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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가의 소드마스터-256화 (256/446)

256화

데런이 땅을 굴렀고, 복부에는 주먹만한 구멍이 뚫렸다.

프레체스의 공격을 제대로 인지조차 못했던 생도들은 그대로 몸이 얼어붙었다.

멍하니 서 있던 쥬세핀이 뒤늦게 무릎을 꿇고 데런의 복부에 뚫린 상처를 손으로 막았다.

허나 쥬세핀의 손으로 상처를 틀어막기엔 상처가 너무 컸다.

뜨거운 핏물이 쥬세핀의 손아귀로부터 흘러넘쳤다.

핏물이, 너무나 뜨겁게 느껴져서 쥬세핀은 시뻘겋게 물든 손아귀를 덜덜 떨었다.

눈을 돌리면 어느샌가 자신도 데런과 같은 꼴로 땅을 뒹굴 것만 같아, 쥬세핀은 흘러넘치는 데런의 핏물만을 바라보며 차오르는 공포를 외면하려 애썼다.

그 찰나, 데런이 하늘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그 손길이 죽음을 앞둔 자의 헛된 바람임을 쥬세핀도 알았다.

허나, 그것이 헛된 바람임을 알면서도, 쥬세핀은 데런의 손길이 향하는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아주 잠시.

쥬세핀은 어둡던 장막 너머로 푸르게 펼쳐진 하늘을 보았다.

쥬세핀은 자신이 환영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가슴을 가득 메운 공포 탓에 착란을 일으켰거나...

어쩌면 눈에 가득 고여 있는 눈물이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어 그런 환영을 보았을지도 몰랐다.

허나 모두가 쥬세핀과 같은 환영을 보았다.

마족들도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올렸다.

마족들은, 악신의 축복과 드래곤의 권능이 뒤섞여 있는 이 장막이 결코 뚫리지 않으리라 믿었다.

아무리 강한 화력을 쏟아부어도 감히 파고들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그런 믿음을 깨부수며 저 하늘 위에서 장막 안으로 발을 디뎠다.

마족들이 침입자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그 직후, 마족들이 동시에 변질된 마나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프레체스가 펼친 장막이 결코 뚫리지 않으리라 믿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침입자에 대한 아무런 대비도 해놓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침입자를 요격하기 위해 미리 준비되어 있던 마법이 발현됐다.

몇몇 마족은 변형된 신체를 포탄처럼 침입자를 향해 쏘아냈다.

막대한 화력이 지상에서부터 솟구쳤다.

그와 동시에 하늘에서부터 아티펙트가 쏟아져 내렸다.

장막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반쯤 바스러진 수많은 아티펙트가 동력을 과부하시킨 채 지상을 향해 가속했다.

서로의 공격이 맞닿는다. 상쇄되고 바스러진다.

무수한 섬광이 별빛처럼 빛나며 장막 안의 어두웠던 하늘을 가득 채웠다.

그 빛 무리를 뚫어내고, 누군가가 지상으로 다가온다.

그 모습을 보며 프레체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골든타워의 드래곤하트를 관통하고 있던 사령검이 하늘을 향해 회전했다.

츠즈즉!

드래곤하트를 침식한 사령검으로부터 전달된 에너지가 골든타워의 정상에 집약되었다.

마족들도 합세해 악신의 축복을 받은 마나를 사령검에 무수히 불어넣었다.

골든타워의 정상에 집약된 에너지의 밀도가 삽시간에 치솟았다.

프레체스조차 간신히 제어 가능한 밀도의 마나 응집체가 이리저리 날뛰며 가늘게 압축되더니...

한순간에 폭발하며 하늘을 갈라낼 만큼 강대한 에너지 광선을 상공을 향해 투사했다.

쿠우웅!!!

골든타워에서 광선이 쏘아진 반동만으로 태풍이 불어닥치고 지면이 요동쳤다.

아무리 대단한 무력을 지녔더라도 하늘을 갈라내는 압도적인 화력 앞에선 평범한 인간일 뿐이었다.

잡아먹힌다. 잡아먹힐 것이라고 모두가 생각했지만.

데런만은, 언젠가의 기시감을 느끼며 미소를 잃지 않고 하늘을 바라봤다.

"나의... 영웅."

데런의 바람에 응하듯.

레이의 손아귀에 쥐인 검의 끝에서.

자그마한 구슬처럼 압축된 검강이 백색으로 물들었다.

새하얀 구슬이 레이의 품을 떠나 지상을 향해 떨어져 내린다.

구슬이 지나가는 궤적을 따라 공간이 일그러지며, 그 안에 발을 들인 모든 물질이 낱낱이 바스러지며 하나로 응축되었다.

작디작았던 구슬은 어느샌가 거대한 빛 무리가 되어 태양처럼 하늘을 밝혔다.

저건, 비록 인간의 몸으로 빚어냈으나 초월자의 권능조차 뜯어 삼킬 수 있는 섬멸기.

사령검으로부터 뻗어 나간 빛줄기조차 일그러진 공간 속에서 분쇄되어 빛을 잃었다.

시야를 가득 메운 광구가, 마침내 지면과 충돌했다.

화아아아악!!!

후폭풍이 지면을 휩쓸었다.

생도들이 디디고 서 있던 땅 또한 후폭풍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몸이 정상인 생도들이 부상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움직이려 했으나, 그보다 먼저 신성력을 가득 머금은 창 한 자루가 떨어져 내렸다.

쿠웅!!

창의 형태를 지닌 축성된 성물이 지면에 닿자마자 빛의 방벽을 펼쳤다.

빛의 방벽이 후폭풍을 막아내는 가운데.

하늘에서부터 강하한 세 사람이 마침내 지면에 도착해 방벽 안에 내려앉았다.

쩌엉!!

착지하며 발생한 막대한 충격을 그들은 무식하게 몸으로 받아냈다.

이 죽음이 가득한 전장 안으로 목숨을 걸고 뛰어든 자들이 누구인지, 머저리라도 알아볼 수 있었다.

한 사람은 휘황찬란한 로얄가드의 갑주를 착용하고 있었다.

다른 한 사람은 기도문이 빼곡하게 적힌 병기와 갑옷을 온몸에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은... 제국의 신화와 함께했던 신검을 손에 쥐고,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몇몇 생도가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을 뚝뚝 흘렸지만, 생도들은 눈물을 보이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레이가 고개를 돌려 생도들을 바라봤다.

중상을 입은 데런의 모습이 보였다.

레이의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데런의 안위만을 우선해서 행동할 수는 없었다.

"이곳은, 너희가 설 전장이 아니다."

레이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생도들은 침묵한 채 레이를 보았다. 레이는 생도들로부터 등을 돌리며 짧게 명령했다.

"부상자 데리고 물러나. 아무도 죽게 하지 마."

안소니우스가 레이의 이야기를 듣고 자그마한 성물 하나를 생도들에게 던졌다.

중상을 입은 자를 연명은 가능케 할 수준의 치유 성능을 지닌 성물로, 그 이상의 성물을 내어주기엔 상황이 여유롭지가 못했다.

데런은, 흐트러지는 초점을 다잡으려 노력하며 레이를 바라보았다.

레이는 등을 돌리고 적들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데런은 해야할 말이 있는 것처럼 입을 뻐금거렸지만, 다른 생도들이 데런을 잡아끌며 상처를 틀어막고 성물을 꽂아넣었다.

데런은 아득해지는 시야 속에서 마지막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다.

레이는 앞으로 걸었다.

강하하며 사용한 기술의 반동 탓에 육체가 비명을 질러댔지만 무시했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몸에서 흘러내리는 핏물이 지면을 적셨다.

그럼에도 레이는 개의치 않고 서클과 코어를 회전시켰다.

장막의 파괴에는 실패했다.

이제 레이와 안소니우스, 그리고 미하엘은 내부에서 장막을 약화시키거나 유지 못 하도록 타격을 가해야 했다.

실패하면 죽는다. 시간이 끌려도 곤란했다. 단기결전으로 끝내야 했다.

후욱-!

레이가 발현한 기술의 후폭풍이 어느 정도 가라앉으며 거칠게 찢겨나간 풍경이 시야에 드러났다.

뭉개져서 지면을 굴러다니던 마족들의 사체가 슬금슬금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되살아난 사체와 간신히 목숨을 붙잡은 마족들 너머로.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골든타워의 그림자가 흐릿하게 비쳤다.

레이가 한숨을 삼켰다.

본래 아까의 기술로 골든타워까지 날려버릴 생각이었는데, 막아내는 데 성공한 모양이었다.

골든타워 앞에는 처음 보는 여인이 서 있었다.

레이, 안소니우스, 그리고 미하엘은 직감적으로 그녀가 이 사태의 주범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저 여자군."

"저 여자만 죽이면 되나?"

"확신하긴 어렵지만, 목이 잘리면 이 장막을 계속 유지하진 못할겁니다."

장막을 유지하는데 집중하지 못하게만 만들어도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 몰랐다.

미하엘이 안소니우스에게 눈짓하며 앞으로 나섰다.

"저희가 길을 열겠습니다."

가라앉아 있던 미하엘의 기세가 둔중하게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미하엘의 기세는 투박했으나, 그 투박함이 소스라치게 치명적인 일격을 감추기 위한 위장임을 레이는 알 수 있었다.

안소니우스 또한 앞으로 나서며 축성된 창을 횡으로 들어올렸다.

그와 동시에 안소니우스가 무장하고 있는 모든 성물이 빛을 뿜어내며 어둠을 밝혔다.

레이는 두 자루의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아직 기능을 상실하지 않은 소수의 아티펙트 또한 다시 기동시켰다.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며 프레체스가 한탄했다.

"네가... 올 줄 알았다."

누군가가 이 장막 안에 발을 들인다면, 그 첫번째가 레이가 될 것임을 프레체스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레이를 미리 배제하려 들지 않은 건, 현실적인 수단이 부족했음과 더불어 알량한 동정심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국 레이는, 저 너머에서 프레체스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레이로부터 발산되는 힘의 성질을 느끼며 프레체스는 조소를 머금었다.

"우리를 이 꼴로 만든 존재는 낯짝이란 게 아예 없는 모양이구나. 다른 누구도 아닌, 하르시아의 힘을 계승시키다니."

프레체스는 레이를 동정했고, 또한 레이를 '설득'할 수 있을까 잠깐 고민했다.

허나 설득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프레체스는 재차 확신했다.

그 존재가 레이에게 저만한 힘을 부여해 놓고서 아무 안전장치도 해놓지 않았을 리 없었다.

대다수의 드래곤이 행했던 그 맹목적인 헌신처럼, 레이 또한 각인된 맹목이 있으리라고 프레체스는 생각했다.

"헌데..."

레이가 다가오던 모습을 바라보던 프레체스가 제국의 신검으로 눈을 돌렸다.

약 600년 전 소실되었던 제국의 신검, 모로스.

마침내 제국이 모로스를 되찾았다는 소식에, 프레체스는 황권의 안정을 위해 가짜 신검을 황실이 제작했으리라 생각했다.

허나 프레체스가 틀렸다.

레이가 손에 쥔 것은 가짜가 아닌 진품이었다.

프레체스는 모로스로부터 느껴지는 먼 과거의 따스함을 곱씹으며 천천히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제국에게 영광을.

모로스에 새겨져 있는 문구였다.

그 문구는 제국의 초대 황제이자 역대 황제 중 유일하게 '순혈 인간'이었던 황제가 새겨넣기를 청했던 문구였다.

누군가는, 그 문구를 보고 의아함을 표했을 것이다.

'에게'라는 조사는 대개 사람이나 동물 뒤에 붙는 조사였으니까.

문법적으로는 '제국에게 영광을' 보다는 '제국에 영광을' 쪽이 더 적절했다.

허나 초대 황제는 '제국에게 영광을'이라는 문구를 신검에 새겨넣길 청했다.

"하하... 영광이라."

이 대지 위에 제국은 유일하다.

긴 시간 동안 제국은 유일했기에, 흡사 고유 명사처럼 '제국'이라 칭해졌다.

참 오랜 시간 동안 제국은 제국이라 불리었고, 제국민들과 황제 또한 제국을 제국이라 불렀다.

허나 제국에게도 국명은 있었다.

제국의 이름은... 프리무스.

제국을 건설한 시조룡, [프리무스]의 이름을 그대로 계승했다.

그렇기에 제국의 신검 위에 새겨진 '제국에게 영광을'이란 문구를 초대 황제의 의도대로 다시 해석하면...

프리무스에게 영광을.

그런 문구가 된다.

"하... 참 말뿐인 영광이로군."

프레체스가 조소를 지우지 못한 채 불꽃의 날개를 펼쳤다.

대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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