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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등가의 소드마스터-199화 (199/446)

199화

거점 방위 임무를 맡은 레이와 울트는 처음엔 꽤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지상에 몰려온 마물들이 지하도시를 감싸듯이 포위망을 형성하는 데만 시간이 꽤 걸렸다.

탐색하듯 천천히 포위망을 좁혀오다, 첫 번째 마물이 지하 도시에 진입했을 때는 이미 1시간 반이 지난 시점이었다.

적들은 승강기가 지나다녔던 길과 숨겨져 있던 좁은 통로를 활용해 지하 도시로 진입했다.

물론 레이와 울트에겐 젼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둘 다 온갖 아티펙트로 무장된 초인이었고, 더군다나 칼가를 비롯한 바람 정령들의 지원까지 있었다.

레이와 울트는 통로를 아예 막아 버리면 적들이 천장을 무너뜨리는 등 더 강경하게 밀고 나올 것을 우려해 적당히 길을 열어놓고 견제를 이어갔다.

그건 따분할 만큼 쉬운 일이었지만 체력이 문제였다.

울트는 당연했고, 레이 또한 심장에 부하를 가하는 코어를 오랜 시간 사용하자 정신이 아찔해졌다.

레이와 울트가 동시에 한탄했다.

"하, 이러다 죽겠네."

목소리는 가벼웠지만 농담 속에 진심이 꽤 섞여 있었다.

울트는 게네시스를 옆에 세워둔 채 활 형태의 붉은 아티펙트로 적을 요격하며 한숨 쉬었다.

지하 도시에 틀어박혀 적을 막아내는 것? 당연히 어렵지 않다.

허나 여기서 계속 버텨봤자 독 안에 든 쥐의 꼴을 자처하는 격이었다.

'환영에서 보았던 로드 급 마족이 직접 찾아오진 않겠지만...'

지하 도시 간에 거리도 꽤 있었고, 마족은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서 함부로 자리를 떠나진 않을 터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적진 한가운데서 농성하는 행위가 현명한 선택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니었다.

지원 병력도 기대할 수 없는 곳 아닌가.

울트는 루나가 얼마나 대단한 마법을 준비하는지는 몰랐지만, 7~8서클 수준의 단발성 섬멸 마법이 적진에서 3시간을 농성해야 할 만큼 가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레이가 인상을 구기고 있는 울트를 향해 입을 열었다.

"피곤해 보이십니다."

"너도 똑같은데."

울트의 답변에 레이가 낄낄 웃으며 황금색 창을 앞으로 쏘아냈다.

앞으로 나아가는 황금색 창을 바람 정령이 한 번 더 가속시켜 위력을 높였다.

콰앙!!!

승강기 쪽 통로를 통해 미끄러져 내려오던 마물, 롱테일이 머리가 꿰뚫린 채 축 늘어졌다.

이내 목이 찢어지며 거대한 몸체가 땅으로 쿵 떨어졌다.

레이가 창을 회수하며 물었다.

"지금까지 여기서 어떻게 버텼어요?"

"내가 마도 공학 전문가가 아니라서 표현하긴 어렵다만... 블링크를 사용할 때 밟아야 하는 공간의 틈... 같은 게 있어. 그 공간의 틈새에 나 자신을 가뒀어. 거기서 숨어서 버텼지."

"아공간에 들어가 있었다는 말씀입니까?"

레이는 조금 식겁했다.

자꾸 다치고 돌아오면 아공간에 가둬놓고 넣었다 뺐다 하겠다는 누군가의 겁박 아닌 겁박이 떠올라 살짝 어깨가 떨렸다.

레이가 나도 아공간에 구겨서 넣어지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자 울트가 고개를 저었다.

"아공간이랑은 달라. 어쨌든... 공간의 틈새에선 시간 감각이 왜곡되고 신진대사가 아주 낮게 떨어져. 덕분에 버틸 수 있었지."

물론 그동안에도 육체의 손상은 계속해서 쌓였다.

오랜 공복으로 인해 바닥난 체력과 몸을 침식해오는 오염된 마나 때문에 울트는 지금 전투를 수행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평범한 정신력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진즉 쓰러졌겠지만.

그럼에도 울트는 강력한 의지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콰앙!!

마물을 하나 더 요격한 울트가 엄지로 등 뒤의 탑을 가리키며 물었다.

"근데 저분은 누구시냐?"

레이와 동행한 마법사는 실력만 보면 황실이나 5대 마탑의 고위 관계자쯤 돼 보였다.

허나 루나는 레이와 굉장히 편안히 대화를 나누었고, 또한 거리감도 가까웠다.

레이가 피식 웃으며 답했다.

"디나르산 레전드리 고아요."

"뭐...?"

"그리고, 제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가족 같은 아이예요."

따뜻한 웃음을 머금는 레이를 잠시 지켜본 울트가 질문을 이어가려 했다.

허나 둘의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쩌어엉!!!!!!!!!!

갑작스러운 굉음과 함께.

극한까지 압축된 마나의 파동이 중앙 탑으로부터 뻗어나와 지하 도시를 뒤흔들었다.

레이와 울트조차 마나의 파동과 맞닿으며 발생한 충격을 완전히 해소 못 하고 피를 왈칵 토했다.

지하 도시로 진입했던 마물들은 아예 피 웅덩이를 만들며 혼자서 고꾸라졌다.

"?!"

레이와 울트가 입가를 피로 물들인 채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거대한 마나의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마나의 밀도가 너무 높아 개안을 하지 않고도 푸른 기류가 뚜렷이 보일 지경이었다.

콰가가각!!

마나의 폭풍과 맞닿은 천장 일부가 가루가 되어 소멸했다.

지하 도시의 중앙에 위치했던 탑은 이미 대부분 박살 나 원형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휘몰아치는 마나의 밀도가 계속해서 높아진다.

이제는 끈적하게까지 느껴지는 마나의 폭풍이 시야조차 왜곡시키며 빛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섬찟한 감각이 몸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끼며, 레이가 제자리서 굳은 채 입술을 달싹였다.

"루나...?"

*

금지된 숲으로 떠났던 은십자 기사단이 리오슈코로 귀환했다.

몇 시간 전, 은십자 기사단은 지하 도시가 완전히 포위되기 전에 악마 숭배자와 마물들을 뚫고 나가는 데 성공했으나 숲을 빠르게 주파하는 과정에서 많은 희생을 치러야만 했다.

결과적으로 은십자 기사단원의 삼분의 일이 금지된 숲에서 전사했다.

선두에 섰던 길란트는 최대한 많은 단원들을 구하기 위해 무리하다 결국 큰 부상을 입었다.

놓고 가라는 길란트를 레오니가 질질 끌다시피 업어서 리오슈코까지 데려왔다.

은십자 기사단이 큰 희생을 치르고 돌아오자 리오슈코는 난리가 났다.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기사들을 치료하기 위해 온 도시의 치료사와 성직자가 달라붙었다.

길란트는 큰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응급처치만 한 후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을 완수하기 위해 움직였다.

일단 보고가 우선이었다.

길란트는 짧은 고민 끝에 두 눈으로 직접 본 것보다 상황을 과장했다.

지하 도시에는 악마 숭배자들의 실험체들이 들끓고 있었다.

끔찍한 키메라와 악마 숭배자들의 공세에 은십자 기사단은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후퇴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은십자 기사단이 확인한 적들의 병력이라면 삽시간에 왕국의 영토를 초토화시킬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

제국의 요원이 기사단과 합류해 지하 도시에 관한 정보를 가지고 귀환했으며, 이번 사태에 대해 제국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길란트는 그러한 내용을 왕실에 통신으로 전달한 후 정식으로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길란트는 아마도, 기사가 된 후 처음으로 정식 보고서에 과장된 내용을 덧입혔다.

그것이 목숨을 구해준 레이의 일행을 위하는 길이었으며 죽은 단원들의 희생을 무가치하게 만들지 않는 길이었다.

평생 거짓을 멀리했던 길란트였기에 그 거짓은 신뢰받을 수 있었다.

길란트는 살갗이 벌어진 허리에서 핏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꾸역꾸역 보고서를 작성했다.

레오니가 안절부절못하며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잠시 귀를 기울이던 길란트가 크게 외쳤다.

"들여보내."

문이 열리고, 얼굴을 변장한 제국 정보국에 소속된 코멧이 방으로 들어왔다.

길란트는 코멧이 변장했음을 알아챘지만 코멧의 입에서 '레온'의 이름이 나오자 지적하지 않고 넘어갔다.

"기사님, 레온은 어디 있습니까? 기사단과 동행한 것 아니었습니까?"

"레온과 무슨 관계지?"

"말하자면 긴데, 동료 같은 겁니다."

"당신도 제국에서 왔소?"

직설적인 길란트의 질문에 코멧이 잠시 침묵했다가 앞으로 다가섰다.

"그래, 제국에서 왔습니다. 당신들과 동행한 레온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알고 있는 걸 설명해주겠소."

길란트는 금지된 숲에서 있었던 일을 축약해서 코멧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되어서 레온은 수행할 임무가 남았다며 지하 도시에 남기를 자처했소. 덕분에 우리가 살아돌아올 수 있었지. 레온과 그의 일행이 아니었다면 전멸했을 거요."

"미치겠군."

코멧이 인상을 구기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안달이 난 듯한 코멧을 향해 길란트가 덧붙였다.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하시오. 은십자 기사단의 단원들은 기꺼이 레온을 위해 나설 것이오. 기사단원 중 부상이 심하지 않은 이들이 몇 있으니 도움이 될 것이오."

"하, 지금 그런 문제가..."

코멧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지금 제국 정보국 윗선에서 당장 '레온'의 위치를 파악하고 귀환시키라는 압박이 들어오고 있었다.

게다가 압박의 수위가 정신 나간 수준이었다.

일이 꼬이면, 왕국의 게이트를 점거하고 병력을 파견해 레온을 구출하겠다는 미친 소리까지 나오고 있었다.

사람 하나 때문에 전쟁하자는 소리였는데, 물론 실제로 제국이 그리 막 나가진 않겠지만 레온에 관계된 일이 그만큼 중대한 사안이라는 뜻이었다.

'대체 그놈 정체가 뭐야?'

코멧은 레온의 진짜 신분은 알 수 없었으나 그가 일반적인 요원이 아니라는 건 백번 이해했다.

헌데 길란트의 설명을 들으니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레온은 지하 도시 아래서 시체가 되었을 게 뻔했다.

이 사실을 윗선에 어떻게 보고해야 후폭풍이 적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때.

쿠웅-!

마나의 파동이 방 안을 한 차례 훑고 지나갔다.

한 발 늦게 유리창에 금이 쩍 새겨졌다.

코멧과 길란트는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깜박이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거리를 지나다니던 사람들도 방금 전 마나의 파동을 느꼈는지 제자리에 서서 수근거리고 있었다.

길란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레오니가 고용했던 마법사 용병을 발견했다.

길란트가 마법사에게 다가가 물었다.

"이보시오, 방금 그게... 대체 무엇이었소?"

마법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눈을 부릅뜬 채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길란트가 잠시 기다리다 마법사를 다시 물렀다.

"이보시오."

"하... 하하..."

마법사는 여전히 길란트를 돌아보지 않은 채 실성한 것처럼 홀로 웃기 시작했다.

"허으, 크크크... 내가... 내가 지금... 악몽을 꾸고 있는 건가...?"

마법사가 눈을 비볐다.

허나 눈을 감았다가 떠도 여전히 보이는 풍경은 같았다.

마법사는 비틀거리다 자리에 주저앉았다.

핏줄을 타고 기어오르는 섬찟한 전율이 자꾸만 어깨를 떨리게 해 몸을 웅크려야만 했다.

하지만 눈을 돌릴 수는 없었다.

평생토록 두 번 다시 눈에 담지 못할 저 너머의 풍경을 외면할 수 없었다.

마법사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기도하시오."

"...?"

길란트는 갑자기 기도를 운운하는 마법사를 의아하게 바라보다... 마침내 마법사의 시선을 쫓아 하늘을 보았다.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광경이... 아니었다.

저 멀리 있는 구름이 어디론가 빨려가듯이 거칠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마치,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한 점을 향해 수축하듯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자연현상에 길란트가 눈을 찌푸렸다.

허나 그건 자연 현상 따위가 아니었다.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시오."

길란트가 마법사를 다시 돌아보았다.

마법사는 아득한 두려움과 경외를 이기지 못하고 두 손을 맞잡으며 눈물을 흘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작해야 기도뿐일 테니."

기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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