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등가의 소드마스터-243화 (243/446)

243화

아티펙트 운용 실습.

2급 생도들은 아티펙트 운용 실습을 '어렵지만 재미있는 과목'이라고 3급 생도들에게 언질했었다.

3급 생도들은 아티펙트 운용 실습에서 여러 희귀한 아티펙트를 체험해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며 외부 훈련장으로 향했다.

입학 시험을 치렀던 장소이기도 한 외부 훈련장에 생도들이 도착하니 먼저 와서 기다리던 교관 두 명이 생도들을 환영해주었다.

한 명은 세리아였고, 한 명은 발칸이란 이름을 지닌 교관이었다.

생도들을 인솔한 넬슨이 뒤로 빠지자 생도들은 자체적으로 열을 맞추어 차렷 자세를 취했다. 단 한 사람을 빼고는 말이다.

"..."

훈련장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세리아에게 붙잡혀 간 레이는 현재 세리아의 품에 안겨 축 늘어져 있었다.

세리아는 축 처져 있는 레이를 들어서 굳이 발칸에게 내밀어 보았다.

"내 조카야."

"아, 예... 참 귀여운 조카군요..."

발칸도 보고 들었던 것이 있는지라 익숙하게 세리아의 장단에 맞춰주었다.

그렇게 세리아가 레이를 품에 안은 채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아티펙트 운용 실습은 어떤 과목이며 무엇을 배우며 왜 이수해야 하는가?

발칸이 이에 관해 생도들에게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세리아도 중간중간 끼어들어 조언을 덧붙였는데, 박자가 많이 느리긴 했지만 그래도 또렷한 목소리로 어순을 흩트리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전투용 아티펙트, 종류 다양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투용 아티펙트라 하면 방어막을 생성하는 갑주나 불을 내뿜는 검 같은 것을 떠올린다.

그런 인식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시중에서 접할 수 있는 대부분의 전투용 아티펙트가 그런 형태와 기능을 취하고 있었다.

허나 정상급에 가까운 수준의 아티펙트일수록 훨씬 다양한 기능을 지녔으며 훨씬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자체 기동, 적 추적 및 요격, 능동 방어, 술식 전개 방해, 범위 폭격 등.

다양하고도 치명적인 기능이 내재된 아티펙트는 전황조차 뒤바꾸고는 했다.

하지만 개인이, 특히 기사들의 경우 홀로 무한한 개수의 아티펙트를 사용할 수는 없었다.

원인은 두 가지였다.

일단 동력원의 문제가 컸다.

아티펙트에 저장된 에너지가 떨어지면 사용자는 자신의 마나를 소비해 아티펙트에 동력을 공급해주어야 했다.

그러나 코어에서 정제된 마나는 아티펙트를 작동시킬 때 효율이 좋지 않았고, 그렇기에 기사는 아티펙트의 사용을 자제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문제는 아티펙트를 제어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아티펙트 다수를 동시에 효율적으로 제어하려면 '병렬적 사고 회전'이 가능해야 했다.

근데 그 병렬적 사고 회전이란 게 굉장히 어려웠고, 연습한다고 쉽게 발전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역시나 이 분야도 재능이 중요했다.

"시범, 보여줄게."

세리아가 평범한 막대기처럼 생긴 연습용 아티펙트 다섯 개를 하나씩 쥐었다가 다시 놓았다.

다섯 개의 아티펙트와 정신이 연동된 것을 확인한 세리아는 다섯 개의 아티펙트를 동시에 움직여 허공에 띄웠다.

그러자 발칸이 생도들에게 명령했다.

"서로 거리를 벌려서 가운데 빈 공간을 두고 원형을 만들어서 서라."

생도들이 발칸의 명령대로 원형 대형으로 섰다.

그러자 허공에 둥둥 떠있던 다섯 개의 아티펙트가 생도들이 만들어낸 원 안으로 들어가 각기 다른 방향에서 땅을 긁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

모두가 얼마 안 가, 다섯 개의 아티펙트가 글씨를 땅에 적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티펙트들은 외곽에서부터 서로 다른 글씨를 적어가며 중앙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레이가 세리아 품에 안긴 채 한 마디 했다.

"고모, 혹시 '조카 귀여워' 같은 거 저기다 적으시면 전 바로 옥상에서 뛰어내릴 겁니다."

"..."

레이의 강경한 협박에 세리아가 시무룩해졌다.

결국 세리아는 반쯤 적었던 조카 어쩌구하는 문장을 지워버리곤 아티펙트를 다시 움직여 새로운 글자를 적기 시작했다.

세리아 알슈테인.

세리아가 아티펙트를 움직여 땅에 적은 것은 자기 이름과 성이었다.

"오..."

"우와..."

다들 감탄을 숨기지 못했다.

세리아가 다루는 다섯 개의 아티펙트는 제각각 자유롭게 움직이며 서로 다른 방향에서 중앙으로 모여들며 아주 정교하게 글자를 완성했다.

이지스에 소속된 교관들 중에서도 세리아 만큼 다수의 아티펙트를 동시에 정교하게 다룰 수 있는 자는 없었다.

레이 또한 세리아 품에 안긴 채 세리아가 보여준 신기를 보며 감탄했다.

레이도 과거의 전투에서 다수의 아티펙트를 한꺼번에 다뤄본 적 있었지만 기실 제대로 제어해내진 못했다.

레이는 복수의 아티펙트를 동시에 다루는 것이 힘들었던 탓에 하나를 먼저 사용하고 다른 하나를 이어하는 사용하는 식으로 아티펙트를 다루었다.

즉, 레이는 여러 아티펙트를 동시에 사용한 것이 아니라 순차적으로 사용했을 뿐이었다.

레이처럼 아티펙트를 다루면 다수의 아티펙트를 사용한다 해도 시너지를 제대로 만들어내기 힘들었다.

딱!

발칸은 손가락을 튕겨 들떠있는 생도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는 입을 열었다.

"모두가 세리아 알슈테인 경처럼 할 수는 없다. 나 또한 그렇다."

"..."

"아티펙트 중에서는 사용자의 제어를 보조해주거나 미리 입력해준 설정 값에 따라 자동으로 동작이 가능한 종류도 있다. 하지만, 아티펙트의 기능을 전부 끌어내기 위해선 결국 사용자의 역량이 따라주어야 한다."

발칸을 검을 뽑아내더니, 레이에게 눈짓을 하며 말을 이었다.

"자, 지금부터 3인 1조를 맺어 아티펙트를 다루는 훈련을 진행해볼 텐데, 그에 앞서 시범을 보여주겠다."

시범엔 레이도 참가해야 했다.

훈련 방식 자체는 단순했다.

레이는 세리아와 가볍게 검을 나누며 아티펙트 하나를 추가로 운용했다.

발칸은 레이 곁에서 다섯 개 정도의 동작을 무작위로 돌아가며 행했는데, 찌르기, 베기, 막기 등의 아주 기초적인 동작들이었다.

그러면 레이는 세리아를 상대하며 발칸의 동작에 맞춰 막대기 형태의 아티펙트를 움직여야 했다.

말 그대로 기초훈련이었다.

물론 보기보다 난도가 꽤 높았지만 레이는 쉽사리 세리아와 발칸의 합에 맞춰 성공적으로 시범을 보였다.

시범이 끝나자 세리아가 레이를 다시 들어 올려주었다.

"우리 조카 잘해."

"고모, 아니, 교관님. 특정 생도를 편애하는 건 부적절한 행동 아닐까요...?"

레이의 말마따나 다른 생도들은 전혀 부럽지 않은 눈으로 레이를 응시하고 있었다.

세리아는 아쉬워하며 반항기가 찾아온 조카를 내려주었다.

이후 생도들이 3인 1조를 이뤄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했다.

레이가 시범을 보일 때만 해도 간단해 보였는데, 생각보다 무지하게 어려웠다.

교관이 나눠준 막대기 형태의 아티펙트엔 사용자의 컨트롤을 보조하고 보정해주는 기능이 아예 누락되어 있었는데, 그 탓에 조금만 집중이 흐트러져도 아티펙트가 허공에서 제멋대로 빙글빙글 돌아댔다.

생도들은 세리아가 이런 걸 동시에 다섯 개씩이나 제어하며 글씨를 썼다는 것에 재차 경악했다.

한편 레이는 요하나의 검을 받아내주다 어색하게 웃음을 머금었다.

"왜 그렇게 표정이 굳어 있어?"

요 며칠째 레이는 요하나가 웃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레이가 요하나와 좀 더 거리를 좁히며 말했다.

"저번 일 때문에 그래? 나 걱정 안 해도 된다니까."

"..."

요하나는 짜증이 났다.

그냥 짜증이 났지만, 그걸 레이에게 호소할 수 없어서 더욱 가슴이 답답해졌다.

레이도 더는 요하나에게 뭐라 하지 못하고 검을 받아주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첫 번째 아티펙트 운용 실습 훈련이 끝났다.

생도들은 체력적으로 크게 힘들지 않았으나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앓는 소리를 냈다.

첫 번째 수업이니 만큼 빠르게 마무리 한 발칸이 생도들에게 막대기 형태의 아티펙트를 하나씩 분배했다.

틈틈이, 하루에 30분 이상 연습해라. 그게 발칸이 내준 과제였다.

모두가 세리아처럼 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아티펙트 한두 개 정도는 전투를 진행하며 자유롭게 다룰 수 있어야 했다.

그게 최소한의 목표치였다.

앞으로 수업이 진행되면 더욱 다양한 기능이 담긴 아티펙트를 완벽히 통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터다.

"하아..."

레이가 복잡한 감정이 깃든 한숨을 내쉬며 허공에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러자 아론이 레이의 팔뚝 위로 수건을 걸어주었다.

레이가 수건으로 땀을 대충 닦아내며 아론에게 물었다.

"다음 수업이 또 있어?"

어째 생도들이 부산스러운 것을 보니 일정이 마무리 된 것 같지가 않았다.

아론이 레이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오늘 기도 교육 있잖아. 여기서 바로 진행될 거야."

"아... 그래?"

과목 이름이 기도 교육이긴 했는데 사실 템플러 같은 성직자 계열의 병종에게 어떻게 대항해야하나 배우는 수업이었다.

레이는 슬슬 이지스의 커리큘럼이 본격적으로 돌아간다는 걸 느꼈다.

이후에도 온갖 병종에 대한 전투 교리를 생도들은 교육 받게 될 것이다.

"...아론, 우리 동기들 사이에서도 남부 출신 있지?"

레이는 성직자 이야기가 나온 김에 아론에게 물었다.

아론은 조금 머쓱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몇 명 있지."

"서로 문제 없지?"

"어, 다 잘 지내고 있어."

레이가 입학시험 때부터 혼자 워낙 날뛰어대서 다른 생도들의 초반 단합이 잘 된데다 다들 수업 따라가느라 정신 없을 때라서 문제 생기기도 어려웠다.

시간이 지나면 또 달라질 수 있겠지만 말이다.

레이는 아론을 보내놓고 홀로 실내 훈련장에 앉아 잠시 고민했다.

'남부... 변경백에... 마경, 그리고 교단도 있고...'

제국 남부의 국경 일부는 마경과 맞닿아 있었다.

그곳을 제국의 두 소드마스터 중 한 명이 수호하고 있었고 말이다.

그리고 신성 교단의 중심 또한 남부에 위치해 있었다.

교황청과 성녀 모두 남부 지역에 존재했다.

'교황청은 옛날부터 독립적인 지위... 자치권을 얻고자 노력해왔고...'

신을 모시는 우리가 제국의 영향 아래 계속해서 통제 받기 싫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변경백의 야망... 남부의 독립?'

남부를 제국에서 독립시키려 했다, 교단에게는 국가 내의 독립 국가 건설을 지원하기로 약속하고 지지를 얻어냈다...

뭐 그런 그림을 변경백이 그리고 있었다는 추측이 세간에 떠돌고는 했다.

레이는 변경백이란 인간이 정확히 어떤 욕망과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워낙 신실해서 교단의 독립을 지원하려 하는 인간일 수도 있고, 자기 국가를 세우고 싶은 야망을 지닌 인간일 수도 있었다.

아마도, 변경백이란 인간 또한 누구나 그렇듯 복합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쨌든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기에 과거 황위 계승 도중에 남부 측 귀족들이 꿍꿍이를 벌이는 것을 방치하거나 수면 아래서 협조했을 것이다.

허나 당시의 황제는 황위를 계승할 포이보스를 위해 일을 키우지 않기로 결정했었고, 지금 와서는 온전한 사건의 전말은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레이가 이에 대해 굳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어쩌면... 성검과 레아를 들고 남부로 튀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어.'

물론 택할 일이 생기면 안 되는 최후의 선택지였다.

이 선택지를 고르기엔 드래곤 하트의 문제도 있었고, 또한 불확실성이 너무 컸다.

"..."

레이는 습관적으로 콧잔등을 매만졌다.

레아 덕분에 말년조차 마음 편히 쉴 수 없다는 게 이래저래 성질이 났다.

'일단 남부 쪽 정보는 계속 신경 써야겠어.'

제국에 내부 갈등이 또 발생한다면 아무래도 그쪽 문제가 될 확률이 컸다.

생각을 정리해본 레이가 일어서려는데, 출입문이 천천히 열렸다.

레이가 출입문을 바라보다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생도 번호 329번, 레이입니다."

"..."

문을 열고 들어온 자는 하이템플러, 안소니우스였다.

안소니우스는 잠시 제자리서 레이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성물을 가지고 있나?"

배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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