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4화
"성물을 가지고 있나?"
"...?"
레이는 안소니우스가 먼저 말을 걸었다는 것 자체에 당황했다.
레이가 알기로, 안소니우스는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소통을 제외하면 대화 자체를 거부하다시피 하는 성격이었다.
안소니우스의 목소리를 처음 들어본 레이는 일단 입을 다문 채 안소니우스가 말한 '성물'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고민했다.
레이가 현재 지니고 있는 성물은 두 개였다. 단검과 브로치.
단검의 경우 급 자체는 정상급 성물이었다.
다만 내재된 신성력이 단단히 봉인되어 있어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단검과 다를 바 없이 고요했는데,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성능이 떨어지는 걸 막기 위한 조치였다.
하이템플러라 해도 작정하고 탐색을 벌이지 않은 이상 먼 거리에서 단검의 존재를 파악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레이의 생각엔 안소니우스가 단검보다는 브로치를 감지하고 접근했을 가능성이 컸다. 브로치는 밤낮없이 번쩍번쩍 하며 신성력을 내뿜어댔으니 말이다.
레이가 품 안에 손을 넣어 수호 훈장을 분리한 후 브로치를 꺼내 보였다.
"혹시 이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
안소니우스는 차가운 표정으로 브로치를 바라보다 팔을 뻗어 손에 쥐었다.
하이템플러의 시점에서 바라보기에, 레이의 브로치는 참... 괴상한 물건이었다.
결국 안소니우스의 무거운 입이 다시 열렸다.
"어디서 구한 거지?"
"지인에게 선물 받았습니다."
"..."
신성력을 축성시켜 성물을 제작할 때도 '기술'이 필요하다.
신실하고 원숙한 성직자는 축성 작업을 할 때 결코 무식하게 신성력을 때려넣지 않았다.
진정 급이 높은 성물은 평소에는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다가 기적이 필요할 때 빛을 발한다.
헌데... 레이가 지닌 브로치는 정말 무식하게 신성력이 때려 박혀 있었다.
그 어떤 기술적인 조율도 되지 않은 브로치는 계속해서 신성력을 뿜어대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나름대로 기능은 하고 있었다.
안소니우스는 이런 불균형한 성물을 템플러 직위를 얻은 뒤 처음 보았다.
"..."
어쨌든 브로치에 깃든 수준의 신성력을 응축시키려면 고위 성직자가 다수 달려들어 꽤 오래 공을 들여야 했다.
이런 물건은 보통 전략 물자 취급받아 개인이 주고받는 게 굉장히 어렵거나 불가능했다.
그런데 지인에게 선물 받았다?
아예 말이 안 된다고 단언할 수는 없었지만 이래저래 위화감이 강했다.
"...지인 중에 성직자가 있나?"
"네, 있습니다."
"...이 수준의 성물은 개인이 사적으로 주고받기 어려웠을 텐데."
레이는 브로치에 관해선 설명하기가 곤란했기에 그냥 하하 웃었다.
"하이템플러께 그런 말씀을 들으니 낯이 좀 뜨겁습니다. 훨씬 대단한 성물을 많이 보셨을 텐데..."
"..."
"그 브로치는... 시험작 같은 것이라 들었습니다. 지인분께서 원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한 시험작을 선물해주신 것이죠."
스위치도 없어서 하루종일 빛을 번쩍번쩍 내뿜는 걸 성공작이라 부르긴 어려울 것이다.
레이는 그리 능청을 떨며 화제를 돌려보려 했다.
"명성이 드높은 하이템플러, 안소니우스님을 자문관으로 뵙게 되어 오늘을 정말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
"자문관님께서 소유하고 계신, 교단에서도 손에 꼽힌다는 성물을 구경할... 아, 이런 표현은 불경할까요? 죄송합니다."
"...성물은 나의 소유가 아니라, 교단의 것이다."
안소니우스는 그리 말하며 브로치를 레이에게 돌려주고는, 등에 메고 있던 방패를 레이에게 들어 보였다.
마름모 꼴의 방패는 끝이 두 갈래 갈라져 있었는데, 지면에 박아서 고정시키거나 남의 머리를 깨부술 수 있을 만큼 날카로웠다.
레이가 눈을 깜박이다 뒤늦게 입을 열었다.
"아, 영광입니다."
받은 것보다 더욱 크게 행하라.
교단의 교리 중 그런 문구가 있었다.
안소니우스는 자신이 레이의 성물을 가져가서 살폈기에, 레이에게도 동일한 기회를 제공해준 것이었다.
다른 의도가 있을 지도 모르지만, 레이는 일단 안소니우스의 행동을 그리 해석했다.
레이는 대단히 감격스럽다는 얼굴로 조심스레 방패를 받아쥐었다.
'이것도 정상급 성물이군...'
손으로 쥐어보니 방패 내부에 어마어마한 신성력이 응축되어 있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그냥 무식하게 응축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주인의 의지에 따라 원하는 현상을 발현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을 터다.
유려하게 디자인된 방패는 강렬하고 뜨거웠으며 또한 아름다웠다.
"이 성물은... 혹시 안소니우스 님께서 직접 축성하신 겁니까?"
"성녀님께서 축성하신 성물이다."
"아, 성녀님께서... 정말 영광입니다. 성녀님께서 안소니우스님을 마음 깊이 아끼고 사랑하심이... 성물에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성녀님께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자애로우시다."
"성녀님의 자애를 제가 감히 의심하겠습니까. 다만 성녀님이라 하셔도 혈육의 정은 품고 계실 겁니다."
레이는 안소니우스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사족을 덧붙였다.
안소니우스, 그에겐 누이가 신앙이었고 또한 삶의 이유였으니 말이다.
누이가 혈육의 정을 품고 있으리란 사족은 안소니우스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기 충분할 것이라고, 레이는 그리 생각했다.
잠시 침묵한 안소니우스가 답했다.
"성녀님이 나의 누이라는 걸 아는 자는... 교단 내에서도 다섯뿐이다."
"..."
레이가 속으로 욕설을 곱씹는 찰나.
레이의 손에 쥐여 있었던 방패가 스스로 안소니우스의 팔에 되돌아가더니 신성력을 토해냈다.
쿠웅!!
사방에서 빛의 기둥이 떨어져내렸다.
레이가 중심을 잡기 위해 몸을 낮춘 순간 빛의 기둥으로부터 신성 결계가 펼쳐지며 레이와 안소니우스가 서 있던 공간을 삽시간에 잠식했다.
레이는 어느샌가 빛으로 빚어진 거대한 성 한가운데 서 있었다.
변화한 풍경 속에서 안소니우스가 검과 방패를 들었다.
"정보의 출처를 밝혀라."
*
레이는 이 세상을 모른다.
빌어먹을 친구 놈이 옆에서 주절주절 떠들던 이야기를 몇 개 주워들었을 뿐이었다.
세계관이 암울한 소설이었던 만큼 등장인물들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것은 일상이었고, 안소니우스의 사연은 기구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유별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레이가 안소니우스의 사연만을 분명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그냥 친구놈과 안소니우스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던 날, 그날의 기분이 유난히 감성적이었어서 대화에 몰입했던 탓이 컸다.
안소니우스는 아주 어릴 때부터 부모가 곁에 없었다.
부모가 도망간 것인지, 아니면 불운한 사고 탓에 돌아오지 못한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거렁뱅이 생활을 해야 했다.
안소니우스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그의 누이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누이는 도둑질도 하고 구걸도 해보며 어떻게든 자기보다 더 어린 동생이 안 굶어 죽고 안 얼어 죽도록 보호했다.
안소니우스도 비쩍 마르긴 했으나 그의 누이는 정말 뼈밖에 안 남은 몰골로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그리 삶을 살아가다 누이가 교단에 선택받았고, 안소니우스는 누이와 함께 교단에 동행했다.
그리고...
현재 안소니우스의 누이는 성녀가 되어 엘-람의 기적을 내려받아 세상을 수호하고 있었다.
성녀는 마경의 침식을 억제하고 악한 것들과 투쟁하는 빛의 사도들을 축복했다.
안소니우스는 누이를 지키기 위해 템플러가 되었다.
그는 템플러가 되어서도 '고독한 늑대' 따위로 불리고는 했다.
안소니우스는 인간 불신 경향이 강했다.
기실 그는 누이를 제외한 모든 인간을 불신했다. 어쩌면, 누이를 제외한 모든 존재를 불신했다.
그가 지닌 신앙의 본질은 누이였고 그의 신실함이 향하는 곳도 누이였다.
"..."
레이는 안소니우스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사연을 친구놈에게 전부 들었고, 또한 대부분 기억하고 있었다.
친구놈이 이야기해주었던 내용에 따르면, 안소니우스가 사망한 시점에서 작품 내에 등장하는 인물들 대다수가 안소니우스와 성녀가 혈육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허나 그건 지금 시점보다 꽤 미래의 일이었다.
본래의 역사 속에서는 마경의 확장을 억제하는 데 실패한 교황청이 이전을 결정하게 되며 안소니우스의 축출 사태가 벌어지는데, 레이의 활약 탓에 이제는 사라진 미래일 가능성도 꽤 높았다.
결국 '안소니우스와 성녀가 혈육 관계인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는 현시점에서 절대 확신할 수 없는 정보였는데, 레이는 이를 간과했다.
레이는 뒤늦게 자신의 안이함과 실수를 깨달았으나 늦은 일이었다.
이미 안소니우스가 신성 결계를 전개했고, 레이는 빛으로 빚어진 성 한가운데 안소니우스와 대면해야 했다.
레이는 안소니우스를 경계하며 갑자기 뒤바뀐 풍경을 살폈다.
해독 권능이 발동해, 신성 결계의 기능이 무엇인지 레이의 뇌리 속에 박아넣었다.
'도주를 차단하는데 특화된 신성 결계...'
내부에서 이 결계를 깨부수고 벗어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이는 결계를 전개한 안소니우스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안소니우스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정보의 출처를 밝혀라."
안소니우스가 모든 무구를 전개해 위협적인 기세를 내보이며 레이를 향해 성큼 다가섰다.
레이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푹 쉬었다.
누이와 엮인 사안에 대해 앞뒤 안 가리고 발진하는 모습을 보니 안소니우스는 레이가 알고 있던 그 인물이 맞았다.
*
쿠웅-!!
"?!"
실외에서 대기하던 생도들이 동시에 눈을 돌렸다.
훈련장 부지 내부에 있는 건물 위로 갑자기 빛의 기둥이 뻗어 나오더니 빛으로 빚어진 성이 건물을 완전히 뒤덮어 버렸다.
저것이 일종의 고위 신성 결계라는 건 다들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저런 거대하고 강력한 결계가 갑자기 왜 전개되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넬슨이 자문관으로서 안소니우스와 동행했던 템플러 두 명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따져묻는듯한 넬슨의 눈빛에 템플러가 답했다.
"안소니우스 님의 신성 결계입니다."
답변을 하는 템플러도 당황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갑자기 신성 결계를 왜 전개했단 말인가?
넬슨은 침음을 흘리며 건물을 뒤덮어 쓴 빛의 성을 바라봤다.
넬슨 또한 결계를 전개한 안소니우스의 의도를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안소니우스가 전개한 결계를 무작정 깨부수고 진입할 수는 없었다.
안소니우스의 위치와 명성을 고려하면 그리 행동하는 건 부적절했다.
어떤 타당한 사유가 있었기에 안소니우스가 저런 결계를 전개했을 테니, 넬슨으로선 지원을 요청하고 상황을 지켜보는 게 최선이었다.
"생도들은 일단 결계에서 떨어져서 대기해라."
넬슨이 생도들을 뒤로 물리며 지원을 요청하려 했다.
지원이 도착하면 그때 다시 상황을 보고 대처할 생각이었다.
생도들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열을 맞춰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요하나만은 아니었다.
요하나는 신성 결계가 펼쳐진 건물에 레이가 들어가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역시나 레이는 보이지 않았다.
요하나가 곧장 넬슨의 팔목을 붙잡았다.
"교관님, 저 안에 레이가 있어요...!"
"...일단 물러나 있어라."
넬슨과 템플러들은 곧장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요하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줄 알고 이리 느긋하단 말인가?
당장이라도 결계를 깨부숴야 했다. 결계를 부수고 레이의 안전부터 확보해야 했다.
물론...
물론 며칠 전의 요하나였다면 이리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도리어 누구보다 느긋하게 상황을 관망했을 것이다.
요하나에게 레이는 무적의 영웅이었기에, 요하나는 자신이 방관자처럼 구는 걸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었다.
허나 이제는 아니다.
레이는 요하나가 상상하던 무적의 영웅이 아니었다.
요하나의 영웅이었던 소년은 겉으로는 웃음을 머금은 채 속부터 곪아 고통을 견뎌내고 있었다.
그걸 알게 된 이상 요하나는 더는 방관자처럼 굴 수 없었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면, 내가 해야 했다. 그러한 강박이 요하나가 검을 뽑아내게 만들었다.
촤악!!!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요하나가 검기를 방출했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검기가 빛의 성과 충돌해 파열음을 냈다.
빛의 성은 검기에 명중 당하고도 굳건했지만, 벽 일부가 잠시 갈라져서 일렁이다 다시 뒤덮였다.
안소니우스가 전개한 결계는 내부보다 외부에서 파괴하기 수월했기에 검기로도 피해를 입었다.
허나 완전히 뚫어내려면 평범한 검기로는 안 됐다.
요하나가 결계를 향해 발을 내딛자 템플러가 앞을 막아서며 고함쳤다.
"지금 뭐 하는 짓이냐!!"
"방해하지 마!!!!"
쩌억!!
요하나가 단숨에 템플러의 안쪽을 파고들어 무릎으로 템플러의 관자놀이를 찍어 눌렀다.
조금 방심하고 있던 템플러는 요하나의 기습에 가까운 일격에 제대로 대처 못하고 땅을 한 바퀴 굴렀다.
지켜보던 모두가 요하나의 돌발 행동에 경악했다.
특히 생도들은, 요하나가 자문관에게 무력을 행사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보고도 머리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입을 쩍 벌렸다.
요하나는 방해가 더 들어오기 전에 검을 쥔 손아귀에 힘을 불어넣었다.
결계를 단숨에 뚫지 않으면 다시 수복됐다.
단 한 번의 일격으로 결계 내부로 진입 가능한 통로를 만들어내야 했다.
액셀만으로는 결계를 뚫어내기에 충분한 위력을 발휘하기 힘들었다.
요하나는 관절 사이에 마나를 응축시켰다.
오버드라이브.
오버드라이브의 원리 자체는 레이와 함께 액셀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요하나도 익힐 수 있었다.
오버드라이브를 사용하면 몸이 반동을 견뎌내지 못해 관절이 박살 나다시피 하겠지만.
요하나는 개의치 않고 검을 찔러넣었다.
오버드라이브 활용한 1차 가속.
액셀을 활용한 2차 가속.
그리고, 장비하고 있던 아티펙트의 추력을 활용해 신체를 다시 한 번 가속시킨다.
잔상을 남기고 사라진 요하나의 검이 결계와 맞닿기 직전.
요하나가 검기 두 가닥을 이중나선 형태로 교차시켜 검 끝에서 폭발시켰다.
한순간, 짙푸른 섬광이 결계보다 밝게 빛났다.
배반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