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 (3)
312화
요하나는 차마 서럽게 울지는 못하고 입을 꾹 다문 채 눈물을 떨어뜨렸다.
레이는 쌓여있던 섭섭함을 요하나가 덜어낼 수 있도록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상황이 이리되니 부지불식간에 곤란해진 것은 데런이었다.
데런이 눈치를 보다가 레이를 향해 손가락을 움직여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오겠다는 뜻을 전달했다.
레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데런이 혀를 끌끌 차며 멀어졌다.
그후에도 요하나는 바로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레이가 재미없는 농담이라도 한 마디 해주었으면 버럭 화를 내며 씩씩거리는 흉내라도 냈을 텐데 레이는 끝까지 조용하게 요하나 곁에 서 있었다.
"..."
레이는 환영 속의 요하나가 내질렀던 공허한 원망과 눈앞에서 끅끅거리는 요하나의 울음소리가 겹쳐 들리는 것 같았다.
환영 속의 요하나는 레이를 원망하고 원망했었다.
그래, 요하나의 원망이 옳다. 레이는 요하나를 지옥에 빠트렸다.
레이는 요하나가 재능을 꽃피울 기반을 마련해주었다고 생각했으나, 결국엔 요하나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족쇄를 채운 채 끝이 보이지 않는 전장으로 밀어넣었다.
"..."
레이는 갈 길을 잃은 죄책감을 억지로 흩어버리며 요하나가 마음을 진정시킬 때까지 기다렸다.
꽤 시간이 흐른 후에야 요하나는 호흡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간신히 울음을 멈춘 요하나가 손수건을 꺼내 엉망이 된 얼굴을 닦아냈다.
"흐읍..."
뒤늦게 창피함과 어색함이 몰려왔다.
요하나는 충혈된 눈동자를 어디로 향해야할지 헤매다가 자기 품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어차피 레이 앞에서 대놓고 펑펑 울어댄 참이었다.
이제 와서 감정이 울컥할까봐 보관함을 열어보는 걸 주저할 필요는 없었다.
달칵
보관함의 목걸이는 요하나가 익히 알던 디자인의 목걸이들과는 형태가 조금 달랐다.
커다란 보석이 아니라 자그마한 보석이 복잡하게 얽혀 꽃봉오리를 닮은 무늬를 만들고 있었는데, 어쨌든 굉장히 예뻤다.
이 목걸이를 레이가 진짜 그냥 미안해서 선물했다는 걸 요하나도 잘 알았다.
그래도 요하나는 조금 뻔뻔하게 레이를 향해 보관함을 내밀었다.
레이가 목걸이를 들어 요하나의 목에 채워주며 입을 열었다.
"가격은 꽤 나가는데, 단단하지는 않아. 가끔 꾸며야 하는 자리에서 착용해."
레이는 일부러 강도가 높지 않고 구조가 복잡한 목걸이를 골랐다.
레이는, 자신이 건네준 목걸이를 요하나가 전장에서 족쇄처럼 찬 채 뺨에 문지르며 얽매이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 조심히 다뤄야할 필요가 있는 목걸이를 선물했다.
허나 이런 뒤늦은 만회의 선물 따위로 그녀에게 씌운 주박을 완전히 벗겨낼 수는 없었다.
"..."
레이가 다시 침묵한 사이 요하나는 솔직하게 미소지었다.
레이는 마음 놓고 해맑게 웃는 요하나의 얼굴을 참 오랜만에 보았다고 생각했다.
요하나는 목걸이의 감촉을 느끼며 한 바퀴 빙글 돌아보았다.
레이는 고민하다 한 마디 했다.
"잘 어울리네."
"그래...?"
계속해서 환히 웃던 요하나는 레이와 눈이 마주치자 살짝 낯부끄러워했다.
그 뒤로 레이와 요하나는 함께 거리를 걸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레이에게 가까이 붙어 걷던 요하나가 혹시나해서 물었다.
"백작령, 같이 가는 거야?"
"남아있는 일이 있어서. 백작령은 데런이랑 잘 갔다 와."
"그럴 것 같더라."
요하나는 가볍게 툴툴거리며 레이의 옆구리를 톡 찔렀다.
"이번에도 어디 가야해?"
"황도에서 의논해야할 일이 있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지 아직 모르겠네."
"그럼 나 백작령 갔다오면 다시 보겠다?"
"음, 아마 그럴 것 같아."
이지스 생도들에게 주어지는 휴가 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다만 요하나가 돌아올 때까지도 제대로 된 결론이 나지 않았다면 마경 공략은 불가능하다고 봐야했다.
레이는 웃음이 떠나지 않는 요하나의 얼굴을 바라보다 필립스 백작령에서 지내고 있을 카렌과 알레시아를 떠올리고 한숨을 삼켰다.
'걔들 임신했나?'
이미 딸내미 얼굴까지 봤는데 도리어 애가 아직 없으면 마음이 우울해질 것 같았다.
물론 정말 애를 가졌다고 해도 마음이 심란한 건 마찬가지였다.
"..."
이 세계에 명확한 태명 문화는 없다만 부모끼리 애칭을 붙여 뱃속의 아이를 부르는 경우는 많았다.
애칭을 뭐라 지어야하지? 한 녀석은 '삐뚤이', 한 녀석은 '흐물이'라 짓는다면 적당할 것 같기는 한데 진짜 그렇게 불렀다간 등짝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프레체스 타격 작전이 불발되면 몇 가지 일만 더 처리하고 고향 내려가서 애들 얼굴이나 보고 살면 될 것이다.
만약 그리 되면 요하나는... 어찌 대해야 할지 레이는 아직 답을 내릴 수 없었다.
어릴 때 이미지가 레이의 머리에 너무 깊게 남아있어서 그렇지, 요하나도 이제 활기차고 화사한 여인이 다 되어 있었다.
그리고 요하나는 여전히 레이의 곁을 맴돌려고 하고 있었다.
레이가 지금까지 어설프게 벽을 친 것은 맞다. 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할 줄 알았다.
실제로 레이에게 호의를 품은 이들은 백작령에 무수했으나 이내 다들 자기 짝을 찾아 만남을 가졌다.
허나 요하나는 시간이 지나도 레이에게 심적으로 의지하며 더 깊은 애정을 원하고 있었다.
그리 레이의 주위를 맴돌다가 상처만 받았음에도, 여전히.
"..."
레이는 괜히 자기 미간을 매만졌다.
이건 지금 고민할 문제가 아니었다. 어차피 한 달 안에 마경에 관해서 결론이 날 터다.
여론 수렴에 실패하면 그때부터는 레이에게 긴 휴가가 주어졌다.
그때가서 요하나와 진솔한 대화를 나누어도 늦지 않았다.
생각을 정리한 레이는 웃음이 꽃핀 요하나와 함께 황도의 거리를 거니는데 집중했다.
두런두런 대화를 이어가며 두 시간쯤 지났을 때 뒤늦게 데런이 돌아왔다.
요하나는 데런에게 눈치껏 꺼지라고 눈빛으로 이야기했으나 갑작스레 쫓겨나게 된 데런도 그다지 기분이 좋지는 않았기에 심술을 부리듯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요하나가 대놓고 짜증스럽게 데런을 노려봤지만 데런은 무시했다.
레이는 그 모습을 보며 가볍게 웃었다.
*
세리아가 교황청에 초대받았다.
세리아는 저주에 걸렸으나 계속해서 관리를 받은 덕분에 몸에 큰 문제는 없었다.
교황청이라면 세리아에게 새겨진 저주를 없앨 수 있을 터다.
만약 그게 힘들다면 저주의 영향이라도 확실히 상쇄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해줄 것이고 말이다.
알슈테인 공작가의 인물 몇이 세리아와 동행하게 되었다.
레이는 세리아를 배웅한 후, 곧장 요하나와 데런을 배웅하기 위해 걸음을 돌렸다.
"잘 다녀와."
레이가 요하나와 데런과 인사를 나누는 동안.
루나는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침묵하고 있었다.
요하나와 데런은 약간 떨떠름한 얼굴로 루나의 눈치를 보았다.
루나가 원래 말수가 적긴 했는데, 지금은 화가 나서 침묵하고 있다는 걸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혹시 레이와 싸운 걸까. 상상이 잘 안 가는 그림이긴 했는데, 분위기를 보니까 진짜로 그런 것 같았다.
요하나와 데런은 레이와 루나가 잘 화해하길 바란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덧붙이고는 인사를 끝냈다.
요하나와 데런은 워프게이트를 이용할 예정이었다.
이지스의 생도들이 받는 혜택에 더해 레이의 지인이라는 조건까지 더해지니 그만한 특혜가 주어졌다.
레이는 조심히 가라며 손을 흔들어주고는 떠나가는 마차를 지켜보다 루나를 돌아보았다.
"아직 많이 화났어?"
"...레이."
"응."
"...내가, 해결할 수 있어요."
"그래... 한 30년 정도 걸리려나?"
"..."
아무리 불세출의 천재라 해도... 아니, 도리어 불세출의 천재이기에 오만을 품는다.
미래의 루나는 자신 또한 오만했음을 고백했다.
이정표가 심어지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은 설령 불세출의 천재라 해도 헤맬 수밖에 없다.
레이는 루나가 이제껏 인류가 닿지 못한 그 너머까지 손을 뻗는데 아무리 짧아도 반세기 이상은 걸리지 않을까, 그리 생각했다. 한 60년 뒤 말이다.
허나 루나는 세계수의 숲에 들렀을 때 인간이 본래 디디지 못할 별빛 너머의 영역을 관측하고 경험함으로써 '방황'을 크게 줄일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레이는 그 말이 진실인지 아니면 루나의 오만한 착각인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그게 진실이라 해도, 세상의 정화에 필요한 경지를 이루기까지 30년은 걸릴 것이다.
이미 마음의 상처를 입은 이들 중, 붉은 하늘 아래서의 삶을 30년 동안 제정신으로 견뎌낼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하물며 30년 동안 붉은 하늘 아래서 날붙이를 쥐고 육편에 몸을 담가야 하는 이들의 삶은 얼마나 처참하겠는가.
그렇기에 레이는 쉽사리 포기할 수가 없었다.
"...레이."
루나가 레이의 눈동자에 흐르는 각오를 엿보고는 입을 열었다.
"레이... 실패하면 돌이킬 수 없어요. 전쟁에서 이길 수 없어요. 레이가 알던 모든 사람들이 끔찍하게 죽을 거예요.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 없잖아요. 레이는 나쁜 선택지를 고집하고 있어요."
"..."
"마경이 확장되면 힘든 시간이 찾아오겠죠. 하지만 이겨낼 수 있어요. 레이, 날... 날 믿어줘요."
화가 났음에도 루나는 끝까지 루나다웠다.
짜증을 내거나 감정적으로 호소하지 않고 합리적인 선택을 종용해왔다.
하지만.
루나가 놓친 부분이 하나 있었다.
루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레이는 확신이 있었다.
정말로 로드 급이 다수 포함된 군단이 갖춰진다면 프레체스를 반드시 제거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심지어는 간신히 목숨줄만 붙들고 귀환해 황도에서 쓰러져 죽을 자신도 꽤 있었다.
"..."
물론 마경은 지옥이다. 지옥이었다.
수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농축된 악신의 권능은 마경을 끔찍하고 끔찍한 지옥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곳에는 산맥과 하늘을 가릴 만큼 거대하게 부푼 악의의 덩어리들이 지성을 잃은 채 비명만 지르며 돌아다녔다.
마경 안에서만 생존을 허락받은 대신 기괴하고 강력한 힘을 사용하는 마족 또한 넘쳐났다.
검붉게 물든 하늘과 저주가 흐르는 대지는 흡사 하나의 생물체처럼 요동치며 침입자들을 해치려 들었다.
그러한 괴이들이 마경을 끔찍한 지옥으로 만들었으며 심부로의 침입을 원천에서 차단했다.
그리고.
그것들 대부분이.
600년 전 하르시아에게 짓뭉개져 지금 없었다.
별빛 너머에 닿을 수 있던 영역에 서 있던 자가 스스로 삶을 포기하고 발을 들인 전장이다.
마경에 자리 잡고 있던 수많은 재해들에게 있어, 하르시아의 존재는 진정으로 재해와 같았다.
하르시아는 수천 년 넘게 쌓이고 농축되어 왔던 마경의 악의를 아주 갈아버렸다.
그때 하르시아가 갈아버린 것들이 600년 만에 복구가 되었을 리 없다.
프레체스가 나름 열심히 이것저것 준비해 놓기는 했겠다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레이는 결코 도박을 하려는 게 아니었다. 방심한 것도 아니었다.
편린이나마 하르시아의 비원을 계승한 레이는, 확신이 있었다.
"..."
루나는 레이의 눈동자에서 지독한 확신과 함께... 은은한 기쁨을 읽어냈다.
기쁨...? 대체 무엇이 기쁜 것일까...? 죽을 자리를 찾아들어가는 게 기쁜 일인가?
인내심을 품고 레이를 설득해보려던 루나의 목소리에 결국 감정이 실렸다.
"...레이, 행복해요?"
"..."
"우리를 두고... 나를 두고 홀로 떠날 생각을 하니 행복해요? 만족스러워요? 그게 기뻐요?"
"음... 루나."
스산하리만치 차갑게 가라앉은 루나의 목소리를 듣고도 레이는 방긋 웃었다.
안타깝게도 레이는 자기가 어디서 어떻게 죽어도 결국 루나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레이는 루나에게 너무 많은 짐을 넘겨주고 싶지는 않았다.
레이의 바람을 대신 이뤄주기 위해 루나가 수십 년의 세월을 홀로 고독하게 투쟁하길 바라지 않았다.
그런 마음을 레이는 굳이 루나에게 전하지는 않았다.
잘못하면 너를 위해 죽겠다는 뜻으로 오해할 수도 있지 않은가.
레이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뒷목을 긁적이다 되물었다.
"기억해? 비 내리던 날. 마법사 아저씨가 찾아왔잖아. 널 데려가겠다고."
다비드의 이야기였다.
그때 루나의 나이가 8살인가 그랬다.
아무리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더라도 어린 아이 때의 기억은 흐릿해지기 마련이었다.
레이 또한 흐릿해진 그날의 기억을 상기하며 말을 이었다.
"마법사 아저씨가 좀 험하게 굴길래 내가 돌려보냈잖아."
정확히는, 마법사는 루나의 심장을 노렸으며 레이는 사력을 다해 마법사를 죽였다.
마법사를 죽이기 위해 오버드라이브까지 사용해서 관절이 다 갈려나갈 뻔했었다.
"내가 마법사 돌려보내려고 애쓰고 있을 때... 혹시 그때 내 표정 봤어? 아마 덤덤했을걸?"
"..."
"그때 내 기분이 어땠을 것 같아? 잔뜩 겁먹었을까? 이러다 혹시 죽을까봐 두렵고 무서웠을까?"
레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별생각 없었어. 두렵지도 무섭지도 않았어. 그때의 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지 못했거든. 삶에 미련이 없었지."
그 당시에 레이가 잃을 것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다.
과거에도 지금도 레이는 벨라를 어머니로서 사랑했으며 지워지지 않는 부채감을 안고 있었다.
다만 그 당시의 레이는 미래에 관한 지식이 없어 앞길이 막막한 상황이었으며, 또한 백작령에 넘쳐났던 양아치 새끼들 치워내느라 독이 바짝 올랐던 시기였다.
자살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 당시의 레이에게 죽음은 꽤 매혹적인 탈출구였다.
미래에 관해 아는 게 없으니 후회할 것도 적었고 말이다.
그렇기에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그런데 루나."
레이가 담담하게 고백했다.
"이제는 죽음이 두려워."
예전과는 달리, 죽음이 두려워졌다.
"너희와 헤어지는 게 두려워. 내가 떠나고 나서도 너희가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돼. 자꾸 이것저것 미련이 생기는데, 돌이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가슴이 답답해지고는 해."
레이는 끝까지 웃음을 머금은 채 어깨를 살짝 으쓱였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행복한 거야. 너희의 존재가 내 삶의 색채가 되어주었으니까."
루나는 그리 지껄이는 레이의 눈동자를 한참 동안 조용히 바라봤다.
레이 또한 가만히 자리를 지키며 불어오는 바람을 느꼈다.
그때, 프리슬란 가문의 기사인 아도이아가 레이에게 다가와 보고했다.
"곧 '대륙 회의'가 시작됩니다. 이제 가보셔야 됩니다."
예상되던 일정보다 빨랐다.
레이가 고개를 끄덕인 후 아도이아를 따라가려는데, 루나가 불쑥 물었다.
"레이, 기억해요? 비 내리던 날."
"응...?"
"그날 내가 레이한테 물었잖아요. 왜 나를 지켜줘요?"
"..."
"핏물이 빗물과 섞여서 흘러내리는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레이에게 그렇게 물었잖아요. 왜, 날 지켜줘요?"
"..."
"그때 레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해요?"
루나의 말을 듣고 레이는 고민해보았지만 잘 기억나지 않았다.
10년 넘게 지나버린 과거의 대화는 기억에서 대부분 지워져 흐릿한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결국 답을 기억해내지 못한 레이가 머쓱해하며 되물었다.
"어... 잘 기억이 안 나네. 내가 뭐라고 대답했어?"
"나중에 호강하려고 그러는 거지."
"..."
"나중에 루나가 뛰어난 마법사가 되면 나한테 떡고물이라도 떨어지지 않겠냐."
"..."
"정확히 그렇게 말했어요."
루나는, 그날의 시니컬했던 레이의 말투조차 그대로 재현해서 레이에게 들려준 뒤에 다시 물었다.
"이제는 기억이 나요?"
"..."
레이가 결국 입가에서 웃음을 지워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다가 이내 아도이아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렇게 루나를 등진 채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린 레이가 짧게 사과했다.
"미안. 거짓말이었어."
루나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루나는 레이의 거짓말이 지긋지긋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