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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가의 소드마스터-232화 (232/446)

232화

"3급 생도 중에 '덜컥이'가 나왔다고?"

2급 생도들이 머무는 기숙사가 시끌벅적해졌다.

'덜컥이'가 나왔다는 소식에 단숨에 20명에 가까운 생도들이 넓은 복도에 모였다.

'덜컥이'는 말 그대로 성검을 덜컥거리게 한 사람을 칭했다.

성검을 당장은 뽑지 못했더라도, 성검을 덜컥이게 했다는 건 장래에 성검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추었음을 뜻했다.

이지스 생도들을 비롯해 성검을 손에 쥐어보는 것을 허락받은 집단이 몇 군데 더 있었는데, 당대에 성검을 덜컥이게 한 자는 정말 극소수였다.

3급 생도 중에 덜컥이가 나왔다면 당대의 덜컥이들 중 최연소일 터다.

"그래서 덜컥이가 정확히 누구야?"

"어... 이번 기수 수석이라고 들었는데?"

"수석? 걔 평민 아니야?"

"아마 평민 맞을걸?"

"아, 왜 하필 평민이야-!"

2급 생도 중 귀족 한 명이 비명을 지르자 주변 생도들이 낄낄거렸다.

"우리 귀족 나으리께서 배알이 꼴려서 어떡하실까?"

다시 한 번 낄낄거리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3년 동안 서로 얼굴보며 줄기차게 구른 만큼 이런 농담쯤이야 웃으며 할 수 있었다.

속마음이야 어떻든 이런저런 농담 따먹기가 이어지던 와중 2급 생도 한 명이 불쑥 입을 열었다.

"그... '부러진 직검'이 성검을 반쯤 뽑았다가 다시 박아넣었다는 소문이 있던데?"

웃지 못하고 정색하고 있던 생도들 몇몇도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했다.

성검을 반쯤 뽑았다가 다시 밀어 넣었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리란 말인가.

"하아, 부러진 직검인가 뭔가 그놈은 저번부터 자꾸 이상한 소문을 달고 다닌다?"

"그래도 태도는 깍듯하더만. 나중에 건수 잡았을 때나 기합 한 번 잡든가."

"이야... 그래도 역시 바지부터 벗는 놈들 유별난 건 어디 안 가?"

다시 한 번 웃음소리가 터졌다.

*

이지스의 교장실에서.

학교장, 카르민과 독대하게 된 넬슨이 곧바로 따져 물었다.

"적어도 제 눈에는, 뽑혀나온 걸 밀어 넣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넬슨이 자기 몸을 움직여 검을 바닥에 꽂아넣는 시늉을 했다.

평소 점잖던 넬슨이 허공에다 손짓 발짓을 하고 있으니 그 모습이 꽤나 우스꽝스러웠다.

허나 넬슨은 진지했고, 카르민 또한 웃지 못했다.

넬슨은 몇 번 더 검을 꽂아넣는 시늉을 하고는 재차 물었다.

"대체 뭐하는 자입니까? 입학 시험에서도 문제를 일으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냥 '미친놈이구나' 납득하고 넘기기엔 보통 일이 아니었다.

성검을 정말 뽑아놓고 밀어 넣었는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성검이 절반 가까이 뽑혀 나왔던 건 사실이었다.

흔히 말하는 '덜컥이'들 중에서도 그만큼이나 성검을 뽑아낸 자는 없었다.

더군다나 레이가 당시 잠깐 드러냈던 기세는 평균적인 엑스퍼트 급을 월등히 상회했다.

결코 평범한 생도가 아니었기에, 넬슨은 교관직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레이의 신원을 정확히 알고자 했다.

카르민이 한숨을 내쉰 후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께서..."

"..."

"평범한 생도처럼 대하라 명하셨네."

넬슨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황명입니까?"

"황명일세."

이번엔 넬슨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레이'라는 생도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지스에서 난리를 치는지 대체 상상이 가지 않았다.

비밀 요원이면 비밀 요원답게 얌전히 지내든가, 온갖 사건 사고를 벌이면서 생도 흉내는 왜 내고 있단 말인가?

넬슨은 두통이 오는 걸 느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일단 지켜보겠습니다."

까라면 까야 하는 법이었다.

*

성검을 한 번씩 쥐어본 3급 생도들이 기숙사로 돌아왔다.

입학 첫날인지라 별다른 추가 일정은 없었다.

넬슨이나 다른 교관으로부터 이지스에서 생활하는데 주의해야 할 점을 이것저것 듣다 보니 하루가 다 갔다.

하늘이 어두워지자 3급 생도들은 인원파악을 마친 후 다들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서, 아론이 눈치를 보다 물었다.

"어... 불 끄겠습니다?"

"그래, 불 꺼. 그리고 동기 사이에 왜 존댓말을 해? 편하게 해, 편하게."

"..."

아론은 참 할 말이 많았다.

마음 같아선 너 대체 뭐 하는 새끼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래도 일단은 눈치가 보여 레이가 하는 말을 들었다.

달칵!

아론이 소심한 손길로 벽에 있는 버튼을 눌렀다.

천장에서 발광하던 등이 꺼지며 방 안에도 어둠이... 찾아오는가 싶었지만.

화악!

"...?"

"...?"

레이와 아론이 동시에 한 곳을 바라봤다.

벽에 걸린 레이의 정복으로부터 밝은 빛이 뻗어나오고 있었다.

태양 아래에선 눈치채지 못했는데 주변이 어두워지니 바로 티가 났다.

레이가 의아해하며 정복을 살폈다.

정복을 벗었을 때 안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브로치가 환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신성력?'

레이가 카렌이 준 브로치를 들어 올렸다.

카렌이 처음 주었을 때와 비교해서, 정말 말도 안 되는 농도의 신성력이 브로치에 깃들어 있었다.

오늘, 성검을 뽑았을 때.

성검을 타고 흘러 빠져나왔던 신성력 일부가 어디에 깃들었는지 레이는 그제야 깨달았다.

"하..."

새롭게 깃든 신성력이 카렌이 축성시킨 브로치의 기능을 몇 단계나 강화했다.

이 정도면 착용하고만 있어도 신체에 쌓인 피로를 상당 부분 경감하고 자잘한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 터였다.

기능적으로는 낙제품이었던 이전과는 달리 이제 카렌이 선물한 브로치는 꽤 상등품의 성물과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강화됐다.

이게 단순히 우연 때문에 일어난 일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레이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레이가 브로치를 매만지다 서랍 속에 넣었다.

서랍 속에서도 빛이 흘러나왔지만 그래도 새어나오는 광량이 많진 않았다.

레이가 다시 침대에 누우며 말했다.

"그만 자자."

"어, 어, 그래."

기숙사 첫날밤, 아론은 꽤 오래 잠자리에서 뒤척였다.

*

입학 둘째 날.

본격적으로 이지스의 훈련이 시작됐다.

전문적인 훈련은 적응기간을 거치고 시작됐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빡쎈 체력 단련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뛰어!!"

아침부터 3급 생도들이 체련장 주위를 열심히 뛰었다.

넬슨이 옆에서 같이 뛰며 호흡을 맞추고 있었는데, 레이는 노인네가 잘도 뛴다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지스 생도들 대다수는 달리기에 이골이 나 있었다.

물론 이지스는 체력 단련을 단순 달리기로 메우지는 않았다.

체련장을 반쯤 돌았을 때, 인위적으로 세워진 암벽이 나타났다.

높이가 10 m 가까이 되었는데 당연히 올라가야 했다.

"등벽 실시!!"

"우아아아!!!"

생도들이 우르르 달려가 암벽에 달라붙었다.

마나를 사용하면 뛰어서 올라갈 수도 있었지만, 마나로 근육을 강화하는 등의 꼼수를 부렸다간 바로 얼차려였다.

몸이 가벼운 생도들은 암벽을 날쌔게 올라갔고 근육이 좀 비대한 생도들이 오히려 더 고생했다.

어쨌든 다들 신체단련만은 혹독히 한 엘리트들이었기에 쉽사리 암벽을 타고 올라간 뒤 밧줄을 잡고 반대쪽으로 내려왔다.

그걸 몇 바퀴 반복하고 나자 넬슨이 생도들을 멈춰 세우고 명령했다.

"환복 실시!!"

생도들의 앞에는 새 훈련복과 두꺼운 갑옷이 놓여있었다.

물론 좋게 표현해서 갑옷이었고, 기실 제대로 된 형식의 갑옷도 아닌 그냥 몸 위에다 덮어씌울 용도의 더럽게 무거운 쇳덩이였다.

생도들은 잠깐 망설였는데, 다른 게 아니고 남들 앞에서 옷을 갈아입으라는 명령 때문이었다.

속옷은 벗지 않아도 되었지만 남녀가 뒤섞인 가운데 훌렁훌렁 탈의를 하는 것도 좀 화끈거리는 일이었다.

"환복 실시!!!"

넬슨이 재차 외쳤다.

어차피 훈련 받다 보면 이보다 훨씬 못 볼 꼴도 서로 보게 되어 있었다.

넬슨의 외침에 그제야 생도들이 다급히 겉옷을 벗었다.

레이 또한 훈련복을 벗고 새롭게 지급된 옷으로 갈아입으려 했는데, 자연히 주변 시선이 쏠렸다.

"...!"

생도들은 잠깐 수군거리다 넬슨의 눈치를 보고 빠르게 옷을 갈아입었다.

물론 넬슨도 내색만 안 했을 뿐 당혹스러운 감정을 품은 채 레이에게 계속해서 시선을 두고 있었다.

"뛰어!!"

넬슨의 외침과 함께 3급 생도들이 쇳덩이를 몸에 걸치고 다시 달렸다.

슬슬 3급 생도들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나왔다.

달리는 것만으로도 그랬는데, 거추장스러운 쇳덩이를 걸친 채 암벽을 오를 땐 숨이 턱턱 막혔다.

허나 넬슨은 계속해서 생도들을 몰아붙였다.

그리 3바퀴 쯤 돌았을 때, 몇 놈 나자빠지고 나서야 휴식 시간이 부여됐다.

모두 주저앉아 헥헥거리던 와중 아론이 갈등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레이."

"어, 왜?"

"그... 몸에 흉터는 어쩌다 생긴 거야?"

아론이 용기를 내고 나서자 다른 생도들도 귀를 쫑긋 세웠다.

실례되는 질문이긴 했지만 정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레이의 상반신은 절반 가까이가 화상 흉터로 덮여 있었고, 그것 말고도 기스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

건방진 소리를 했다고 뺨을 얻어맞진 않을까.

아론은 뒤늦게 그런 걱정을 하며 레이의 눈치를 봤다.

허나 레이는 아론의 예상보다 훨씬 부드러운 목소리로 질문에 답해주었다.

"아, 몸에 있는 흉터? 이거 다 어릴 때 흉터야."

"...어릴 때?"

"어릴 때 노예로 붙잡혀서 학대를 받았거든. 끓는 기름이 몸에 부어지거나 쇠막대기로 찔리거나... 그때 학대 받으며 생긴 상처가 다 흉터가 됐네."

"..."

"..."

"..."

분위기가 그야말로 씹창이 났다.

몇몇 생도들은 이 자식이 혹시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닐까 의심을 품었지만, 그렇다고 레이 면전에서 구라 좀 치지 말라고 쪽을 주기는 인간적으로 힘들었다.

오직 요하나와 데런만이 서로 시선을 마주치며 눈을 깜박였다.

레이가 어릴 때 노예로 부려져? 오히려 레이가 지미나 매튜를 노예처럼 부리며 살아가지 않았던가?

어쨌든 레이가 분위기를 개박살을 내버린 후.

어디선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레이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다 이내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 쥬세핀을 발견했다.

"...넌 왜 우냐?"

쥬세핀은 눈가를 훔친 후 잠긴 목소리로 답했다.

"흡... 나는... 나는 네 성격적 결함이... 그런 과거에서 비롯되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

공감성과 감수성 넘치는 쥬세핀을 보고 레이가 깝깝한 감정이 담긴 표정을 짓더니, 얼마 안 가 이실직고했다.

"방금 그 얘기 거짓말이었는데?"

"...!"

쥬세핀이 큰 충격을 받은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레이가 거짓말을 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레이는 쥬세핀을 보다보면 알레시아 생각이 간간이 났다.

알레시아에서 무재 스탯을 3 point 정도 올리고 지능 스탯을 2 point 정도 낮추면 저런 게 튀어나오지 않을까...

뭐 그딴 생각을 레이가 하고 있는 사이 넬슨의 외침이 들려왔다.

"내가 언제 잡담을 허락했나?!"

생도들이 입을 다물었다가, 곧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

힘들었던 하루의 훈련이 끝났다.

3급 생도들에게 준비된 초반 훈련은 그 목적이 기강 잡기에 맞춰져 있었다.

때문에 좀 무식하게 굴리는 면이 없잖아 있었는데, 레이에게 있어서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제 입학한지 이틀째였지만 레이는 벌써부터 강한 후회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안 되겠다, 그냥 적당히 신분 까고 편하게 지내자...'

레이는, 다른 놈들 아장아장 기어 다닐 때 갈려나갔던 관절을 이지스에서 또 갈아버릴 수는 없었다.

어차피 힘숨찐 노릇하긴 글러먹었다.

레이가 걱정했던 것에 비해 이지스의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기에, 레이는 그냥 요하나와 데런이 한 학기 정도 적응기를 가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편하게 놀고먹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스페라의 약혼자 신분이면 충분하겠지.'

당장은 아니더라도 기회 될 때 신분을 까자.

레이가 그리 생각하며 이지스의 목욕탕으로 향했다.

3급 생도들은 특별한 날을 제외하면 대형 목욕탕은 이용 불가, 평소엔 옆에 딸린 작은 목욕탕만 이용해야 한다... 따위의 악습에 가까운 무언가가 존재하긴 했는데 레이는 당연히 신경도 쓰지 않았다.

원래 규칙상으로는 대형목욕탕도 3급 생도들이 이용 가능한 시간대가 있었다.

그리고 레이는, 그 규칙을 보고 욕탕으로 들어가 물속에 몸을 담갔다.

"왜 아무도 없냐?"

정말 아무도 없었기에 레이는 첨벙 거리며 목소리를 냈다.

욕탕 안을 레이의 목소리만 홀로 왱왱 울렸다.

그때, 2급 생도 두 명이 대형 목욕탕으로 들어왔다.

2급 생도 둘은 이제는 마음껏 대형 목욕탕을 이용할 수 있음을 기뻐하며 안으로 들어왔다가, 먼저 왔던 손님인 레이와 눈이 마주쳤다.

"?"

"?"

"?"

세 사람이 동시에 물음표를 떠올렸다.

2급 생도들은 3급 생도놈이 왜 대형 목욕탕에 자리잡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고, 레이는 2급 생도놈들이 왜 이 시간에 대형 목욕탕에 들어왔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갈색 머리를 지닌 2급 생도 한 명이 당황해서 눈을 깜박이다 이내 분노했다.

"야이씨, 너 3급 생도지."

"예, 그렇습니다."

"이 새끼가 지금... 야 일로 튀어나와."

"...?"

레이는 짜증이 불쑥 차올랐지만 일단 갈색 머리가 시키는 대로 탕에서 몸을 일으켰다.

갈색 머리는 연거푸 분노가 담긴 외침을 이어가려다 레이의 상반신을 뒤덮은 흉터를 보고 덜컥 굳었다.

한편.

갈색 머리 옆에 있던 2급 생도, 세바스 릴포드는 레이의 다른 것을 보고 경악했다.

"...!! 아니, 저 고추는...?!"

이지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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