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등가의 소드마스터-389화 (389/446)

외전 - 혐오 [5]

[21]

낌새가 좋지 않았다.

마족에게 선수를 뺏긴 이상 어설프게 머뭇거려봤자 상황만 악화됐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요하나는 단호하게 명령을 내린 채 곧장 선두에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은밀한 색적을 포기하고 강행 돌파를 택한 요하나는 빠르게 전진하기 위해 거리낌 없이 화력을 동원했다.

요하나를 필두로 한 조사대는 무너진 통로와 마주칠 때마다 검강이나 마법을 쏟아부으며 길을 뚫었다.

쿠구구구구구!!!

지진 때문에 이미 약해진 지하 통로가 막대한 화력에 노출된 탓에 계속해서 흔들렸다.

조사대의 마법사들이 마법 구조물을 구축하여 통로가 무너지는 걸 늦췄지만, 어디까지나 붕괴를 지연시켰을 뿐이었다.

얼마 못 가 마법사들이 구축한 마법 구조물이 약화되자 통로가 뒤에서부터 연거푸 붕괴되기 시작했다.

후방에서 들려오는 붕괴음에 조사대원들은 긴장을 숨기지 못 했다.

안 되겠다 싶으면 천장이라도 뚫고 나가면 된다지만, 그것도 적들에게 방해받지 않았을 때 이야기였다.

지금 이곳에서 감당 못 할 적과 마주치면 퇴로가 차단당한 채 사냥당해야 했다.

이렇게 폐쇄적인 환경에서 함정에라도 빠져 대형이 흐트러지면 삽시간에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높았다.

어떻게 생각해도 불리하기 짝이 없는 전장이었기에 조사대원들은 필연적으로 긴장과 공포를 머금어야 했다.

하지만 조사대원들이 품은 멍청한 공포는 얼마 못 가 불식되었다.

요하나가 본격적으로 전력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점부터.

그들은 감히 멍청한 추태를 보일 수가 없었다.

콰가가가각!!!

"...맙소사."

조사대원이자 엑스퍼트 급 기사인 마일스가 선두에 선 요하나의 무위를 바라보며 얼이 빠져 중얼거렸다.

괴이한 능력을 사용하는 마족들은 어둠 속에서 기습을 이어가며 조사대의 전진을 방해하려 했다.

허나 마족들은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저지에 성공하지 못 했다.

조사대의 전진을 저지하기는커녕, 조사대의 선두에 선 요하나에게 작은 생채기조차 입히지 못 했다.

마일스가 검을 휘두르면서도 기함했다.

"소문이... 과장이 아니었나..."

마일스를 비롯해, 요하나와 함께 전투를 수행해본 경험이 없던 자들은 전부 요하나에게서 제대로 눈을 떼지 못 했다.

사실 마경과 인접한 최전선에서 들려오는 요하나의 공적에는 자주 논란이 뒤따랐다.

현 제국에 부정적인 감정을 지닌 이들은 제국이 '영웅 만들기'를 위해 요하나의 공적을 부풀리고 있다고 은밀히 수군거리기도 했다.

소드마스터도 아닌 일개 그래듀에이트가 홀로 그런 공적을 올리는 건 불가능하다고, 그리 요하나를 폄훼하는 자들의 주장은 듣기에는 나름 그럴 듯했다.

그렇기에 요하나와 같은 전장에 서본 적이 없던 이들 중에는 요하나의 공적이 조금은 과장되었으리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부류가 많았다.

하지만 그게 너무나 머저리 같은 착각이었음을 조사대원들은 이제는 깨달을 수 있었다.

목숨을 경외시한 끊임 없는 혈전 속에서 개화한 불세출의 재능은, 범인들에게 있어 아득하고 괴이했다.

'천변만화'라고도 칭해지던 요하나의 무위는 어째서 그녀가 현존 최강의 기사로 불리는지 증명하고 있었다.

한편.

마족들 또한 제국의 조사대원들과 마찬가지로 경악을 느끼고 있었다.

남부에서 활동하던 마족들은 요하나의 소문을 자주 과장됐다고 치부했다.

설령 요하나가 소문처럼 뛰어난 기사라고 해도, 악신의 축복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충분히 요하나를 농락할 수 있으리라 되지도 않는 오만을 부렸다.

병신 같은 자만이었다. 요하나의 괴이는 마족들의 괴이마저 압도하고 있었다.

화르르륵!!!!

불길처럼 타오르는 요하나의 검강이 마족 하나를 뒤덮었다.

제대로 육신을 회복시키지 못 한 마족이 다급히 뒤로 물러섰다.

요하나는 덤덤하게 다시 앞으로 가속했다.

마족들의 괴이가 죄다 제각각이라고는 하나, 유사한 계열끼리 묶는다면 그리 엄청나게 다양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유사한 계열에 속한 괴이의 공략법은 대체로 확립되어 있었다.

물론 그 '공략'을 행하기 위해서는 각기 다른 성질의 마나를 운용하는 고위급 기사 여럿이 협력해야 했지만, 요하나는 홀로 마족을 불태우고 찢어냈다.

쫘아악!!!

"?!!"

마족들도 더는 시건방을 떨 수가 없었다.

제각각 움직이던 마족들이 그제야 제대로 협력을 시작했다.

츠르륵!

자기 육신을 물처럼 흘러내리게 만든 마족이 요하나에게 무식하게 돌진했다.

요하나가 방어 아티펙트를 마족을 막아세우자 마족에게서 흘러내린 액체가 아티펙트를 빠르게 부식시켰다.

요하나는 마족을 태워버리기 위해 화려하게 타오르는 불길로 검신을 감싼 채 휘둘렀다.

액체처럼 흘러내리던 마족에게 불길이 옮겨붙던 찰나.

어둠 속에서 투명하게 변하여 모습을 감추고 있던 마족이 광택이 날만큼 단단하게 응축된 육신을 가속시켜 요하나의 사각을 노렸다.

응축된 육신을 지닌 마족은 괴이한 능력은 지니고 있지 않았으나 몸의 강도만큼은 검기를 역으로 짓이길 만큼 단단했다.

"..."

요하나는 머리 뒤를 노리는 마족의 육신을 갈라내기 위해 코어의 성질을 변환시켰다.

하지만, 아무리 가변형 코어라고 해도 성질을 변환시키는 과정에서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응집된 육신을 지닌 마족은 요하나의 그 빈틈을 완벽하게 파고들었다.

허나 요하나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허공을 움켜쥐었다.

제국의 신검, 모로스.

허공에서 뽑혀나오는 모로스를 확인한 마족의 안면이 더할 나위 없이 찌그러졌다.

쫘아아아아아악!!!!

코어의 성질 변환이 조금 늦기는 했으나 모로스의 증폭 작용으로 검강의 위력을 증강시켜 빈틈을 메웠다.

모로스에 베여 반으로 갈라지는 마족의 육신을, 요하나 뒤에서 나타난 데런과 쥬세핀이 다시 한 번 양단했다.

그나마 이 전투에서 요하나와 약간이나마 합을 맞출 수 있는 인물은 데런과 쥬세핀 정도였다.

촤악!! 촥!!!

괴이를 향한 당혹의 주체가 역전된 전장 위에서.

제국의 조사대는 더는 후방의 통로가 붕괴되는 것 따위는 고려하지 않은 채 저돌적으로 돌진했다.

처음 모습을 드러낼 때만 해도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던 마족들은 제국의 조사대를 제대로 저지조차 못 한 채 모습을 감추기 위해 급급해졌다.

콰앙!!!!

반쯤 붕괴되어 있던 전방의 통로가 또다시 박살나며 길이 열렸다.

박살난 통로 너머에는, 이제까지 확인되지 않았던 광장 지형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물론 광장이라 해도 그다지 드넓은 공간은 아니었다.

무식하리만큼 돌진을 이어가던 제국의 조사대가 잠시 흥분을 가라앉혔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지형이 나타난 만큼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역시나 요하나가 선두에 선 채 광장에 진입했다.

"..."

공기가 불쾌했지만 광장은 고요했다.

요하나는 감각을 날카롭게 세운 채 광장 중앙으로 걸어나갔다.

요하나는 단단한 바닥을 걸었다. 한 발, 두 발, 세 발, 그리고 네 번째 걸음을 옮긴 순간.

찰박!

"...?"

발 밑이 축축했다.

어느새 요하나의 발목은 검은 물에 잠겨 있었고, 광장이었던 공간은 검은 물이 흐르는 호수처럼 변해있었다.

요하나는 단번에 상황을 눈치챘다.

'결계...?'

악신의 추종자가 악신의 축복을 활용해 전개한 결계다.

이런 결계는 보통 준비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경우가 대다수인지라 요하나는 설마 이곳에서 결계에 노출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 했다.

아무리 강자라 해도 악신의 축복을 활용한 결계에 노출되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완전한 방어는 불가능하니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는 결계의 술사나 동력을 파괴하는 걸 우선해야 했다.

"..."

요하나는 결계에 노출된 탓에 감각이 왜곡되고 부정적인 감정이 증폭되는 것을 느끼며 턱에 힘을 주었다.

위험한 상황이기는 했지만 역시 대처 못 할 수준은 아니었다.

요하나가 감각의 왜곡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려던 찰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요하나.]

"..."

[너는 더 열심히 해야 해.]

이제까지 크게 변화 없던 요하나의 표정이 처음으로 사정 없이 찌그러졌다.

그럼에도 잊지 못 할 그리운 목소리가 계속해서 요하나의 귓가를 울렸다.

[요하나, 너는 더 열심히 해서, 더 빠르게 강해져야 해.]

"..."

[열심히 노력해서, 날 빠르게 뛰어넘어야 해.]

그 다음에 올 말을 요하나는 알고 있었다. 잊을 수 없었다.

[난 너희의 곁을 평생 지켜줄 수 없으니까.]

어느새... 요하나의 앞에는 그날의 레이가 서 있었다.

그날처럼 번민과 슬픔과 애정을 눈가에 머금은 레이가 요하나를 마주보고 있었다.

요하나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레이를 바라보다가 헛숨을 토했다.

그리고 레이가 건넸던 마지막 인사이자 거짓말을 떠올리며, 레이의 뺨을 후려쳤다.

쫘악!!!

"컥!!"

결계에 영향 탓에 혼란을 제대로 수습 못 한 채 요하나에게 접근했던 조사대의 기사가 요하나에게 뺨을 맞고 옆으로 넘어졌다.

망할 환영 같으니. 낮게 중얼거린 요하나는 눈가에서 눈물을 닦아내며 코어를 최대한 활성화시켰다.

악신의 축복을 활용한 결계는 완전 방어가 불가능하고, 그나마 템플러가 결계의 영향에 효과적으로 저항하고 있었으나 전력의 반감을 피할 수 없었다.

시간이 끌리면 삽시간에 피해가 커진다.

요하나는 혈전 속에서 제련한 살기를 드러내며 결계를 펼친 술사의 위치를 특정했다.

요하나가 움직이려하자 은폐하고 있던 다른 마족들도 기습을 가할 준비를 했다.

그 찰나.

악신의 축복으로 이루어진 결계의 중앙에 찬란한 섬광이 터져나왔다.

화아아아아아아아악!!!!!!!!!

"?!!!!"

"?!!!!"

마족이나 제국의 조사대나 가릴 것 없이 경악을 드러냈다.

막대한 신성력의 기류가 일시에 터져나오며 악신의 축복이 깃든 결계를 일방적으로 뭉개버렸다.

그 직후, 결계의 중앙에 떨어졌던 성검이 스스로 떠올라 어딘가로 쇄도했다.

콰아악!!!

성검을 잡아챈 스페라가 결계를 펼쳤던 마족의 가슴에 성검을 박아넣었다.

마족은 가슴이 박살나고도 기절조차 하지 않았으나, 성검에서 극도로 압축된 신성력이 터져나오자 괴성을 지르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크아카칵가각...!!!!!"

마족은 스페라를 향해 고개를 돌리기 위해 버둥거리다 결국 목적을 이루지 못 하고 증발했다.

그꼴을 보며 모습을 드러내려던 마족들은 황급히 도망쳤고, 제국의 조사대원 중 대다수는 갑작스러운 스페라의 등장에 정신을 차리지 못 하고 얼을 탔다.

데런과 쥬세핀조차 상황을 쫓아가지 못 하고 입을 벌린 채 눈을 깜박였고, 그 와중에 템플러들은 스페라를 향한 경이를 숨기지 못 하고 기도문을 중얼거렸다.

스페라는 그들을 돌아보더니 마지막으로 요하나를 마주보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야."

"..."

스페라와 재회한 지금 이 순간.

요하나가 처음 느낀 감정은 놀라움도 의문도 반가움도 그 무엇도 아니었다.

요하나는 단지 고민하고 있었다.

지금, 죽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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