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홍등가의 소드마스터-202화 (202/446)

202화

메테오.

일국의 파멸을 초래할 수 있다고 전해지는 신화 속 섬멸 마법.

그 핵심적인 원리만 축약하면 '초장거리 게이트 생성을 통한 인위적인 천체 충돌을 유발하는 마법' 정도로 정의할 수 있었다.

이론 자체는 그럴듯했다.

하지만 메테오는 구현하는 게 절대 불가능하다고 수백 년간 평가받았다.

메테오를 시도라도 해보기 위해선 항성계 내에서 천체의 움직임을 마이크로초 단위보다 더 작게 쪼개서 밀리미터 단위까지 정확히 파악해야 했는데 이 전제조건 자체가 말이 안 됐다.

발을 디디고 선 행성의 공전과 자전부터 시작하여 우주 단위의 공간 좌표에선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았다.

또한 계산을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결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우주 공간에서 돌아다니는 천체는 행성과의 상대속도가 수십에서 수천 km/s를 쉽사리 넘나들었으니까.

허나 신화 속 대마법사 리실로테는 결국 이를 해냈다.

지상을 타격하는 데 사용할 천체를 특정한 후 우주 공간에 대규모 탐색 마법을 전개해 천체의 정확한 궤적과 형태 등 모든 정보를 수집해 변수를 최대한 제거했다.

이 작업을 하는 데만 어마어마한 자원과 시간을 필요로 했다.

이건 단순히 재능이 뛰어나고 경지가 높다고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리실로테 또한 그 사실을 알았다.

그렇기에, 리실로테는 수백 년의 간극을 넘어 루나에게 필요한 것을 건네줄 수 있었다.

[아프텔로부터 통신 중개.]

[리실로테 레코드 접속자가 오벨리스크 시스템에 접근 요청.]

[접속자에게 부여된 권한 확인 중···]

[최고 관리자 권한 확인.]

[환영합니다, 마스터.]

[오벨리스크 시스템 온라인.]

[데이터 전송 및 최고 관리자 보조 시작.]

루나의 시야에 우주 지도가 펼쳐진다.

수많은 천체의 궤적들이 손에 잡힐 듯이 들어왔다.

이건 리실로테의 악의와 광기와 염원이 녹아있는 안배였다.

메테오의 준비 작업에 필요한 시간을 극도로 단축시켜 그녀의 후인이 홀로 파멸을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마련한 장치였다.

오벨리스크 시스템이 루나의 계산을 보조한다.

리실로테조차 뛰어넘는 불가해한 재능이 리실로테가 남긴 안배와 만나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하려 하고 있었다.

[천체 검색 시작. 입력된 조건에 부합하는 후보군 산출···]

루나가 우주 지도를 살폈다.

자연 낙하하는 운석이라면 2 km 깊이의 지하도시를 파괴하기 위해선 직경이 500 m는 되어야 했다.

허나 이건 어디까지나 자연 낙하하는 운석을 가정했을 때 이야기였다.

자연 낙하하는 운석은 비스듬한 충돌 각도와 돌입 속도의 제한, 그리고 대기권 진입 시 발생하는 파손 탓에 위력이 감소했다.

메테오는 달랐다.

충돌 각도를 훨씬 가파르게 구현할 수 있었고 상대 속도 또한 선택 가능했다.

상대 속도가 높다면 운석의 직경이 작아도 충분한 파괴력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후보군 산출 완료.]

열두 개의 천체가 우주 지도에 표시됐다.

루나는 변수를 줄이기 위해 후보군 중 가장 행성과 가깝고 궤적이 안정되어 있는 천체를 선택했다.

천체의 직경은 약 340 m.

단단한 암석덩어리였으며, 메테오를 시전할 시 예상되는 충돌 속도는 50km/s에 이르렀다.

이게 떨어지게 되면 반경 100 km는 확실하게 초토화됐다.

루나는, 개의치 않기로 했다.

"흡..."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와 루나의 가슴을 타고 흘렀다.

아무리 리실로테의 안배가 있다고 해도, 아무리 루나의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네 개의 서클만으로 메테오를 전개하는 건 너무나 미련한 짓이었다.

네 개의 서클만으론 메테오의 술식을 감당할 수 없었고 마나의 총량 또한 부족했다.

서클 하나만 더 있었다면 자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루나로선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루나는 '발레리우스'를 모자란 서클의 대체품으로 사용했다.

으드드드득!!!

발레리우스가 역류하는 영맥과 드래곤 하트의 마나를 받아들이며 붕괴되어 갔다.

붕괴되어 가면서도 발레리우스는 초장거리 게이트를 전개하기 위한 한 축이 되어 제 역할을 했다.

메테오가 전개되는 곳은 드높은 상공 위였다.

결코 방해받아서는 안 되는 마법인 만큼 지면 가까이에 초장거리 게이트를 연결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메테오는, 항상 저 높은 하늘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후우욱!

하늘이 열리기 시작한다.

그 찰나 루나가 피를 한 번 더 왈칵 토했다.

정신이 잠시 흐트러지며 막대한 마나의 기류를 은폐하던 루나의 결계에 금이 갔다.

콰가가각!!!

루나가 서 있던 탑이 무너져 내리며 마나의 기류로부터 발생한 파동이 지하 도시를 넘어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이건 명백한 루나의 실수였다.

최대한 오래 마법의 발현을 숨겼어야 했는데, 본래 세운 계획보다 30분은 빠르게 노출되어 버렸다.

마나의 파동이 터져나간 후.

얼마 가지 않아 마물과 악마 숭배자들이 발악하듯 지하 도시로 쏟아져 들어왔다.

저런 잡병들은 괜찮았지만 로드 급 마족이 찾아오면 레이와 울트만으로 감당하기 힘들었다.

이곳과 지하 요새의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다고 해도 로드 급 마족이라면 한 시간 안에 여기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 혹은 눈치 싸움이었다.

과거에 리실로테는 텅 비어 있는 우주 공간을 하늘과 이어 메테오를 전개할 것처럼 위장한 뒤 적들이 도주하면 빈집을 털어먹은 적이 몇 번 있었다.

역사에선 리실로테의 마법이 '실패'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그건 명백한 위장 작전의 일환이었다.

로드 급 마족은 비상식적인 속도로 열려가는 하늘을 보며 혼란을 느낄 게 분명했다.

과거의 기억에 붙들려 있는 로드 급 마족은 하늘이 열렸다고 해서 함부로 지하 요새를 비울 수 없었다.

그 잠깐, 그 잠깐의 망설임만 있다면 루나에겐 충분했다.

은폐를 포기한 루나가 모든 정신과 마나를 마법을 완성하는데 집중시켰다.

드드드드득!!!

액체처럼 변해 흘러넘치는 마나의 물결 너머로.

레이와 울트의 분전이 루나에게까지 느껴졌다.

루나는 여전히 자신이 모자랐음을 슬퍼하며 손아귀를 말아쥐었다.

아직도, 아직도 많이 부족했다.

그를 위해 다음 발을 빠르게 내디뎌야 한다는 걸 루나는 다시 한 번 자각했다.

그래도, 당장은 이게 루나의 최선이었다.

쿠우웅!!!

마침내.

빛의 기둥이 솟구쳐 올라 푸르렀던 하늘에 이르렀다.

하늘이 깨져나간다.

깨져나간 하늘로부터 아름다운 별빛이 지상에 내려앉았다.

막대한 양의 대기가 별빛이 비치는 밤하늘로 빨려 들어갔다.

도도히 흘러가던 구름도 저 위에 나타난 밤하늘을 향해 형태를 일그러뜨리며 치솟았다.

태풍이 휘몰아치며 하늘의 모습이 변형되던 찰나.

밤하늘 사이를 거대한 운석이 파고들었다.

이내 운석은 불덩이가 되었다.

피투성이가 된 루나가 레이와 울트를 향해 손을 뻗었다.

거의 다 바스러진 발레리우스가 마지막 빛을 발해 루나와 레이와 울트를 공간의 틈으로 밀어 넣었다.

세 사람이 사라진 지면의 상공 위에서 불덩이가 빛났다.

초속 50 km, 시속으로 환산하면 180000 km/h의 속력을 가진 운석이 땅에 닿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고작해야 눈을 한 번 감았다 뜰 시간이면 충분했다.

불덩이의 궤적이 가파른 경사를 그리다가 지면과 맞닿은 직후.

번쩍, 빛이 일었다.

태양을 닮은 거대한 화염 덩어리가 지면에서 피어올랐다.

직경이 10km가 넘어가는 불덩이가 지상을 집어삼켰고 지면은 완전히 붕괴되며 붉게 녹아내렸다.

지하 요새 안에서, 6쌍의 눈을 가진 마족은 눈에 닿는 모든 것이 무너져 가는 걸 지켜보아야 했다.

지하 요새는 외부의 충격에 대비해 수많은 보강이 이루어져 있었지만 그 모든 게 너무나 하찮았다.

평범한 사람의 인지능력으론 무언가를 알아챌 틈도 없이 종말이 찾아왔다.

6쌍의 눈을 지닌 마족이 합일을 이루어가던 사체를 향해 손을 뻗음과 동시에.

지하 요새가 완전히 붕괴됐다.

운석의 파편은 지하 요새를 소멸시키고도 1 km 가까이를 더 파고 내려갔다.

지하가 붕괴되는 동안 지상은 불길에 휩싸였다.

열 복사와 증기 폭발에 의해 충돌 지점의 반경 50 km 안에 서 있던 대부분의 생물체들이 불타올랐다.

100 km 거리에 있던 생물체도 몸을 보호할 수단이 없다면 끔찍한 화상을 감수해야 했다.

열 폭풍이 지나간 뒤에도 재앙은 끝나지 않았다.

리히터 규모가 7이 넘어가는 지진이 발생하며 땅이 갈라지고 건물이 붕괴되었다.

수백 km 이상 떨어진 도시의 창문까지도 지진의 흔들림 탓에 쉽사리 깨져나갔다.

그리고.

열기와 지진이 지나간 지면을 운석의 충돌로 인해 압축되었던 공기가 폭발하며 휩쓸기 시작했다.

금지된 숲의 잔해들이 공기와 뒤섞여 수십 km를 날아가 처박혔다.

운석 충돌 지점에서 100 km 가까이 떨어져 있는 도시인 리오슈코에도 후폭풍이 들이닥쳤다.

지진 탓에 반쯤 붕괴되었던 건축물이 후폭풍을 이기지 못하고 뜯겨 나갔다.

기사 급 강자들은 후폭풍을 버텨낼 수 있었지만, 평범한 시민들은 하늘을 날다 추락해 머리가 깨져 죽어야 했다.

운석이 충돌했고.

금지된 숲이 불타올랐으며.

알리모 왕국에 속한 도시 3개가 완전히 괴멸됨과 동시에 알리모 왕국의 영토 삼분지 일에 달하는 지역이 메테오의 후폭풍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

만약 운석이 알리모 왕국의 수도에 떨어졌다면 그 결과는 몇 배 이상 끔찍했을 것이다.

영원할 것처럼 느껴졌던 지옥 같은 시간도 결국 지나갔다.

바람이 가라앉고 공기 중엔 분진이 흩날렸다.

은십자 기사단의 기사단장 길란트가 마침내 다시 몸을 일으켰다.

기사단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초인적인 신체능력을 지닌 기사까지 궤멸시킬 만큼 운석 충돌의 여파가 강력하진 못했다.

마법사들의 도움 또한 있어 불어닥친 후폭풍을 비교적 수월하게 버틸 수 있었다.

허나, 만약 메테오가 리오슈코와 조금만 더 가까이 떨어졌다면 엑스퍼트 급 기사들은 무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흐, 흐흐흐..."

살아남은 마법사가 실성한듯 웃었다.

길란트도 차라리 실성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웃고 싶었다.

눈을 돌리면,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리오슈코가 시야에 비쳤다.

건물은 모조리 붕괴됐다.

여기저기서 화재가 일어나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찢어져 나간 사람의 팔다리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

기도하시오.

마법사가 했던 말이 뇌리를 다시 울렸다.

왜 그가 그런 말을 했는지 이제야 와 닿았다.

우리는 저 천재지변 앞에서 얼마나 무력했는가.

검과 방패를 들어 올리고 마법사들을 재촉하면서도 결국 할 수 있는 건 메테오가 떨어져 내릴 지점이 부디 우리의 머리 위는 아니길 기도해야 했다.

길란트가 다시 금지된 숲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숲이 아니라 황무지라 불러야 할 금지된 숲 너머를 바라보았다.

"레온..."

스스로도 의미를 알기 힘든 길란트의 중얼거림이 탁한 공기를 타고 울렸다.

소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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