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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가의 소드마스터-340화 (340/446)

340화

프레체스는 안소니우스를 짓뭉개려 했다.

하지만 검 한 자루가 한순간에 틈을 비집고 나타나 프레체스를 막아섰다.

프레체스는 갑작스레 튀어나온 방해물을 힘으로 찍어누르려 했으나, 검의 주인은 프레체스의 검격을 상쇄해냈다.

카드득!!!

"...!"

자신의 공격을 막아낸 검이 대체 어떤 궤적을 그려내며 개입했는 지 프레체스는 알 수가 없었다.

이 생소하면서도 익숙한 경험에 프레체스가 레이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프레체스의 시야에 담기는 레이의 움직임이 뚝뚝 끊겨나가기 시작했다.

프레체스는 안면을 이루는 살덩이를 일그러뜨리며 레이와 충돌했다.

카가가가각!!!

두 번이나 똑같은 수에 당할 수는 없다는 듯, 프레체스는 레이가 행하는 괴기를 파훼하기 위해 검을 휘둘러 보았다.

허나 그건 돌에다 계란을 가져다 박는 것보다도 멍청한 시도였다.

촤아악!!!

상위 차원에서 이루어진 자세의 치환이 과정을 찢어내고 결과만을 이 세상에 투영한다.

레이가 행하는 것은 도저히 검술이라 정의될 수 없었다.

그건 그저 기괴한 부조리였으며, 또한 일방적인 폭력이었다.

4차원 시공간에 예고 없이 투영되는 공격들이 프레체스를 삽시간에 밀어냈다.

어설프게 대응해보려던 프레체스는 결국 몸을 웅크린 채 피해를 줄이는데 집중해야 했다.

프레체스는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인형을 찢어내는 레이를 마주보며 격정을 머금었다.

"너는...!"

프레체스는 레이를 동정했었다.

레이를 동정했기에, 이제는 레이에게 원망을 품었다.

"너는 대체 어째서...!"

프레체스는 울분을 머금었다.

우리는... 너와 나는 같은 처지에 놓여 있지 않았던가.

저 너머의 존재에게 운명을 유린당하고 선택을 강제 당해서, 끔찍한 고통을 견뎌야 하지 않았던가.

그 참혹한 부조리로부터 모든 것을 잃고 증오만을 품어야 했던 나의 이 몰락을, 너만은 이해해줄 수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럼에도 레이는, 결국 끝까지 프레체스의 증오를 부정하듯 앞을 막아섰다.

"결국 그것의 꼭두각시로 죽겠다는 것이냐...!!"

그 증오스러운 엘-람의 이면을 깨닫고도 운명에 순응하길 택한 레이를, 프레체스는 용인할 수가 없었다.

"그리 고개를 조아린다고 그것이 너를 축복해줄 것 같으냐...!!"

오롯이 엘-람을 향했던 프레체스의 분노가 레이에게까지 번졌다.

프레체스는 타오르는 증오를 동력 삼아 육신에 흐르는 변질된 권능을 더더욱 집약시켰다.

엘-람과 악신들의 합작품이라 칭해도 좋을 이 변질된 권능은 신성력을 비롯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힘들로부터 강력한 우위를 지니고 있었다.

신성력은 물론이고 대마법사의 마법도, 소드마스터의 검강도 프레체스의 변질된 권능 앞에선 그 위력이 깎여나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프레체스의 변질된 권능조차 레이의 코어로부터 흘러나온 마나가 깃든 냉기를 침식할 수는 없었다.

트드드득!!!

서로의 기운이 상쇄되어 흩날렸다.

상성상 우위를 점하지 못 한다면 양으로라도 찍어눌러야 했다.

까드드드드득!!!

프레체스는 자신의 마지막 인형이 급격히 붕괴되어 가는 것도 무시하며 변질된 권능의 밀도를 계속해서 높였다.

레이 또한 프레체스에게 대항하기 위해 심장을 짓누르고 있는 코어와 서클을 더욱 가속시켜 강렬한 냉기를 발산했다.

두 절대성을 지닌 기운이 충돌하며 성검을 쥔 안소니우스조차 쉬이 간섭할 수 없는 영역이 만들어졌다.

그 한가운데서 밝게 타오르는 두 자루의 검이 계속해서 과정 없이 궤적을 새겨냈다.

프레체스는 레이의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밀려났다.

수천 년 동안 그리움을 품고 검을 휘둘렀던 프레체스였지만, 상리를 벗어난 레이의 검격에는 도저히 제대로 대응할 수가 없었다.

마주 무기를 휘둘렀음에도 검에 베이고 꿰뚫리는 것은 오직 프레체스였다.

그럼에도 프레체스는 부서져 가는 인형의 틈을 자신의 혼과 증오로 메워가며 레이와 맞섰다.

레이 또한 기술의 반동을 견디지 못 한 육체에서 핏물이 터져 나와 살갗 위로 얼어붙는 걸 느끼면서도 검을 멈추지 않았다.

이미 죽음을 받아들인 두 존재는 단지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서 죽기 위해 발악했다.

콰득!!!

팔이 반쯤 뜯긴 프레체스가 그 틈새를 어둠으로 메우며 재차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프레체스의 공격은 닿지 못 했고, 레이의 검은 프레체스의 무릎을 부쉈다.

"엘-람의 종...!!"

프레체스는 눈앞의 존재가 끔찍했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남은 삶을 소모해대는 눈앞의 존재는 프레체스에게 과거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강제된 운명에 순응해 희생을 자처한 무수한 동족들... 그리고 그 아이의 최후를 프레체스에게 떠올리게 만들었다.

"너를 죽일 거다, 후회하게 만들 것이다...!! 마지막까지 그것의 꼭두각시가 되어 희생한 네놈을...!! 그 선택을 후회하게 만들 것이다...!!"

"..."

프레체스는 레이에게 증오를 내비쳤다.

하지만 레이는 프레체스를 증오하지 않았고, 프레체스가 품은 증오를 이해했다.

레이 또한 이 빌어먹을 세상을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억지로 끌려와 희생을 강요당했으니까, 프레체스를 이해하고 동정할 수 있었다.

단지 레이에게는... 프레체스와 달리 지켜야 하는 존재들이 남아 있었다.

레이를 사랑해주었고, 레이가 애정을 가졌던 이들이 이 세상에 남아 있었기에.

단지 그렇기에 레이는 삶을 태우며 프레체스를 막아섰다.

프레체스가 잃었던 이들 중에서도 분명, 강제된 운명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는 누군가를 지키고자 희생을 받아들인 존재도 있었을 것이다.

허나 모두를 떠나보내고 홀로 남아버린 프레체스에게 그런 진실은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빠드득!!!

첫 번째 혼종의 육편을 엮어 만들어낸 프레체스의 마지막 인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무너지는 인형의 육신을 수복하고자 프레체스가 발악했으나 이미 한계에 달한 육신은 삐걱거리기만 했다.

레이가 결착을 짓기 위해 두 검을 교차시키려 했다.

그 찰나, 프레체스의 본신을 가리고 있던 어둠의 기류가 크게 요동쳤다.

화르르륵!!!!

검붉은 드래곤하트.

프레체스의 심장이자, 썩어가던 본신에 남아 변질된 권능을 가두고 있던 동력원.

그 재앙의 덩어리가 프레체스의 본신에서 뽑혀나와 홀로 솟구쳤다.

그와 동시에 일대에 가득 흐르던 어둠의 기류가 검붉은 드래곤하트를 중심으로 응축됐다.

"..."

프레체스는 자신에게 남은 모든 걸 소모해 만들어낸 악의의 응집체를, 레이에게 겨누었다.

이윽고 허공에서 박동하던 악의의 응집체가 레이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레이는 물러서지 않고 검 끝에 검강을 응축시켰다.

양 손에 쥔 검에서 백색의 구체가 탄생해 서로 공명했다.

서로 이끌리며 융합되려는 백색의 구체를, 레이가 악의의 응집체를 향해 쏘아냈다.

쏘아져 나간 백색의 구체가 하나로 융합됨과 동시에 악의의 응집체와 충돌했다.

!!!!!!!!!!

막대한 압력이 공간을 일그러뜨리며 번져 나가 일대를 분쇄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기엔 너무나 강대했던 두 절대적인 힘이 서로를 잡아먹으며 소멸해갔다.

그 초월적인 현상으로부터 쏟아져 내리는 막대한 압력과 빛줄기 아래서...

레이와 프레체스는 여전히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서로의 꼴은 엉망이었다.

프레체스의 마지막 인형은 뼈대만 간신히 남아 있었고, 레이의 움직임은 이제 뚝뚝 끊기지 않았다.

"..."

이미 한계에 달한 육체를 억지로 각성시켜 혹사한 레이는 더는 상위 차원에 몸을 담지 못 하고 비틀거렸다.

그런 레이를 앞에 두고, 프레체스는 인형의 뼈대를 유지하고 있는 마지막 권능조차 전부 끌어내 팔에 솟아있는 날붙이에 담았다.

프레체스가 팔을 뻗었다.

트득!!

레이에게 향하려던 프레체스의 날붙이를, 안소니우스가 잠시 저지했다.

폭발을 뚫고 이곳에 닿기 위해 성검을 제외한 모든 성물을 소실한 안소니우스는 몸의 절반이 검게 불타 있었다.

그럼에도 안소니우스는 레이에게 찰나의 시간을 벌어주었다.

그 찰나의 시간 동안.

레이는 한 자루의 검을 두 손으로 잡고 프레체스를 향해 마주 휘둘렀다.

프레체스는 안소니우스를 단번에 떨쳐내고는 방해받았던 날붙이의 궤적을 다시 그려냈다.

프레체스는, 자신의 날붙이가 검강조차 맺히지 못한 레이의 검을 부숴내고 레이를 꿰뚫을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하지만 분명 궤적이 겹쳤음에도...

프레체스의 날붙이에 레이의 검은 걸리지 않았다.

서로의 궤적이 겹치는 순간 오메가 시리즈의 검신은 아공간에 진입해 있었다.

차원반발로 인한 손상을 추력으로 전환한 오메가 시리즈의 검신이 초가속되어 프레체스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수명이 다한 오메가 시리즈의 검신이 바스러지며 산산이 깨져나감과 동시에.

첫 번째 혼종의 육편으로 이루어졌던 프레체스의 마지막 인형 또한 양단되었다.

*

루나는 검게 물든 영역에 발을 들였다.

루나는 레이가 무사할까 걱정됐지만 현실의 상황이 위태하진 않으리라 생각했다.

프레체스는 이미 악신과 접촉하려는 술식을 펼치고 있을 때부터 한계에 달해 자멸하고 있었다.

이미 혼종으로 개화했다면 모를까, 변질된 권능을 제대로 다뤄 내는 건 프레체스의 역량으로는 힘들었다.

그래서 루나는 '술식을 완성해 홀로 경계선에 발을 들인다'는 선택지를 택했다.

만약 루나가 술식을 완성하지 않고 아예 무너뜨렸다면, 레이는 분명 술식이 붕괴하며 발생하는 후폭풍을 자기 힘으로 감당하려 했을 것이다.

자멸해 가는 프레체스를 두고 루나가 이탈하는 것보다, 술식이 무너지며 발생하는 후폭풍과 반동이 레이와 타격대에게 더 위협적이다.

조금 전에 루나는 그렇게 판단했었다.

"..."

여전히 많이 불안하기는 했다.

프레체스가 지니고 있는 비장의 수단 같은 게 혹시라도 더 있을지 루나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만약을 위해 술식에서 프레체스를 몰아내는 과정에서 최대한 프레체스에게 반동을 집중시켜 타격을 가했다.

그 과정에서 프레체스가 입은 피해도 무시할 수준은 아닐 터다.

그러니까 타격대는 어렵지 않게 프레체스를 토벌하고 레이 또한 무사할 것이라고, 그리 믿기로 한 루나는 자신의 존재를 이 영역에서 지키기 위해 긴장을 끌어올렸다.

"..."

루나가 이 영역에 머물게 될 시간은 짧았다.

하지만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그 동안 이 영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세상의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이 영역에서는 별빛 너머의 존재와 소통할 수 있다.

차원 간 경계가 존재했기에 별빛 너머의 존재가 루나에게 가할 수 있는 영향력은 한정되었지만, 그마저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

루나는 긴장을 유지한 채 만약을 대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별빛 너머에는 잔잔한 적막만이 가득했다.

라멘타의 도움으로 처음 이 영역을 경험했을 때와 같은 일이 반복되자 루나도 조금은 안도하려 했다.

헌데 루나가 호흡을 길게 내쉬며 마음을 진정시키려던 순간.

"죽여."

공허 속에서 한 여인이 발을 내디뎠다.

"레아를 죽여."

푸른 머리카락을 길게 풀어 헤친 여인이 루나의 귓가에 속삭였다.

"내가, 죽여야 해."

갈림길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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