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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가의 소드마스터-268화 (268/446)

268화

다음날 아침.

레이는 지미와 함께 벨라의 집을 찾았다.

레아가 자기 방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더니 레이의 얼굴을 확인하고 와다다 달려왔다.

"선물 왔다!"

말이 꼬인 레아가 얼른 다시 외쳤다.

"오빠 왔다!"

"너는 내가 선물로 보이냐?"

레이는 그리 말하면서도 달려오는 레아를 안아주었다.

레아가 레이에게 매달린 채 썩 진지하게 물었다.

"오빠! 레아는 궁금한 거 있어!"

"뭐가 궁금한데?"

"오빠 또 여행 언제 가?"

"또 선물 사오라고?"

"선물 사주는 오빠 좋아!"

"우리 동생 기강 좀 다시 잡아야겠구나."

레이가 젖살이 빵빵한 레아의 양볼을 움켜쥔 채 살짝 흔들었다.

그다지 아프지 않았기에 레아는 도리어 꺄르르 웃으며 좋아했다.

레이는 해맑게 웃는 레아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집 앞에 잠깐 놓아두었던 커다란 인형을 들고 돌아왔다.

고향에 돌아왔던 첫날 너무 커서 레아에게 전해주지 못한 선물이었다.

예상치 못한 깜짝 선물에 레아가 바닥에서 펄쩍 뛰었다.

"곰돌이다!!"

"옜다, 동생아."

레이가 인형을 휙 던졌다.

레아는 자기 몸뚱이보다 더 큰 인형을 받아내려다 균형을 잃고 바닥을 한 바퀴 굴렀다.

그래도 어쨌든 선물을 받아 기분이 좋은지 레아는 싱글벙글 웃으며 커다란 곰 인형을 끌고 방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던 벨라가 레이에게 다가갔다.

"우리 아들 왔어?"

"네, 아빠랑 같이 왔어요."

레이는 벨라와 포옹하고는 식탁 쪽으로 자리를 옮겨 앉은 후에 벨라와 지미에게 물었다.

"레아는 어때요? 저 없는 사이 사고 안 일으켰어요?"

입에서 불을 내뿜거나 그러지 않았냐는 의미였다.

레이는 이번에 황도로 향하기 전 레아가 감정이 고조된 상태에서 불을 내뿜는 걸 직접 확인했고 이에 대해 경고했었다.

벨라는 지미와 잠깐 마주 보더니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아들 떠나고는 괜찮았어. 레아에게 아무 문제 없었어. 근데... 그 일이 있었던 후부터 레아가 불을 많이 무서워하더라."

레이가 고의로 레아의 감정을 고조시켰을 때.

레아는 갑자기 터져 나온 불꽃이 자기 오빠를 덮치는 광경을 코앞에서 보았다.

사랑만 받고 자란 레아에게 있어 그날의 경험은 굉장히 공포스럽게 기억되고 있었다.

그 후로 레아는 작은 모닥불만 봐도 깜짝깜짝 놀라고는 한다고 벨라가 말해주었다.

트라우마가 생겼다는 것인데, 레이가 생각하기에 나쁜 일은 아니었다.

"다행이네요."

레아는 자신의 '특별함'을 드러내면 안 됐다.

레아가 자신의 특별함을 두려워하고 경계하게 된다면 그건 잘된 일이었다.

"뭐, 다른 문제는 없나요? 레아에게?"

"열이... 가끔씩 오르던데 괜찮겠지...?"

"열이 난다고요? 레아한테서요?"

"아프지는 않다는데 가끔씩 체온이 높을 때가 있어서..."

"아... 뭐... 네, 괜찮아요."

레이가 한숨을 삼켰다.

레이가 따로 알아본 결과, 평범한 황족들은 유아기 때 드래곤하트를 이식하는 경우는 비교적 드물다고 했다.

'어릴 때는 마법적 장치 등의 도움을 받아 용혈을 다루는 법을 연습하고...'

성장하며 용혈의 농도가 짙어지면 드래곤하트를 이식한다. 그게 보통이었다.

허나 레아는 갓난아기 때 파편의 파편이나마 드래곤하트를 이식받아 놓고선 벌써 용혈이 과다해 신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레이가 권능으로 살펴본바, 아직까지는 레아에게 심어진 드래곤하트가 담아낼 수 있는 용혈의 용량에 여유가 있었지만 몇 년 안에 넘쳐흐를 게 분명했다.

'그래도 황실의 드래곤하트를 확보는 해뒀으니 다행인데...'

미간을 매만지던 레이가 일단 고민을 뒤로 미루고 전쟁과 피난에 관한 화제를 꺼냈다.

필립스 백작령에서 피난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벨라는 많이 당혹스러워했지만, 그래도 빠르게 상황을 이해했다.

미리 짐을 챙겨놓으라고 벨라에게 조언한 레이가 지미를 돌아봤다.

"아직 지미 패밀리 건재하죠?"

"건재하지. 내가 자리를 비운 적은 없으니까."

"그럼 패밀리들 동원해서, 대피할 때 질서 유지 가능하도록 신경 좀 써주세요."

"그래. 백작님과 잘 이야기해서 혼란 없도록 신경 쓸게."

그렇게 피난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레아가 방문을 열더니 도화지를 들고 레이에게 다가왔다.

"오빠!"

"왜?"

"그림!"

레아는 레이가 없느 사이 그렸던 것 중 가장 자신 있는 그림을 레이에게 내밀었다.

레아는 레이에게 그림을 잘 그렸다고 칭찬을 받고 싶었다.

벨라에게 그림을 보여주면 '우리 딸 천재네!' 같은 반응이 항상 돌아왔기에, 레아는 레이에게 칭찬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레이는 귀찮다는 얼굴로 레아의 그림을 받아들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레아."

"응!"

"엘프는 두 발로 걷는다니까?"

*

점심 때 레이는 영주성을 찾아갔다.

알레시아와의 식사 약속이 있어서였는데, 영주성 정문에서 세리아에게 붙잡혔다.

레이가 알레시아와 식사 약속이 있다고 하자 세리아는 친히 레이를 식당까지 데려다 주었다. 두 손으로 들어서 말이다.

"나의 기사가...! 왔구나아..."

알레시아는 세리아에게 들려오는 레이를 보고 실망한 기색을 내비쳤다.

알레시아는 레이와 단둘이 식사를 하고 싶었는데 마지못해 세리아에게 식사를 권해야 할 처지가 됐다.

레이는 알레시아의 마음을 읽고는 한발 앞서 세리아에게 자리를 비켜 달라 양해를 구했다.

세리아는 당연히 사랑하는 조카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식당에서 나가기 전 레이의 얼굴에 연거푸 입을 맞추었지만 말이다.

어찌저찌 식사가 시작되었다.

레이는 맞은편에 앉은 알레시아에게 황도에서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들려주었다.

즐겁게 레이의 이야기를 듣던 알레시아가 전쟁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입을 쩍 벌렸다.

"그럼 영지를 비워야 한단 말이냐...!"

"너무 걱정하지는 마. 혹시 몰라 한참 전부터 준비한 일이니까, 대비는 잘 되어 있어."

레이가 장담하자 알레시아는 금세 표정을 풀었다.

레이를 신뢰하기도 했고, 레이와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알레시아는 굳이 어두운 분위기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오시리스 백작령으로 대피할 것이라 했느냐? 그러면 오랜만에 플로리아와 만날 수 있겠구나!"

"그렇게 될 거야. 아, 근데 플로리아는 결혼했어?"

"아닐 것이다. 플로리아가 누군가와 혼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들어보지 못했도다. 이제 플로리아도 노처녀가 되어버렸구나!"

남의 불행을 가지고 히히 웃던 알레시아가 곧 자기 현실을 파악하고 경악했다.

"프, 플로리아가 노처녀면 나도 곧 노처녀가 되어버리는구나...!"

귀족들은 혼약을 빨리 맺는다.

날때부터 짝이 정해져 있는 경우도 꽤 있었다.

그렇기에 스물 서넛만 먹어도 노처녀 소리를 듣고는 했다.

여자는 물론이고 남자들 또한 결혼을 늦게 하면 좋은 시선을 받기 힘들었다.

알레시아가 기겁하자 레이가 낄낄 웃었다.

허나 알레시아는 진짜 심각했다.

"나의 기사가 나를 노처녀로 만들고 도망가버리면 나는 어찌해야 된단 말이냐...!"

"너무 걱정하지는 마. 요즘은 필립스 백작가와 연을 맺고 싶어하는 가문이 넘쳐나는데."

"나의 기사여! 진짜 도망갈 생각이더냐!"

"...내가 우리 아가씨를 두고 다른 여자랑 혼약을 맺지는 않을게."

그 한마디에 안심한 알레시아가 표정을 풀었다.

레이는 뿌듯하게 웃는 알레시아를 바라보다 화제를 바꿨다.

"일단 백작님께 허가는 받았는데, 클레멘스와 관련해서 너랑 상의해야 할 일이 있어."

"그게 무엇이더냐?"

"음... 그러니까..."

레이가 고기를 썰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알레시아는 레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순진한 강아지처럼 고개를 끄덕이길 반복했다.

*

필립스 백작이 영지에 대피령을 공표했다.

영지가 곧바로 부산스러워지며 다들 피난 준비를 시작했다.

필립스 백작은 믿을 만한 성인 남자 여럿을 차출해 주민들의 통제를 돕게 했다.

병사들도 기사들도 지미 패밀리도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움직임을 사전에 차단했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영지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한 날의 저녁.

레이는 루나와 함께 자기 집으로 향했다.

둘 사이엔 침묵이 감돌았다.

루나가 본래 말수가 적은 편이긴 했지만, 레이는 오늘의 침묵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그렇게 조용히 길을 걸어 레이와 루나는 집에 도착했다.

본래 레이 혼자 사는 집이었지만 카렌이 밖에서 들리는 두 사람의 인기척을 느끼고 문을 열고 맞아주었다.

"왔어?"

카렌이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두 사람을 집 안으로 잡아끌었다.

레이는 카렌의 손길에 이끌려 움직이며 새삼스럽게 집 안을 둘러보았다.

집을 오래 비웠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가구가 깨끗했다.

벨라와 카렌이 성실히 관리를 해준 덕분이었다.

레이는 괜히 마음이 복잡해졌다.

한편 카렌은 열심히 준비한 음식을 식탁에 차리기 시작했다.

"루나, 일단 식사 먼저 하고 그... 결계 작업하자."

레이에게 있어 소중한 장소인 이곳을 확실히 보호할 수 있도록.

루나는 이곳에 따로 결계를 전개해주기로 했다.

카렌은 겸사겸사 식사를 차려주겠다며 찾아왔고 말이다.

이내 세 사람이 식탁에 서로 마주앉았다.

카렌은 자기가 한 음식을 레이가 먹어주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다, 갑자기 레이에게 선물한 브로치가 생각나 불쑥 물었다.

"레이, 혹시... 내가 준 브로치 가지고 있어?"

레이가 필립스 백작령에 돌아왔을 때부터 카렌은 레이가 브로치를 찬 모습을 보지 못했다.

카렌이 약간 불안해 보이는 표정을 짓자 레이가 얼른 품 안에서 선물 받은 브로치를 꺼내 보였다.

"당연히 항상 가지고 다니지."

"그렇구나..."

카렌은 레이가 브로치를 장식하지 않고 품 안에 가지고 다닌다는 것에 살짝 상처받았다.

뭐, 그래도 브로치의 크기가 커서 촌스러운 느낌이 강했기에 충분히 이해는 갔다.

카렌은 다음에는 반드시 실력을 키워 작고 예쁜 브로치에 신성력을 축성시켜 선물해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마음 먹었는데...

"...레이."

"응."

"브로치가 원래 그렇게 반짝였어...?"

"뭐...?"

레이가 멍청한 얼굴로 되묻고는 브로치를 내려다봤다.

브로치는 조금 어두운 조명 아래서 눈치 없이 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카렌이 레이의 손에 쥐어있던 브로치를 슬그머니 뺏어갔다.

브로치에서는, 카렌이 처음에 선물했을 때보다 훨씬 강력한 신성력이 느껴졌다.

"..."

카렌은 그제야 상황을 확실히 이해했다.

카렌이 선물해준 브로치는 성능이 너무 거지 같았던 탓에 도저히 가지고 다닐 물건이 못되었다.

차마 카렌의 선물을 버리지 못한 레이는 다른 성직자에게 부탁해 추가로 축성 작업을 받았다.

그렇게 카렌이 몇 주 동안 레이만을 생각하며 열심히 작업했던 브로치는 이름 모를 성직자의 신성력에 의해 덮어씌워져 버렸다.

"..."

카렌은 정말 큰 충격을 받았지만,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지만, 이내 서글픈 감정이 몰려와 눈가에 눈물이 맺히게 만들었다.

"미, 미안해, 레이. 내, 내 실력이 너무 보잘것없어서..."

마음에 상처를 입은 카렌이 자책하며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뒤늦게 상황이 파악된 레이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소리쳤다.

"아,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아, 오해라니까!!"

"미, 미안해. 내가 괜히... 흐윽!"

"카렌, 내 말 좀 들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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