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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가의 소드마스터-245화 (245/446)

245화

빛의 성 안에서 레이가 한숨을 쉬었다.

안소니우스의 혈육에 관한 이야기가 대단한 기밀일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쉽지 않았지만, 어쨌든 레이가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했던 부분이었다.

레이는 자신의 실책을 자책하며 미간을 매만졌다.

'아, 골 때리네.'

누이와 관계된 일이니 만큼 안소니우스도 어설프게 물러서진 않을 것이다.

레이가 입을 다물어버린다면 안소니우스는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을 작자였다. 그는 누이를 숭배하는 광신도였으니까.

'어떻게 해야 하나...'

명성이 자자한 하이템플러와 투닥거리려면 레이도 전력을 꽤 드러내야 했다.

레이는 이곳에서 육체를 소모하고 싶지도 않았고, 안소니우스를 때려눕힌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레이는 품속으로 손을 넣어 황제가 하사했다는 단검을 매만졌다.

이걸 안소니우스에게 보여주며 황실의 사람임을 증명하면 당장은 안소니우스도 납득하고 접어줄 확률이 높았다.

황실의 정보국이 안소니우스와 성녀가 혈육 관계임을 파악하고 있었고, 레이 또한 그쪽에 소속된 인물이라고 한다면 지금의 상황이 설명되었으니 말이다.

허나 안소니우스가 당장은 접어주더라도... 그의 성향상 어디서 정보가 흘렀는지 색출하기 위해 교단을 싹 다 뒤집어엎으려 들게 확실했다.

그런 식으로 일이 커지면 나중에 레이만 더 곤란해졌다.

레이는 황실에 불려 나가 상황을 해명하는 장면을 상상해보고는 혀를 가볍게 찼다.

'어차피 안소니우스의 인간관계는 없다시피 하니...'

사적인 관계는 거의 파탄 나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안소니우스가 지닌 재능과 실력이 어지간한 천재조차 범접 불가한 수준인데다 비밀이라 해도 혈육의 영향력이 있었기에 무난하게 하이템플러로 인정받았지만.

그놈의 성격적 하자 때문에 더 이상의 출세는 힘들 것이란 소문까지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였다.

안소니우스는 인간을 불신했고, 심지어 같은 성직자와 대화를 나누거나 정보를 공유하는 것조차 대단히 인색했다.

이는 어떤 합리적 판단으로 인한 행동이 아니라 그저 안소니우스의 강박이 원인이었다.

'뭐... 만약 안소니우스가 여기서 있었던 이야기를 떠들어서 정보가 교단 쪽으로 들어간다 해도... 나쁘지 않아.'

교단에 정보가 들어가면 남부를 장악하고 있는 고위층에도 정보가 공유될 거고, 그들은 분명 레이에게 접촉하려 들 터다.

레아를 숨기고 있는 레이 입장에서 남부 측과 접점을 만들어 놓는 것은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선 필요한 일이었다.

물론 황제나 에른스트에게 괜한 의심을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지만 말이다.

"음."

생각을 정리한 레이가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고는 안소니우스로부터 등을 돌려 막혀있는 벽을 향해 걸었다.

뚜벅뚜벅 걸어간 레이가, 이윽고 성의 끝자락에 다다라 성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안소니우스는 레이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현재 전개되어 있는 신성 결계는 내부에서 단시간 만에 파괴하는 건 절대 불가능했다.

레이가 그 어떤 수작질을 부린다고 해도 단숨에 결계를 뚫고 도망칠 수는 없었다.

레이 또한 그걸 인지하고 있었다.

이 빛의 성은 여러 종류의 신성결계를 복합적으로 쌓아올려 빚어낸 단단한 감옥이었다.

서로 상호작용하는 신성 결계들은 다양한 종류의 타격에 전부 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빛의 성을 이루고 있는 신성 결계 중엔 '참회의 결계' 또한 존재했다.

인간이 평생토록 쌓아올린 죄악을 태우는 결계.

레이가 벽을 향해 손을 가져다 대자, 참회의 결계가 인간의 죄악을 태우기 위해 빛을 발했다.

츠즈즉...

열기가 번져나와 레이의 손아귀를 데웠다.

허나, 죄악을 태우는 결계는 레이의 손길에 반발하다 얼마 못 가 스스로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빛의 성을 이루던 참회의 결계가 레이를 향해 집중된다.

레이의 손아귀와 맞닿은 참회의 결계는 계속해서 스스로를 태우다 이내 사그라들었다.

"..."

그 광경을 보며 안소니우스가 눈가를 좁혔다.

안소니우스의 눈동자엔 지금 벌어지는 현상에 대한 경이 따위는 존재치 않았다.

허나 당혹과 의아함 정도는 분명히 깃들어 있었다.

트드득!

결국 빛의 성의 한 축을 이루던 참회의 결계가 완전히 소멸했다.

다수의 신성 결계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빛의 성은 여전히 굳건했지만, 전체적으로 약화되었음은 분명했다.

벽에서 손을 뗀 레이가 안소니우스를 돌아보았다.

단단히 굳은 표정을 하고 있는 안소니우스를 항해, 레이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힘듭니다만."

"..."

"제게는 직감... 아니, 계시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것이 보이고 느껴집니다."

"..."

"오늘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안소니우스 님을 보는 순간 그냥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성녀님과 강한 인연으로 묶여 있다는 걸 말입니다."

막무가내의 이야기였지만 그렇기에 반박하기가 극히 힘들었다.

참회의 결계를 태워내는 존재에게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며 논리를 들이미는 것도 참 아이러니한 짓거리일 터였다.

안소니우스는 여전히 차가운 눈동자로 레이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네가, 엘-람의 뜻을 받드는 사도라도 된다는 말이냐?"

"사도... 그런 정의 같은 것이 중요하지는 않겠지요."

"그럼 무엇이 중요하지?"

"저는 단지 제가 선 위치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오늘 이리 안소니우스 님과 뵙게 된 것도 운명이 아닐까요?"

"..."

"당장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함께 이겨내야 할 시련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가... 그런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

"..."

신도 신분으로서 뭐라 반응해야 할지가 참 난처했다.

말 잘못하면 엘-람의 의지를 부정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겠는가.

물론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무력으로 찍어누르고 어디서 사술을 부리느냐며 팔다리를 부숴놓는 것도 방법이었다. 안소니우스는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는 자였고 말이다.

"...다시 묻겠다. 정보의 출처가 어디지?"

"말씀드렸다시피 자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또 누가 알고 있지?"

"형제님."

레이는 그리 안소니우스를 부르며 방긋 웃었다.

"제 입은 다른 이의 비밀을 발설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안소니우스가 '지랄하네'를 외친다면 레이도 '시발시발' 거리며 가면을 벗어야 했다.

허나 안소니우스는 이윽고 기세를 가라앉혔다.

당장은 더 따지고 들지 않고 넘어가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물론 안소니우스는 앞으로 레이를 주시할 것이며, 뒷조사를 병행하고, 필요하다면 다시 접촉할 것이다.

레이가 한숨을 삼키며 안소니우스를 가만히 바라봤다.

안소니우스, 현시점에서 이미 그가 진정한 구원을 얻는 것을 불가능했다.

앞으로의 미래에 그가 과연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 레이도 무엇하나 확답할 수 없었다.

고개를 짧게 저은 레이가 콧잔등을 매만지던 찰나.

갑작스러운 굉음이 귓가를 울렸다.

콰앙!!

"?!"

빛의 성을 이루던 방벽 한곳에 쩍쩍 금이 갔다.

가장 안쪽의 내벽에 금이 갔다는 건 외벽이 죄다 뚫렸다는 걸 의미했다.

쩍쩍 금이 간 내벽은 곧 수복되기 시작했지만, 제대로 수복되기도 전에 갈라져 나간 틈을 검 한 자루가 파고들었다.

콰앙!!

굉음이 재차 울려퍼짐과 동시에 내벽까지 완전히 박살났다.

뚫려버린 구멍 너머로, 레이에게 요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이...! 레이, 괜찮아?!"

"요하나?"

레이가 당황해서 뚫려버린 벽으로 다가갔다.

벽을 뚫어낸 요하나가 빛의 성 안으로 비틀거리며 들어오더니, 무사한 레이의 모습을 직접 확인하고는 눈물을 왈칵 터뜨렸다.

"레이이흐엉..."

요하나가 뭉개진 발음으로 울먹거렸다.

오버드라이브의 반동 때문에 눈동자의 실핏줄이 죄다 터져 있는 요하나를 보고 레이가 깜짝 놀라 달려갔다.

"야, 야, 왜 울어?"

"레이허으엉..."

팔을 뻗어오는 요하나를 레이가 마주 안아 주었다.

요하나가 레이를 꽉 붙잡으며 안도와 서러움이 뒤섞인 울음을 터뜨렸다.

"어흐어엉..."

요하나는 오버드라이브까지 사용한 찌르기를 두 번이나 연속해서 사용했다.

그 반동 때문에 온몸의 뼈마디가 망치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지끈거렸고, 어깨와 허벅지 근육이 일부 파열되고 팔목이 비틀린 탓에 끔찍한 고통이 머리를 꽝꽝 울렸다.

요하나는, 레이가 지금까지 이것보다 더한 고통을 오랜 시간 묵묵히 견뎌내며 웃어주었으리라 생각하니 심장이 꽉 조여오는 것 같았다.

홀로 고통을 참으며 강한 척을 했던 레이에게 서러웠고, 레이의 고통을 알아줄 생각도 없이 매번 징징거리기나 했던 자신에게 더욱 서러웠다.

요하나는 레이 앞에서 눈물을 너무 자주 보이는 게 또 부끄러워 감정을 가라앉히려 애썼지만 좀처럼 잘 되지 않았다.

레이는 요하나가 신성 결계를 뚫기 위해 상당히 무리한 것을 깨닫고 앓는 소리를 내며 요하나의 등을 토닥였다.

그 모습은 잠시 지켜본 안소니우스가 뚫려있는 통로를 향해 몸을 돌렸다.

"다음에, 찾아가겠다."

레이에게 그리 통보한 안소니우스는 뚫려있는 통로를 통과하다 넬슨과 템플러들과 마주쳤다.

넬슨과 템플러들은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결계를 전개한 것이냐며 끊임없이 되물었는데, 안소니우스는 아주 짧게 대답하고 발을 옮겼다.

"사소한 오해가 있었다."

설명은 그게 끝이었다.

결국 요하나에게 관자놀이를 찍혔던 템플러가 조금이라도 자세한 설명을 듣기 위해 안소니우스를 쫓아갔다.

넬슨은 한숨을 삼키며 남아있던 템플러 한 명과 함께 빛의 성에 들어섰다.

템플러는 레이 품에 안겨 있는 요하나를 보자마자 목소리를 높였다.

"자문관에게 함부로 검을 겨눈 것도 모자라 해를 끼치다니, 대체 무슨 불경한 짓이냐!"

분노를 토하는 템플러를 일단 넬슨이 말렸다.

"생도의 돌발 행동에 대해 확실히 책임을 묻겠습니다. 엄벌이 불가피할 테니, 일단 그에 대해선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시지요."

"이지스에서 자체적으로 징계를 가한다고 끝날 사안이 아닙니다."

템플러는 넬슨에게 함부로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지만 분노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황실의 요청에 의해 자문관으로 참여한 템플러가 생도에게 급습을 당해 땅을 구르는 개쪽을 당했으니, 허허 웃으며 넘어가기는 완전히 글러 먹은 사안이었다.

넬슨은 한참 더 템플러를 진정시키기 위해 애썼다.

헌데, 넬슨과 템플러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레이가 불쑥 입을 열었다.

"잠시만요."

레이가 손을 휘휘 젓더니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 채 건방을 떨었다.

"아니아니, 무슨 말씀들을 하십니까."

"...?"

템플러가 레이를 위아래로 살폈다.

별 상처가 없어 보였기에, 템플러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경고했다.

"네가 낄 자리가 아니니 조용히 있어라."

"329번, 301번 생도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대기해라."

넬슨이 그리 덧붙였다.

허나 레이는 한 걸음 더 다가오며 도리어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

"아니 훈련 상황도 아니었고, 가만히 대기하던 생도가 위험한 상황에 처했으면 적극적으로 구호조치를 해야죠. 신성결계든 마법결계든 바로 깨부수고 진입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어떻게 일개 생도보다 대처가 늦을 수 있단 말입니까."

"329번, 다시 말한다. 301번 생도를 데리고..."

"교관님, 이렇게 누구 눈치 본다고 늦장 대응하면, 내가 당신들을 신뢰하고 애들을 맡길 수 있겠나?"

"..."

넬슨과 템플러가 레이를 다시 돌아보았다.

템플러는 금방이라도 욕설을 내뱉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스스로가 성직자라는 걸 잠깐만 망각했어도 아주 험한 욕설이 튀어나왔을 것이다.

템플러가 언어를 최대한 순화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데 넬슨이 선수를 쳤다.

"자문관님, 잠시 자리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

"제국을 우습게 보는군. 기가 찰 만큼."

지하의 암실에서 한 남자가 그리 말하며 코웃음을 쳤다.

"사나운 짐승의 코털만 뽑는 격이지. 아니, 코털을 뽑지도 못하겠군."

제국, 그것도 제국의 중심인 황도는 소수의 병력만으로 유의미한 피해를 줄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로드 급 정도 되는 전력이 참여한다면 꽤 깊은 생채기를 낼 수는 있겠지만, 딱 그정도였다.

황도는 인류가 지닌 가장 강력하고 견고한 요새였고, 로드 급 두셋이 달라붙는다 해도 군단의 지원 없이는 공략이 아예 불가능했다.

남자의 조소가 이어지자 두꺼운 로브를 뒤집어 쓰고 있던 자가 은은한 자줏빛을 발하는 검을 탁자 위에 꽂아넣었다.

남자가 자줏빛 검을 바라보다 눈썹을 치켜올리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뭐 어쩌라고.

그런 뉘앙스가 느껴지는 태도였다.

분위기가 험악해지려던 찰나 어둠 속에서 아주 독특한 형상의 눈동자를 빛내던 여자가 손가락을 튕겼다.

"제국의 중심을 무너뜨릴 수는 없지."

그건 너무나 당연한 진실이었다.

"허나 몇 달은 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을 만큼 타격을 줄 수는 있을 거야."

그 또한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기에, 남자는 꽤 흥미롭다는 얼굴로 여자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배반 (5)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