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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가의 소드마스터-223화 (223/446)

223화

검기의 특성은 개인 편차가 컸다.

동일한 마나 연공법과 정제법, 검술을 익힌다고 해도 개인마다 조금씩 차이가 발생했고, 그 기반이 다르면 편차는 더욱 커졌다.

때문에 각 세력이 보유하고 있는 검술에는 강점과 단점이 존재했으며, 세상의 수많은 검술 중에선 검기를 방출하는데 특화된 종류도 있었고 그 반대의 것도 있었다.

예컨대, 제국의 아랑검은 검기를 방출하는데 특화된 검술이었다.

아랑검을 충분히 숙련하면 먼 거리에서 움직이는 표적도 유도 검기로 요격할 수 있었다.

그와 반대로, 프리슬란 가문의 비전 검술은 힘이 안쪽으로 집약되어 얽히는 성질이 강해 검기를 방출하기엔 부적합한 면이 있었다.

물론 그러한 단점을 가진 대신, 프리슬란 가문의 검술은 굉장히 강력한 검강을 구현할 수 있었다.

허나 그런 검술 간의 편차를 떠나서.

엑스퍼트 급에 이른 무인에게 검기 방출은 기본 소양이었다.

당연히 구사할 수 있어야 하는 기술이라는 뜻이었다.

정말 아무리 유별난 검술을 익혔다고 해도...

검기를 30 m까지 뽑아내는 것보단, 검기를 쏘아내 30 m 떨어진 표적을 타격하는 것이 너무나도 압도적으로 쉬웠다.

애당초, 엑스퍼트 급이 검기를 30 m 뽑아내는 게 가능한 일이기는 한가?

물론 레이가 뽑아낸 검기의 실질적인 살상 반경은 몇 미터 수준이었지만, 어쨌든 레이는 겉으로나마 30 m 길이의 검기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건 엑스퍼트 급의 마나 제어력으로는 절대 실현 불가능한 수준의 기예였다.

그렇기에...

레이를 지켜보던 모두는 레이를 '단단히 미친 새끼'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레이는 매우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도 굳이 바보 흉내를 내며 시간을 질질 끌어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리 모두의 시선을 자신에게 모은 후에야, 30 m 길이의 검기를 발현해 턱걸이로 1차 시험 낙제를 면했다.

이건 그야말로.

'순수한 기만'이었다.

시험장에 있는 모두에게 엿을 처먹인 레이는 자기 혼자 낙제를 면한 것을 좋아하며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해냈다아!!!!!!"

지켜보는 입장에서 전혀 그리 보이진 않았겠지만.

어쨌든 레이도 정말 필사적으로 도전해 1차 시험을 턱걸이로 통과한 것이었다.

간신히 개쪽을 당하는 걸 면한 레이가 허공에 연거푸 주먹질을 하며 환희를 토해냈다.

몇 번 더 그리 남들의 속을 박박 긁은 레이가 옆에 선 시험관을 돌아봤다.

레이는 달뜬 얼굴로 시험관에게 질문했다.

"2차 시험 과제는 뭡니까?"

원래는 알려주면 안 됐다.

허나 정신이 혼란스러웠던 시험관은 무심코 레이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정령사를 상대해야 한다."

"애미 씹..."

"..."

시험관은 레이가 제대로 미친 새끼라는 걸 재차 확인했다.

*

레이에게 기만질을 당한 응시생들은 당연히 분위기가 안 좋았다.

레이는 사로 위에서 굳이 시간을 끌며 응시생들의 비웃음을 유도하고, 막바지에 가서야 실력을 드러내 응시생들을 기만했다.

레이는 그들에게 크나큰 모욕감을 주었다.

다들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와중에, 낙제를 겨우 면한 레이가 사로에서 내려왔다.

레이는 2차 시험 과제를 고민하며 사로에서 내려오다가 쥬세핀과 눈이 마주쳤다.

레이는 마음이 심란했지만 그래도 인사는 해야겠다고 입을 열었다.

허나 쥬세핀은 레이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단단히 굳은 얼굴로 등을 돌렸다.

레이는 자기가 평민이어서 쥬세핀이 무시하나 싶었지만, 이내 관심을 끄고 2차 시험을 걱정했다.

'하, 시발.'

정령사는 또 어떻게 상대해야 한단 말인가.

레이는 지금 시점에서 스스로가 '눈에 안 띄는 평범한 생도'가 되기는 글러 먹었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레이는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라도 어떻게든 수습해야 했다.

'남은 시험 두 개는 평균보다 조금만 잘하자.'

1차 시험에서 레이는 점수 상으로는 최저점을 받았다. 기록이 30 m 였기 때문이다.

남은 두 시험에서 평균 이상의 점수를 받아야 이지스에 합격할 수 있었다.

레이가 그리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고 있는데 데런이 슬그머니 레이 뒤에 따라붙었다.

"형님... 꼭 그러셨어야 합니까...?"

데런의 목소리엔 질책의 감정이 살짝 섞여 있었다.

데런은, 레이가 정상적인 검기를 방출하지 못하는 '공간검 원툴 병신'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다.

아무리 데런이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있다 해도 그런 상상을 하기는 정말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데런은 레이를 은근히 질책했지만.

레이는 그런 데런의 입장을 모르고 반문했다.

"뭐가? 뭐가 꼭 그러셨어야 해?"

"..."

데런은 참 오랜만에 레이를 향해 눈으로 욕을 했다.

레이는 데런이 불순한 눈빛을 하거나 말거나 데런의 등을 슬쩍 두드려 주며 응원해주었다.

"2차 시험도 긴장하지 말고 잘 봐."

"...넵, 알겠습니다."

데런이 복잡한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

2차 시험은 실내에서 이루어졌다.

2차 시험 장소에는 결계가 덮여 있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외부에서 알기 힘들었다.

이는 시험을 보는 순서에 따라 유불리가 갈리지 않게 하기 위한 조치였다.

순번에 따라 두 명씩 순서대로 실내에 입장해야 했기에, 레이는 쥬세핀과 함께 마지막 순번이 오길 기다려야 했다.

레이는 어색함을 느끼면서도 쥬세핀과 대화를 시도했다.

"아, 저기..."

"..."

쥬세핀은 들은 척도 안 했다.

레이는 자신이 신분 차별을 당한다고 느꼈다.

결국 레이는 '신분차별자 쥬세핀'과의 대화를 포기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순번인 쥬세핀과 레이의 차례가 되었다.

시험관이 손짓했다.

"들어가라."

레이는 시험관의 안내를 받아 실내에 입장했다.

실내에선 이미 2차 시험을 마친 응시생들이 자잘한 상처를 입은 채 대기하고 있었다.

시험관이 2차 시험 설명을 시작했다.

"2차 시험에선 정령사를 상대하게 된다. 정령사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으며, 직접 공격과 직접 방어도 수행하지 않는다. 너희들은 정령사가 팔에 찬 흰색 완장을 검으로 베어내면 된다."

시험관이 흰색 완장을 품에서 꺼내 보여주고는 말을 이었다.

"평범한 완장이니 이걸 베어낼 때는 검기는 사용하지 말도록 해라. 최대한 빠르게 정령을 뚫어내거나 무력화시킨 후 목표를 완수해라. 목표를 완수할 때까지 소요된 시간이 짧을수록 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레이는 2차 시험의 취지를 이해했다.

'제대로 된 정령사'는 웬만해선 만나보기 힘들었다.

때문에 귀족이나 젠트리 계층인 이지스 입학 시험 응시생들도 정령과의 전투 경험은 적을 수밖에 없었다.

즉 이번 시험은, 익숙지 않은 전투 상황 속에서 응시생들의 기본 실력과 타고난 센스를 평가해보겠다는 뜻이었다.

시험관의 설명이 끝나자 200 m쯤 떨어진 거리에서 각각 쥬세핀과 레이를 상대할 정령사 두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

레이는 자기 콧잔등을 쥐어짰다.

시험 취지 자체는 이해되고 공감도 갔다.

시험을 복잡하게 꼬아내지 않고 아주 직관적으로 설계해, 무언가 헷갈릴 일도 없었다.

이제 정령사들은 정령을 실체화시킬 테고, 응시생들은 정령을 빠르게 무력화시켜서 길을 연 후 정령사의 완장을 베어내면 됐다.

굳이 정령이 역소환될 만큼 큰 타격을 입힐 필요도 없었다.

정령이 잠시 힘을 쓰기 어려울 정도만 타격을 입혀도 충분히 정령사를 노릴 수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가 문제였지, 해결 불가능한 어려운 시험은 아니었다.

허나 레이에겐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레이의 칼에 맞으면, 정령이 뒈졌다.

'돌겠네...'

레이가 머리를 쥐어 싸매고 고민했지만.

레이가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시험관이 신호를 보냈다.

"시작하겠다."

먼저 시험을 치른 응시생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2차 시험이 시작됐다.

레이를 막아내야 할 정령사가 하급 정령 둘과 중급 정령 하나를 소환했다.

레이를 향해 나아간 정령들이 동시에 불길과 바람을 뿜어냈다.

화아악!!!

자그마한 불길에 바람이 뒤섞이자 그 위력이 한 층 커졌다.

레이는 제자리서 망설이다 결국 검 위에 검기를 생성해 돌진했다.

불길이 코앞을 뒤덮는 순간, 레이가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 벴다.

촤악!!

불길이 갈라지며 틈이 드러난다.

레이가 그 사이로 몸을 빼낸 후 정령사를 향해 가속했다.

그러자 황소를 닮은 중급 화염 정령이 레이의 앞을 막아섰다.

중급 화염 정령은 레이를 향해 불길을 뿜어내며 마주 돌진했다.

허나 중급 정령치고는 불길의 위력이나 돌진 속도가 그다지 강력하지 못했다.

시험 난도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정령사의 명령 아래 일부러 위력을 조절한 것이었다.

"...!"

레이는 자기 시야를 가리는 불길부터 베어냈다.

촥- 검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불길이 갈라지자, 그 틈으로 중급 화염 정령이 레이를 향해 뛰어들었다.

중급 화염 정령은 이번에 레이에게 타격을 허용해 잠시 무력화될 예정이었다.

정령은 검에 베인다고 죽거나, 상처를 입거나, 고통을 느끼지 않기에 중급 화염 정령은 레이에게 다가가면서도 어떤 두려움도 가지지 못했다.

허나 중급 화염 정령의 예상과는 달리.

레이는 불길 사이로 몸부터 들이미는 정령을 보며 기겁했다.

"아니, 좀!!"

레이가 앞을 향해 휘두르려던 검을 다급히 회수했다.

그대로 바닥을 한 바퀴 구른 레이가 코앞까지 다가온 중급 화염 정령을 옆으로 걷어찼다.

물론 거대한 덩치의 정령을 걷어차서 옆으로 밀려난 건 레이였다.

레이는 바닥 위를 미끄러지며 밀려나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정령사를 향해 가속했다.

[...?]

중급 화염 정령이 상황을 파악 못 하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그러다 중급 화염 정령은 정령사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뒤늦게 정신을 차린 뒤 레이를 뒤쫓았다.

레이는 사방을 에워싸며 압박해오는 불길과 바람을 연거푸 베어냈다.

촤악!!

'아오...!'

레이에겐 정령을 '안전하게' 공격할 방도가 없었다.

그렇기에 레이는 정령의 공격을 막아내며 전진하다가도 정령과 거리가 가까워지면 빙 돌아서 도망가야 했다.

레이는 그 짓거리를 수십 번 반복했다.

[그르르...!]

정령들도 레이를 상대하다가 약이 올랐는지 더 강력한 불길과 바람을 내뿜었다.

그 기세가 강맹해서, 방어구가 없는 엑스퍼트 급은 쉽사리 대처하기 힘든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레이는 귀신같은 검술로 정령들의 공격을 빗겨 쳐내며 차근차근 앞으로 전진해 나갔다.

정면에서 정령들을 상대할 수는 없었기에 빙빙 돌아야 했지만, 그럼에도 레이는 정령사와 거리를 계속 좁혀가고 있었다.

"..."

레이가 그리 헛짓거리를 하는 걸...

정령들의 계약자이자 황실 직속 마법사인 이그넷이 굳은 얼굴로 바라봤다.

조금 전, 이그넷 또한 레이가 1차 시험을 어떻게 통과하는지 지켜봤지만 큰 감흥을 느끼진 못했었다.

이그넷은 기사가 아니었기에 검기를 30 m나 뽑아내는 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지 잘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나 직접 레이를 상대해본 결과.

이그넷은 1차 시험에서 레이가 얼마나 개짓거리를 한 것인지 아주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이 씹새끼가...!"

레이는 시험 도중 자체 패널티를 부여해 장난질을 치며 다른 응시생들과 시험관들을 농락하고 있었다.

한 번으로 모자라, 두 번씩이나 말이다.

계속된 레이의 농락에 간신이 버티고 있던 이그넷의 이성이 뚝 끊어졌다.

황실 내에서도 성격이 까탈스럽다고 유명한 이그넷이, 결국 폭발했다.

"이 씹새끼가 감히 나까지 기만하고 능멸하려 들어?!!!"

이그넷이 분을 참지 못하고 상급 정령을 소환했다.

추후 징계를 받든 말든 저 씹새끼가 지랄하는 건 조져야겠다는 각오로 벌인 일이었다.

레이가 그꼴을 보며 마주 욕설을 토했다.

"아니 저 시발련이?"

기만 (5)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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