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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가의 소드마스터-285화 (285/446)

285화

루나가 전력을 드러냈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마나의 격류가 베네딕트의 목소리를 지워냈다.

루나가 손아귀를 움켜쥐는 순간, 베네딕트의 시야가 섬광으로 뒤덮였다.

---!!!

쏟아져 들어오는 굉음이 청각을 마비시키고 머리를 뒤흔들었다.

베네딕트는 파도에 휩쓸린 낙옆처럼 무력하게 튕겨져 나갔다.

계속해서 뒤바뀌는 시야를 응시하며, 베네딕트는 사령검을 강하게 말아쥐었다.

아직까지는 루나의 공격을 버틸만했다.

루나는 너무나도 거대한 규모의 마나를 홀로 다루고 있었으나 준 로드급에 이르는 강자를 해치기엔 정교함이 부족했다.

하지만.

길어봤자 수십 초쯤 이어지고 말 것이라 생각했던 마나의 격류가 끊임없이 베네딕트를 향해 몰아쳤다.

베네딕트는 자신이 계산을 완전히 잘못했다는 걸 알아챘다.

쩌억!!

베네딕트가 또다시 지면에 처박혔다가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잘게 부서진 모래가 악신의 축복이 깃든 갑주를 긁어냈다.

삽시간에 해안가까지 밀려난 베네딕트가 더는 놀아나주지 않겠다는 듯 검강을 발현해 루나를 겨누었다.

헌데 그 찰나.

거대하게 부풀어만 있던 마나의 격류가 일시에 압축되었다.

카렌을 의색해서 화력을 절제했던 루나가 은색 눈동자를 빛냈다.

루나가 자아내는 진짜 마법이 행해진다.

쫘아아악!!!!

허공에 그려진 마법진 한가운데서 붉은 광선이 뻗어나왔다.

베네딕트는 악신의 축복으로 다져진 갑주가 루나의 마법을 한번쯤은 수월하게 방어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결과적으로 그건 너무나 우스운 자만이었다.

츠즈즉!!

붉은 광선이 맞닿자마자 악신의 축복이 서려 있던 갑주가 시뻘겋게 녹아내리며 벌어지기 시작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마주한 베네딕트가 한발 늦게 사령검을 휘둘러 광선의 궤도를 뒤틀었다.

뒤틀려 뻗어나간 광선이 바다 위를 횡으로 긁어냈다.

막대한 열에너지와 맞닿은 해수는 끓지도 못하고 수증기가 되었다.

콰아아아앙!!!!

갑작스러운 부피 팽창에 의해 압력이 치솟은 해수로부터 폭발이 일어났다.

해일처럼 치솟은 해수가 떨어져내리기도 전에 루나의 마법이 연이어 발현됐다.

우악스럽게 마나만 쏟아부은 반쪽짜리 마법이 아니었다.

일대를 불태울만한 막대한 화력이 얇은 날붙이처럼 가공된다.

베네딕트는 그제야 루나가 해안가에 맞닿을 때까지 제대로 된 고위 마법을 일부러 사용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쩌저저정!!!

정밀한 폭격이 베네딕트의 사각을 뚫고 쏟아져 내린다.

제대로 반격할 틈조차 없었다.

방어에 치중했다고 육신이 무사한 것도 아니었다.

악신의 축복이 아니었다면 이미 피부가 전부 불타 갑주에 눌어붙었을 것이다.

일방적이다.

이건 용암 속에서 홀로 허우적거리는 꼴이었다.

베네딕트는 뭉개져가는 풍경 너머로 루나를 응시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베네딕트와 아룬델은 기습을 계획할 때부터 오시리스 백작령에 예상치 못한 강력한 전력이 대기하고 있을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상대가 제국이었으니까.

또한 제국의 수호자라는 놈이 머물고 있는 곳이었으니까.

여러 변수가 있을 수 있다고 예상은 했고, 그렇기에 변수에 대응하기 위해 두 사람이 동시에 나섰다.

허나, 저 은색 눈을 지닌 소녀는 베네딕트와 아룬델이 가정했던 최악의 변수를 뛰어넘어 있었다.

저건 일반적인 8서클 고위 마법사조차 상회하는 존재였다.

베네딕트는 온갖 괴이를 덕지덕지 처바른 악마 숭배자들을 여럿 보았지만, 그들보다도 루나에게서 더욱 강한 이질을 느꼈다.

"너는 대체 누구냐."

평범한 인간은 편린조차 이해 불가한 재능의 폭력이 베네딕트를 뜯어 삼키려 하고 있었다.

한편, 루나는 의아함을 느꼈다.

루나는 전투 경험은 적은 편이었지만 레이와 함께 다녔던 시간 속에서 악마 숭배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파악할 수 있었다.

악마 숭배자들은 악신의 권능 덕분에 생존력이 강하다.

비록 그 본질이 '회복'이 아닌 '침식'일지라도, 인간보다 상처의 수복이 용이한 악마 숭배자들은 전투에서 굉장히 과감했다.

그들은 인간보다 훨씬 쉽사리 신체의 손상을 감수하며 공세를 취해 대적자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헌데... 베네딕트는 계속해서 루나의 마법을 맞받아치려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쏟아져 들어오는 마법을 일일이 베어내기 위해 신체의 손상까지 감수하며 발악을 하고 있었다.

베네딕트의 행동은 전혀 합리적이지 못했다.

베네딕트의 검격으로는 루나의 마법을 제대로 상쇄하거나 베어낼 수 없었다.

차라리 악신의 권능에 의지해 몸뚱이로 마법을 받아내며 루나를 직접 공격하는 게 합리적이었다.

"..."

루나는 베네딕트가 대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얕은 심리전일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광인의 괴이한 집착일 수도 있었다.

물론 루나에게 그다지 중요한 사안은 아니었다.

베네딕트가 어찌 발악하든 루나에게 닿을 수는 없었다.

화아악!!

거대한 불덩이가 베네딕트 코앞에 떨어졌다.

섬광이 번쩍임과 동시에 막대한 압력과 열기가 베네딕트를 집어삼켰다.

제대로 반항하지 못하고 밀려난 베네딕트가 결국 바다 위로 떨어졌다.

물론 베네딕트가 물에 빠지는 일은 없었다.

베네딕트 정도의 경지에 이른 기사라면 허공도 자유롭게 걸어다녔다.

문제가 있다면 베네딕트 머리 위로 어지간한 고위마법에 필적하는 화력의 마법이 폭우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저게 정녕 제국의 대규모 마법사 부대도 아닌 개인이 발현할 수 있는 힘이란 말인가.

베네딕트는 평생 동안 상상도 못해본 어처구니 없는 광경을 앞에 두고 사령검을 들었다.

"나는, 할 수 있다."

베네딕트가 검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베네딕트는 실제로, '베어내는 것'에 집착하고 있었다.

쩌억!!!

이번에도 떨어져내리는 마법을 제대로 베어내지 못했다.

베네딕트는 육신의 손상을 악신의 축복으로 메워가며 연거푸 검을 휘둘렀다.

"나는 할 수 있다... 닿을 수 있어."

베네딕트는, 처음 검을 잡았을 때부터 만물을 통제하고 베어낼 수 있는 지고의 경지를 꿈꾸었다.

허나 베네딕트는 왕국제일검이라 불릴만한 위치에 올라섰음에도 여전히 지고의 경지에 닿지 못했다.

지고의 경지라 칭해지는 벽 너머는 너무나 까마득해,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았다.

허락된 삶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음에도 베네딕트는 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사령검을 쥐었다.

지고의 경지에 닿을 것이다.

그게 바로 베네딕트가 사령검을 쥐게 한 탐욕의 정체였다.

허나 베네딕트는 여전히 지고의 경지에 닿지 못했다.

여전히, 베네딕트는 루나의 마법조차 제대로 베어낼 수 없었다.

이처럼 지고의 경지에 닿지 못한다면 기사는 대등한 경지를 이룩한 마법사에 비해 밀릴 수밖에 없다.

...아니, 하다못해 대등한 경지이기는 한가?

그조차도 명확하지 않았다.

저 이질적인 존재가 대체 어떤 높이에 발을 들이고 있는지 베네딕트조차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단 한 가지는 분명했다.

지고의 경지에 닿는다면 아무리 대단한 주문쟁이라 할지라도 베어낼 수 있었다.

그건 불변의 진리였다.

촤아악!!

어느새 베네딕트가 엉망이 되어 근해까지 밀려나버린 순간.

바다 속에서 기다리고 있던 뿔고래가 파도를 가르며 모습을 드러냈다.

드드득!

뿔고래로부터 번져나온 타락한 기운이 베네딕트의 육신을 다시 세웠다.

베네딕트는 광기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끝끝내 손에서 놓지 않은 사령검을 노려봤다.

"내게 응답해라..."

만물을 베어내고자 타락했다.

악신은 베네딕트가 닿고자 했던 경지로 베네딕트를 이끌 책임이 있었다.

사령검에 내재되어 있다는 그 수많은 재앙의 기록들이 베네딕트에겐 필요했다.

"응답하란 말이다...!!"

만물을 제어하고 베어낼 수 있는 경지에 닿을 것이다.

그리 된다면 저 괴이하고 이질적인 존재가 발하는 마법조차 검 한 자루로 베어낼 수 있을 것이다.

베네딕트는 초월을 원했다.

"나를!!! 저 너머로 안내해라!!!"

흘러넘치는 베네딕트의 탐욕이 사령검에 붉은 빛을 끼얹었다.

루나는 그 광경을 하늘에서 바라보다 손가락으로 베네딕트를 겨누었다.

이제 지상을 벗어났다.

이곳은 바다 한가운데였다.

뿔고래의 존재는 루나 또한 인지하고 있었다.

악신의 권능을 오랜 시간 흡수해 성장한 저 마물이 어떤 형태로든 악마 숭배자에게 큰 힘이 될 거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걸 깨닫고 있음에도 루나는 바다 한가운데로 전장을 옮겼다.

츠즈즉!

지상에서 발현하는데 제약이 있었던 최고위급 섬멸 마법이 마침내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루나는 차디찬 눈으로 베네딕트와 뿔고래를 한꺼번에 시야에 담았다.

어차피 저것들은 레이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존재들이었다.

기회가 왔을 때.

저 그릇된 존재들을 증발시켜야 했다.

*

레아는 울면서 달렸다.

현실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레아는 짧은 평생을 사랑만 받고 살아왔다.

비록 레이가 괜시리 괴롭혀대기는 했지만, 그래도 잘해줄 때는 잘해주지 않았던가.

레아에게는 세상이 마냥 아름다웠다.

그리 행복만 누리고 살아왔던 아이가 세상의 이면과 처음으로 맞닿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레아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반쯤 정신이 나가 주저앉은 채 훌쩍이기만 했을 것이다.

허나 레아는 대견하게도 카렌이 바랐던 대로 열심히 달렸다.

두려움에 휩싸여 엉엉 울면서도 열심히 달렸다.

그때 하늘에서 낙뢰가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낙뢰가 떨어진 곳에 불길이 일며 금방 주변 일대를 집어삼켰다.

뜨거운 공기가 레아를 덮쳤다.

레아는 겁에 질려 미끄러졌다가 다시 뛰었다.

레아 자신은 의식하지 못했지만, 목조 건물을 통째로 불태우는 열기가 레아에게는 그리 치명적이지 않았다.

레아의 몸 속에 흐르는 용혈이 레아를 열기에서부터 보호했다.

루나 또한 확신하지는 않았지만, 그리 되리라고 예상한 현상이었다.

레아는 엉망진창이 된 채로 낙뢰가 떨어져 내리던 지역을 벗어났다.

맑은 공기와 맞닿자마자 레아는 또 넘어져서 몇 바퀴를 심하게 굴렀다.

그나마 다행히도, 가까이서 들리던 굉음이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낑낑거리며 일어선 레아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는 서글프게 울기 시작했다.

"우에에에엥...!"

눈물 탓에 시야가 흐려진다.

그래도 레아는 카렌이 말한 대로 앞으로 또 움직였다.

허나 더는 다리에 힘이 없어 뛰어갈 수가 없었다.

레아는 엉엉 울며 방향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방황했다.

이런 곳에 홀로 있기에는, 레아는 너무 어렸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여기서 혼자 울고 있어."

레아가 끅끅거리면서도 반쯤 타들어간 소매로 황급히 눈가를 닦았다.

그런 레아를 보며, 레이가 물었다.

"왜 혼자 있냐니까."

"어흐헹...! 오빠아...!"

레아가 없는 힘을 짜내 와다다 달려가 레이에게 안겼다.

레이는 일단 달려온 레아를 안아주었다.

레아는 레이 품에 안겨 세상 서럽게 울다가 목이 막혀 켁켁거리면서도 카렌을 찾았다.

"어으허엉, 오빠아...! 카렌 언니가...! 카렌 언니가아...!"

"...카렌이 왜?"

레아는 순간 카렌의 이야기를 하기 두려워졌다.

저 까맣게 타들어간 곳에 카렌이 홀로 남아있었다는 말을 입에 담는 것이 왠지 너무나 두렵게 다가왔다.

허나 결국은, 이야기해야 했다. 레아는 용기를 쥐어짰다.

"카렌 언니 다쳤는데에... 저기 있는데에... 나만 먼저 가라고...!"

레아가 바들바들 떨며 자기가 도망쳤던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레이는 레아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았다.

이미 반쯤 전소된 건물들로부터 매개한 연기가 피어올라 하늘로 흐르고 있었다.

레이의 표정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외면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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