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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가의 소드마스터-241화 (241/446)

241화

레이가 골골 거리며 침대에 누웠다.

치료사와 성직자가 다가와 레이의 상의를 벗겨내고 검진과 치료를 위해 필요한 준비를 시작했다.

레이는 조용히 누워서 치료사와 성직자가 준비를 마치길 기다렸다.

잠시 뒤, 치료사가 망원경처럼 생긴 아티펙트를 눈 위에 덮어쓰며 말했다.

"검진을 시작하겠습니다. 몸에 힘을 주시거나 코어를 활성화하시면 안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레이는 아예 눈을 감고 의식을 안쪽으로 집중했다.

괜히 마나가 새어나가면 검진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치료사는 레이가 기세를 완전히 가라앉힌 것을 확인하고 점검 차 손아귀 위로 신성력을 발현해 보았다.

고위 귀족가들이 신뢰하는 치료사쯤 되면 대개 성직자 자리를 겸하며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신체 검진에 신성력이 필수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시작합시다."

"네."

치료사와 성직자가 서로를 보조하며 허공에 균일하게 신성력을 발산했다.

발산된 신성력은 밀도의 균일함을 유지한 채 허공에서 육면체 형태로 자리잡았다.

치료사는 육면체 형태로 자리잡은 신성력을 레이를 향해 천천히 떨어뜨렸다.

화악!

레이의 몸이 신성력에 잠기자 빛이 일었다.

신성력이 레이의 체내에 흡수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빛이었다.

치료사는 아티펙트의 도움을 받아 레이의 체내에서 발생하는 신성력의 흐름을 살폈다.

신성력은 손상이 심각한 신체 부위에 집약되는 특성이 존재했다.

신성력의 밀도가 균일한 공간에 사람의 신체가 진입했을 때.

만약 특정 구간에서 신성력의 밀도가 높아진다면 이는 그 구간에 있는 장기가 손상되었음을 뜻했다.

치료사는 이러한 현상을 응용해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병을 진단한다.

무식하게 신성력만 쏟아부으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신성력이 만능은 아니었다.

신체에 종양 같은 게 생겼다면 신성력으로 치료가 힘들거나 도리어 악화시킬 수도 있었다.

선천적인 기형 같은 것도 마찬가지라서, 이런 경우엔 외과 수술이 필요했다.

치료사는 레이의 몸에 깃든 신성력의 흐름을 추적하며 인간의 신체가 그려진 종이 위에 무언가를 열심히 기록하다 눈살을 찌푸렸다.

"..."

치료사는 살짝 고개를 저은 후 계속해서 기록을 이어갔다.

이윽고 신성력이 만들어내는 빛이 줄어들자 레이가 재차 앓는 소리를 냈다.

치료사는 레이를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심장을 비롯한 주요 혈관 대부분이 너덜너덜합니다."

너덜너덜이 의학적 용어는 아니었지만 달리 대체할 표현이 없었다.

치료사는 잠시 레이를 치료할 현실적인 방법이 있는지 고민했다.

심장을 아예 갈아 끼우거나 강화한다... 이것도 그다지 현실적이진 않았지만 만약 가능하다 해도 임시 조치에 가까웠다.

주요 혈관 상태가 저래서는 상당히 절망적이었다.

본디 인간의 신체는 동일한 부위의 재생을 반복할수록 종양 발병률이 치솟고 수복 자체에도 하자가 생긴다. 이는 신성력을 활용한 재생에도 똑같이 적용됐다.

레이의 심장과 주요 혈관은 이미 너무 자주 손상됐다가 회복을 반복했기에 실력 있는 치료사가 곁에 붙어있다 해도 오래 연명하긴 불가능했다.

"혈압은... 높지 않군요. 혈관에 부하를 주지 않기 위해선 혈압을 낮추는 게 좋습니다만, 지금보다 혈압이 더 낮아지면 도리어 문제가 될 겁니다."

치료사가 미리 준비해왔던 혈압을 낮추는 약물을 옆으로 치웠다. 대신 은으로 도금된 작은 단검을 내밀었다.

"...일단 이걸 받으시지요."

레이는 낑낑거리며 단검을 받았다.

"이건... 성물입니까?"

"폐하께서 하사하신 성물입니다. 피를 묻히면 신성력이 흘러나와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크기는 작아도 정상급 성물이라고 설명을 덧붙인 치료사가 자기 가슴을 찌르는 시늉을 했다.

"정말 급하면 심장을 찌르십시오. 신성력이 심장에서부터 뻗어 나가 체내의 혈관과 주요 장기를 단숨에 수복시킬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추천해 드리진 않습니다."

그런 식의 급속 수복은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는 치료사의 조언에 레이가 힘 없이 웃었다.

치료사가 저리 말하는 걸 보니 어째 심장 찌를 일이 한 번은 생길 것 같았다.

어쨌든 여벌 목숨 비스무리한 것을 받아챙긴 레이가 치료사에게 물었다.

"제 몸은 어떻습니까?"

"...10년입니다. 무리하지 않고 요양을 열심히 하신다면 말입니다."

사실 10년도 불가능에 가까운 기간이었다.

당장 침대에 누워 남은 삶을 보내도 5년이 넘어가면 심장 발작을 달고 살아야 할 것이다.

"...심장은 잠시 멈춰놓고 휴식을 줄 수 있는 장기가 아닙니다. 계속해서 무리하시면 황궁의 치료사들이 전부 달라붙어도 3년도 힘들 겁니다."

"..."

꿀꺽

레이의 침 넘기는 소리가 치료사의 귀에 크게 들렸다.

차트를 보던 치료사가 고개를 들자, 여전히 덤덤한 표정을 덧씌우고 있는 레이의 얼굴이 보였다.

치료사와 성직자가 작게 한숨 쉬었다.

둘 다 이런 일을 하며 죽음을 많이 경험한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죽음과 맞닿아있는 사람을 마주했을 때 우울함을 잊기는 힘들었다.

한편 레이는 표정을 풀고 자기 뺨을 가볍게 쳤다.

새삼스러운 이야기 아니던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건 진즉 알고 있었다.

레이는 완전히 죽여놨던 신체의 감각을 되살리며 치료사와 성직자에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혹시 치료가 더 필요..."

벌컥!

갑자기, 문이 열렸다.

레이가 고개를 돌렸을 때.

초록색 눈동자를 가진 소녀가 그곳에 서 있었다.

"레이...? 지금 이거 무슨 말이야...?"

*

병동을 열심히 뒤진 끝에 회복실에 도착한 요하나는 안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사실 요하나는 귀를 기울이면서도 레이가 알아서 기척을 눈치채고 들어오라 하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품고 있었다.

허나 요하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레이는 요하나를 초대해주지 않았다.

레이는, 단지 너무나도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치료사와 대화를 나누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요하나는 별 생각 없이 그 대화를 훔쳐 들었다. 단지 장난이었다. 평소처럼, 그냥 레이의 반응이 보고 싶어 행한 장난이었을 뿐이었다.

"..."

그러나 대화의 내용을 들을수록 요하나는 몸 안을 흐르는 피가 차갑게 식는 듯 했다.

10년이니 3년이니 심장이니 혈관이니... 그런 이야기를 곱씹을 수록 요하나의 심장이 강하게 뛰었다.

심장이 아파서... 그래서 3년도 남지 않았다. 무엇이? 수명이?

하하...

말도 안 된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추측이었다.

내가 저 이야기를 잘못 이해한 걸까. 잘못 이해했겠지. 내가 무언가 잘못 들었을 거야.

요하나는 그리 되뇌며 스스로를 납득시키려 했지만.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회복실 문을 열고 레이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레이, 지금 이거 무슨 말이야...?"

"...!"

요하나를 마주본 레이가 눈을 크게 떴다.

요하나는 불안한 걸음으로 레이에게 다가가며 가빠진 호흡을 내뱉었다.

"레이, 지금 무슨..."

요하나의 녹색 눈동자가 초점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가늘게 떨렸다.

그 모습을 보며 레이는 당황해서 입을 뻐끔댔다.

레이는 직전까지 몸을 고의로 탈력시킨 채 누워있었던 터라 평소처럼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지 않았다.

레이가 당혹스러운 기색을 내보이며 가만히 굳어있자 요하나의 목소리에 불안 가득한 떨림이 더욱 분명히 묻어나왔다.

"레, 레이.. 어디 아파?"

레이가 아프다고?

요하나는 자기가 입에서 내뱉은 소리가 전혀 와 닿지 않았다.

남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면 비웃었을 것이다.

요하나에게 레이는 결코 무너지지 않을 바위 같은 존재였기에...

몸이 아파서...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가정 자체가 너무나 현실감이 없었다.

문 너머에서 엿들었던 이야기에 오해가 있었을 것이다.

내가, 회복실 안에서 레이와 치료사가 나누었던 대화를 일방적으로 오해했을 뿐이다.

10년이니 3년이니, 레이의 남은 수명이 그것밖에 안 된다는 것처럼 오갔던 이야기는... 단지 나의 오해였을 뿐이다.

레이는 나의 오해를 바로잡아줄 것이고, 그 후엔 낄낄 웃으며 나를 놀릴 것이다.

어쩌면 나를 놀리기 위해 레이가 치료사와 짜고 장난을 쳤을 수도 있겠지.

레이는 이 모든 게 장난이었다고 밝히고, 나는 무안해져서 화끈거리는 얼굴을 가리며 화를 낼 거야.

"레이..."

요하나는, 레이에게 놀림 받기 싫었기에 감정을 가라앉히며 차분해지려고 노력했다.

허나 그런 요하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먼저 맺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레이, 괜찮아? 괜찮은 거 맞지?"

"아... 괜찮으니까..."

"거짓말하지 마!!!"

버럭 소리를 지른 요하나가 거칠어진 호흡을 뱉어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숨기지 마...! 숨기지 말고 말해 줘. 아니지? 내가... 이상한 오해를 하고 있는 거지?"

요하나는 숨기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답을 애원했다.

터덜터덜 걸어온 요하나가, 레이의 손을 자기 뺨으로 가져가며 목소리를 쥐어짰다.

"레이... 내가 멍청하고 바보같은 오해를 해서... 내가... 막 울고 웃겨서..."

뺨을 타고 내린 눈물이 레이의 손을 적셨다.

당혹에 빠져 잔뜩 굳어있던 레이가 뒤늦게 정신을 다잡고 치료사에게 눈짓했다.

나가 있으라는 신호에, 치료사가 성직자와 함께 회복실을 나가 문을 닫았다.

레이는 거칠어진 호흡을 다잡으며 치료사와 나누었던 대화를 빠르게 상기해보았다.

레이와 치료사는, 둘 다 '수명'이란 단어만은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그런 단어를 직접 언급하는 건 서로에게 꺼져지는 일이었기에, 치료사는 넌지시 숫자만을 입에 담았고 레이 또한 그리했다.

아직은, 아직은 무마할 수 있었다. 그 핑계가 얼마나 어설프더라도, 무마할 수 있었다.

레이가 침을 한 번 크게 삼킨 순간, 요하나가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왜, 왜 대답이 없어!!"

"요하나."

"나 또 놀리려고 그러지!! 막, 나중에 가서 내가 울었다고 놀리려고, 그래서 지금 이러는 거지!! 재미없다고, 이런 장난!!! 진짜 재미없어!!"

요하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요하나는, 레이와의 헤어짐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잠깐의 헤어짐을 맞이한다 해도, 그저 잠깐의 순간이라 믿었고, 또한 언제든 레이를 찾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내가 손을 뻗었을 때, 당신이 나의 손을 붙잡아주리란 그 믿음을...

요하나는 눈이 오는 겨울날 레이가 처음으로 손을 뻗어주었을 때부터 간직하고 있었다.

"레이, 진짜 어디 아파?"

결국 요하나는 다시 그렇게 물었다.

레이의 답을 듣기를 두려워하면서도 가슴을 좀 먹는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레이는 물기가 가득 어린 요하나의 눈동자를 바라보다... 간신히 답했다.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돼."

"거짓말, 거짓말 하지 마!! 그런 식으로 대충 넘기려 하지 말라고!!"

"내 말 좀 들어!! 요하나!!"

레이는 도리어 요하나를 윽박지르며 허리를 일으켰다.

"그냥...!! 아픈 곳이 좀 있어! 어릴 때 무리를 많이해서, 내가 사용하는 기술들이 몸에 무리를 많이 줘서, 그래서 그래! 하지만 괜찮아... 10년 정도 요양하면 완전히 회복할 수 있고..."

3년. 3년이란 기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레이가 말 끝을 흐리다가 떠듬떠듬 변명을 만들어 냈다.

"앞으로 계속 무리하면... 나중에 코어를 운용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고 해. 치료사 님이 3년만 더 무리해도... 코어를 운용하기 힘들 거라며, 그래서 요양하라고 하셨어."

"하...!"

요하나는 기가 찼다.

레이의 말을 믿어야 될까, 알 수가 없었다.

레이는... 카렌에게 해주는 것처럼 요하나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어주지도 않았고, 루나에게 했던 것처럼 많은 비밀을 요하나와 공유해주지도 않았다.

요하나도 그걸 알고 있었다.

자신이 카렌처럼 사랑받지도, 루나처럼 의지되지도 않는다는 걸, 그걸 알고는 있었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못하고 숨겨왔다.

그렇기에 레이를 더 믿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레이의 말을 의심해버리면, 그 뒤에 다가올 진실이 더 무서워서, 요하나는 억지로 레이의 변명을 납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까지... 지금까지 숨긴 거야? 나한테? 다른 사람한테도?"

"아니, 요하나... 해결할 수 있는 문제야. 그냥, 휴식이, 휴식이 좀 필요할 뿐이야."

"그럼 대체 여기서 뭐하고 있는데?! 이지스에서 왜 무리를 하는 거야!!"

"걱정 안 해도 돼!! 그냥 이번 학기만 지켜보고...! 나도 쉴 거야... 걱정할 거 없다니까?"

"내가 어떻게 걱정을 안 해!!"

숨이 차올라, 요하나는 끅끅거리며 자기 가슴을 붙잡고는, 하염없이 떨어지는 눈물을 닦아내며 레이를 마주 봤다.

"레이, 레이 진짜로 괜찮아질 수 있는 거 맞지...?"

"그래... 너희가...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그래서 말 안 했어. 몇 년 요양하면 완전히 회복할 수 있어. 내가 익힌 검술이 워낙 반동이 강해서, 그것 때문에 문제가 생겼지만... 황제 폐하께서도 치료사를 보내 도움을 주시고 계셔."

레이가 억지로 입 꼬리를 올리며 문밖을 가리켰다.

"방금 나가셨던 분들도 황제 폐하께서 보내준 치료사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걱정할 거 아무것도 없어."

"레이..."

요하나가 침대 위를 무릎으로 기어와 레이를 꽉 끌어안았다.

요하나는 몸을 바들바들 떨며, 그럴수록 더욱 강하게 레이를 끌어안고는 레이의 어깨 위를 눈물로 적셨다.

"앞으로... 앞으로는 아프면 말해 줘... 숨기지 말고... 제발... 나 놀라게 하지 말고..."

"..."

레이는 한참을 망설이다 요하나를 마주 안아주었다.

너무 무서웠다며, 그리 말하며 눈물을 흘리는 요하나의 온기를 느끼며 레이는 이를 악물었다.

만남이 있다면 이별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레이는 너무나도 잘 알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이별이 두려워서, 아프지 않게 이별하는 법을 아직 알지 못했기에, 결국 후회하리란 것을 알면서도 다시 거짓을 입에 담았다.

배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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