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등가의 소드마스터-305화 (305/446)

비원 (3)

305화 

루나가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러자 가까이 있던 의자 하나가 레이를 향해 부드럽게 미끄러졌다. 

레이는 굳이 사양하지 않고 일단 푹신한 의자에 앉았다. 

루나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레이를 바라본 채 입을 열었다. 

"먼저 인사를 해볼까요. 오랜만이네요, 레이." 

"...안녕, 루나." 

"과거에서 왔다고 했죠?" 

"그래." 

"시간 여행이라. 재밌네요." 

루나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말을 이었다. 

"레이, 레이도 알겠지만, 레이가 정말로 시간 여행을 했을 확률보다는 당신이 스스로를 레이라 착각하고 있는 다른 존재일 확률이 월등히 높아요." 

"루나, 일단은..." 

"레이가 옛날에 내게 '통 속의 뇌'에 관해 한 번 이야기한 적이 있었어요. 레이는 통 속의 뇌를 우스갯소리 취급했지만, 시간 여행에 비하면 이쪽이 훨씬 더 현실적이죠." 

"..." 

"아니면 이건 어떤가요. 사실 당신은 나의 실험체예요. 거짓 기억을 내가 당신의 머리에 심었죠. 직전까지의 당신의 모든 기억은 가짜예요. 실험은 성공적이네요. 어때요, 이쪽이 시간 여행보다는 훨씬 더 설득력 있게 생각되지 않나요?" 

"...루나, 나 지금 말장난 할 시간 없어." 

레이는 최대한 덤덤함을 가장하려 했으나 등허리에 돋는 불쾌한 소름 탓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루나는 거북함을 숨기지 못하는 레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겁을 주려고 한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래요, 일단 전제를 확실히하죠." 

"..." 

"당신이 복제되거나 변형되지 않는 레이의 진짜 인격이고, 레이가 겪었던 경험이 전부 실재한다고 전제해볼게요." 

"하, 그래, 고마워." 

"레이 말대로라면, 레이는 시간 여행을 해 여기 미래에 잠깐 들렀다가 다시 과거로 돌아갈 예정이라고요?" 

"그 과거가 내 입장에서는 '현재'지." 

"레이, 하나 분명히 할게요. 미래에서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불가능해요." 

"루나, 이런 소모적인 이야기 말고..." 

레이가 화제를 바꾸려는데 루나가 자기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쉿, 조용히 하라는 요구에 레이는 일단 입을 다물었다. 

루나가 만족해하며 말을 이었다. 

"요점만 설명해줄게요. 시간의 방향은 불변하고, 이미 흘러간 시간에 개입하는 건 불가능해요. 권능을 창조 가능한 저 너머의 초월적 존재라 해도 그건 불가능해요. 다만... 음..." 

루나는 드물게 고민하는 기색을 내비치다 설명을 덧붙였다. 

"예외가 있을 수는 있겠네요. 본래 이 시공간을 살아가던 미물이 저 너머로 승천을 이루게 된다면 한정적으로나마 과거에 접촉하는 게 가능할 것 같기도 해요. 근데 그런 일이 가능하다 해도 한계는 분명해요." 

"...어떤 한계?" 

"역사의 변곡점을 뒤틀 수는 없어요. 결과로써 존재하는 존재가 결과를 뒤바꾸는 모순을 행할 수는 없거든요." 

루나의 설명을 듣던 레이가 한숨을 푹 쉬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내가 레이일 리가 없다고?" 

"당신은 레이가 맞아요. 이미 그렇게 전제를 했잖아요. 거기에 가정을 하나 더 추가해보죠." 

"..." 

"레이가 나를 만난 후 정말로 과거로 돌아가서 의식을 각성할 수 있다고 가정할게요." 

"그럼 뭐가 변하는데?" 

"불가능한 일을 경험했다는 건 그 경험이 거짓되었다는 뜻이에요. 레이가 경험한 모든 미래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또한 허상에 불과해요. 상대가 무슨 의도로 이런 질 나쁜 허상을 보여주었을까는 레이가 고민해볼 문제죠." 

"이게 전부, 허상일 뿐이라고?" 

사실 그것이 레이가 바라던 바이긴 했다. 

레이는 이 모든 게 그냥 가치 없는 거짓이기를 바랐다. 

허나 확신을 바라는 레이에게 루나는 짧게 고개를 저었다. 

"물론 단순한 허상이 아닐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어요. 특히나 초월적인 존재가 개입했다면 말이죠."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줘." 

"우리가 살아가는 4차원 시공간을 저 너머의 초월적인 존재들은 훨씬 더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어요." 

"나도 그건 알아." 

"아뇨, 레이는 잘 몰라요. 그래도 비유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겠죠." 

루나가 손을 휘저었다. 

주변의 마나가 반투명하게 응집되더니 새로운 형상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대지가 먼저 생겨나고, 땅이 깊게 파이며 구불구불한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물이 흘러들어와 강처럼 흐르기 시작하다가, 도중에 정지했다. 

루나가 흘러가던 물을 반짝반짝 빛나게 하며 말했다. 

"흘러가는 물줄기가 우리의 시공간이라고 생각해봐요. 물줄기의 끝자락이 바로 '현재'죠." 

"이해했어." 

"물줄기는 미래를 향해 흐를 거예요. 근데 지금 시점에서, 미래에 물줄기가 얼마만큼의 유속을 지니고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예측할 수 있겠나요?" 

"...가능할 것 같아." 

"맞아요. 이 '시야'에서 물줄기를 관측할 수 있다면 물줄기에 영향을 끼칠 변수들을 훨씬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느끼고, 계산할 수 있죠." 

"초월적인 존재들이 시공간을 이런 느낌으로 바라본다는 말이지?"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거죠. 그런데 물줄기를 트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작은 돌멩이 하나를 던진다고 큰 흐름이 잘 바뀌지는 않거든요." 

"그럼 미래가 이미 확정되어 있다는 거야?" 

"아니요." 

루나가 자신이 만들어낸 반투명한 강가에 다가가더니 끊어진 물줄기를 지나쳐 걷기 시작했다. 

"미래는 확정될 수 없어요. 시간적으로 더 멀리 떨어진 미래를 예측하려 할수록 복잡도가 커져서 예측을 아예 무용지물로 만들죠. 하지만..." 

루나는 그리 말하며 끊어진 물줄기를 향해 손을 뻗었다. 

끊어져 있던 푸른 물줄기로부터 색상이 다른 붉은 물줄기가 흘러나와 비어있던 공간을 조금 더 채웠다. 

"이렇게 가까운 미래 정도는 오차가 거의 없이 예측 가능해요. 이 정도 정확성이면 관측과 다를 게 없어요." 

"내가... 그 미래를 보고 있는 거고?" 

"보고 있다는 표현에는 어폐가 있네요. 쉽게 비유하자면..." 

보일듯 말듯 반투명하게 빈 공간을 채우고 있던 붉은 물줄기가 급격히 짙어져서 핏물처럼 변했다. 

"세계수는 아직 흐르지 않은 물줄기, 그러니까 미래를 관측한 후 이렇게 잠시 실체화시켜 놓고..." 

루나가 손을 뻗어 레이를 잡아끄는 시늉을 했다. 

"레이를 이 실체화시킨 물줄기에 밀어 넣은 거죠." 

"그럼 내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게 진짜 미래라는 이야기잖아." 

"가장 확률 높은 미래라고 칭해야 옳아요." 

"...너와 이렇게 마주하게 된 것도 세계수가 의도했다는 거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초월적인 존재들에게 있어 물줄기의 흐름은 충분히 거시적이죠. 하지만 물줄기 안에서 이루어지는 입자 간의 충돌 따위는 너무 미시적이에요." 

"나랑 너가... 입자와 다를 게 없다는 거지?" 

"네. 입자 하나하나를 관측하고 제어하는 건 어려운 일이죠. 처음 레이를 물줄기 속으로 집어넣을 때는 세심한 조정이 가능했겠지만, 그 뒤로는 적당히 흔들어대며 마구잡이로 충돌을 유도하지 않았을까요?" 

루나가 그리 말하고는 잠깐 눈살을 찌푸렸다. 

"이상하네요. 마구잡이로 흔들어댔음에도 레이와 내가 만나게 된 건 운이 좋네요, 라고 치부하기에는 확률이 너무 극악에 가까운데요. 만약 이 가설이 옳다면 다른 존재가 개입했다고 보는 게 맞겠어요." 

"다른 존재?" 

"지금은 알 수 없죠." 

루나가 마나로 이루어진 강가의 형상을 지워낸 뒤 자리에 앉았다. 

"이 가설대로라면 나는 일시적으로 구축된 허상일 뿐이네요.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지만, 조금 미루도록 하죠." 

손을 몇 번 쥐었다 펴길 반복한 루나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레이를 마주봤다. 

"믿고 싶은 걸 믿어요. 통 속의 뇌든, 확률 높은 미래든." 

"..." 

"그런데 레이, 진실이 뭐가 되었든 오랜만에 봤는데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없어요?" 

레이는 신음을 삼켰다. 

입술을 꽉 깨문 채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 후, 레이는 힘겹게 답했다. 

"미안해." 

"아주 끔찍하네요." 

루나의 입가에 걸려있던 작위적인 웃음에 조금 더 감정이 실려 뒤틀렸다. 

"자신을 레이라고 주장하는 당신을 바라보며 내가 얼마나 끔찍한 충동들을 억누르고 있는지 당신은 결코 알지 못할 거예요." 

"..." 

"온갖 끔찍한 충동에 휩싸여 있으면서도, 레이, 레이, 레이... 그 이름 하나를 듣고 또 이렇게 얌전히 앉아 착한 마법사 흉내를 내고 있죠. 어떤가요, 레이. 내가 여전히 착한 마법사처럼 보이나요?" 

"..." 

레이는 대꾸할 수 없었다. 

레이 또한 루나를 보며 수많은 감정의 격류를 느꼈으나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슬픔과 죄책감에 함몰되어 눈물을 흘리기에는 레이에게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레이는 말을 돌렸다. 

"루나, 설명해줘.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왜 하늘은 붉게 물들어 있는지, 벨라는 대체...!" 

호흡이 거칠어졌던 레이가 억지로 마음을 다잡으며 다시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리고... 결코 너를 탓하려는 건 아니지만... 이 문제들을... 너조차 해결할 수 없었던 거야?" 

"레이 눈에는 내가 괴물로 보이나요?" 

"그런 뜻이 아니야 루나!! 다만... 다만 내 말은... 너는 천재였잖아, 루나." 

"맞아요. 나는 천재예요. 5서클의 경지에 발을 들였을 때 나는 단일 개체 중에서 가장 강력한 전력이 되었죠." 

로드 급을 완전히 압도할 수준은 아니고, 소드마스터와의 상성 문제는 여전했으나. 

그럼에도 분명 단일 개체 중에 최강의 전력을 지니고 있었다. 

"서클이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지만 그에 준하기는 해요. 내가 6서클의 경지에 오른다면 역사에 존재했던 대다수의 강자들을 일방적으로 압도할 수 있겠죠." 

"..." 

"7서클. 그 수준에 이르면 고전적인 서클의 형태를 탈피할 수 있겠죠. 그리고 거기까지 가서야 권능이라 불리는 영역을 스스로 구현할 수 있게 될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나요, 레이?" 

"무슨... 말인데?" 

"초월적인 존재의 권능 그 자체를 어찌하려면 내가 7서클은 되어야한다는 뜻이에요. 옛날에 나는 조금 오만했어요. 서클을 어렵지 않게 올릴 수 있으리라 예상했죠. 시야가 좁았던 거예요." 

"..." 

"레이가 왔다는 시점에서 내가 5서클에 오르기 위해서 시간이 얼마나 더 필요할 것 같나요?"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어." 

"철저히 경지의 상승에 집중하면 3년 조금 더 걸리겠죠. 여러 실험과 연구를 같이 진행하다보면 7년 가까이 걸릴 테고요." 

여기서부터가 문제다. 

"6서클에 오르기 위해선 시간이 얼마나 더 필요할 것 같나요? 6서클을 넘어서기 위해선 또 얼마나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나요?" 

레이는 말 없이 자기 뺨을 문질렀다. 

루나는 분명 지고의 천재성을 타고났으며, 이미 정점에 가까운 위치에 올랐고, 그보다 더욱 높게 올라갈 잠재성을 품고 있었다. 

다만, 루나가 정점에 가까운 위치까지 급격히 성장한 것은 리실로테의 유산 덕분이었다.

그리고 이제부터 루나가 향해야할 곳은, 누구도 닿아보지 못한 영역이었다. 

필연적으로 헤맬 수밖에 없었고 끊임없이 방향을 새로 잡아가며 나아가야 했다. 

거기에 필요한 절대적인 시간은 노력만으로 단축시킬 수 없었다. 

"레이, 내가 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면 상황이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바뀌었을 거라는 건 부정하지 않을게요. 근데 그뿐이에요. 전투에 몇 번 승리했다고 해서 인류가 마경이 된 땅을 수복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래서 그냥... 두고 보고 있었던 거야...?" 

"오해하지 말아요. 나는 레이가 남긴 바람을 무시하지 않고 이행했어요. 벨라는 단지..." 

"루나...!!!" 

레이는 들끓어 오르는 감정을 진정시키기 위해 악을 썼다. 

원망이란 감정이 결코 루나에게 향해서는 안 되었다. 

네가 조금만 더 열심히 도왔다면 모두가 그렇게까지 피폐해지진 않았으리라고 이기적인 폭언을 내뱉어서는 안 되었다. 

레이는 울 것 같은 얼굴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루나에게 물었다. 

"루나, 이 미래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 원인과 결과, 그리고 해결방안. 그걸 알려줘." 

정말 이러한 미래가 찾아오게 된다면, 바꿔야 했다. 반드시 바꿔야만 했다. 

레이는, 루나라면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명쾌하게 축약해서 전해주리라 믿었다. 

허나 루나는 레이의 기대에 응해주지 않았다. 

"고향으로 돌아가요. 요하나도 고향으로 불러요. 그리고 남은 시간을 같이 보내줘요. 긴 어둠을 견딜 수 있는 추억을 당신이 애정하고 당신을 애정하는 사람들에게 남겨줘요." 

"루나, 제발...! 뜬구름 잡는 소리 하지 말고!!" 

레이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고함쳤다. 

"내가 너희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걸 알려달라고!!!" 

"조금 고민되네요. 아이가 필요할까요? 나는 카렌처럼 당신과의 혈육을 당신의 분신처럼 생각하며 아끼고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요하나는..." 

"루나!! 지금 당장 저 붉은 하늘을 미래에서 치워버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 아니면 하늘이 왜 저 꼬라지인지라도 설명해 달라고!!" 

격양된 레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루나는 감정을 주체 못하는 레이를 지켜보다가 서서히 입꼬리에 맺혀 있던 웃음을 지워냈다. 

"세계수가 레이에게 정말로 미래를 보여준 것이라면, 그건 분명 레이에게 동기를 부여해 설득하기 위해서겠죠." 

레이가 현재라고 말한 시점 쯤에 엘프들은, 미래를 이렇게까지 시궁창에 빠뜨린 직접적인 원인이 될 요소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레이가 현재로 되돌아간다면 종알종알 떠들어대겠지. 

허나 레이는 거기까지 알지 못하고 연거푸 고함쳤다. 

"루나!! 빨리!! 말해줄 수 있잖아!! 어서!! 왜 그러는...!" 

레이가 루나를 향해 손아귀를 뻗어가는데 풍경이 뒤틀렸다. 

레이는 좌절감을 참지 못하고 욕설을 토해내려 했다. 

헌데 그 찰나. 

루나가 몸을 일으키며 서클을 발현시켰다. 

쩌저저적!! 

거대한 힘의 파동과 함께 뒤틀리던 풍경에서 색채가 벗겨져 나갔다. 

레이가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하고 루나를 돌아봤다. 

흑백으로 변해버린 공간 속에서, 오직 루나의 눈동자만이 은색으로 밝게 빛났다. 

"레이, 내 충고를 잊지마요. 더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우리 곁에 있어요. 그리고, 나를 믿고 기다려줘요. 비록 조금 늦어질지도 모르지만... 내가 반드시 레이에게 해피엔딩을 선물할게요." 

"...루나." 

천천히 다음 풍경을 향해 바스러져가며, 레이가 고개를 저었다. 

"이건 해피엔딩이 아니야." 

다음 순간 레이의 형상이 완전히 바스러졌다. 

레이는 떠나갔고, 공간 속에서 메아리치던 레이의 마지막 목소리 또한 서서히 가라앉았다. 

흑백의 공간 속에서 홀로 남은 루나는 참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루나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은 역시나 공허했다. 

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루나는, 서글프게 미소 지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그래, 그렇게 되었구나." 

비록 먼 길을 돌아가게 되더라도. 

비록 더는 레이의 곁에서 함께할 수 없게 되더라도. 

그럼에도 언젠가는 반드시 레이에게 헤피엔딩을 선물해주리라고. 

"믿고... 있을게." 

이내 흑백의 공간 또한 형태를 잃고 완연한 어둠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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