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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가의 소드마스터-366화 (366/446)

366화

"..."

안소니우스는 계속 걸었다.

교황청의 심부에 진입하자 성녀가 머무는 신전이 눈에 보였다.

안소니우스는 맨발로 걸어 신전 안으로 진입했다.

신전 안의 가장 높은 단에서, 성녀는 누구보다 고귀하고 성스러운 광휘를 가득 품고 안소니우스를 맞아주었다.

동생을 향해 따뜻한 웃음을 머금어준 성녀는 절차에 따라 축복을 내릴 준비를 갖췄다.

안소니우스를 비춰주는 성녀의 광휘는, 그저 따스하기만 했다.

"..."

안소니우스를 성녀를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고심했다.

그러다가, 레이가 전했던 속삭임을 다시 한 번 곱씹었다.

[네가, 직접 확인하는 거다.]

...그래.

그 말이 옳았다.

제자리서 머뭇거리며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직접 확인해 보면 끝날 일이었다.

직접 확인하고, 레이의 거짓말에 멍청하게 놀아났음을 아쉬워하며 합당한 대가를 치르면 될 일이었다.

고작 그리하면 끝날 일인데 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결정을 내린 안소니우스가 옆으로 손을 뻗었다.

콰악!!

다른 이에게 맡겨져 있던 성검이 홀로 가속해서 안소니우스의 손아귀에 도달했다.

성검을 낚아챈 안소니우스는 성녀가 앉아있는 단을 향해 다가갔다.

성녀는 안소니우스와 가까운 거리에 있었으나, 그렇다고 안소니우스가 함부로 손을 뻗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성녀가 앉아있는 장소는 세상에서 가장 영화롭고 신성하며 안전한 공간이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고 견고하며 또한 무수히 중첩된 신성 결계가 오로지 성녀 한 명을 지키고 있었다.

메테오가 교황청에 떨어져서 모두가 증발한다고 해도 성녀만은 무사할 것이다.

소드마스터가 이곳을 찾아와 검을 휘둘러도 신성결계를 부수기까지는 한참이 걸릴 것이다.

그 어떤 강자라 해도 성녀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서는 길고 지난한 시간을 투자해야만 했다.

하지만, 안소니우스가 손에 쥔 성검은...

신성력이 기반이 된 모든 기술을 상대로 절대적인 내성을 발휘한다.

안소니우스가 성검을 휘둘렀다.

카가각!!!

유리가 깨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무수히 중첩된 신성 결계가 찢겨나갔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결계 조각을 흘려내며, 안소니우스가 찢어진 결계의 틈으로 걸음을 옮겼다.

결계 뒤에는 성녀가 있었다. 안소니우스의 누이가 그곳에 있었다.

안소니우스는 참으로 오랜만에, 두꺼운 장막 뒤에 몸을 가리고 있던 유일한 가족과 진정으로 재회할 수 있었다.

"..."

누이의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반가운 누이의 얼굴을 종기들이 가득 뒤덮고 있었다.

기포처럼 튀어나온 종기들은 누이의 얼굴만이 아니라 전신을 뒤덮고 있었다.

걸음을 멈춘 안소니우스가 가만히 서서 누이를 바라보았다.

안소니우스가 누이를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도...

누이의 살갗이, 어딘가에서 흘러내리는 액체와 닿아 부글부글 녹아내리다가 엘-람에게서 전해지는 찬란한 광휘에 의해 재생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건 순환이었다. 육신이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끊임없이 반복될 붕괴와 재생의 순환이었다.

뒤틀렸다 돌아오는 관절과 팽창했다가 푹푹 꺼지는 복부 또한 모두 순환의 일부였다.

붕괴되고 재생하고 붕괴되고 재생하고 붕괴되고 재생하고...

그 반복되는 순환 속에서.

누이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대니."

대니. 흔하디 흔한 이름이다.

또한 안소니우스가 '안소니우스'라는 신명을 얻기 전, 누이가 동생을 부를 때 사용했던 추억 속의 애칭이었다.

누이는, 아름답게 변조되지 못 해 쩍쩍 갈라져 나간 목소리로 동생에게 말했다.

"깜짝... 놀랐잖아."

눈과 귀가 되어주는 결계가 갑자기 붕괴된 탓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누이는 웃음을 터뜨린답시고 쇳소리를 냈다가 동생에게 물었다.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

"..."

안소니우스는 잠시 옛 생각이 났다.

어린 시절의 안소니우스는 누이에게 괜한 심술을 자주 부렸다.

하루하루가 너무나 아프고, 힘들고, 배고프고, 짜증나서... 누이를 향해 자꾸 투정을 부렸다.

안소니우스가 그리 철없게 행동할 때마다, 누이는 동생을 질책하기보다는 무엇이 동생을 힘들게 하는지 물어보고는 했다.

그래, 다 옛날 일이었다.

퇴행되어가는 누이의 정신과 기억을, 안소니우스는 그 무수한 결계를 전부 벗겨나고 나서야 똑바로 마주 볼 수 있었다.

안소니우스의 입술이 위아래로 꿈틀거렸다.

열심히 노력한 끝에, 안소니우스는 누이를 향해 웃음을 머금어주었다.

"아냐. 괜찮아. 아무 문제없어."

안소니우스는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리고 여전히 순환을 반복하고 있는 누이를 품에 안고 들어 올렸다.

"아무... 문제 없어."

안소니우스는 누이를 품에 안은 채 성녀가 머물고 있던 공간을 걸어나왔다.

찢어져 나간 결계를 지나쳐 두 걸음쯤 걸었을 때.

누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대니... 나 조금 아픈 것 같아."

누이는 아프다는 말을 동생 앞에서 단 한 번도 함부로 꺼낸 적이 없었다.

굳이 동생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그런 누이가 아프다고 말하는 걸 보니, 정말 많이 아픈 것 같았다.

그래, 아플 것이다. 아주 많이 아플 것이다.

손상과 재생이 너무 오랜 시간 동안 반복되고 반복되었던 육신은, 더는 엘-람이 내리는 기적 없이는 유지될 수가 없었다.

오직 엘-람이 전해주는 광휘만이 누이에게서 고통을 잊게 만들었다.

누이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연명시키기 위해서는 걸음을 돌려야 했다.

성녀가 머물던 공간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그리 한다면 생각보다도 오랜 시간 누이를 지금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소니우스는 걸음을 돌리지 않았다.

걸음을 돌리는 대신, 성검을 들어 올렸다.

"괜찮아."

안소니우스가 누이를 향해 마지막으로 웃어주었다.

"곧... 괜찮아질 거야, 누나."

망설임은 있었다.

손아귀가 멋대로 떨렸다.

허나 그 망설임이 누이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리란 걸 알았기에...

안소니우스는 누이의 목을 겨누고 성검을 움직였다.

살갗을 갈라내는 찰나의 감촉이 성검을 지나 손아귀를 타고 흘렀다.

그 찰나의 감촉은 안소니우스에게 지워지지 않을 영원이 되었다.

텅!

안소니우스의 손아귀에서 성검이 튕겨져나갔다.

안소니우스가 성검을 쥘 수 있는 자격을 상실한 탓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성검이 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안소니우스의 귓가를 둔중하게 울렸다.

"..."

안소니우스는 누이의 몸을 천천히 내려놓은 뒤, 누이의 머리를 자기 품에 안으려 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붕괴와 재생이 한없이 반복되었던 누이의 육신은... 숨이 끊어진 후 더 이상 형체를 유지하지 못 하고 걸쭉하게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안소니우스가 누이의 머리를 받치기 위해 손아귀를 넓게 펼쳤으나, 누이는 그대로 손아귀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때쯤.

템플러들의 검이 안소니우스의 육신을 파고들었다.

안소니우스가 성검을 활용해 펼쳐낸 결계를 뚫어내느라 개입이 늦어졌던 템플러들은, 뒤늦게 안소니우스의 육신에 날붙이를 박아넣고 강하게 뒤틀었다.

끄드드득!!

날카로운 금속이 체내의 장기를 헤집어 댔다.

그럼에도 안소니우스는 손아귀에서 흘러내리는 누이만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흘러내리는 누이와 함께, 안소니우스의 육신에 가득하던 신성력 또한 빛을 잃었다.

안소니우스의 삶을 이루던 모든 존재가 흩어져 갔다.

안소니우스는 천장을 바라보며 잠시 웃었다.

천장 너머의 하늘과, 푸른 하늘 아래 삶을 구가하는 모든 살아있는 이들을 향해 웃었다.

"나는..."

안소니우스는 모든 걸 잃었다.

"너희를..."

이제 안소니우스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악의 뿐이었다.

촤악!!

템플러들이 뒤틀어 잡은 검을 사선으로 힘껏 당겼다.

날카로운 날붙이가 안소니우스의 육신을 이리저리 갈라냈고, 갈려나간 살갗에서 핏물과 함께 내장 조각이 쏟아져 내렸다.

그럼에도 안소니우스는 두 다리로 지면에 선 채 누이가 흘러내렸던 손아귀를 말아쥐었다.

템플러들이 순간 성검을 경계했으나 성검은 안소니우스에게 반응하지 않았다.

허나 성검을 대신하듯.

안소니우스가 말아쥔 손아귀에서, 자줏빛 기운이 형태를 이루었다.

형태를 이룬 것은...

세간에서 사령검이라 칭해지던 한 자루의 검이었다.

갈라진 살갗에서 쏟아져 내리던 피가 방향을 바꿔 안소니우스의 육신을 타고 올랐다.

그와 동시에, 자줏빛 기운이 안소니우스로부터 터져 나왔다.

콰아앙!!!

"!!!!!"

템플러들이 경악했다.

안소니우스를 휘감은 부정한 기운은 명백히 악마의 것이었다.

템플러들의 경악은, 곧 분노와 적의로 바뀌었다.

분노한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교황청 인근에 포진해 있던 신성 교단의 정예 전력들이, 교황청의 심부에서 부정한 기운을 느끼고 물밀듯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점점 더 결집해가는 찬란한 광휘 앞에서, 안소니우스는 한없이 작고 나약해 보였다.

카리우스와 베네딕트의 손아귀를 거치며 너무 많은 힘을 소모했던 사령검은 안소니우스에게 대단한 권능을 부여해주지 못 했다.

처음에는 거세게 타오를 것만 같았던 불길한 악의는 얼마 못 가 물에 젖은 성냥처럼 사그라들었다.

몰려온 성직자들은 안소니우스의 한계를 짐작하고 곧장 몰아치려 했다.

하지만, 이곳은 교황청의 심부였다.

교황청은 신성 교단의 중심지이자...

부정한 유물들이 수없이 봉인되어 있는 봉인지이기도 했다.

유물을 가두고 있는 교황청의 봉인은 강력하고 안전했다.

하지만, 성녀의 영향력이 갑작스럽게 상실된 탓에 견고하게 유지되던 봉인이 찰나 간 약화되었다.

그 찰나의 틈을, 사령검을 잠식한 칠흑 같은 악의가 파고들었다.

쿠웅-

망각되었던 고동이 지하를 울린다.

이미 고대에 영향력을 상실한 악마의 유물들이... 안소니우스의 악의에 감응해 공명을 일으켰다.

지하를 울리는 공명은 계속해서 거대해져 갔다.

한 인간의 악의가 그 거대한 공명을 이끌어냈다.

쿠우웅-

칠흑 같은 악의가 공명을 일으키던 그 모든 유물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유물 속에서 잠든 채 소멸해가던 악마의 힘이 각성된다.

그도 모자라, 너무나도 검고 검은 악의는 찰나의 순간 힘의 주도권마저 역전시키며 유물과의 계약을 강제로 이끌어냈다.

불길함을 감지한 성직자들이 안소니우스를 짓밟기 위해 신성력을 쏟아냈다.

밝게 타오르는 신성력의 파도가 안소니우스를 집어삼키려 했다.

허나 그 직전, '계약'이 체결됐다.

꽈드드득!!!!!

봉인을 찢고 나온 유물들이 안소니우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수많은 유물들이 안소니우스의 육신을 파고들며 융합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안소니우스에게서 흘러나오는 칠흑 같은 악의가 급격히 증폭됐다.

안소니우스는 수많은 악신의 유물들로 육신을 덮어가며...

마지막으로 레이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안소니우스... 네가... 네가 그들의...]

찬란한 광휘가 악의에 맞서 교황청 내부를 가득 뒤덮었다.

[종말이 되는 거다.]

어둠이 그 모든 광휘를 갈라냈다.

마왕 (8)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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