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등가의 소드마스터-322화 (322/446)

322화

시간이 되었다.

황도에서 집결하기로 예정된 모든 병력이 도착했다.

완성된 군단은 이제 무장과 편제를 끝내고 출전일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레이는 원정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 인사를 했다.

벨라와 카렌이 울었다. 레이의 예상 밖으로 알레시아도 서러운 울음을 터뜨렸다.

다들 우니까 동생 녀석도 따라 울었다.

레이가 레아를 안아서 등을 토닥여 주었다.

"너는 울면 안 돼. 잘못하다 저번처럼 입에서 불 나올라."

"우에에에에엥..."

레이는 레아를 달랜 뒤 모두와 돌아가며 짧게 인사를 나누었다.

괜히 환송 행렬 같은 곳에 참여했다가 다치지 말고 여기서 가만히 있으라고 단단히 못을 박고서, 레이가 마침내 지미의 영주성을 나섰다.

굳이 울먹이는 시간을 늘리고 싶지 않았기에 망설이지 않고 등을 돌렸다.

카렌은 레이와 동행하는 루나의 손을 잡고 마지막으로 간절하게 부탁했다.

"루나... 레이를... 잘 부탁해. 너도 다치지 말고... 제발..."

"...응, 알겠어."

"흐윽...!"

루나의 대답을 들은 카렌은 무력감과 미안함에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루나를 한 번 꼭 안았다.

알레시아 또한 루나를 한 번 꼭 안아주고는 무사히 잘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었다.

한편, 레이는 영주성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지미를 보고 피식 웃더니 꾸벅 허리를 숙였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아버지."

"곧 뒈질 놈처럼 주접떨지 말고 잘 다녀와라."

지미가 레이의 등을 한 번 쳐주고는 고개를 저으며 걸음을 돌렸다.

마지막에 비친 지미의 표정은 많이 착잡해 보였다.

레이는 심장을 요동치게 하는 수많은 감정들을 씹어 삼키며 루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자."

레이는 루나와 함께 지미의 영지를 떠나 곧바로 황도에 들어섰다.

황도에 들어서니, 강렬한 기운을 내뿜는 군단이 황성 앞에 존재하는 거대한 광장을 가득 메운 채 도열해 있는 모습이 보였다.

광장에 모인 군단에 더해 현재 남부에 대기하고 있는 군단까지 합류한다면, 직접 마경에 진입해서 전투를 수행할 원정군의 숫자만 수만에 이르렀다.

대륙의 총력이 결집된 군단이라기엔 원정군의 숫자가 작아 보일 수 있었다.

허나, 마경에 진입할 군단에 속한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병사'조차도 마나로 신체를 체계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정예병이었다.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병사는 마경에 진입하는 순간 전투 수행 자체가 불가능했다.

최소 정예병 수준인 병력의 숫자가 수만에 달한다는 것은 대륙이 가용할 수 있는 총 전력의 절반 가까이가 결집하였음을 의미했다.

또한, 극소수밖에 존재치 않는 준로드급 이상의 전력은 절반 이상이 원정군에 합류했다.

대륙 회의에서 원정 실패 시 원정군의 손실을 줄이기 위해 괜히 전전긍긍한 것이 아니었다.

레이는 위용이 넘치는 군단의 모습을 살펴보다, 잠시 루나와 헤어진 후 홀로 황성으로 향했다.

황성의 입구 중 한 곳에 발을 들이자 로얄가드 미하엘이 나타나 직접 레이를 안내해주었다.

미하엘이 복도를 걸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목숨을 다해 황제 폐하를 보필할 테니, 그대는 부디 안심하시고 사명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미하엘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은근하게 묻어나왔다.

마경 원정에 참여하지 않고 황도에 남게 된 것이 미하엘에게는 아쉽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슬쩍 미하엘의 표정을 확인한 레이가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죽을 자리를 못 찾아서 아쉬운가 봐?"

"저는 그대가 제국에 승리를 가져다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래?"

미하엘처럼 이번 원정에 신뢰를 내보였던 이가 과연 몇이나 되었던가.

자연스레 웃음을 머금게 된 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앞이군."

일렁이는 복도를 걷다 보니 저 너머에 황좌가 보였다.

레이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조금은, 긴장이 되었다.

'원정군의 총사령관은... 알렉산데르란 말이지.'

마경으로 향하는 원정군을 이끌기에 제국의 변경백인 알렉산데르보다 적합한 인물은 없었다.

그는 군단을 이끈 경험이 많았고, 비록 규모는 작았으나 마족이나 마물들과의 교전도 수없이 경험했다.

마경을 공격해야 한다고 가장 먼저 '행동'을 보였던 자였으니 상징성까지 있었다.

그렇기에 알렉산데르를 원정군의 총사령관으로 임명하는 것에 이견은 없었다.

다만 알렉산데르를 견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해졌고, 그에 따라 레이가 황제의 대리인으로 임명받게 되었다.

'하지만...'

단순히 황제의 대리인으로 임명되는 것과 모로스를 건네받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모로스는 그저 값비싼 명검이 아니라 황제의 권위와 정통성을 상징하는 신물이었다.

황제가 모로스를 건넨다는 것은, 한시적으로나마 그러한 상징성 또한 일부 위임한다는 뜻이었다.

이건 황제의 강력한 의지의 표명이었다.

반드시 원정에서 승리하라는 의지의 표명이자, 또한 레이를 향한 신뢰의 증명이었다.

이렇게 되면 원정에 실패했을 때 황제 또한 정치적으로 더 불리해졌다.

만약 제국의 신검이 마경에서 소실되기라도 한다면 치명적이었고 말이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신검을 내어준다라... 이런, 우리 황제 폐하께서 내게 거는 기대가 크군.'

황제가 보여준 결의를 곱씹으며 레이가 황좌를 향해 걸어갔다.

언뜻 멀게만 느껴졌던 황좌가 어느새 가깝게 다가와 있었다.

제자리에 잠시 멈춰 선 레이는 다섯 걸음을 나아간 뒤 제국의 절대권력을 향해 예를 갖추었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환영한다, 친애하는 제국의 수호자여."

그렇게 제국의 주요 대신들과 원정군을 이끌 지휘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레이는 황제의 대리인임을 정식으로 인정받았다.

황좌에 앉아 레이를 자신의 대리인으로 임명한 황제는 잠시 침묵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제국의 수호자여. 그대가 등에 짊어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자각하고 있는가?"

"그렇습니다."

"그대가 짊어진 것이 무엇인가?"

레이는 짧은 고민 끝에 답했다.

"...미래입니다."

"누구의 미래인가?"

"이 대지를 밟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미래입니다."

"훌륭하다. 그럼 묻겠다. 그대는 과연 그 무게를 견뎌내고 주어진 사명을 다할 각오가 되었는가?"

"저는 이제까지... 항상 죽음을 먼저 각오하고 전장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호흡을 고른 레이가 말을 이었다.

"오늘은 그리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반드시 생환할 겁니다. 승리를 거머쥐고 살아 돌아와 다시 한 번 이 자리에 서서 황제 폐하께 똑똑히 고할 겁니다. 지금, 제국의 가장 위대한 영웅이 황제 폐하를 알현키 위해 찾아왔노라고."

"믿겠다."

황제가 황좌에서 일어서자 레이의 시야를 가리던 장막이 벗겨지며 제국의 신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서 그대의 사명을 다하라."

레이가 몸을 일으켜 제국의 신검을 손에 쥐었다.

모로스를 손에 쥐고, 레이는 곧바로 황좌로부터 등을 돌리고 앞으로 나아갔다.

마경에서 소실되었다가 수백 년 만에 황실의 품으로 돌아온 제국의 신검이, 다시 마경으로 향하는 모습을 황제는 조용히 지켜봤다.

츠즈즉!

황성 내부에 펼쳐져 있던 결계들이 밀려나며 레이를 황성의 정문으로 인도했다.

황성의 정문은 황실의 권위를 대변한다.

극히 제한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황성의 정문은 오직 황제만이 이용 가능했다.

허나 레이는 활짝 열려 있는 황성의 정문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결계가 전개되어 있어야할 길목을 지키고 있는 기사들이 차례차례 레이를 향해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었다.

그리고, 레이가 정문을 지나치기까지 다섯 걸음을 남겨놓았을 때.

황성의 정문을 지키고 있던 에른스트 또한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었다.

저벅

레이가 정문의 경계를 밟고 섰다.

황성 앞에 도열하고 있던 군단이 레이가 나타나자 몸을 긴장시키며 레이를 올려다보았다.

이제 남은 절차는 간단했다.

군단 앞에서 레이가 미리 준비된 연설을 마친 후 출전을 선언하고 바로 워프게이트를 향해 움직이면 됐다.

레이 주위에 목소리를 확성시키는 결계를 전개해준 마법사가 연설을 시작해도 된다고 신호를 주었다.

"..."

레이는 무덤덤한 얼굴로 황성 앞에 결집된 군단을 돌아보았다.

그들 중에는 비제국민도 일부 섞여 있었으나, 어쨌든 레이 앞에 정렬한 군단은 인류가 지닌 최정예 전력이었다.

이만한 전력이 한 자리에 모였다면 없던 자신감도 생겨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야 했다.

허나 군단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감정의 기류는 결코 밝지 못했다.

초조, 불안, 공포... 뭐 그따위 감정들을 레이는 군단으로부터 읽어냈다.

"..."

하긴, 마경으로 원정을 가게 되었으니 아무리 경험이 많은 병사라 해도 동요할만했다.

군단을 이루고 있는 자들 대부분이 마경으로 향하는 것에 공포를 느끼고 있다는 걸 레이 또한 진즉 알고 있었다.

레이는 되도록 군단으로부터 느껴지는 감정을 개의치 않으려 하며 미리 암기해두었던 연설문의 내용을 떠올렸다.

연설문에는 미사여구가 좀 과하게 들어 있고 교양을 자랑하듯 문장을 어렵게 꼬아놓긴 했지만, 이쪽 세상의 연설문 형태가 원래 좀 그랬다.

어쨌든 연설문의 내용 자체는 특별할 게 없었다.

찬양해야할 대상을 먼저 찬양하고, 이 전쟁의 명분을 설명하고, 희생의 가치와 승리의 결실을 언급하며 군단의 분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레이는 군단을 내려다보며 연설을 시작하려 했다.

헌데 그 순간, 레이는 선두에 서 있던 로얄가드 중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로얄가드는 의연한 척을 하려 했지만 그럼에도 일렁이는 눈빛 속에 옅은 두려움이 새어나왔다.

"..."

레이는 다시 입을 다문 채 생각에 잠겼다.

레이 앞에 도열한 군단은 최정예였고, 나름대로 배울 건 배운 자들이 대다수였다.

저들은 이번 전쟁의 목적도 숙지하고 있었고, 원정에 실패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이들은 '루나'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대륙을 구원할 수 있는 마지막 동아줄의 존재를 이들은 몰랐다.

그런데 대체 왜? 이들은 여전히 각오를 다지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가.

확실한 멸망을 앞에 두고도 어째서 투지를 드러내지 못하고 두려움에 잠식되어 후회를 내비치고 있는가.

당장 재앙을 막아내지 못한다고 해도, 1000년 동안 존속한 위대한 제국이 어떻게든 인류를 지켜낼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일까?

"..."

레이가 한숨을 삼켰다.

참... 오만하고 멍청했다.

원정의 실패를 당연시하고 후퇴 작전을 우선해서 논의하는 놈들이나, 원정대에 합류하고도 각오를 다지지 못하고 겁에 질려 눈치를 보는 놈들이나 다 똑같이 오만하고 멍청했다.

레이는 이 오만하고 멍청한 놈들을 내려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프리무스 님의 축복 아래 시황제께서 제국을 건국하신 이후, 인류는 가장 영화로운 시기를 맞이했다."

레이는 차분한 목소리로 연설문에 담긴 첫 번째 문장을 그대로 따라 읽었다.

"인류는 제국이 존재했기에 쉽게 교만하지 않고 소모적인 갈등을 억누르며 타락한 자들에게 대항할 준비를 갖출 수 있게 되었다."

허나 두 번째 문장부터 연설문에 적혀 있던 내용과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리 연설문을 읽어보았던 몇몇 지휘관이 당황했으나 이제 와서 레이의 연설을 제지할 수는 없었다.

"일천 년의 세월 동안 제국은 두 차례의 대재앙을 막아냈고, 수백 수천 개의 저주받은 모략을 짓밟았으며, 타락한 자들에게 단 한 줌의 영토도 내어주지 않았다."

레이는 호흡을 고르듯 잠시 침묵하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들에게 묻겠다. 제국이 지켜온 일천 년의 역사가 우리에게 승리의 역사였는가?"

"..."

레이의 연설이 대본과 달라진 탓에, 레이의 연설에 호응해서 반응을 끌어내야 하는 역할을 맡고 있던 자들이 서로 눈치를 보았다.

조금 어수선해지려는 분위기 속에서 레이가 재차 물었다.

"답하라. 제국이 지켜온 일천 년의 역사가 우리에게 승리의 역사였는가?"

"그렇습니다!"

소수의 기사들이 레이에게 호응했다.

레이가 다시 한 번 물었다.

"답하라. 제국이 지켜온 일천 년의 역사가 우리에게 승리의 역사였는가?"

"그렇습니다!!!!"

이제는 다들 레이의 의도를 눈치채고 함께 호응했다.

그 직후, 바람 빠지는 소리가 군단의 귓가를 울렸다.

그 바람 빠지는 소리의 정체가 레이의 비웃음이었음을 군단의 모두가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승리의 역사? 정말로 그리 생각하는가?"

"..."

"답하라. 정말로 그리 생각하는가?"

"..."

군단에 속한 자들이 서로를 돌아보며 입을 어물거렸다.

그 꼴을 바라보며 레이가 지면을 강하게 찍어 밟았다.

쿵!!

"답하라! 정말로 그리 생각하는가?"

레이는 이번엔 다른 누군가가 입을 열 틈도 주지 않았다.

곧장 거칠게 표정을 일그러뜨린 레이가 분노를 담아 고함을 내질렀다.

"이 오만하고 멍청한 놈들아!! 네놈들의 몰골을 봐라!!"

대열을 맞추고 있던 병사들이 깜짝 놀라 어깨를 움찔 떨었다.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지휘관들 또한 레이의 돌발적인 행동에 당혹감을 느꼈다.

하지만 레이는 개의치 않았다.

"네놈들의 몰골을 똑똑히 보아라!! 황제 폐하의 곁을 지키는 가장 충직하고 용감한 기사조차!! 마경이란 이름만 듣고도 흔들리는 눈빛으로 망설임을 내보이고 있다!!"

레이의 호통을 듣고서야 투구로 표정을 숨기고 있던 기사들이 눈빛 위로 강인함을 덮어씌웠다.

허나 이미 늦은 일이었다.

"보이는가? 네놈들 마음속에 뿌리 깊이 심어진 공포가 보이냔 말이다!! 네놈들 모두가!! 제국민 모두가!! 이 대륙 위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어두운 밤을 두려워하는 아이처럼... 마경을 두려워하며 몸을 숨길 곳을 갈구한다."

레이가 두 눈동자를 형형히 빛내며 군단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갔다.

"다시 묻겠다. 제국이 지켜낸 일천 년의 역사가 우리에게 승리의 역사였는가? 정녕 그리 생각하는가?"

"..."

군단이 침묵했다.

더는 용기 있게 앞으로 나서 레이의 물음에 답할 자가 군단에는 없었다.

레이는 위압된 듯 얼어붙어 있는 군단을 노려보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똑바로 고개를 들고 현실을 직시하라!!"

쿵, 레이가 지면을 찍어 밟으며 표정을 더욱 일그러뜨렸다.

"우리의 역사는 유린의 역사였다!! 우리가 그들에게 유린당한 역사였다!! 우리의 역사는 패배와 굴욕의 역사였다!!"

그 처참할 만큼 모욕적이고 불경한 발언에 몇몇 귀족들이 몸을 떨었다.

그럼에도 레이는 멈추지 않았다.

"우리가 그들을 마경에 가두었더냐?! 아니!! 그들이 우리를 대륙에 가두었다. 우리는 일천 년의 시간 동안 마경을 들여다볼 용기조차 갖지 못했고!! 두려움에 떨며 숨을 죽인 채 서로를 의심하며 삶을 연명했다."

그래, 인류의 존망이 걸린 전쟁을 앞두고서도 결의조차 제대로 다져내지 못할 만큼.

이리 나약해진 군단의 모습이 제국의 역사가 패배와 굴욕으로 얼룩졌음을 방증했다.

"진실에서 눈을 돌리고... 후손에게 우리의 고통과 족쇄를 물려주고... 그리 천천히 영락하길 바라는가? 그게 고결하고 명예롭다 자부하던 그대들의 선택인가?"

"아닙니다!!!"

몇몇 기사가 동시에 발을 구르며 레이의 질책에 항변했다.

레이는 그들을 잠시 바라보다 군단을 향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는 유린당했다. 저들은 침략자였고 우리는 사냥감이었다. 하지만 바로 오늘!!"

레이의 목소리가 한층 커졌다.

"우리는 황제 폐하의 광명과 은총 아래 이 굴욕의 역사에 종말을 고할 것이다!!! 오늘 우리는!!!!"

레이는 이미 목소리를 확성시켜주는 결계의 범위를 벗어났다.

그럼에도 레이의 목소리는 군단의 귓가를 파고들었고, 군단은 단 한 사람에게 압도된 것처럼 숨을 죽이고 레이를 바라보았다.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던 거짓된 영광을 벗겨 내고!!!! 제국을 진정으로 위대하게 만들 것이다!!!! 바로 우리가!!!!"

레이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갔고, 군단이 주춤거리다 이를 악물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제국과 함께 영속할 새로운 신화를 완성할 것이다!!!!"

그러니까.

"답하라!!! 이 다시 없을 명예로운 전장에!!! 나와 함께 이름을 새길 각오가 되었는가!!!"

군단은 물러서지 않았다.

고작 한 사람에게 압도될 수는 없다는 듯 그제야 목소리를 높여 레이의 물음에 화답했다.

"으아아아아아아!!!!!!"

수만에 달하는 군단의 고함이 레이를 둘러쌌다.

레이는 군단의 기세를 정면에서 이겨내며 지면을 재차 찍어 밟았다.

쿵!!!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유린할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줄 것이다!!! 답하라!!! 너희의 사명이 무엇이더냐!!!"

군단이 들썩이며 굉음이 터져 나왔다.

수만의 군세가 각자 우선하는 사명을 앞다퉈 토해내며 목소리가 뒤섞여 광장을 뒤흔들었다.

허나 이런 자리에서 호기롭게 내세울 만한 사명이라 해봐야 기껏해야 다섯 개가 넘지 않았다.

레이는 재차 발을 구르며 군단의 목소리를 하나로 집약시켰다.

쿵!!!

"인류에게!!!"

"영화를!!!!!!!!!"

쿵!!!

"악마에게!!!"

"죽음을!!!!!!!!!!!!!!!"

쿵!!!

군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국의 신검이 하늘을 겨누었다.

"제국에게."

"영광을!!!!!!!!!!!!!!!!!!!!"

성난 군단의 포효가 황성을 휩쓸었다.

광기 어린 포효를 토해내는 군단을 앞에 두고 레이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는 피를 털어내듯 제국의 신검을 사선으로 휘두르며 선언했다.

"출전한다."

진격 (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