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화
"현재 알파 21 부근으로..."
넬슨은 마법사들의 도움을 받아 통신이 닿는 곳과 계속해서 연락하며 상황을 파악하려 애썼다.
레이는 짜증이 차올랐지만 무작정 달려나가기보단 일단 제자리서 대기했다.
이곳은 제국의 황도 한가운데였다.
제국의 주요 전력들이 다수 포진해 있었으며, 황실의 기동 타격대 또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항시 대기하고 있었다.
큰 사건이 터졌다고 해도 레이가 나설 틈이 없어야 정상이었다.
만약 레이가 나선다고 해도, 상황 파악이 끝나야 제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한편 다른 생도들은 바짝 굳은 채 자리를 지켰다.
요하나가 잠깐 레이에게 다가갔지만, 날이 선 레이의 기세를 느끼고 결국 말을 붙이지 못하고 물러섰다.
짧았지만 길었던 시간 끝에 넬슨이 레이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알파 21 부근에서..."
"뭐?"
"A팀이 위치해 있는 골든타워의 식별명입니다. 알파 21 부근에서 소규모 습격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이 때문에 결계 전개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판단됩니다."
"..."
"현재 확인된 습격 지점은 알파 21 한 군데이고, 황실 기동 타격대가 출동했으며 인근의 병력 또한 지원을 위해 움직이고 있습니다. 다수의 병력이 투입되었으므로 상부에서는 곧 소요 사태가 마무리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투입된 병력에 고위급 실력자들도 다수 섞여 있었다.
아무리 대단한 놈들이 습격을 감행했다 해도 삽시간에 목이 잘릴 게 분명했다.
넬슨은 레이의 시선이 가는 방향을 잠깐 살피고는 보고를 마무리 지었다.
"양동을 위한 기습일 수 있으니, 명령을 받은 부대를 제외하고는 자리를 사수하라는 상부의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생도들은 어떻게 할 거지?"
"본래라면 대피시켜야겠지만, 사태가 마무리될 때까지는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장소가 마땅치 않습니다. 또한 황도가 습격당한 상황이니만큼, 가용 병력은 무장을 갖추고 대기하는 게 원칙입니다."
"그럼 가서 애들 기합부터 잡아."
"알겠습니다."
곧장 생도들을 향해 뛰어간 넬슨이 고함을 내질렀다.
"언제까지 얼이 빠져 있을 거냐!!!!"
넬슨이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르며 생도들을 일깨웠다.
생도라고 해도 군사훈련을 받은 엑스퍼트 급이었고, 유사시 바로 투입될 수 있는 전력이었다.
넬슨이 그 점을 일깨우며 전투에 대비하라 하자 그제야 생도들은 눈빛을 되찾고 손아귀로 검 자루를 말아쥐었다.
주변이 시끄러운 가운데 레이는 에너지가 이리저리 빗발치는 알파 21 근방을 조용히 응시했다.
사태가 빠르게 마무리되지 않으면 혼자서라도 뛰어갈 생각이었다.
다른 생도들과 달리 시험에 참가하면서도 아티펙트를 챙겨왔던 레이가 팔목의 팔찌를 매만지며 호흡을 골랐다.
그때, 또 다시 변화가 발생했다.
수십 개의 골든타워 중 몇 군데에 마나가 급격히 집약되었다.
강렬한 마나의 기류에 모두가 긴장을 바짝 끌어올리는 찰나.
다섯 개의 골든타워로부터 빛으로 된 기둥이 뻗어 올라가더니 황도의 상공 위에서 하나로 응집되었다.
아프텔이 레이에게 짧게 조언했다.
[추측건대, 워프 게이트입니다.]
아프텔의 예상이 옳았다.
빛의 기둥이 집약된 지점으로부터 워프 게이트가 생성되어 개방되었다.
레이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아주 잠시 호흡을 멈추었다.
워프게이트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가 아군이기를, 그래서 이 사태를 조기에 종결할 수 있기를 하늘을 바라보는 제국민 모두가 바랐다.
이윽고 워프게이트 너머에서.
검은 빗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부정한 기운을 품은 악한 존재들이 게이트를 넘어오며 눈동자를 붉게 빛냈다.
악의가 쏟아진다. 레이가 두 번째 검을 뽑았다.
*
조금 전.
A팀에 속한 생도들은 교관들의 안내에 따라 골든타워에 도착했다.
식별명 알파 21, 제국에게 있어 중요한 전략적 자산인 골든타워에 도착한 생도들이 주먹을 가볍게 맞부딪쳤다.
"무조건 B팀보다 빠르게 도착해야 한다!"
지휘관 역할을 맡은 생도가 그리 소리치자 다른 생도들 또한 화답했다.
분위기를 띄운 생도들은 짐 검사를 마치고 시험을 시작했다.
생도들이 결계 내부로 진입하자 골든타워 주변에 있던 마법사들이 더욱 바쁘게 결계를 조율하기 시작했다.
어중이 떠중이도 아닌 이지스 생도들이 결계에 진입했다.
조금만 결계가 미흡해도 생도들의 힘에 영향을 받아 문제가 생길 수 있었기에, 마법사들은 시험이 끝날 때까지 결계 유지에 공을 들여야 했다.
헌데 시험이 시작되고 얼마 안 가 웬 여자 한 명이 골든타워로 접근했다.
"...!"
여자의 기척이 느껴진 순간.
골든타워 주변에 있던 교관들과 기사들이 삽시간에 몸을 움직여 여자를 포위한 후 검을 겨누었다.
"신원을 밝혀라."
"..."
여자는 답하지 않았다.
이지스를 오가기 위해 일시적으로 새겨야 하는 각인을 여자가 가졌는지 마법사들이 탐색해보았지만 발견되지 않았다.
마법사 한 명이 고개를 젓자 여자를 향한 검 끝의 기세가 더욱 날카로워 졌다.
교관과 기사들은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으나 상당한 당혹감을 느꼈다.
신원이 불확실한 자가 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침입했단 말인가.
불확실한 신분으로 황도 안으로 들어서는 거야 어찌저찌 가능할 수 있겠지만 이지스는 군사 시설이었다.
내부 조력자가 있다 해도 보안 시스템에 발각되었어야 했다.
"답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 신원을 밝혀라."
"..."
여자는 입을 다문 채 손아귀에서 불꽃을 피워올렸다.
여자를 겨누었던 검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휘둘러졌다.
그와 동시에, 여자의 손아귀에서 피어오른 불꽃이 주변을 부드럽게 쓸어나갔다.
교관들과 기사들은 다가오는 불길을 뚫어내고 여자를 베어버리려 했다.
설령 살가죽이 타들어 간다 해도 여자를 제압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허나 갑옷과 검이 불꽃과 맞닿았을 때.
그 어느 것도 타오르지 않았다. 다만 얼어붙었다.
쩌저적!
"?!!"
불꽃과 맞닿은 모든 물질이 냉기에 침식된다.
얼어붙는 불꽃. 그 괴이한 힘에 침식된 금속들이 부피가 줄어들며 깨져나갔다.
교관들과 기사들은 겪어보지 못한 힘의 종류에 육체까지 잠식되려 하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잠깐 물러섰다.
그 잠깐의 물러섬을 파고든 여자가 어느새 골든타워에 접근해 손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
"...느껴지는구나."
드래곤하트의 존재가 그 안에서 느껴졌다.
황도의 건설된 수십 개의 골든타워 중 오직 다섯 개의 탑에 드래곤하트가 배치되어 있었다.
그 다섯 개의 탑은 다른 골든타워에 비해서도 특히 중요한 역할을 했고, 알파 21은 그 다섯 개의 탑 중 하나였다.
"우리 종족의 유산..."
여자의 손길에는 아련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여자의 손길이 탑의 겉면을 쓰다듬는 순간, 결계에 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골든타워의 제어권을 양도받았던 고위 마법사가 경악했다.
골든타워의 시스템에 여자가 침입하기 시작했다.
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마법사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신했다.
"저자를 막아!!"
교관, 기사, 그리고 마법사들이 동시에 여자를 공격하려 했다.
헌데 그보다 한발 앞서 교관 한 명이 골든타워를 제어하고 있던 고위 마법사를 뒤에서 기습했다.
"?!"
꽈드드득!!
고위 마법사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해두었던 방어 아티펙트가 단숨에 꿰뚫렸다.
이런 지근거리에서 행해지는, 그것도 아군이라 믿고 있던 그래듀에이트의 기습은 어지간히 잘난 고위 마법사라 해도 대처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다른 이들이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고위 마법사의 심장이 부서진 후였다.
배신자.
상황을 파악한 이들은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고 굳이 따지고 들지 않고 무기를 돌렸다.
마법사의 뒤를 기습한 배신자의 이름은 키어런.
배신한 사유야 팔다리를 잘라놓고 물으면 될 터다.
둘로 나뉜 병력이 각각 키어런과 여자를 향해 공격을 가했다.
허나 그건 잘못된 판단이었다.
사태를 조기에 진압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고 싶었다면 모든 부차적인 요소를 무시하고 전부 다 여자에게 달려들어야 했다.
다가오는 칼끝과 마법들을 보며.
여자는 마법사가 죽어 제어권이 흐트러진 탑에 몸을 기댔다.
"어머니."
여자는 먼 과거에 처음 이름을 받았던 그날을 떠올렸다.
시조룡 중 하나였던 존재가 여자에게 부여했던 이름은 프레체스.
한때 여자는 자신의 이름을 사랑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어머니, 당신의 미련함을 이곳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프레체스는, 마치 온기를 갈구하듯 탑에 뺨을 맞대고 숨을 내뱉었다.
"동족의 존재와, 의지와, 죽음을 이곳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다가오는 칼날 아래서 프레체스는 눈물을 흘렸다.
"그릇된 운명에 저항 않고 순응했던 당신들이 참... 밉고 그립군요."
츠즈즉!!
탑에서부터 역류한 마나가 프레체스에게 깃들었다.
프레체스는 체내에 깃든 마나를 아낌없이 터뜨렸다.
프레체스에게 맞닿기 직전이었던 공격들이 막대한 마나의 기류에 휩쓸려 뭉개졌다.
까드드드득!!
"?!"
프레체스에게 접근했던 자들이 힘의 반발 탓에 한참을 튕겨져나갔다.
마나의 폭풍 속에서, 얼어붙는 불꽃과 타오르는 불꽃이 프레체스의 등 위에서 양 날개처럼 응집되었다.
십수명의 기사와 마법사들이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프레체스는 눈앞의 인간들을 압도할 수 있는 화력을 손에 쥐고 조소했다.
"이 힘을 다룰 존재가 너희밖에 남지 않았으리라 여겼느냐..."
황도의 시스템은 드래곤에 의해 설계되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며 개조되었다고 하나, 황도의 곳곳엔 여전히 드래곤들의 유산과 의지가 남아 힘을 불어넣고 있었다.
이 황도에는 믿음이 흐르고 있었다.
드래곤이 결코 인류를 수호하는 제국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리라는, 그런 믿음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600년 전 드래곤은 종말을 맞이했다.
이제 더는 황도를 구성하고 있는 시스템에 간섭 가능한 존재가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고, 제국은 그리 확신했을 터다.
프레체스는 드래곤을 향한 그러한 믿음이 그토록 혐오스러울 수 없었다.
그 믿음이 그리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더욱 프레체스를 괴롭게 했다.
화악!!
프레체스가 날개를 휘저었다.
날개가 그려낸 궤적을 따라 얼어붙는 불꽃이 휘몰아쳤다.
불꽃에 맞닿은 모든 물질이 냉기에 침식된다.
그 괴이한 광경을 보고도 제국의 인간들이 검을 다시 잡았다.
"물러서지 마라."
기껏해야 그래듀에이트 급 배신자 하나와, 골든타워의 동력을 끌어들여 엄청난 화력을 토해내는 침입자 하나였다.
이곳은 황도 한가운데였고 곧 지원병력이 쏟아져 들어올 터다.
물러설 필요도 없었고 물러설 수도 없었다.
프레체스는 인간들의 그러한 생각을 읽고 방긋 웃었다.
"이 탑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너희도 모르는구나."
드래곤하트가 배치된 다섯 개의 탑은 황도 아래 흐르는 영맥의 마나를 제어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허나 그것 말고도 숨겨진 기능이 한 가지 더 존재했다.
그 최고 기밀은 과거에 추살당한 1황자에 의해 루비하 왕국으로 흘러들어 갔으며, 마침내 프레체스 또한 정보를 접하게 되었다.
"나를..."
프레체스가 다시 골든타워에 손을 가져다 댔다.
"도와줘."
탑 내부의 드래곤하트에 존재하던, 이제는 뿌옇게만 남아있던 잔류한 사념이 세상에 존재하는 마지막 드래곤의 호소에 응답했다.
시스템 권한이 반전되며 황도에 흐르는 마나의 흐름 일부가 프레체스가 이끄는 방향으로 역류했다.
그와 함께 드래곤하트가 배치된 다섯 개의 탑이 동시에 활성화됐다.
황도에서는 워프가 불가능하다. 워프게이트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진실이었다.
허나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워프게이트를 황도 상공에 생성 가능한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것은, 황실에 관계된 극소수의 인간만이 알고 있었다.
그 정보를 추살당했던 1황자가 유출했다.
프레체스는 1황자가 유출한 시스템 정보를 기반으로 미리부터 지금의 순간을 준비했고, 또한 성공했다.
황도의 상공에서 워프게이트가 생성된다.
그 너머로, 본래는 황도의 방위 시스템에 의해 결코 통과하지 못했을 부정한 기운을 품은 존재들이 쏟아져 내렸다.
콰앙!!!
자줏빛 검을 들고 있는 기사가 가장 먼저 워프게이트를 통과해, 프레체스의 앞에 내려앉았다.
그 뒤로 검은 물결이 너울졌다.
수호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