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6화
메테오.
한때 이론상으로만 존재했던 신화 속 마법.
언제까지고 서적의 이론으로만 남아있으리라 여겨졌던 그 마법을 리실로테는 현실에서 구현해냈다.
메테오는 국가 단위의 파멸을 초래 가능한 섬멸 마법이었고, 그 위력만큼이나 한 번 구현하기 위해 막대한 시간과 물자를 소모해야 하는 마법이었다.
아무리 대단한 마법사라 해도 개인이 메테오를 구현할 수는 없었다.
제국의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메테오를 구현할 수 있는 횟수는 크게 제약됐다.
그렇기에 리실로테는, 자신이 택한 후인이 홀로 파멸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안배를 마련해두었다.
그 덕분에 루나는 집단의 조력 없이 홀로 메테오를 구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허나 리실로테가 남긴 안배를 감안해도...
황도와 가까운 곳에서 하늘을 여는 것은 정신 나간 짓이었다.
모든 준비가 철저히 갖춰졌다고 가정해도 메테오를 구현하기 위해선 극도로 정밀한 계산과 조정을 몇 시간 동안 이어가야 했다.
그 시간을 제국이 가만히 기다려 줄 리가 없었다.
제국은 황도 인근에서 개수작을 벌이는 침략자들을 색적하고 분쇄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을 넘치도록 가지고 있었다.
황도 인근에서 제국의 공세를 몇 시간 동안 견뎌내며 메테오와 비견되는 수준의 정밀한 마법을 완성시킬 수 있는 세력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오늘, 제국은 황도 상공에서 메테오가 전개되는 걸 감지하는 게 너무 늦었다.
메테오가 전개되고 있음을 감지했을 때는 이미 하늘이 열리기 직전이었다.
헛웃음도 안 나올 만큼 너무나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사태에 제국의 마법사들은 혼란에 빠졌다.
대체 어째서 황도의 방위 시스템이 메테오가 전개되는 걸 감지하지 못 한 것인가.
모두가 비슷한 의문을 품었고, 마법사들은 이내 그러한 의문이 '착각'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황도의 방위 시스템은 위협적인 마법이 전개되고 있음을 제때 감지하고 경고를 전했다.
방위 시스템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다만, 마법이 전개되는 속도가 비현실적으로 빨랐을 뿐이었다.
저 하늘 위에서, 완성까지 최소 몇 시간씩은 소요되어야 할 술식들이 분 단위로 정렬되며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고위 마법사들조차 하늘 위의 술식이 형태를 갖추는 속도를 보며 자신이 악몽에 갇힌 것은 아닐가 의심했다.
그 괴이한 풍경의 중심에는 한 소녀가 서 있었다.
푸른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하늘에 발을 디디고 선 소녀의 이름은, 루나였다.
루나는 4개의 서클을 전부 드러낸 채 하늘을 깨뜨리기 시작했다.
본래 메테오를 이런 식으로 급속 전개하는 것은 루나의 역량으로도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애초에 4개의 서클로 메테오를 전개하는 것부터가 무리한 시도였다.
그렇기에 루나는 아프텔을 통해 황실 마탑의 모든 기능을 강제로 끌어왔다.
오직 루나에게만 허락된 정교한 우주지도가 펼쳐졌고, 황실 마탑을 아우르는 시스템이 루나의 계산을 보조하기 위해 집중됐다.
그 시점에서 황실 마탑의 마법사들은 확실하게 이상을 감지했다.
황실 마탑의 기능 대부분이 일시에 강탈당했는데 마법사들이 모를 수가 없었다.
이제 더는 루나가 황실 마탑의 기능을 알려지지 않은 경로로 활용하고 있음을 은폐할 수 없게 되었다.
루나가 황실 마탑의 시스템을 강탈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황실 마탑의 마법사들은 정신 없이 돌아다니며 미지의 침입자를 시스템에서 배제하기 위해 악을 썼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황실 마탑을 통제하는 중요한 기계를 아예 부숴버리는 마법사까지 있었다.
그들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루나를 보조하는 황실 마탑의 시스템이 하나둘씩 차단되거나 망가져 갔고,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허나 루나는 이미 국가의 파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섬멸 마법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인류가 탄생한 이래 이제껏 존재한 적 없었던 상리를 벗어난 재능이 그러한 기적을 가능케 만들었다.
화아아아아아악!!!!!!
루나가 그려내려는 악몽을 저지하기 위해, 황성에서부터 포격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메테오는 극도의 정밀함을 요구하는 마법이다.
완성되기 전에 강력한 화력에 직격당해 약간의 뒤틀림만 발생해도 반드시 무너져내렸다.
루나는 몸에 걸리는 부하 때문에 눈과 코와 입에서 피를 뚝뚝 흘려내면서도 최상위 방어 마법을 전개했다.
유리처럼 맑은 장막이 층을 이루며 황성의 포격과 충돌했다.
쫘아아아악!!!!!!
차원 단절에 가까운 형상을 일으키는 방어 마법이 포격의 위력을 흘려냈다.
사방으로 번져나가는 막대한 화력이 하늘을 더욱 밝게 물들였다.
막대한 열기가 루나가 서 있던 하늘을 휩쓸었으나 최고위 정령인 에이라가 루나의 마지막 방패가 되어주었다.
황성의 포격은 연이어 하늘을 불사질렀고, 얼마 못 가 차원을 단절시킨다는 최상위 방어 마법도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게 당연한 결말이었다.
아무리 대단한 마법사와 정령이라 해도 드래곤하트의 권능까지 머금은 황도의 포격을 오래 버텨낼 수는 없었다.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몇 분이었고, 방어가 깨지고 화력에서 밀리는 순간 루나와 에이라는 숨을 곳 없는 하늘에서 단번에 증발할 터다.
하지만... 상황을 지켜보던 마법사들은 깨달을 수 있었다.
얼마 안 가 루나의 방어가 깨진다.
그러나 메테오가 완성되는 게 약간 더 빨랐다.
이대로 포격을 이어간다면 황도가 얻을 수 있는 결과는 마법사 한 명과의 공멸뿐이었다.
고작 마법사 한 명을 죽이기 위해 황도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의미였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위기를 앞에 두고.
황제를 수호하기 위해 황제의 곁에 남아있어야만 했던, 제국의 가장 강력한 검이 직접 나섰다.
제국의 소드마스터, 에른스트 프리슬란.
소드마스터의 절대권역은 메테오와 같은 고도의 정밀함을 요구하는 마법에 극히 치명적이다.
만약 에른스트가 루나와 가까운 거리에 접근해 절대권역을 펼치면, 그 순간 술식 일부가 무너질 테고 그때부터는 걷잡을 수 없다.
아무리 불가해의 재능을 타고난 대마법사라 해도 그러한 상성을 완전히 극복하는 건 불가능했다.
화아아아악!!!
에른스트는 고위마법사와 정령들의 도움까지 받아 창공으로 가속하려 했다.
메테오의 전개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루나는 다가오는 에른스트를 회피할 수 없었다.
"..."
레이는 에른스트의 존재감을 느꼈다.
에른스트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알았고, 그래서 검을 다시 쥐었다.
다카우스가 반사적으로 레이를 제지하려 했으나 불가능했다.
콰아앙!!!
이미 몸을 보호하던 무구를 대부분 소실하고 체력적으로도 한계였던 다카우스는 레이가 흩뿌린 물방울 하나를 막아내지 못 하고 튕겨져나갔다.
방해꾼들을 박살내고 잠시 혼자가 된 레이는 물처럼 흐르는 마나를 억눌러서 재차 검강의 형상을 갖추게 했다.
레이가 검을 휘둘렀고, 끈적하게 흐르며 제국의 신검을 뒤틀어대던 물줄기가 허공에서 모습을 감췄다.
그 직후.
에른스트를 둘러싼 공간이 쩍쩍 갈라지며 꿀렁이는 검기 다발이 쏟아져 내렸다.
!!!!!!!!!!
고막을 찢어낼 것만 같은 굉음이 연속해서 터져 나왔다.
꽤 먼 거리에서 검기가 터져나갔음에도 레이가 선 곳까지 폭풍이 불어닥쳤다.
경이로운 위력이었으나 레이는 에른스트에게 제대로 된 생채기조차 새겨넣지 못 했으리라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하지만 무사한 건 에른스트뿐이었다. 에른스트를 루나에게까지 가속시켜야 했던 마법사와 정령들은 무사하지 못 했다.
레이는 확실히 에른스트를 붙잡기 위해 재차 검강을 발현했다.
그런 레이를 저지하기 위해 그제야 황성의 포격 몇 발이 레이에게 나뉘어 쏟아졌다.
온 시야가 불타올랐으나, 그럼에도 레이는 필사적으로 에른스트가 루나에게 향하는 것을 방해했다.
"..."
루나가 하늘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현재 루나는 Antimatter를 비롯한 즉발성 마법을 마경에서 대부분 소모했기에 에른스트와 정면에서 대적할 수단이 거의 없었다.
몇 달 정도 여유가 있었다면 다시 준비를 갖췄겠으나 마경 원정을 마치고 황도로 복귀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짧았다.
그럼에도 루나가 너무나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메테오를 전개한 것은... 가망 없는 기대 때문이었다.
어쩌면 레이는 지금 후회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도망치기를 바랄지도 몰랐다.
도망치기만 한다면 자기 선택을 되돌릴 기적 같은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 지도 몰랐다.
그 가망 없는 기대 때문에, 루나는 메테오를 전개해 모두의 시선을 모았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레이가 결코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기적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혹시라도 레이가 마음을 돌렸을까 하는 그 가망 없는 기대를 움켜쥐고 하늘을 열었다.
그리고, 레이는 마지막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레이는 오직 에른스트의 발목을 잠시 붙들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 처절한 발악을 지켜보며 루나는 마법을 완성시켰다.
하늘에서 불덩이가 보였다.
과거부터...
제국은 메테오가 황도 위로 떨어진다는 망상에 가까운 사태를 염려해 메테오의 기반이 되는 이론들을 철저하게 통제했었다.
루나에게 마법을 가르친 로필렌이 그러한 통제의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루나는, 제국의 그 병적인 염려가 기우가 아니었음을 증명해주었다.
밤하늘 사이를 거대한 운석이 파고든다.
불타는 하늘을 배경으로 둔 지상에서 모두가 공포와 경악에 잠긴 사이, 오직 금발을 길게 늘어뜨린 여인만이 환히 웃었다.
허나 그 여인의 웃음 또한 공허했다. 그 어떤 미래가 찾아오든, 여인이 잃어버린 것은 이제 돌아오지 않았다.
이건, 600년 전 그를 외면한 제국이 치러야 할 대가였다.
한편.
조금 전부터 황성은 더 이상 포격을 쏟아내지 않았다.
떨어져내리는 운석으로부터 황도를 지키기 위해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동력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번쩍, 빛이 일었다.
레이는 위아래로 미친 듯이 요동치는 지면 위에 서서 쏟아지는 섬광을 보았다.
최강의 요새이자 인류 최후의 보루라 불리는 황도는 메테오의 직격조차 견뎌내는 업적을 이루어냈다.
가히 초월적인 업적이라 불릴만했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황도가 펼쳐낸 결계가 지켜낸 구역은 오직 황도에 국한됐다.
메테오와 황도의 결계가 충돌하며 만들어낸 거대한 에너지가 수백 킬로미터를 휩쓸었다.
황도 인근에 존재하던 다수의 대도시가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1000년 동안 제국이 발전시키고 확장했으며, 그렇기에 제국의 기반이 되어주었던 시설들이 한순간에 녹아내렸다.
메테오를 막아내기 위해 모든 동력을 집중시켰던 황도의 방위 시스템 또한 큰 손상을 입었다.
황도 여기저기서 폭발이 일어났고, 결국 방위 시스템이 기능을 유지하지 못 하고 침묵했다.
"..."
바람이 분다.
균열이 가득 새겨진 채 황도를 감싸고 있던 장막이 바스러지고, 열기를 머금은 잔해의 폭풍이 뒤늦게 황도를 덮쳤다.
그 지옥 속에서.
레이는 에른스트와 마주 섰다.
제국의 소드마스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