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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가의 소드마스터-253화 (253/446)

253화

검은 물결이 너울진다.

생도들이 진입한 결계를 유지하려 했던 소수의 마법사들이 결국 결계 제어를 포기했다.

이로써 생도들이 진입한 결계는 붕괴 수순에 들어갔다.

결계가 이런 식으로 붕괴되면 결계 내부에서 사상자가 발생하는 건 피할 수 없겠지만, 생도들 전부가 엑스퍼트 급인 만큼 죽지는 않을 터다.

설령 사망자가 발생한다 해도 이건 불가항력적인 일이었다.

부정한 기운을 품은 존재들이 계속해서 늘어났다.

완연한 열세였으나 제국의 기사와 교관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 믿음에 보답하듯, 전투가 발생하기 직전 황실의 기동 타격대가 도착했다.

쿠웅!!

바람 정령과 계약을 맺은 정령사들이 공중에서 쇄도해 기동 타격대를 전장 한가운데 투하했다.

땅에 착지한 기동 타격대가 무장을 전개하며 적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제국의 적을 척살하라."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칼날과 발톱, 마법이 서로를 향해 휘둘러졌다.

제국의 중심부에서 섬광이 빗발치기 시작했다.

*

검은 물이 하늘에서 내린다.

악마숭배자들이 황도의 땅을 밟는다.

그건 믿기지 않는 풍경이었다.

인류가 절멸의 위기에 처했다 하더라도 황도만은 최후의 요새로서 굳건히 버티리라고, 그렇게 모두가 믿었었다.

감히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풍경 아래서.

제국의 군단은 분노를 드러냈다.

불운이 겹쳐 예기치 못한 침범을 허용했다 해서 제국은 흔들리지 않는다.

이따위 습격은 얼마든지 밟아 짓이길 수 있었다.

이곳은 마경이 아니라 인류의 중심지였다.

마족과 마물이 이곳에 발을 들였다는 건 올가미에 스스로 목을 들이미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황도에 존재하는 제국의 모든 전력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촤악!!!

검기가 서린 칼날이 마물을 양단했다.

황도 방위군 제15 방위대대 대대장 글리슨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제15 방위대대는 마나로 신체 강화가 가능한 정예병 백오십 명과 기사와 마법사 스물로 구성되어 있었고, 현재 그들 중 7할이 글리슨에게 합류해 전투에 참여했다.

비록 중대급에 가까운 소규모 대대였으나 글리슨의 대대는 매우 빠른 속도로 적들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황도에는 이런 방위대대가 몇 개는 더 존재했다.

"한 걸음도 물러서지 마라!!! 밀어붙여!!"

글리슨이 마물의 목에 검을 꽂아넣으며 연거푸 외쳤다.

"감히 이 신성한 땅에 발을 들인 것들을 쳐죽이란 말이다!!!"

까드드득!!!

전투가 이어졌다.

어지간한 마물들은 정예병들 또한 상대가 가능했다.

특수하게 오염되거나 강화된 마물들은 기사들과 마법사가 정면에 나서서 처리했다.

괴성과 핏물이 난무하는 가운데 인근에 머물고 있었던 제국의 고급 전력들이 추가로 합류했다.

다른 부대에 속한 자들도 있었고, 이지스에서 교관 역할을 수행하던 자들도 있었다.

황실 직속 마법사이자 간간이 자문관 신분으로 이지스에 들렸던 이그넷 또한 제15 방위대대의 전투에 합류했다.

이그넷은 마법을 발현해 마물을 불태우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곤란하군..."

현재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곳은 시가지였다.

시민이 거주하는 구역이었기에 함부로 강한 화력을 투사할 수가 없었다.

시민의 피해를 감수하고 고위 마법으로 적들을 폭격한다?

만약 이곳이 황도가 아니었다면 뭐... 민간인의 피해를 감수하고 전투를 벌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허나 이곳은 황도였다.

황도에 머무는 시민들은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끗발이 있는 자들이었다.

개미를 밟듯 무시하고 전투를 치를 수는 없었다.

때문에 이그넷은 상급 정령도 함부로 실체화시키지 못한 채 기사들의 전투를 지원하는 데 집중했다. 다른 마법사들 또한 이그넷과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전황이 나쁘지는 않았다.

제15 방위대대는 전투가 시작된 직후 잠깐 동안은 우왕좌왕했지만, 제국의 정예 부대답게 얼마 안 가 용감하게 마물들을 도륙해 갔다.

마물들은 단합된 제국의 병력들에게 제대로 대항하지 못하고 밀려났다.

허나 진짜 문제는 적들이 하늘에서 계속 쏟아져 내린다는 점이었다.

콰앙!!

거대한 체격을 지닌 마족이 땅을 밟았다.

방위대대에 속했던 병사 하나가 마족에게 밟혀 곤죽이 되었다.

목숨을 잃은 자의 동료였던 병사가 반사적으로 마족을 공격하려 했다.

허나 중간에 끼어든 기사가 병사를 옆으로 걷어차내며 마족을 향해 검기를 쏘아냈다.

촤악!!

기사가 쏘아낸 검기가 마족의 어깨를 갈라냈다.

허나 다음 순간 갈라졌던 마족의 어깨가 끈적한 액체처럼 변하더니 서로 달라붙었다.

삽시간에 상처를 회복한 마족이 기사를 향해 주먹을 채찍처럼 휘둘렀다.

쩌억!!!

"크으윽...!!"

주먹에 마주 검을 휘둘렀단 기사가 힘에서 밀려 뒤로 튕겨져나갔다.

마족의 신체에 뒤덮여 있던 끈적한 부식성 체액이 기사에게 흩뿌려졌는데, 마법사가 펼쳐준 방어막과 기사가 장비한 갑주가 같이 녹아내렸다.

기사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 더 이상 전투를 지속하는 건 불가능했다.

기사 한 명이 당하자 모든 화력이 마족에게 집중됐다.

검기와 마법이 비처럼 쏟아져 내리며 마족을 할퀴었다.

허나 마족은 실체가 없는 유령처럼 계속해서 재생됐다.

저런 능력을 지닌 마족을 죽이려면 일정 반경을 고화력으로 쓸어버려야 했다.

마법사들은 민간인 피해를 감수하고 고위 마법을 전개하기 위해 서클을 공명시켰다.

허나 마족도 가만히 당해주지는 않았다.

콰앙!!

지면을 박찬 마족이 고위 마법을 준비하던 마법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기사들이 마족을 막아 세우기 위해 움직였지만 마물들이 고기 방패가 되어 기사들을 방해했다.

기사가 아닌 정예병들은 마족의 발길질 한 번에 몸이 반쯤 터져나갔다.

"쯧..."

표적이 된 이그넷이 혀를 차며 상급 정령을 소환했다.

독수리 형상의 상급 화염 정령, 코르코르가 날개를 펼치며 화염을 쏟아냈다.

허나 마족을 정면에서 막아 세우기엔 저지력이 부족했다.

화염을 뚫어낸 마족이 이그넷의 코앞까지 접근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이그넷은 방어마법을 전개하면서도, 이거 살아남기 글렀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괜히 나섰군."

콰드득!!!

한 자루의 검이, 이그넷에게 휘둘러진 마족의 주먹을 막아냈다.

레이가 이그넷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마족의 팔뚝에 박힌 검을 비틀어서 당겼다.

촤악!!

마족의 팔뚝이 반쯤 잘려나가며 부식성 체액이 레이와 이그넷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허나 마족의 체액은 레이로부터 발산되는 냉기를 뚫어내지 못했다.

마족이 태세를 정비하기 위해 뒤로 물러서려 하자 레이가 마족을 향해 곧장 돌진했다.

죽다 살아난 이그넷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쫓지 말고 물러서!!!"

칼질로는 저 마족을 무력화시키기 힘들었다.

기사들이 몇 번이고 협공했지만 어딜 베어도 마족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가 없었다.

저 마족을 죽이기 위해선 일정 범위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마법이 필요했다.

마족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 다가오는 레이를 향해 입꼬리를 기괴하게 비틀었다.

그꼴을 보며 레이가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웃어?"

레이의 왼손에 쥐어진 검에서 검강이 피어올라 마족의 다리에 박혀 들었다.

그렇게 마족을 붙들어버린 레이가 오른 손에 쥔 검을 하늘을 향해 세웠다.

검을 둘러싼 공간이 일그러진다.

상위차원으로 도약된 검이 현실에 고정된 채 섬광을 내뿜었다.

하르시아의 염원을 계승한 검이 마족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려, 영혼을 바스러뜨리기 시작했다.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 끔찍한 괴성은 마족의 몸이 완전히 양단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전장에 남아있던 자들의 시선이 레이를 향해 모여들었다.

성에가 가득한 전장 위에서 두 자루의 검을 쥐고 서 있는 레이의 모습은... 분명 어릴 적 읽었던 신화의 단편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허나 추억에 잠겨 있을 시간은 없었다.

아직 적들이 남아 있었고, 더 많은 적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때, 허공에 떠오른 다섯 개의 아티펙트가 폭풍처럼 휘둘러지며 접근하던 마물들을 갈아냈다.

다수의 아티펙트를 운용하는 세리아가 마물 하나를 손수 베어내며 전장에 합류했다.

이지스의 생도들과 다른 교관들도 레이를 쫓아 전장에 도착하자 남아있던 마물들이 삽시간에 도륙났다.

일시적으로 전투가 끝나자 레이가 이그넷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여기 지휘관이 누구야."

이그넷이 미처 답하기도 전에 글리슨이 앞으로 나섰다.

"황도 방위군 제15 방위대대 대대장 글리슨입니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빌어먹을 게이트는 언제까지 열어둘 거야? 상부에서 다른 연락이 없나?"

"그게... 아직까지는..."

"워프게이트가 골든타워에서 동력을 공급받고 있어. 골든타워를 파괴해서라도 워프게이트의 작동을 중지시켜야 돼."

"그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오."

이그넷이 끼어들었다.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리는 레이에게 이그넷이 설명을 덧붙였다.

"현재 워프게이트에 동력을 공급하고 있는 다섯 개의 탑은 골든타워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시설이오. 제어 권한을 확보하지 못한 채 파괴해버리면 황도 시스템 전체가 먹통이 될 위험이 있소."

그리 되면 통신 단절부터 시작해서 황도 방위와 관련된 대부분의 시스템이 정지된다.

제국 상부 또한 이를 걱정해서 즉각적인 골든타워 파괴를 명령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그넷의 이야기를 들은 레이가 짜증스럽게 따져 물었다.

"그럼 저 좆 같은 것들이 계속 쏟아져 들어오게 내버려 두자고? 황도 한가운데서 하루 종일 전쟁하게?"

"그건..."

이그넷도 할 말이 궁해 말끝을 흐리는데 방위대대에 속해있던 마법사 한 명이 크게 외쳤다.

"상부에서 경보를 발령했습니다!! 포격의 후폭풍에 대비하십시오!!"

레이는 마법사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대체 어떤 경보가 발령되었고 포격의 후폭풍은 무엇을 뜻하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허나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마법사가 후폭풍을 경고하고 얼마 안 가.

피라미드를 닮아있는 황성 인근에서 거대한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황성에서부터 쏘아진 거대한 광선이 상공의 워프게이트에 직격했다.

화아아아아악!!!!!!

하늘에서 터져나간 섬광이 일순 태양의 모습조차 앗아갔다.

이명을 일으키는 굉음과 함께 하늘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시간이 흘러 하늘이 간신히 제 모습을 되찾았을 때.

거대한 광선에 직격당한 상공의 워프게이트가 형체를 유지하지 못하고 붕괴하기 시작했다.

공간을 잇는 워프게이트인 만큼 어지간한 화력은 버텨낼 수 있었을 테지만 황도에서 쏘아진 광선은 워프게이트의 내구 한계를 한참 웃돌았다.

붕괴되는 워프게이트로부터 에너지가 역류해 드래곤 하트가 배치되어 있는 탑에 과부하를 일으켰다.

그로 인해 탑의 기능이 정지되었고, 상공의 워프게이트는 완전히 소실됐다.

반쯤 감은 눈으로 하늘을 지켜보던 병사들이 비명에 가까운 환호성을 터뜨렸다.

"우아아아아!!!"

워프게이트가 사라졌다.

이제 황도에 기어들어온 적들만 처리하면 됐다.

그또한 만만찮은 일이 되겠지만 워프게이트가 파괴된 시점에서 승리는 확정된 일이었다.

레이 또한 약간의 안도가 담긴 한숨을 내쉬려는데, 전장에 다시 변화가 일었다.

츠즈즉!!

"...?"

마나의 흐름을 정밀하게 파악 가능한 레이가 가장 먼저 고개를 돌렸다.

이상 사태를 감지한 자들도 레이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알파 21. 이 사태가 처음 시작된 바로 그 지점을 중심으로, 반구체 형태의 거대한 장막이 생성되고 있었다.

불투명한 장막은 이내 알파 21 주변 일대를 완전히 뒤덮어버렸다.

레이는 멀리서 보이는 거대한 장막을 응시하다 마법사를 돌아보았다.

"저 장막, 아군이 생성한 거야?"

"...제가 확답드리긴 힘듭니다만."

마법사가 침을 꿀꺽 삼켰다.

"아닐 겁니다."

"그래 보여."

레이가 차갑게 조소했다.

수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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