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등가의 소드마스터-387화 (387/446)

외전 - 혐오 [3]

[19]

스페라 프리슬란.

10대 초반에 개안을 이룬 희대의 천재.

스페라는 엑스퍼트의 각성과 거의 동시에 개안을 성공했다.

개안을 전수 가능하도록 이론화시켰던 장본인인 에른스트 프리슬란조차도 스페라의 재능에 경악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스페라 프리슬란과 비견되는 천재성을 지녔다고 평가받았던 자가 대륙에 한 명 더 존재했다.

요하나 데펜시오.

천한 신분을 타고났으나 오직 재능 하나로 귀족들의 눈을 사로잡았던 천재.

본래 자유로운 검술을 추구했던 그녀는, 마경과 대륙의 경계선에서 혈전을 치러 내며 하나의 신기를 완성시켰다.

요하나는 자신이 만들어낸 신기를 매우 무미건조하게 칭했다. '가변형 코어'라고 말이다.

가변형 코어는 일반적인 상식에 완전히 위배되는 기술이었다.

코어란 본디 불변성과 안정성이 기반이 되어야만 한다. 그 기반이 코어의 강점인 동시에 한계이기도 했다.

기사는 코어의 정제된 마나를 활용해 검기나 검강 같은 강력한 절기를 구축할 수 있게 되며, 그 대가로 하나의 성질에 종속되어야만 했다.

헌데 요하나가 창조해낸 가변형 코어는... 본래 불변해야하는 코어의 성질을 즉각적으로 변환시키고 있었다.

"...?!"

마족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 했다.

도저히 설명 되지 않는 괴이한 기술을 사용하는 마족이었으나, 마족의 눈에는 도리어 요하나가 너무나도 괴이해 보였다.

초월적인 존재의 도움 따위 받지 않고 인간의 역량만으로 이루어낸 괴이였기에, 요하나의 신기는 진정으로 괴이했다.

"...!!"

마족은 그제야 요하나의 정체를 확실하게 깨달았다.

대륙의 동부에 형성된 전선에서 온갖 괴이한 힘을 쓰는 마족들을 모조리 찢어발기며 마경의 확장을 저지한 제국의 지휘관이자, '마족 학살자'라 불리며 남부에서 활동하던 마족들에게까지 악명을 떨친 제국 최고의 기사.

데펜시오 변경백.

"크윽...!!!"

마족은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이빨을 갈아냈다.

요하나의 무장이 겉보기에 수수하여 방심한 채 여유를 부린 게 마족의 치명적인 실책이었다.

지면을 기던 마족은 뒤늦게나마 도주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어떻게든 육체를 움직일 수 있게 상처를 수복하고 분신체를 만들어 시간을 끌어보려 했다.

허나 요하나는 마족이 발악할 수 있는 여유를 내어줄 생각이 없었다.

화르륵!!!

요하나가 검신에 두른 불길을 닮은 검강이 더욱 화려하게 타올랐다.

이 불길을 닮은 검강은 절삭력은 수준 이하였으나 걸리적거리는 걸 태우는 데는 즉효였다.

콰득!!!

꾸역꾸역 수복을 이루어가던 마족의 가슴에 다시 요하나가 검을 박아넣었다.

요하나의 검을 감싸고 너울지던 검강이 불길처럼 마족의 육신에 옮겨붙어 타올랐다.

"크아악...!!!"

마족이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악하듯 몸부림쳤다.

하지만 끈적하게 달라붙은 불길은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꿈틀거리는 마족을 내려보며 요하나는 덤덤하게 발을 들어올렸다.

콰악!! 콰악!! 콰악!!

요하나는 마족의 머리를 몇 번이나 지면 위로 찍어밟으며 마족의 육신이 완전히 바스러지기를 기다렸다.

울려퍼지는 마족의 비명을 들으며, 요하나는 불만족스러움을 눈동자에 드러냈다.

"..."

가변형 코어는 마족들의 괴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요하나가 창조해낸 신기였다.

허나 아직 가변형 코어의 성능은 요하나가 원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 했다.

요하나는 가변형 코어를 활용해 최상급 검술을 다수 재현해내어 유기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으나, 아무래도 '원형'보다는 그 위력이 조금씩 뒤떨어졌다.

그리고 역시나, 공간검의 재현에는 실패했다. 사실 재현을 제대로 시도해보지조차 못 했다고 표현하는 게 맞았다.

결국 요하나는 레이처럼 정령의 본체를 타격하거나, 마족의 영혼을 확실하게 베어낼 수는 없었다.

"..."

마족들 중에는 간간이 육체가 소멸하고도 부활하는 개체까지 존재했다.

그런 것들까지 '확실히' 소멸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과거 하르시아가 창조해낸 공간검뿐이었다.

마족들의 괴이함에 새삼스레 짜증을 느낀 요하나가 마족의 머리를 더욱 강하게 찍어밟았다.

콰앙!!!

마족의 머리가 박살나며 지면을 울리는 사이.

데런과 쥬세핀이 전투가 벌어진 현장에 도착했다.

요하나를 따라잡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는데, 벌써 일방적으로 전투가 끝나 있었다.

아직까지 요하나의 검을 감싸고 타오르는 검강을 바라보며 쥬세핀이 중얼거렸다.

"정말... 경이롭습니다."

이미 몇 년 동안 함께 전쟁을 수행하며 요하나의 활약을 곁에서 지켜보았지만, 그럼에도 볼 때마다 경이롭다고 쥬세핀은 순수한 감탄을 입에 담았다.

쥬세핀도 좋은 재능을 타고났지만 그럼에도 요하나의 재능은 쥬세핀에게 불가해의 영역이었다.

데런은 경이롭다는 쥬세핀에 감상에 동의하면서도 심란함을 느꼈다.

'누님...'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심장 안의 코어를 안정시키지 않고 계속해서 주물럭거리는 건 그냥 자살 행위였다.

코어를 안정시키지 않고 주물럭거리다 통제에 약간만 실수해도 심장부터 박살날 터다.

더군다나 실시간으로 성질이 변화하는 코어로부터 제 성능을 끌어내는 것은... 어지간한 천재라 해도 엄두조차 내지 못 할 일이었다.

그럼에도 요하나는 성공해냈다. 상리를 벗어난 요하나의 천재성이 불가능한 신기를 현실에 구현해냈다.

요하나는 그토록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으나... 그렇다 해도 '가변형 코어'에 내재된 위험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가벼운 실수 한 번에 요하나는 절명할 수 있었다.

마치 갈아 끼우듯 코어의 성질을 휙휙 변환시킬 때 발생하는 강력한 부하를, 과연 사람의 육신이 장기간 버텨낼 수 있을까도 의문이었다.

허나 요하나는 그 모든 위험성을 개의치 않았다.

데런은 그런 요하나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매번 지워지지 않을 갑갑함을 억지로 삼켜야 했다.

"..."

잠시 데런과 쥬세핀이 자리를 지키고 있자, 마족을 잿더미처럼 만들어버린 요하나가 입을 열었다.

"...이것들이 훼방하려 들 거라는 건 알았지만 생각보다 빠르네."

제국이 유물을 회수하는 걸 마족들이 방관할 리는 없었다.

제국의 조사대도 그 부분을 유의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이른 시점에 마족이 기습을 가해 인명 피해를 내리라고는 제대로 예상하지 못 했다.

요하나는 발에 묻은 잿더미를 지면에 긁어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여기 환경도 생각보다 마족에게 유리한 것 같은데... 마경과 인접한 경계선쯤? 5개월 전에 작전 나갔던 비스카야 강 기억해? 거기 정도 되는 것 같아."

결국 상황이 예상보다 나쁘다는 의미였다.

데런이 짧게 한숨을 쉬고는 의견을 냈다.

"그러면 누님, 일단 조사대 전부 작업 중지시키고 복귀하라고 할까요?"

"...그렇게 해. 바로 복귀하라고 해."

상황이 예상보다 나쁘다는 게 파악됐으니 조사대 각 조의 인원 배치와 호위 병력을 재편성할 필요가 있었다.

안전에 신경쓰다보면 필연적으로 조사가 늦어지겠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

마족의 출현이 확인됐다.

예상보다 마족의 출현이 이르기는 했지만, 그래도 조사를 중단할 수는 없었다.

제국의 조사대는 악신 추종자들의 기습을 대비하기 위해 인원을 재편한 후 계속해서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대는 이미 발견된 시설을 조사하는 이들과 마이센 인근을 탐색하는 이들로 나누어져 있었다.

조사 중에, 마이센 인근을 탐색하던 제국의 조사대는 지진으로 인해 길게 갈라져 있는 지면을 발견했다.

지면에 생긴 균열의 폭이 꽤 길어 사람이 빠질 수 있는 수준이었는데, 균열의 깊이 또한 꽤 깊어 보였다.

조사대원인 마일스가 바닥이 잘 보이지 않는 균열 아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균열 내부를 조사할 수 있는 장비가 있소?"

"음..."

마일스의 질문에 조사대의 마법사가 고민에 잠겼다.

지형을 탐색하기 위한 마법이나 장비는 존재했다.

그러나 '지진으로 인해 발생한 균열의 틈'처럼 특수한 공간을 제대로 탐색하기 위해서는 마법이든 장비든 개조가 필요했다.

마법사가 적절한 장비를 준비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답하려 하는데, 마일스가 어느새 자기 허리에 밧줄을 묶고 있었다.

마법사가 눈을 깜박이다가 물었다.

"...마일스 경? 왜 그러시오?"

"균열의 폭이 충분하니 직접 들어가서 확인하겠소."

"..."

마법사가 뭐라 반론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어설프게 마법이나 장비에 기대느니 그냥 사람이 직접 들어가서 확인하는 게 더 확실하기는 했다.

당연히 위험하긴 했지만, 마일스는 호기롭게 위험을 감수했다.

"그럼 너희들은 주변을 경계하고, 너는 밧줄을 잘 붙잡고 있도록."

밧줄의 반대쪽을 다른 대원에게 맡긴 마일스가 균열의 틈에 몸을 집어넣었다.

간신히 끼이지 않고 균열에 몸을 집어넣은 마일스는 발광 아티펙트를 활용해 주변을 밝혔다.

화악!!

"흠..."

시야가 좁아서 확신할 수는 없으나, 일단 별것 없어 보이기는 했다.

마일스는 벽을 붙잡고 옆으로 조금씩 이동해보다가, 눈을 감고서 몸의 감각을 최대한 날카롭게 세워보았다.

"..."

특별히 불길한 기운 같은 것은 이 비좁은 균열의 틈새에서 잘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눈을 뜨고 끙끙거리며 벽을 타야 하나 고민하던 마일스가, 문득 호흡을 멈추었다.

"..."

호흡을 멈춘 마일스는 균열의 틈새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집중했다.

바람의 기류가 굉장히 난잡했다. 균열의 틈새 어디선가 공기의 기류가 가파르게 꺾이면서 소음을 발생시키고 있었다.

마일스는 확인이나 해보자는 생각으로 소음이 발생하고 있는 방향으로 몸을 움직였다.

기껏해야 툭 튀어나온 바위나 움푹 들어간 틈 같은 게 있겠지... 그리 가벼운 마음으로 벽을 타던 마일스가 얼마 안 가 눈을 크게 떴다.

"오...!"

마일스가 감탄을 터뜨렸다.

지진 때문에 갈라진 대지의 균열 사이에, 통로처럼 보이는 구멍이 있었다.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통로였다.

"하나 건졌군...!"

지하에 악신의 제단이 존재할 것이라는 정보는 마일스도 알고 있었다.

아마 그 지하 시설의 통로가 균열 사이로 노출된 듯 싶었다.

지진으로 인해 통로 내부가 무너졌다면 안쪽으로 진입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어쨌든 지하 시설의 흔적을 하나 더 찾아낸 것은 훌륭한 성과였다.

"끌어 올려라!"

성과를 낸 마일스가 신나서 외쳤다.

균열 사이로 드러난 통로를 조사하기 전 일단 보고부터 해야 했다.

*

"데펜시오 변경백?"

의아함을 드러낸 스페라가 이내 피식 웃었다.

"아, 요하나 말하는 거야?"

데펜시오 변경백이라니. 참 요하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명칭이라 중얼거린 스페라가 확인차 다시 물었다.

"걔가 유물 때문에 직접 왔다고? 전선에서 물러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예, 그렇습니다."

"걔는 쉬지도 않네. 오랜만에 얼굴 보겠어."

현재, 스페라는 로브를 뒤집어쓴 채 한적한 여관에 앉아있었다.

여관과 마이센까지의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참 걔가 이해가 안 가."

스페라는 가볍게 웃음 짓더니 투정을 부리듯 중얼거렸다.

"멍청한 건지 미련한 건지..."

요하나는 제국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더 정확히는, 제국의 새로운 황제인 '레아'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레아. 제국을 이 꼴로 만들고, 레이를 고통스럽게 죽음에 이르게 한 원흉.

요하나는 그런 레아를 지키겠다고 목숨을 걸고 있었다.

"걔는 그 계집이 혐오스럽지도 않나?"

만악의 근원 같은 존재가 레아 아니던가.

레아만 아니었다면 모두가 행복했을 텐데, 레아라는 존재로 인해 모든 이상이 뒤틀렸다.

스페라가 요하나였다면 레아를 가장 먼저 찢어죽였을 것이다. 물론 굳이 그런 상황을 가정하지 않아도, 스페라는 레아라는 계집을 몇 번이고 찢어죽이고 싶었다.

"레이가 죽기 전에 레아를 지켜달라고 요하나한테 부탁이라도 했나..."

그토록 잔인한 부탁을 레이가 요하나에게 했을까.

잠깐 고민하던 스페라가 서서히 웃음기를 지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 얼굴 보고 물어보면 되지."

스페라의 품에서 성검이 어둡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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