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등가의 소드마스터-379화 (379/446)

외전 - 마찰 [3]

[11]

로얄가드, 코버스.

코버스는 본래 황실 특임대에 소속되어 활동하던 흑색 요원이었다.

마경 원정이 시작되기 얼마 전 소속이 변경되었으나, 제대로 자리를 잡기도 전에 황도가 무너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코버스는 시도 때도 없이 발작적으로 가슴에 차오르는 증오와 분노를 억누르며 루체른에 도착했다.

알리앙 자작이 코버스를 환영했다.

"필요한 물자가 있다면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알리앙 자작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맺혔다.

알리앙 자작은 근본 없는 학살자이자, 이 모든 재앙의 시발점 중 하나인 역적들에게 머리를 숙이길 원치 않았다.

더군다나 루체른은 제국 중앙보다 성국이 영향력을 끼치기 용이한 지역이었다.

그렇기에 알리앙 자작을 비롯해 루체른의 여론은 성국에 훨씬 우호적이었다.

코버스는 알리앙 자작과 인사를 나눈 후 루체른에 집결 예정인 병력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계획은 큰 어그러짐 없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현재 코버스에게 가장 큰 변수는 '엘프'의 움직임이었다.

그들이 인간 간의 다툼에 개입할 확률은 낮았으나, 시기가 시기이니 만큼 예상치 못 한 움직임을 보일 수도 있었다.

물론 엘프가 이번 일에 개입한다 해도 물러설 계획은 없었다.

인간이든 엘프든, 코버스는 자기 앞을 막아서는 모든 존재를 확실하게 응징할 생각이었다.

"..."

코버스의 눈동자에 넘실거리는 열기를 느낀 알리앙 자작이 내심 흡족해했다.

이제 곧 코버스가 요하나의 일행을 생포할 것이다. 전력 차가 분명한 만큼 생포까지는 어렵지 않게 이루어질 터다.

생포한 요하나의 일행을 어떻게 이용할지 정해진 것은 없었으나, 생포해서 가만히 데리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점은 많았다.

"그러면..."

알리앙 자작이, 먼저 도착해 있는 성국의 인사가 머물고 있는 건물로 코버스를 안내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헌데 코버스와 동행한 마법사가 알리앙 자작을 막아 세우며 도심 방향을 향해 눈을 돌렸다.

"잠깐...!"

마법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공간 계열 마법을 전개할 때나 발산되는 마나의 파장이 도심 방향에서 느껴졌다.

정말 미약한 마나의 파장을 마법사는 정확하게 감지했으나, 이상을 느끼고 무언가를 대처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었다.

마법사가 미처 무언가를 경고하기도 전에.

도심 한가운데서 섬광이 일었다.

*

"..."

아티펙트가 작동됐다.

루나는 정상적으로 아티펙트가 작동한 것을 확인한 후 잠시 눈을 감았다.

"..."

본래 무용지물에 가까웠던 쌍둥이 아티펙트를 루나는 직접 개조했다.

서로 공명하여 공간 마법에 필요한 좌표를 특정시키는 쌍둥이 아티펙트를 개조하는데 루나는 발레리우스의 코어까지 사용했다.

쌍둥이 아티펙트는 처음부터 시한 폭탄 용도로 개조가 시작되었다.

1회용으로 상정했기에 막대한 부하를 감수하고 무리한 기능을 추가시킬 수 있었다.

"..."

헤이든은 루나의 지시에 따라 루체른에 쌍둥이 아티펙트 중 하나를 설치한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활성화되게 조치를 해두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아티펙트가 활성화됐다.

본래 쌍둥이 아티펙트는 워프게이트가 있어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하지만 발레리우스의 코어까지 활용한 개조 덕분에 워프게이트 없이도 단 한 번이나마 과자 알갱이 하나가 통과할 수 있는 수준의 통로가 쌍둥이 아티펙트에 의해 구축되었다.

정상적으로 아티펙트가 작동되자 루나는 황도 아래 흐르는 영맥의 마나까지 끌어와 정지장을 구현해 반물질의 상태를 일시적으로 고정시켰다.

그리고 반대쪽으로 워프시켰다.

"..."

본래라면 워프가 완전히 끝나기 전에 정지장이 무너지고 반물질이 물질과 접촉해 쌍소멸 반응이 시작됐을 터다.

그렇게 되면 루나가 위치한 공간도 위험에 노출될뿐더러, 워프 통로가 무너져서 기대 화력도 절반 미만으로 뚝 떨어졌다.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 루나는 발레리우스의 코어로 구현 가능했던 '블링크' 기술을 응용해서 이중으로 워프가 이루어지도록 조치했다.

"..."

아티펙트는 설계대로 작동했다.

그리고, 무리한 개조로 인한 과부하 때문에 루나에게 있던 쌍둥이 아티펙트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루체른에 설치된 아티펙트 또한 마찬가지로 완전히 파괴되어 증발했을 터다.

개조에 사용된 발레리우스의 코어 또한 붕괴 단계에 이르러 깃들어 있던 권능을 거의 상실했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물자의 손해가 막심했다.

양산 가능한 물건들도 아닌지라 동일한 기능의 아티펙트를 제작 가능할지 루나조차 확신이 없었다.

"..."

차갑게 빛나는 눈동자는 눈꺼풀에 덮여 보이지 않았으나 루나의 표정은 여전히 무감정했다.

이번 공격은 적대 세력의 고위 전력을 타격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

적대 세력의 요충지에 타격을 가하기 위한 목적도 아니었다.

이건, 적대 세력에게 공포와 망설임을 새겨넣기 위한 대량 학살이었다.

"광신이 공포를 앞설 때까지..."

시간을 벌어줄 것이다.

현재 루나가 어떻게 루체른을 타격했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자들은 없었다.

심지어 이번 작전을 진행한 헤이든이나 지미조차 루나가 루체른을 타격한 수단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 했다.

타격 수단을 파악할 수 없으니, 루나와 적대하는 자들은 언제 어디서 거대한 섬광이 자기 머리 위를 덮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이건 메테오와 달랐다. 루나가 메테오를 함부로 활용할 수 없음을 꿰뚫고 있는 이들은 이미 꽤 있었다.

허나 오늘 루체른을 파괴해버린 '무언가'는 메테오처럼 과도한 후폭풍을 동반하지도 않았고, 게다가 전조조차 없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루나와 적대하려는 이들은 막대한 심적인 부담을 감수해야 했다.

"..."

루나가 벌인 학살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이제 와서 루나가 인의 따위를 앞세워 인망을 얻는 것은 불가능했다.

루나에게 남은 지배 수단은 힘과 공포였고, 이건 바꾸고 싶다고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앞으로 한동안은..."

덜 죽여도 될 것이다.

그리 중얼거린 루나가 다시 두 눈을 떴다.

필요한 학살만 최소한으로.

그게 루나의 방침이었다.

*

루체른에서 발생한 진동은 그라니아까지 닿았다.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 누구도 그 사실에 안도하지 않았다.

저 너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예측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많은 희생자가 나왔으리라.

그리고 요하나의 일행은, 루체른에서부터 번져나온 섬광을 등지고 전투를 치러야 했다.

콰드득!!!

요하나의 일행은 사막의 거점 도시 방향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성국의 병력 일부와 충돌해야 했다.

현재 대부분의 성국 측 인사들은 루체른의 상황을 파악하고 수습하는데 정신이 팔려 혼란 속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을 터다.

그러니 요하나의 일행을 향한 성국 측의 유의미한 공세가 며칠 내로 이루어지는 건 절대 불가능했고, 그렇기에 거점 도시에 있던 성국의 병력 또한 굳이 무리하게 요하나의 일행을 공격할 필요는 없었다.

허나 그들 중 일부가 공격을 감행했고, 요하나는 선두에서 검을 휘둘렀다.

이 무리한 공격의 이유가 지휘관의 오판 때문인지 아니면 학살자를 향한 분노 때문인지 요하나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

전투는 얼마 안 가 마무리됐다.

전투가 끝나고 검에서 피를 닦아내는 지미의 팔목을 데런이 붙잡았다.

"지미, 저기 루체른이죠?"

"..."

"우리가 한 거예요...?"

"..."

"우리가 그런 거냐고요...?"

"..."

"지미!!"

지미는 계속 묵묵부답이었고, 데런은 모랫바람 때문에 거칠어진 목소리를 토해냈다.

"사람들이 사는 곳이잖아요! 그냥 평범한 도시였어요! 그렇잖아요!!"

"...그래."

"근데 대체 뭘 한 거예요...? 도시를 불태운 거예요? 사람들이 사는 도시를... 그건 그냥... 학살이잖아요...!"

그건 잘못됐다.

그건 잘못됐다고, 데런은 그렇게 가르침 받았었다.

레이를 동경하고 레이에게 가르침을 받았기에... 데런은 그게 잘못된 일이라고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지미...!! 우리가...!!"

"그만 좀 징징대!!"

데런의 말을 자른 것은 요하나였다.

요하나는 갑주에 묻은 피를 신경질적으로 털어내며 데런을 노려봤다.

"대체 뭐가 문제인데?! 적이잖아! 우리를 죽이려 하잖아! 그럼 된 거 아니야? 대체, 대체 뭐가 문제인데!!"

"하지만 누님...!!!"

자기 얼굴을 쓸어내린 데런이 몇 번이나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한 끝에 가슴을 두들기는 본심을 간신히 뱉어냈다.

"이건... 역겹잖아요..."

이건 데런이 꿈꾸었던 이상과 달랐다.

데런이 꿈꾸었던 건 고결한 영웅이었다.

순수한 고결함은 망상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고결함을 추구하려 했다.

하지만 데런이 지금 서 있는 현실은 그저... 역겹기만 했다.

생존을 위한 투쟁이 무엇이 나쁜가.

허나 때로는 자신의 안위만큼 존중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그리 가르쳐준 게 레이였다.

"..."

요하나가 데런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데런은 요하나가 우는 소리 좀 하지 말라고 쏘아붙일 줄 알았다.

하지만 데런의 멱살을 붙잡은 요하나는, 메말랐던 눈가를 적시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나도 역겨워...! 구역질이 나...! 그런데, 그래서 그만 둘 거야?"

"..."

"죽어줄 거야? 다 함께? 싫어. 나는 레이를 구할 거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거야. 역겹고 구역질이 나도...!"

"..."

"그러니까 내 앞에서 징징대지 마."

요하나가 신경질적으로 데런의 멱살을 놓고는 등을 돌렸다.

눈물을 닦아내는 것처럼 보이는 요하나의 뒷모습을 보며, 데런은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어머나."

스페라가 루체른이 박살났다는 소식을 듣고 놀란 시늉을 했다.

원래는 몇 사람의 등을 살짝 떠밀어 적당히 갈등을 심화시키려 했다.

적어도 이번에는 일을 크게 만들 생각이 스페라에게는 없었다.

하지만 루나는 스페라의 도발에 아주 화끈하게 루체른을 날려버리는 것으로 답했다.

"무서워라."

루체른을 타격한 방법을 철저히 숨긴 것을 보면 루나의 의도는 알만했다.

스페라가 성검의 손잡이를 빙글빙글 돌려보며 고개를 까닥였다.

"어차피 우리에게도 시간이 필요하니..."

이대로 당분간 교착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나쁠 건 없었다.

성국의 영향력이 위축되는 건 피할 수 없었지만, 지금 당장 제국을 적극적으로 도발한다고 해도 동조해줄 자들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인류는 새롭게 정착되어가는 세력 구도 속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죽었고, 또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났다.

붉은 하늘 아래서 누군가는 현실을 수긍했고, 누군가는 증오를 잊지 않고 미소 속에 칼을 감추었다.

붉은 하늘 아래서 누구가는 의미 없는 희망에 매달려 검을 휘둘렀고, 누군가는 과거를 잊지 못 해 힘 없이 주저앉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간 끝에.

죽음을 모르던 한 아이는, 죽음을 마주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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