이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영(靈)과, 육(肉)의, 완전한 합일이 필요해."
그 과정을 통해...
"육신에서 발현되는 모든 기술에 소울웨폰이 지니는 강력한 내성을 깃들이는 거다."
영혼을 동력으로 삼을 수 있게 된다면 모든 기술의 위력 또한 증폭될 것이다.
물론 영혼을 동력원으로 다룬다는 것은 대개의 인간들에게 자살 행위였다.
육신이 자각하지 못 하는 영역에 걸쳐있는 영혼을 다룬다는 건, 인간의 감각으로는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제어에 실패하면 죽을 거다. 하지만 너는 성공하겠지."
리실로테는 요하나의 재능을 분명히 확인했다. 요하나의 의지와 맹목 또한 확인했다.
요하나의 재능이라면 소울웨폰을 제어해낼 수 있었다.
소울웨폰을 발현할 수 있는 단계에 달할 수 있다면 말이다.
"정녕 문제가 되는 것은, 네가 영육의 합일을 이룰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건... 네 본질과의 맹약이거든."
네 역사와 마주보게 될 것이다.
리실로테가 그리 속삭이며 입꼬리를 뒤틀었다.
불길하고 의미심장한 웃음이었다.
허나 요하나는 리실로테의 웃음을 무시한 채, 이번에도 필요한 것만을 짧게 물었다.
"대가는?"
아무 대가가 없을 리 없다.
언제나 기적에는 대가가 따랐다.
요하나도 리실로테도 그 진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
리실로테가 천천히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는 손가락을 움직여 허공에 원을 하나 그려냈다.
"영혼은 끝없이 순환한다. 물론 영혼이 불멸한다고 칭하기엔 우스울 만큼 거창하지. 육신을 떠난 영혼은 너무나 쉽게 망가지고 소멸하니까."
"..."
"그럼에도, 거대한 운이 따른다고 가정한다면... 영혼은 영속하는 존재라고 칭해질 만하다."
리실로테가 허공의 고리를 회전시키며 다시 요하나의 눈동자를 직시했다.
"네 삶이 끝나도, 너의 영혼은 다음 여행을 떠날 것이다. 언젠가 운이 다할 때까지... 긴 시간을 순환하겠지. 그 순환 속에서 너는 영속하는 존재다."
"..."
요하나는 리실로테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요하나의 반응을 지켜보며, 리실로테가 회전하던 원을 멈춰 세웠다.
"소울웨폰을 발현하기 위해서는 영과 육의 합일을 이루어야 한다. 네가 치러야 하는 대가가, 감이 잡히느냐?"
"..."
"순환의 종말."
똑, 소리와 함께 리실로테가 빛의 고리를 끊어냈다.
"네 삶이 다하는 날 너의 혼 또한 운명을 같이할 것이다."
소울웨폰을 구현하기 위해서 치러야 하는 대가.
그건 결국...
"네 불멸을, 바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